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자에 끓여 먹던 음식
날이 추워지면 따끈한 국물이 있는 전골(煎骨, 顫骨)을 많이 찾는다. 쇠고기전골, 각색전골, 곱창전골, 국수전골, 해물전골, 궁중전골, 김치전골 등 종류도 아주 다양하며, 보통 상 위에서 가스 불을 놓고 보글보글 끓이면서 먹는다. 요즘 흔히 먹는 ‘궁중전골’은 음식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는 냄비에 삶은 양·곱창 그리고 새우·조개·오징어 등의 해물, 호박·쑥갓·배추·파 등의 채소, 어묵·곤약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둘러 담고 육수를 부어 빨간 다대기를 듬뿍 얹고 재료가 익을 때까지 뚜껑을 덮고 끓인다. 그런데 조선조 궁중의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 상궁이 전하는 궁중전골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며 문헌에서도 이러한 전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전골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장지연의 『만국사물기원역사』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상고 시대에 진중 군사들의 머리에 쓰는 전립(氈笠)은 철로 된 것이었는데 진중에서는 기구가 변변치 않아 자기들이 썼던 철관(鐵冠)에 고기나 생선 같은 음식을 넣어 끓여 먹었다고 한다. 이것저것 마구 넣어 끓여 먹던 것이 이어져서 여염집에서도 냄비를 전립 모양으로 만들어 고기와 채소 등 여러 재료를 넣고 끓여 먹었으니 이를 전골이라 한다.”
또 『어우야담』에는,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지함 선생은 별호가 철관자(鐵冠子)였는데 항상 철관을 쓰고 다니다가 고기나 생선을 얻으면 그것을 벗어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700년대의 『경도잡지』에서는 서울의 식생활 풍속을 소개하면서 “전립투라는 냄비가 있는데 벙거지처럼 생겼다. 가운데 움푹하게 들어간 부분에다 채소를 데치고, 가장자리의 편편한 곳에 고기를 굽는다. 술안주나 반찬에 모두 좋다”고 하였다.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던 난로회
『동국세시기』에는 시월 시식(時食)으로 난로회(煖爐會)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화로에 숯불을 활활 피워 놓고 번철을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진간장), 달걀, 파, 마늘, 고춧가루로 양념하여 구우면서 둘러앉아 먹는데 이를 ‘난로회’라 한다. 추위를 막는 시절 음식이니 이것이 곧 옛날의 난란회(暖煖食)이다. 또 섣달 납일[臘日 : 동지 후 셋째 미일(未日)]에 종묘 사직에 큰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에 쓰고 난 산돼지나 토끼를 납육(臘肉)이라 하고 이로 만든 전골을 납평전골이라 한다.”
전골은 중국의 『세시잡기』에도 나오는데 “북경 사람은 시월 초하루에 술을 걸러 놓고 고기를 화로에 구워 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 한다”고 하였으니 옛날부터 있던 중국의 시절식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듯하다.
한편 『옹희잡지』에서는 전골이 일본에서 들어온 음식이라고 하였다. “적육기(炙肉器) 중에 전립을 거꾸로 눕힌 듯한 모양의 것이 있다. 복판의 우묵한 곳에 장수(醬水)를 붓고 도라지, 무, 미나리, 파를 가늘게 썰어 담아 숯불 위에 놓고 뜨겁게 달군다. 고기는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기름장에 적시고 젓가락으로 집어서 사면의 전(독이나 화로의 위쪽 가장자리의 약간 넓게 된 부분)에 굽는다. 서너 사람이 둘러앉아 먹는데, 이 기구를 전철(煎鐵) 또는 전립투라 한다. 일본에서 건너온 음식으로 온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같은 시기에 이덕무의 시구 가운데 “남국과홍(南國鍋紅)”이 나오는데 주석에서 “냄비의 모양이 갓과 같다. 이것으로 고기를 구워 난로회(煖爐會)를 여는데, 이 풍속은 일본에서 온 것이다.” 하였다.
전골과 비슷한 옛 음식 중에 ‘승개기’가 있는데 일본의 스키야키와 비슷한 고기구이 음식이다. 일본어의 ‘스키’는 원래 농사지을 때 쓰는 쟁기를 말하고 ‘야키’는 굽는다는 뜻이니 고기를 쟁기에 얹어서 구운 것이었으나 지금은 쇠로 된 낮은 냄비를 사용한다.
조선조 순조 때 이학규가 김해에서 귀양살이하면서 그곳의 풍토잡사를 적은 『금관죽지사』를 남겼는데 이 책에서 “승개기라는 고깃국은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신선로처럼 고기를 익혀 먹는다”고 하였다.
『해동죽지』에서는 “승개기는 해주(海洲)의 명물로 서울의 도미국수와 비슷하며 맛이 뛰어나 승가기(勝佳妓)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였다. 실제로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개화기에는 개화파 인사들이 승개기 난로회를 즐겨 김옥균이 외국 손님을 초대할 때 대접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음식은 머리를 맞대고 둘러 앉아 먹어야 하므로 대화나 모의할 때 좋아 갑신정변 때도 이 음식을 먹으면서 거사를 논의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옛날 전골틀은 돌이나 쇠로 되어 있다. 돌전골틀은 높이가 낮고 전이 따로 달려 있지 않은 움푹한 돌판 모양인데 달구어서 구이나 볶음을 하기에 적합하다. 쇠전골틀은 옛날의 벙거지처럼 생겨 둘레에 고기나 채소를 지지고, 가운데 움푹한 곳에는 장국을 끓일 수 있다. 요즘 전골은 냄비에 여러 재료를 넣고 재료가 잠기도록 국물을 넉넉히 붓고 상에서 끓이면서 먹는 탕전골이 대부분인데 예전에는 화로에 전골틀을 올려놓고 굽거나 지져서 먹는, 국물이 없는 구이전골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조리법
옛 문헌에 따르면 군사들이 진중에서 조리 기구가 변변치 않아, 머리에 썼던 철관(鐵冠)에 고기나 생선을 넣어 끓여 먹었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
쇠고기전골
쇠고기전골
재료(4인분)
쇠고기(등심) 200g, 마른 표고 4개, 무 100g, 당근 70g, 숙주 100g, 실파 30g, 양파 100g, 달걀 1개, 소금·참기름 적량, 물 2컵, 후춧가루·간장(진간장)·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적량
(가) 간장(진간장) 3큰술, 설탕 1½큰술, 다진 파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큰술, 후춧가루 약간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쇠고기는 연한 등심이나 우둔살로 준비해 채썰고, 표고는 불려서 기둥을 떼고 채썬다.
2. (가)의 조미료로 양념장을 만들어서 채썬 고기, 표고에 나누어서 고루 양념한다.
3. 무와 당근은 5cm 길이로 납작하게 채썰고, 숙주는 머리와 꼬리를 따서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살짝 데쳐서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무친다.
4. 양파는 길이로 채썰고, 실파는 5cm 길이로 썬다.
5. 육수 또는 끓는 물 2컵에 소금과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으로 간을 싱겁게 맞추어 장국을 준비한다.
6. 양념한 쇠고기와 채소들을 전골 냄비에 색스럽게 돌려 담고, 잣을 고루 뿌리고 더운 장국을 부어 끓인다. 쇠고기와 채소가 익으면 달걀을 가운데에 깨어 넣어 반숙으로 익힌다.
각색전골
각색전골
재료(4인분)
쇠고기 150g, 마른 표고 4개, 쇠간 100g, 양 200g, 처녑 100g, 무 100g, 당근 70g, 실파 50g, 다홍고추 2개, 소금·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 적량, 잣가루 2큰술
(가) 간장(진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4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참기름·깨소금 각 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나) 간장(진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다진 파 4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다진 생강 1작은술, 참기름·깨소금 각 2작은술, 술 1큰술, 후춧가루 약간
* 계량 단위
1작은술 - 5ml(cc) / 1큰술 - 15ml(cc) / 1컵 - 200ml(cc) / 1되 - 5컵(1,000ml)
만드는 법
1. 쇠고기는 연한 부위로 얇게 저며서 잘게 썰고, 표고는 불려서 채썬다.
2. 간은 엷은 막을 벗기고 납작납작하게 썰고, 처녑은 안쪽의 얇은 막을 떼어 내어 소금으로 주물러서 씻어 채썬다. 양은 되도록 두꺼운 것으로 골라서 끓는 물에 잠시 넣었다가 건져 검은 막을 말끔히 벗기고 얇게 저민다.
3. (가)의 양념장으로 채썬 고기와 표고에 고루 넣어 무친다.
4. (나)의 양념장으로 간, 처녑, 양에 고루 넣어 무친다.
5. 무, 당근, 다홍고추는 길이로 채썰고, 실파는 다듬어 5cm 길이로 썬다.
6. 육수나 더운물을 소금과 청장(재래식 간장(국간장))으로 싱겁게 간을 맞추어 장국을 준비한다.
7. 양념한 쇠고기와 내장, 채소 등을 전골 냄비에 고루 돌려 담고, 잣가루를 고루 뿌리고 더운 장국을 부어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