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 제3천년기를 이끄시는 성령
사도 16,1-10; 요한 15,18-21 / 부활 제5주간 토요일; 2024.5.4.
“때가 찼을 때”(마르 1,15; 갈라 4,4), 아시아의 서쪽 끝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아직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을 때(요한 1,10), 오로지 세례자 요한만이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그러니까 요한 세례자의 증언에 의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러 오신 예수님께서 첫 복음을 이스라엘 땅에서 선포하셨던 까닭은, 아브라함 이래로 이 땅을 하느님께로부터 상속받았고 모세 이래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계약을 맺은 유다인들과 함께 세상의 죄를 없애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려 함이었습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사업은 옛 하늘과 옛 땅을 완성하시고자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선포하시려는 구원의 섭리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죄는 이스라엘 안에도 가득 차 있었고 이에 물든 유다인들은 – 특히 이스라엘 유다인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었던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은 -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성전을 모독한 거짓 예언자로 몰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 십자가 사건은 조상대대로 하느님을 믿고 섬겨온 유다인들이 저지른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이자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천지 창조 때보다 더 큰 권능으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고자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부르시고 사도로 양성하신 열두 제자들과 또한 당신을 알아보고 맞이해 준 소수의 아나빔들로– 이스카리옷 유다 대신 마티아를 사도로 내세우고자 모인 무리를 루카 복음사가는 그 수효가 백 스무 명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1,15 - 교회를 세우시고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그 교회를 바오로에게 맡겨 복음을 서방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 물론 열두 사도가 모두 복음을 사방에 나가서 선포하였지만, 성령께서 뽑으시고 커다란 선교적 성과를 거두게 하신 일꾼이 바오로였습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하고 사울, 즉 바오로를 당신 일꾼으로 특별히 드러내셨습니다. - 이를 잘 나타내 주는 대목이 오늘 독서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한 첫 지방은 지금의 튀르키예 지방입니다. 유럽 대륙에 맞닿아 있는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이 지방은 예부터 ‘소아시아’라 불렸습니다. 대아시아는 동방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땅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사도 16,6). 그 이유는 성서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진면족을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정확하게 알아 보았던 세례자 요한의 증언에 따라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아마도 소아시아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이 저지르던 세상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로마제국은 그제까지 출현한 제국 가운데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휘두르면서 주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짓밟았습니다. 역사에 깃들인 하느님의 섭리를 고려하지 않는 일반 역사가들은 로마 ‘문명’이라는 말을 쓰면서 로마의 법과 건축술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만, 로마제국의 역사상 민낯이란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황제를 신격화시키고 숭배를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굶주린 짐승의 밥으로 내어주었는가 하면 화형으로 불태워 죽이기도 하고 손발이 기둥에 묶인 채로 검투사의 칼부림에 죽어 나가게 만든 야만적인 세력이었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내다본 다 있었습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그렇게 으깨 버리는 쇠처럼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다니 2,40) 또한 로마제국이 자행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몸소 겪은 사도 요한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나는 또 바다에서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었으며, 열 개의 뿔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고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묵시 13,1)
이렇듯 예언자에 의해 예언되었고 사도에 의해 증언된 바와 같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처음으로 향해야 했던 서방 세계의 죄악은 짐승처럼 포악했고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었기에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먼저 로마에 의한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자 복음화의 방향을 서진시키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향 복음화가 동향 복음화보다 더 긴박했었던 셈입니다.
그 후에 전개된 복음화의 역사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교회가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이 제3천년기에는 찬란한 문화와 고등 종교의 발상지인 아시아에서 신앙의 큰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가고자 합니다.”(교황권고 ‘아시아 교회’, 1항). 교황의 이 예언자적인 발언이 나오기 한 세기 전에 이미 실제의 삶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여럿 출현한 바 있습니다.
우선, 아시아의 서남부를 종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복음을 전하는 모범을 보여준 선교사는 프랑스 신부 샤를르 드 푸꼬(Charles Eugene de Foucauld, 1858~1916)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 국경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이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이 되어 주고자 했던 그를 바오로 6세는 ‘모든 이의 형제’ 라고 불렀습니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2항)
또한 같은 회칙에서 “더 나은 세계는 꿈이 아니다”(79항) 하고 가르친 바오로 6세의 꿈을 힌두 문명권에서도 현실로 만든 또 다른 인물은, 인도 캘커타의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이들을 품위 있게 선종하도록 도왔던 알바니아 출신 수녀 데레사(Mother Teresia, 1910~1997)입니다. 그는 “힌두인들이 더 좋은 힌두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썼을 뿐 섣불리 힌두교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려 하지 않고 묵묵히 가난한 인도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유교 문명권인 중국에서 20세기에 중국인들에게 사랑의 모범으로 복음을 전한 인물은 벨기에 출신 선교사 뱅상 레브(Vincent Lebbe, 1877~1940) 신부입니다. 그는 복음정신으로 중국인을 사랑하면서 중국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왔으며, 중국식 이름을 雷鳴遠(뇌명원, ‘멀리 울리는 뇌성’)으로 정하고 중국인같이 행세하고 중국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런 그가 중국인의 가치로 복음정신을 표현한 표어가 전진상(全眞常)입니다.
아시아 복음화의 선구자였던 이들 세 선교사는 전통적인 선교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대로 복음적인 선교 노선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교회 안팎으로부터 따가운 시선과 의도적인 무관심과 냉대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가장 낮은 데로 내려가서 가난하게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고자 사하라 사막의 가난한 무슬림 마을에 들어가서 더 가난한 삶을 지향하며 이 뜻에 동참하려는 동료 수도자들을 모으고자 하던 샤를르 드 푸꼬는 과격한 무슬림 혁명군에 의해 억울하게 총살당하기까지 단 한 명의 동료를 얻지 못하고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제리 식민지 점령군이었던 프랑스 군인들에게 발견되어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지리 과목 교사였던 데레사는 길거리에서 마치 짐승처럼 죽어가던 노인들과 태어나자마자 버림받는 아기들을 목격하고서는 충격을 받아 이들을 돌보는 수도회를 세우고자 했으나, 길거리에서 사도직을 행하게 되면 수도자의 품위를 해친다는 내부 비판을 받아야 했는가 하면 서양 수녀가 인도의 치부를 드러내는 바람에 국제적인 망신을 사게 하고 있다는 외부 비판도 받아야 했습니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복 정책에 얹혀서 중국 선교를 하던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인들은 물론 중국인 사제들마저도 2등 인간처럼 드러내놓고 무시하던 시절에 뱅상 레브는 교황청을 움직여 최초의 중국인 주교를 탄생시켰고, 중국인 신앙인들에 의한 수도회와 선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유럽 출신 동료 선교사들의 질시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하신 말씀에 따라서 결코 초심을 잃어버리거나 애초의 복음적 선교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이들의 선구적인 실천이 아시아 교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주교들은 이슬람, 힌두, 유교 문화권 등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의 아시아인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사랑을 증거했으며 가톨릭교회가 시복과 시성 절차로 검증한 바 있고 세상에서도 존경하고 있는 이 인물들, 즉 샤를르 드 푸꼬, 마더 데레사, 뱅상 레브 등 선교사의 모범을 기준으로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 제5차 아시아 주교 총회, 인도네시아 반둥, 1990)이라고 불렀습니다. 복음화의 초기였던 바오로의 시대에는 서방 세계에 가득 차 있었던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자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고 복음화의 서진을 이끄셨던 성령께서 오늘날에 맞이하고 있는 이 복음화 제3천년기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연 종교를 신봉하는 데에 머물고 있는 아시아 대륙에 말씀을 전하라고 이끌고 계십니다. 새로운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너무도 뚜렷한 이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