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말자
11. 광화문
광화문은 조선을 건립한 태조 이성계의 주도 하에 경복궁을 건설할 때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
그 후 무려 300여년 가까이 빈 터로 남아있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비록 경술국치 후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건물 자체는 그대로 보존되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폭격을 당해 문루가 불타버렸으며 홍예도 심하게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고 석축에도 무수한 총탄자국이 패였다
12. 송광사
송광사는 신라 말에 혜린 선사가 송광산에 창건한 절로 원래는 길상사라고 불렸지만 후에 송광사로 바꾸었다
비록 임진왜란 때 절 자체가 쑥대밭이 되긴 했지만 후에 승려 응선과 부휴가 다시 중건하였다
그러나 1842년에 큰 화재가 일어나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져서 또 다시 세웠다
비록 수많은 수난을 겪었지만 송광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불교 사찰이자 한국의 삼보사찰(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크고 유명한 절이었다
송광사는 해방 후 1948년 여순사건 때 일부 건물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 규모만큼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국군과 유엔군이 1.4 후퇴 당시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여러 절을 불태웠는데 불행히도 송광사도 그 중 하나였다
국군의 방화로 송광사의 중심 건물들이 모두 불타버렸고 이로 인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던 송광사는 다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3. 낙산사
낙산사는 강원도 오봉산에 있는 절로 현재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곳이다
신라 문무왕 시기인 67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이후 여러차례 중건과 화재, 그리도 복원을 반복하였다
낙산사는 858년 범일대사가 크게 중창하였으나 1231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200여년 뒤인 1467년 세조의 왕명으로 크게 중창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
이후 중건되었지만 병자호란때 또 소실되었고 1624년, 1631년, 1643년에 다시 연달아 중건되었지만 1777년 화재로 인해 또다시 소실되었다
결국 다음해에 다시 중건되었으며 이후 200여년 가까이 낙산사에는 아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해 낙산사 일대가 몽땅 불타버려 또 소실되었다
결국 불타버린 낙산사는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다시 복원되었다
14. 지광국사현묘탑
지광국사현묘탑의 정식 명칭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으로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래 법천사터에 있었지만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다사 반환된 뒤 원래 위치가 아닌 경복궁 경내로 이전되어 보관되었다
이 지광국사탑은 6.25 전쟁 때 직격탄을 맞아 여러 조각으로 크게 파괴되었다
이후 1957년 복원되기는 했지만 복원과정에서 시멘트 땜질을 해놓아 곳곳에 균열이 발생했다
15. 봉선사
봉선사의 자리에는 원래 고려시대 때 창건한 운악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나중에 폐허가 된 것을 1469년 세조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운악사를 크게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개칭하였다
특히 봉선사에는 세조의 어진을 봉안한 봉선전도 있었는데 이 어진은 임진왜란 당시 봉선사가 타오를 때 함께 없어질 뻔했지만 이이첨이 간신히 구출하였다
봉선사도 낙산사 못지 않게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소실과 중건을 반복했고 6.25 전쟁 때도 법당 등 14동 150칸에 달하는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현재 봉선사 내의 건물들은 196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16. 원주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
원주 평장리마애공양보살상은 강원도 평장리에 위치한 암벽에 얕게 선으로 새겨진 고려시대의 보살상으로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돌려 앉아있다
신체 각 부분의 비례도 잘 맞고 통통한 편이다
이 작품도 6.25 전쟁 당시 얼굴과 상체, 팔목 등이 총탄 자국으로 훼손되었다
17. 원풍리마애불
고려시대 때 제작된 원풍리마애불의 정식 명칭은 괴산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다
이 마애불 좌상은 12미터 높이의 암벽에 감실을 파고 그 안에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병좌상을 조각하였는데 넓적한 입과 가늘고 긴 눈 등의 조각수법은 완강하면서도 한결 자비로운 느낌을 주는게 특징이다
원풍리마애불도 6.25 전쟁 때 총탄 세례를 받아서 곳곳에 총탄자국이 남아있다
당시 국군 또는 미군들이 이 마애불 좌상을 표적 삼아 사격연습을 했다고도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18. 촉석루
촉석루(矗石樓)는 진주성 내에 위치한 누각으로
1241년에 처음으로 건립되었으며 원래 장원루(壯元樓)라고 불렸지만 조선시대 때 촉석루로 명명되었다
촉석루는 1593년 7월 29일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진주성 동문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희 등이 이곳에 모여서 결사항전하다 모두 전사하거나 강으로 뛰어들어 자결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비록 야사지만 논개가 촉석루 앞의 의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든 곳이기도 하다
촉석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8년에 남이흥이 재건했다
이후 촉석루는 일제강점기 때도 철거되지 않고 진주성 내에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6.25 전쟁 중인 1950년 9월 1일, 미군이 떨어뜨린 소이탄에 맞아 불타버리는 참사를 겪었다
불타버린 촉석루는 1960년 5월에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으로 새롭게 복원했다
19. 함흥본궁
함흥본궁(咸興本宮)은 북한 함흥시에 위치해있는데 본래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까지 살았던 저택이었지만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한동안 말년의 외로움과 울분을 달랬던 곳이기도 하다
후에 이성계가 사망하자 이성계의 사당으로 사용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0년 다시 지어졌다
참고로 함흥본궁은 야사에 나오는 <"함흥차사">의 배경이기도 하다
함흥본궁은 17세기에 다시 지어진 후 일제강점기 때도 꿋꿋이 살어남았고 6.25 전쟁 전에는 어궁구 등 이성계의 일제강점기 때 찍힌 함흥본궁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함흥본궁은 폭격을 당해 일부 건물이 파괴되었으며 불행히도 거기 보관되어 있었던 이성계의 유품들도 대부분 없어져버렸다
20. 벽제관
벽제관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했던 조선시대의 건물인데 당시 조선으로 오는 중국 사신들의 공용숙박시설이 있었던 곳이었다
당연히 벽제관은 중국과의 외교 덕분에 중요한 건물로 취급되었으며 중국 사신들은 벽제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서울로 가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었다
벽제관은 1625년에 새로 세워졌으며 당시 규모는 1,265평에 부속건물만 50칸이 넘을 정도로 큰 객사였다
그러나 곧 벽제관은 경의선 철도의 개통과 시대상황의 변화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가 일제강점기 때 대다수가 훼손되었다
그래도 중심건물은 남어있었지만 이것마저도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출처 : 네이버 불로거 "Gnass"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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