70년대 중반 내 청춘이 불타오를때
부산서면에서 광복동에서 나는 너무너무 놀고 싶은데
친구들이랑 놀고 귀가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우리 아버지는 동생을 불러"야구 빳따 갖고 온나..."
눈치없는 내 동생은 1초 망설임 없이 갖고 온다
내 동생은
고등학교때 야구부에서 잠시 운동을 한적있다
내 처녀때 집에는 늘 야구배트가 있었는데
그 야구배트는 동생의 야구 연습보다
아버지가 이 딸 잡는 도구로 더 많이 쓰였다
내 유년때 우리엄마 부짓깽이로 뚜디리 맞을때는
피하지 않고 앙총 맞게 다 맞았지만
아부쥐 야구빳따는 최소한 중상 아니면 사망이라 차원이 다르다
도망 가지 않을수가 없다
우리 아부쥐 18번은
여자는 바깥에 내 돌리면 접시처럼 깨진다는것이다
이 딸내미를 몬생기게 낳아놓고는 깨지고 말고가 어디있다고 ..
우리 아버지는 자기딸이 천하 양귀비라도 되는줄 아신다
부산 문현동 새마을이란 동네 주택2층에 살았던 나는
아버지 피해 도망 다니기 일쑤다
어떤날은 2층 계단으로 후닥닥 도망가기도 하고
어떤날은 옆집 옥상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나를 사모하던 배정고 다니던 옆집 오빠가 숨겨 주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 주무실때쯤
신발 들고 야금야금 까치발로 들어와
야구빳따 갖다준 동생을 후리 잡았다
세월가고 나도 늙고 동생도 늙어
그런 동생이 서울서 사위 본다고 초대장이 왔지만
난 코로나가 무서워 가질 못했다
"누야~
이불하나 보냈다
우리 사위 예단이라 생각해라
응~그래 고맙다~"
외국서 오래 근무하다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하나있는 내 동생 못본지도 오래 되었다
택배로 온 이불을 펼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날까
첫댓글 아부쥐가 제데로 몬 뚜디리 잡았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