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석양(夕陽)
칠순 기념 여행이다.
갑자기 기체가 몹시 흔들린다. 연전(年前) 터키여행 때 로드맵이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흑해 상공을 지날 무렵 해양성 난기류를
만난다. 그 흔들림에도 아량 곳 않고 나란히 앉은 두 여인은 옆 손
부여잡고 희희낙락 이야기꽃 피우는데 여념이 없다. 동향(同鄕)의
갑장인 여행의 동반자를 만나 죽이 맞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여행의 삼대 요소가 별거 아닌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마음 맞는 사람만나 여정(旅情)을 느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두 여친(旅親)의 고희기념 여행 덕분에 남편 둘은
덤으로 크로아티아 여행길에 오른다.
살랑살랑 스튜어디스가 따라주는 와인 잔과 상냥한 커피 향이
여독을 가셔준다. 쉼 없이 달려온 터키 항공은 이스탄불을 경유
류블랴나 공항에 긴 하늘 여정의 닻을 내린다. 트랩에서 내려
슬로베니아 발칸 땅에 첫 발 내딛는다. 순간 알프스 대간의 먼발치
슬로베니아 준령의 만년설이 하얀 속살 드러내며 이방인(異邦人)
을 반긴다. 가슴이 뛴다. 만고풍상(萬苦風霜) 세월에 씻긴
만년설(萬年雪) 앞에 서니 한 뼘 칠순 나이가 수유(須臾)인양 마냥
부끄럽다. 곧바로 대기한 관광버스에 올라 빙하활동으로 형성된
알프스의 진주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로 향한다. 말끔한 모터보트
양 옆으로 기우뚱 마주보며 앉아 수정같이 맑은 호수에 피로한
눈을 적시며 요정 같은 블레드 섬에 안착한다. 그리 높지 않은
완만한 성에 올라 호수 주변 광경을 내려다보니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풍덩 빠져든다. 아름다운 호수와 어우러진 산과 들 그리고
오밀조밀한 시가지 풍경들을 마음의 갈피에 담아둔 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향한다. 풍광이 아름다우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연풍광을 닮아 아름답다 했다. 그렇듯
발칸의 중심 크로아티아는 슬라브족 후예 선남선녀들이 쭉쭉 뻗은
다리를 뽐내며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마침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와 자작나무가
파란하늘을 찌르며 흰 구름과 어울려 진풍경을 연출한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이 죄가 되었는지 한때는 로마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슬픈 역사의 뒤안길이 있었다.
다음은 크로아티아 국립공원 중 가장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공원을 달린다.
벌써부터 오! 저 멀리 우뚝 산 중허리에 자리한 호수 호수에서
폭포수가 갈래갈래 물보라 치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16개 에메랄드빛 호수와 90여개의 폭포가
어우러진 절경이 장관이다. 통나무 길 따라 이어지는 호수 길
아래에 손바닥 만 한 송어 떼가 꼬리치며 유유히 노닐고 있다.
오늘 점심때 곁들인 송어 구이는 그곳 송어 떼가 아니라고 현지
안내인이 짐짓 귀 띰 해준다. 여행이 한 참 무르익어 정점을
치 닫을 무렵 아드리아 해 연안의 휴양도시 스플릿을 향한다. 로마
시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궁전을 지어 여생을 보낼 만큼
아름답고 유적 또한 많은 해안 휴양도시로 유명하다. 스플릿을
잠시 거치며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 해안에 다다른다. 오 솔래미오 이태리 민요가
우렁차게 흘러나오는 유람선을 타고 파도를 가르며 드넓은
아드리아 해를 시원하게 달린다. 오 나의 태양이여 웅장한 노래
소리가 저 멀리 바다건너 나폴리 항 까지 울려 퍼져나갔다. 가슴이
확 트인다. 갈매기 벗 삼아 아드리아 해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회를 곁들여 짜릿한 와인 한 잔을 받아든다. 이내 한 마리
새가 되어 훨훨 흰 구름 떠가는 지중해 하늘을 나라본다.
여즉인생(旅則人生) “여행은 즐거워라! 인생은 아름다워라!”다
어느새 해는 기울어 아드리아 해에 석양이 드리워진다.
인생여정(人生旅程)이 석양에 물드는 저 노을 꽃이고 싶다.
석양(夕陽)을 등진 크로아티아 여행 참 좋았다. 끝
2018. 2. 5 용인골 일송 김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