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오늘의 역사
2023년 성악가 김태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아시아 인으로 처음
세계 3대 클래식 경연대회로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 성악가 김태한(22·바리톤)이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한은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에서 진행된 성악 부문 경연 최종 순위 발표에서 1위로 호명됐다. 1988년 이 대회에 성악 부문이 신설된 이후 한국은 물론 아시아권 남성 성악가로는 첫 사례이며 참가자 중 최연소자 이다
2022년 16세기에 지어진 우크라이나 스비아토히르스크 라브라 수도원이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전소.
2022년 이다빈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월드태권도그랑프리 1차 대회 금메달
2022년 북,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발사..올해 18번째 무력시위
2014년 제6회 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여당 8곳·야당 9곳 승리, 교육감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 13곳 당선
2009년 한국어 위키백과의 문서수가 10만개를 넘었다.
2005년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 중국 천안문 민주화시위 16주년 기념 집회
6·4사건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연회)는 4일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집회를 가졌다. 홍콩시민들은 최근 중국이 홍콩에서 보통선거를 통한 특구 행정수반 및 입법회 의원을 선출하는 것을 부결시킨 것과 중국을 비판한 홍콩 라디오 프로그램의 사회자 3명이 정치적인 압력으로 연달아 사직한 것에 불만이 많아 집회에는 많은 사람이 참가했다.
지연회는 저녁 8시부터 빅토리아공원에서 촛불집회를 갖기로 했으나, 참가한 시민이 너무 많아 8시반이 되어서야 집회가 거행되었다. 집회가 시작됐을 때 이미 6개 축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홍콩 천주교 단체들은 집회 전에 기도회를 거행했으며 홍콩교구 천르쥔(陳日君) 주교가 몸소 참가했다. 기도회에 참가한 홍콩 시민은 빠른 시일 내에 민주 중국을 건립하기를 축원한다고 했으며, 현장에서는 6·4 영상물이 방영되었다.
2005년 해군 사상 첫 여성 파일럿 탄생
해군 창군 이래 처음으로 여성 파일럿이 탄생했다. 2004년 해군사관학교 졸업 직후부터 강도 높은 비행훈련을 무사히 통과, 앞으로 링스(LYNX) 대잠헬기를 조정하게 될 양기진(24·해사 58기) 중위가 그 주인공이다.
양 중위는 2004년부터 총 32주간의 초등 및 중등 비행교육 과정과 6개월 과정의 야간 공중조작, 해상 전술 단독비행, 비상조치 절차 훈련 등 고등 비행훈련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대잠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링스 헬기 조종사는 기체 조종뿐 아니라 대잠 탐색 및 공격 장비까지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조작능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파도로 요동치는 구축함 갑판에서의 이착륙과 해상 15m 상공에서 수행하는 대잠 탐색임무 등에는 고난도의 헬기 운용술과 담력이 요구된다.
양 중위가 조종하게 될 링스 헬기는 대잠초계기와 함께 ‘잠수함 킬러’ 로 꼽힌다.양 중위는 “생도 시절에는 K-2 소총을 애인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링스 헬기를 애인으로 삼아 해상방위의 초석이 되겠다” 고 했다. 양 중위는 앞으로 해상작전 비행대대에 배치돼 3∼4개월간 작전가능훈련(CRT)을 받으며 대잠작전뿐 아니라 대함전, 야간 조명지원 등 전술지원 교육을 받은 뒤 실전에 배치된다.
해군은 2001년 여군장교를 처음으로 배출한 데 이어 2003년 5월에는 전투함에 여군을 처음으로 배치했다.
2005년 3600년 전 이집트 제13왕조의 파라오 네페르호텝 1세의 석상 공개
3600년 전 이집트 제 13왕조의 파라오인 네페르호텝 1세의 석상(石像)이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됐다.
네페르호텝은 제13 왕조 22대 왕으로 기원전 1696-1686년 이집트를 통치했다.
네페르호텝왕의 석상은 장례 마스크에 왕의 두건을 쓰고 있었으며 이마에는 코브라가 그려져 있었다. 고대 파라오의 상징인 코브라는 접근하는 적을 불을 뿜어 쫓아내는 것으로 고대 이집트인들은 믿었다.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보수작업을 벌이던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지난 3월 한 오벨리스크 부근의 땅밑 1.6m 지점에서 1.8m 크기의 이 석상을 발견했다. 이 석상은 같은 모양의 또다른 석상과 손을 잡고 있으나, 절반이 아직 땅에 묻혀 있다
2003년 ‘이빨 가진 새’ 7000만년 만에 부활, 활동중단 유전자 살려내
영국과 프랑스 과학자들이 공룡 시대 이후 7000년 만에 처음으로 ‘이빨 가진 새’ 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낭트대학의 조시안느 퐁탠느-페뤼 박사와 영국 킹스칼리지의 폴 샤프 박사 등 과학자들은 병아리 배아에 쥐의 세포를 이식해 7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이빨 형성 유전자’ 를 깨어나게 해, 병아리의 부리 안에 흔적 기관으로 남아 있던 이빨이 다시 자라도록 하는 성과를 얻었다.
1억 4700만 년 전 지구를 누볐던 시조새는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었으나, 7000만 년 전부터는 새의 부리에서 이빨이 완전히 사라졌다.
2002년 한국, 유럽강호 폴란드에 2대0 승. 월드컵 출전 48년만의 첫 승
한국이 2002년 6월 4일 부산에서 벌어진 2002한일월드컵 축구대회 D조 첫 경기에서 유럽의 강호 폴란드를 시종 압도한 끝에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대0 쾌승을 거뒀다. 지난 1954년 스위스 월드컵부터 여섯 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노크한 끝에 거둔 첫 승리였다. 한국은 역대 4무10패의 치욕적 월드컵 성적표에 드디어 1승을 보탰다.
부산 주경기장은 경기시작 6시간 전부터 관중들이 몰려들기 시작, 경기개시 휘슬이 울릴 때쯤엔 이미 열광의 도가니였다. 붉은 옷 차림으로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렬한 성원을 보냈다. 전반 초반 폴란드의 거센 공세에 잠시 주춤했던 한국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한국은 최종 수비 홍명보가 상대 진영 깊숙이 침투하는 등 총력 공세를 폈다.
전반 26분 드디어 기다리던 골이 터졌다.
이을용이 왼쪽에서 강하게 밀어준 볼에 황선홍이 가볍게 왼발을 갖다댄 것.
월드컵 1승과 16강 진출의 염원을 담은 이 슈팅은 여지없이 폴란드 골대를 갈랐다. 한국은 후반 8분 유상철이 아크 정면에서 통렬한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려 다시 한번 골대를 흔들었다.
사실상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한국은 계속 승승장구하여 월드컵 4강 진출의 기쁨을 맛보았다.
2001년 이란 대통령, 샐먼 루시디의 `악마의 시` 관련사건 종결 선언
저서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영국 작가 샐먼 루시디(Salman Rushdie·54)가 10여년 만에 ‘사건 종결’ 선언을 받았다.
모하마드 하타미(Mohammad Khatami) 이란 대통령은 4일 “샐먼 루시디 사건은 이제 종결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종교적·도덕적·문화적 요구에 따른 어떠한 테러에도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루슈디의 저술은 이슬람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지만, 이란은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해온 루시디는 소설 ‘악마의 시’를 출판한 이듬해인 1989년 이란의 이슬람 최고지도자인 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91년 재개된 이란과 영국의 국교는 98년 하타미 대통령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로 약속함으로써 대사급으로 격상됐다.
2001년 북한 상선, 서해안 북방한계선(NLL)과 제주해협 침범
2000년 박지은, 美LPGA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골프대회서 우승
수퍼 루키` 박지은이 2000년 6월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뮤렐스인렛의 캐시아일랜드 그린스닷컴 클래식 골드대회 4라운드에서 LPGA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백전노장 줄리 잉스터와의 기싸움에서 이겼다.
외견상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킨 완성이었지만 마지막 3홀을 남겨두고 3타 뒤진 상황에서 일궈낸 대역전극이었다.
2000년 LPGA투어 한국선수로는 가장 먼저 우승한 선수가 됐다.
여섯살때 `리틀 미스코리아`로 뽑히며 `미의 여왕`을 꿈꾸던 박지은(미국명 그레이스 박)은 리라초등학교 2학년인 여덟살 때 골프채를 잡았다. 그리고 클럽을 잡은지 한 달 만에 93타를 쳐 주위를 놀라게 했다. 박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1991년 하와이 친척집으로 유학을 떠나 이후 미국의 주니어대회에서만 33승을 올렸다.
1995년 US여자오픈 역대 최연소(16세) 출전, 1997년 외국인으로 첫 전미체육대상 수상. 애리조나주립대 진학 후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며 아마추어 랭킹 1위를 달리던 박지은은 1999년 5월 NCAA(전미대학체육협회)여자골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아마추어 통산 55승을 달성했다.
1백67cm,55kg의 체격조건에 엄청난 장타가 주특기. 이번대회 2라운드에서는 드라이버샷을 303야드나 날렸다. 한편 서울에서 갈빗집 `삼원가든`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은의 아버지 박수남씨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음식점을 찾아온 손님 모두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9년 400년전 강화조약 체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 일기 일본서 발견
1998년 6.4 지방선거 실시
1996년 보건복지부 35년 만에 산아제한 폐지
1993년 과학로켓 `과학1호`, 서해안에서 발사(96초동안 오존층 측정)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최초의 과학로켓 ‘과학1호’ 가 1993년 6월 4일 서해안에서 발사됐다.
로켓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왕복선을 쏘아올리는 수송수단으로, 우주 개발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로켓 개발이 1차적으로 돌파해야 할 관문이라는 의미에서 ‘과학1호’ 발사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우주기술 보유국의 대열에 서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번에 발사된 ‘과학1호’ 가 비록 과학실험 및 원격탐사용 소형 과학위성을 저궤도상에 올리기 위한 중형과학로켓으로 선진국에서 방송통신위성이나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릴 때 활용하는 3단추진 로켓에 비해서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한번 추진으로 지구상공 75km까지 올라갈 수 있어 다른 나라의 과학로켓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을 받았다.
‘과학1호’ 는 길이 6.7m, 무게 1.4t, 직경 42cm의 고체연료추진형 로켓으로, 발사 후 최고 비행고도 38.6km, 비행거리 77km를 188초 동안 비행하면서 한반도 상공의 오존층 농도를 측정했다. ‘과학1호’ 는 1990년 7월부터 3년간 항공우주연구소 유장수 박사팀과 서울대, 삼성항공 등 3개 대학, 5개 기업이 공동참여, 28억4천7백만원의 연구개발비와 총3백22명의 연구인력이 투입돼 설계 제작했으며 탑재되는 전파송수신기 오존측정기, 온도측정기 등 전자장치의 경우 국산화율이 약70%나 됐다.
1990년 韓蘇 정상회담(노태우-고르바초프,샌프란시스코에서 첫 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1990년 6월 5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날의 회담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양국이 단교한 이래 86년만에 국교수립을 가능케 했으며 동시에 동북아 냉전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됐다.
한소정상회담은 소련의 한반도정책과 노태우정권의 북방정책이 맞아떨어져 성사된 것으로, 고르바초프는 한반도 평화정착과 한소경제협력 확대를 바탕으로 소련의 경제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개혁,개방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한국측 역시 사회주의권 특수를 통해 경제침체를 극복하면서 한소수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구조의 정착이 필요했던 때문이다. 이 회담 결과 남북교차승인 문제가 활발히 거론되고,국가보안법 철폐, 방북인사 석방 요구가 제기됐으며 9월 30일 한소수교가 이루어졌다.
1989 폴란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중 처음 다당제 총선.
1989년 6·4 톈안먼 사건 베이징에서 발생.
1989년 6월 4일, 중국정부가 천안문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일어난 유혈참극 `천안문사태`로 전 세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4월 15일 호요방 前당총서기가 사망하자 그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기 시작했고, 일반 시민도 여기에 가세하면서 집회는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천안문에서는 지식인, 노동자, 일반시민 등 100만여명이 연일 모여들어 민주화를 요구했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온건파인 조자양 총서기, 호계립 정치국 상무위원 측과 강경파인 양상곤 국가주석, 이붕 총리 측이 대립했으나, 강경파가 득세하자 계엄군이 이날 새벽 천안문광장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학생,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군의 발포로 수천명이 희생됐다.
이후 중국은 서방국가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상층부 권력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 조자양을 실각시키고, 강택민을 당 총서기로 선출, 새 실권자로 등장시켰다. 실권자 등소평은 당중앙군사위 주석직 등 모든 공직에서의 사퇴를 발표했다.
1989년 하메네이 이란 대통령, 이란 최고지도자로 선출
1985년 북한 보천보전자악단 창단
북한의 `보천보 전자악단`이 1985년 6월 4일 결성됐다. 북한의 2대 경음악단의 하나로 김일성의 혁명 전적지인 보천보에서 이름을 따왔다. 최고의 음악교육을 받고 기량이 가장 뛰어난 연주가, 가수, 작곡가로 구성됐으며 평양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신디사이저 등 전자악기를 주축으로 해서 피아노 등의 양악기와 전통악기를 혼용하고 있으며 음악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성악 무용을 하는 전속배우와 합창단을 사이에 두고 있다. 노동당의 문예방침에 의해 리듬보다는 가사를 중시하는 북한식 음악을 지향하고 있으나 팝송 등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 여러 곡도 레퍼토리로 갖고 있다.
1982년 제8회 주요선진국 정상회담 개최(프랑스 베르사유)
1981년 사다트와 베긴, 팔레스타인과 시나이문제로 회담
1980년 신라시대 최초의 비구니 사찰 영여사지 발견
1980년 우리나라 첫 태양광 발전소가 아차도에 준공
1977년 소련 새 헌법초안 발표
1970년 연평도 서방서 해군방송선, 북한경비정에 납북
1970년 통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1970년 엘살바도르-온두라스 국경분쟁 종결(1969년 7월이래)
1971년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크 루카치 사망
루카치는 188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베를린대에서 지멜에게,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베버에게 사사했다. 하지만 부르주아라는 계급적 조건에 반감을 느껴 1918년 헝가리 공산당에 입당했다.
첫 주저인 ‘역사와 계급의식’은 초기 마르크스의 주요개념이었던 소외와 물화를 재발견하여 블로흐와 벤야민, 마르쿠제 등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히틀러가 등장한 후 모스크바로 망명해 과학학사원 철학연구소에서 미학·문학사에 몰두했다. 1944년 귀국 후 ‘젊은 헤겔’(1948) ‘이성의 파괴’(1952)를 발간했다. 반소파(反蘇派)의 입장을 견지하며 한때는 나지 이무레 정권의 문화장관이 되었으나 곧 루마니아로 추방됐다. 1957년 사면되어 다시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후에는 주로 미학 연구에만 전념했다. 유고로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과 ‘윤리학’이 있다.
생애 말년에는 “최악의 사회주의 조차 최선의 자본주의보다 항상 더 낫다”라고 주장하며, 세계 유일한 돌파구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이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역시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에 입각해야 함을 강조했다.
1969년 서독이 캄보디아와 단교했다.
1966년 장면 총리 사망
1966년 6월 4일 제2공화국 총리였던 장면이 간염으로 작고했다. 1899년 인천에서 출생했고 호는 운석(雲石)이다.
YMCA 영어학교를 거쳐 도미(渡美), 맨해튼 가톨릭대학을 졸업했고 외국대학 여러곳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근무했고 1946년에는 정계에 진출했으며 1948년에는 제헌 국회의원이 됐다. 초대 주미대사로 한미국교수립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1951년에는 국무총리가 됐다. 그 후 민주당을 조직하여 최고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56년에는 부통령이 됐다. 부통령 시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피격됐으나 미비한 상처였다. 1960년에는 부통령에 입후보했으나 낙선했다. 1960년 8월 19일 제2공화국의 국무총리로 피선되어 정권을 장악했으나 5ㆍ16군사정변으로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나야했다.
제2공화국이 대한민국 역사상에서 가장 민주적이었던 시기였던만큼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하지만 한편에서는 성격이 부드럽고 온순한 탓에 한 국가의 최고권력자로서는 의지가 강건하지 못했다는 평도 받았다
1965년 소련-월맹 원조협정 조인
1959년 추풍터널 개통
1954년 프랑스-베트남 독립협정 조인
1952년 교육자치제실시
1951년 민간항공기 광주선 개설
1950년 상공은행 발족. 한국-일본 무역협정 조인
1946년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에 취임
1943년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문민정권을 폐하고 스스로 노동부장관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의 지나친 親노동자 정책과 국민을 통제하는 경제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 1945년 10월 그는 정적에 의해 투옥된다.
페론은 1946년부터 1955년까지 부인 에바와 함께 2차대전 중에 비축해 둔 풍부한 재정을 연간 20%가 넘는 임금인상과 사회보장제도, 노동자 주택정비에 투입하며 ‘페론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심정책은 결국 20세기 남미 최대 부호국이었던 아르헨티나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
1952년 온 국민의 사랑을 받던 에바가 세상을 떠나자 페론은 급감한 인기도와 함께 계속된 경제 파탄으로 1955년 실각했다. 이후 1973년 전 부인 에바를 닮은 세 번째 부인 이사벨과 함께 부부가 대통령과 부통령에 나란히 당선되는 이변을 낳기도 했으나 이듬해 조국을 구제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1944년 미국-영국군 로마 점령
1943년 아르헨티나에 페론지휘하의 쿠데타
1942년 일본 버어마에 군정시행
1938년 제3회 월드컵(프랑스) 개막
1937년 피카소 `게르니카` 완성
1937년 항일유격대 보천보 급습
1937년 6월 4일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국 공산당 소속의 항일 유격대 동북항일연군 제1군 6사 병력 100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함남 갑산군내 보천보를 급습했다. 보천보는 일본인 50여명과 조선인 13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시골 도시 일본경찰 주재소와 면사무소등을 파괴하고 관청을 불태운뒤 밤 늦게 떠난 유격대의 뒤를 인근에있는 일본경찰이 추격에 나섰지만 7명의 전사자와 14명의 부상자만 내고 말았다.
이상이 북한이 그들의 영도자 김일성이 주도 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한 보천보전투다, 이전투는 당시 국내 신문이 호외를 발행할 정도로크게 보도됐지만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를 실제로 지휘 했는지는 북한의 김일성이 보천보 전투에서 활약한 김일성과 동일인물인지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1936년 프랑스, 인민전선의 레온.브룸내각 성립. 최초의 사회당정권
1935년 카프 산하 좌익극단 신건설사 해체
1932년 칠레에 쿠데타, 보수내각을 타도 사회주의적 정책을 채택
1929년 볼드윈 영국내각 총사직
1920년 연합국 헝가리와 트리아논 조약 체결
1920년 최초의 공중욕탕 평양에서 개설
1913년 박용만 등, 미국 네브라스카주에서 유학생회 조직
1913년 영국 여성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 더비 경마대회에서 여성투표권 요구하다 말에 차여 목숨 잃음
1906년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킴
1896(조선 고종 33) 의병장 김하락 일본군과 교전 중 총 맞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 자결
1892(조선 고종 29) 화가 이당 김은호 태어남
1886년 한국-프랑스 수호통상조약 체결
1878년 영국, 터어키 비밀동맹 체결, 영국 키프러스섬 획득
1878(조선 고종 15) 리델 주교 등 3명 석방하고 북경으로 송환
1875년 독일의 서정시인 뫼리케 사망
1864년 중국 신강지역 무슬림, 쿠차에서 청조의 지배에 항거하며 봉기
1864년 6월 4일 중국 신강지역 쿠차에서 무슬림들이 청조의 지배에 항거하며 봉기했다. 쿠차에서의 봉기가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이 인근 도시로 확산되자 그것은 곧 또 다른 봉기를 촉발시켜, 우룸치 야르칸드 카쉬가르 호탄 일리 등지의 무슬림들이 들고 일어나 6개월도 지나지 않은 그해 말에는 신강 전역을 석권하기에 이르렀다.
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1862년 중국 섬서성과 감숙성에서의 회민(무슬림) 봉기로 서북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청조가 신강으로의 사태확산을 막기 위해 퉁간(중국인 무슬림)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소문이 신강전역에 퍼졌기 때문이었다. 군대의 숫자도 적었고 내지와의 통신도 두절된 상태에서 청군은 변변히 대항하지도 못한 채 대부분 자폭하거나 살해되었다.
봉기에 성공한 무슬림들이 힘을 결집하지 못하고 사분오열 상태에 빠져있을 때 천산 서쪽 코칸드 칸국에서 파미르를 넘어 신강지역으로 온 야쿱 벡이라는 `위대한 성전사`가 1년 만에 천산 남쪽의 양기히사르 야르칸드 호탄 등에 있는 여러 무슬림 세력들들을 모두 평정하고 1870년에는 북쪽의 악수 쿠차 우룸치 투르판 등까지를 손에 넣어 신강 전역을 통일했다. 그러나 그곳을 떠났던 청나라가 10여년 만에 다시 신강지역 공세를 강화해 오고, 야쿱 벡도 혼란스런 와중에 돌연사함으로 신강지역의 무슬림 정권도 막을 내렸다.
1798년 카사노바 사망
평생 130여명의 여성과 결혼해 무려 210명의 자녀를 뒀던 케냐의 한 남성이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지병이었던 당뇨병으로 알려졌다.
케냐 지방도시 은디와 행정구역에서 아센투스 오그웰라 아쿠쿠 씨가 지병인 당뇨병으로 사망했다. 아쿠쿠씨는 대표적인 일부다처주의자. 22세 때인 1939년에 이미 5번째 부인과 결혼했고, 35세 때는 45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아쿠쿠씨는 지난 1997년 79세의 나이에 18세의 여성을 마지막 아내로 맞아들였다. 아쿠쿠 씨는 그러나 그동안 80여 명의 부인과는 이혼했다. 자녀 수는 무려 210명.
여성들이 거절하기 어려운 잘생긴 외모와 멋들어진 옷 맵시 때문에 ‘위험인물’이라는 별명이 붙은 아쿠쿠 씨는 연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에 관한 일이라면 주위의 모든 남성을 압도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위험인물’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나는 잘 생겼으며, 옷도 멋지게 입고 여성들을 유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 어떤 여성도 나의 매력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은 존재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간에 토르데실라스 조약이 체결됐다.
1304년 고려 국학 대성전 완성
국학=신라에서 시작된 유학기관. 648(선덕왕2)년 국학제도 도입. 682(신문왕2)년 서라벌에 국학 세움. 747(경덕왕 6)년 제업박사와 조교 두고 태학감으로 고침 776(혜공왕12)년 국학으로 환원
* 고려 성종 11년(992) 국자감 두었고 충렬왕 1년(1275) 국학으로 바꾸었다가 충렬왕 24년(1298)에 성균감으로 하고 대성전 창건. 충렬왕 34년(1308)에 성균관으로 개칭, 공민왕 5년(1356)에 국자감, 공민왕 11년(1362)에 다시 성균관. 조선조에는 성균관으로 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