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목련화
섣달 그믐에 바다가 열려 바다꽃이 피는 마을
명절에 쓸 고막이며 굴, 낙지를 잡아올리는
동네 아낙들이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뻘밭 위 석화꽃 무더기가 피어 오른다.
매서운 바람도, 죽죽 빠지는 뻘탕도 마다 않고
서울서 올 자식들 생각에
바다것 가득 실은 함지박이 갯방죽까지 씽씽 밀려 가고 밀려 오고
마을은 벌써부터 신명나는 설날.
설날 아침 우리는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방바닥에 납작 조아리고 세배를 한다.
손바닥을 새 날개죽지처럼 펼쳐
옛다 하는 어른들의 세뱃돈에 또 한번 이마를 쿵!
어른들의 덕담이 함박눈처럼 내리면
조르르 마루로 나가 차례상에서 건네받은 사과 한 알 베어 문다.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마주보며 세배 하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아침 떡국상이 오른다.
아랫목에 좌정하신 할부지, 할무니께서 숟가락을 들면
우리도 일제히 숟가락을 들어 맛난 음식들로 흐뭇한 미소가 벙근다.
무나물, 고사리 나물, 도라지, 시금치, 토란대 나물, 동태전, 삼색전, 고막, 피굴,
노란 인절미, 검은 찰쑥떡, 양태찜, 서대구이. 민어구이 등이
작은엄마들과 당숙모 손에 찢겨 우리들 숟가락에 오른다.
서울로 돈 벌로 갔던 고모와 삼촌이 선물을 나눠 주면
우리는 어깨가 으쓱으쓱
조무래기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마을 공터로 뛰어 나간다.
버드나무 류씨가 사는 우리 동네 집성촌
윗마을, 아랫마을, 한집 걸러 친척들
사립문조차 없어 그 집이 내 집이고 내 집이 그 집인 동네
시집 온 작은엄마 당숙모들만 성씨가 다른 동네
학림댁, 동강댁, 과역댁, 운대댁, 포두댁이 이름인 그녀들의 길쌈과
모내기도 추수도 서로서로 도와 가며 한집같은 우리 마을
찬 바닷바람 맞고 잘 자란 굵은 마늘알이 봄볕 토방에 뒹굴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황금 벼이삭과
유자 향이 노랗게 번지는 마을.
설날이면 하루종일 굴뚝 연기가 멈추지 않는 마을.
서울서 돈 잘 번다는 윗마을 청강댁 아들,
큰 회사에 취직했다는 건넌 마을 동림댁 딸,
솔개 너머 돌깨에 사는 당숙모 아들들이
정종병, 내복 들고 어른들께 세배를 오면
떡국을 끓이느라 아궁이가 식지 않는 인심 좋은 마을.
하루 볕도 다퉈 위, 아래를 가르치던 마을.
찰쑥떡, 인절미를 만드느라 절구통 떡메가 쿵쿵거리고
할머니의 엿기름 조청 고는 냄새가 고향 앞바다를 휘감아 오던 정겹던 마을.
한집에 아홉, 여덜, 일곱이 예사롭던 자손이 번성한 마을.
앞에는 바다를 품고, 수덕산 날개가 마을을 감싸는
배산임수의 버드나무 류씨가 사는 그 마을.
사람이 먼저인 버드나무 동네, 호동리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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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긴 시입니다. 길다고 많은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어서 많이 줄였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은 것 같아서 내가 직접 정리를 해서 줄였는데도 35행의 시가 되었습니다. 시에 중첩된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작자로서는 빼기가 아까운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는 운만 떼어도 짐작되는 것은 밝히지 않아도 됩니다. 매우 정겨운 마을입니다. 버들유자 유씨라고 하면 본이나 혈통은 밝히지 않아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전주이씨 양녕대군파”라는 식으로 성씨를 밝히는데요, <버드나무 류>씨라고 하면 완전하지 않은 듯합니다. 한자로 쓸 때 버들유자를 쓴다는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씨란 성에 柳씨도 있고 劉도 있습니다. 그리고 근자에 드물게 兪도 있는 것 같던데요. 내가 중국성이라고 했더니 웃었습니다. 모르고 하나 싶기도 하고요. 목련화는 그중 柳(버들유)자를 쓰는 류씨임을 알았습니다. 본이 무엇인가, 무슨 파인가를 말하면 더 확실합니다.
아래와 같이 줄였지만 모두 목련화가 언급한 내용입니다. 우선 읽고 더 줄이든지 여러 편으로 나누든지 하십시오.
섣달그믐께면 바다가 미리 열려 꽃이 피는 마을
설에 쓸 고막, 굴, 낙지를 잡아 올려야지
동네 아낙들은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한다
갯것 실은 함지박이 방죽까지 밀려가고 밀려오고
마을은 일찌감치 신명나는 설 명절
설날 아침 일찍부터 설빔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조아려 세배한다
‘옛다’, 어른들의 세뱃돈과 푸짐한 덕담에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게 진동하는 아침상
고사리 시금치 토란대나물, 무나물 도라지나물,
삼색전에 고막, 피굴, 양태찜, 서대구이. 민어구이
서울로 돈 벌러 갔던 고모와 삼촌이 선물을 나눠 주면
우리는 친구에게 자랑하러 마을 공터로 뛰어 나갔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수덕산 날개가 마을을 감싸는
배산임수의 버들류(柳)자 류 씨의 집성촌
윗마을, 아랫마을, 한 집 걸러 친척들, 사립문도 필요 없어
엄마, 큰엄마, 작은엄마. 당숙모만 성씨가 달랐지만
모내고 추수하고 길쌈하고 자식 기르고 부지런한 여인들
일 년이 하루 같고 한 동네가 한집 같은 우리 동네
바닷바람 이겨낸 굵은 마늘 접이 토방에 걸리고
유자 열매가 노을처럼 붉게 익어 향기로운 고향집
섣달그믐께부터 종일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지
서울서 공부하고 출세했다는 윗마을 청강댁 아들
큰 회사에 취직했다는 건넌 마을 동림댁 딸
솔개 너머 돌깨에 사는 당숙모 학림댁 아들들이
과역댁, 운대댁, 포두댁 늠름한 자식들이
정종병, 내복 상자 들고 어른들께 세배를 오면
떡국을 끓이느라 아궁이가 식지 않던 마을.
하룻볕 쪼개어 위아래를 가르치던 마을.
찰쑥떡, 인절미에 절구통 떡메가 쿵쿵거리고
할머니의 엿기름 조청 고는 냄새가 달큰하던 마을
버드나무 우거진 호동리, 갈수록 그리운 설날 아침
고향 바다 파도 소리 정겹던 마을.
첫댓글 앗! 교수님!
많이 줄이시니 내용 전달이 훨씬 나아졌습니다.
많은 말을 하려는 것보다 압축미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쉽지 않습니다.
말씀해 주신 데로 더 다듬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