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가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더사이언스’(www.thescience.co.kr)가 국내에 있는 공룡 유적지들을 찾아가 보는 과학유산답사기를 연재합니다.
공룡은 2억 60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지구를 지배했던 동물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완전히 멸종했기 때문에 화석을 이용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화석은 과거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며 우리나라에 있는 공룡 유적지 또한 중요한 자료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더사이언스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이종호 박사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에 있는 공룡유적지에 대한 기사를 매주 1회 더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종호 박사(사진)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 대학교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미래융합기술연구본부에서 국내 장기 전문가(과학저술가)로 활동중이다.
저서는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과학이 있는 우리 문화유산’ ‘신토불이 우리 문화유산’ ‘노벨상이 만든 세상’ ‘로봇, 인간을 꿈꾸다’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등 다수다.
공룡은 그리스어로 ‘무서운 도룡뇽’이라는 뜻이지만 사람들은 공룡을 좋아한다. 한국의 토종 인기 만화 ‘둘리’도 아기 공룡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다른 나라처럼 공룡의 골격 화석이 대량으로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은 물론 티셔츠, 장난감 등 어디에나 공룡이 그려져 있고 공룡을 주제로 한 책이나 잡지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공룡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동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룡이 이와 같이 인간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와는 너무나 다른 속성을 갖고 있는데다 그 형체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공룡들이 발견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공룡이 발견될 것인지를 알고 있는 학자들은 없다. 그럴만한 것이 공룡은 무려 1억6500만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했고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공룡 현장 몇몇 곳을 큰 마음먹고 가족과 함께 찾아간다고 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어떤 일정을 잡느냐이다. 이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답사할 곳을 한 곳으로 한정하면 인터넷이나 참고 자료에서 공룡에 관한 부분을 찾아 입맛에 맞는 곳을 찾으면 된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발견된 공룡 유적이 너무나 많아 몇몇 곳을 찾아간다는 것이 단순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우리나라는 공룡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중요한 유적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이란 학술 및 관상적(觀賞的)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 지정한 동물의 종과 서식지, 식물의 개체 및 종과 자생지, 지질과 광물들을 말하는데 공룡의 유적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만 해도 11곳이나 된다.
1.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천기 제373호)
2. 경남 진주시 내동면 유수리 공룡발자국(천기 제390호)
3. 경남 진주시 진성면 가진리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 화석지(천기 제395호)
4.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천기 제411호)
5. 경남 사천시 신수동 아두섬(천기 474호)
6. 경남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천기 제499호)
7.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및 퇴적층(천기 제434호)
8. 전남 보성군 득량군 비봉리 공룡알 화석산지(천기 제418호)
9. 전남 해남군 우항리 공룡ㆍ익룡ㆍ새 발자국 화석산지(천기 제394호)
10. 전남 화순군 북면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천기 제487호)
11. 경기도 화성시 시화호 송산면 고정리 공룡알 화석(천기 제414호)
공룡 답사의 방향을 위에 적힌 천연기념물로만 한정한다고 해도 분포 지역이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를 아우르고 있는 것은 물론 두 곳은 섬에 있으므로 만만하게 모두 답사하겠다고 말을 앞세우다가는 아이들에게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다소 엉뚱하여 무언가 완성되는 마무리를 갖고 싶어 한다. 세계의 고봉인 에베레스트 산맥 중에서 8000미터 이상의 산을 모두 정복하겠다는 등반가들의 바람이 그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사람들은 어느 틀에 얽매여 순서에 따라 산을 정복한 것은 아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모두 정복한 산악인들은 어느 틀 즉 높은 산부터 또는 낮은 산부터 모든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여건을 감안하여 8000미터 넘는 산 모두를 하나하나씩 도전하면서 정복한 것이다. 한마디로 산악인들의 편리한 일정에 따라 최고봉에 하나하나씩 도전했고 종국에는 8000미터 이상의 산을 모두 정복한 것이다.
공룡을 주제로 천연기념물이 11곳이나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들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위한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각 곳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에 통과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11곳 각각이 나름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으므로 모든 곳을 답사한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8000미터 이상의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어느 공룡 흔적부터 답사를 시작해도 완주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설명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서울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전체를 아울러 답사할 수 있도록 앞에 나열된 순서를 일정으로 잡았다. 앞으로 설명되는 과학유산답사기는 모두 이런 틀에서 진행됨을 사전에 이야기한다.
물론 자동차를 갖고 여행하며 공룡에 대한 기초 정보 정도는 사전에 숙지해 간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설명하는 공룡에 대한 자료는 현장에서 설명되는 공룡에 대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만 다룬다. 각지의 공룡 현장에는 각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설명서가 있으므로 이를 읽고 자신 나름대로의 정보를 얻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노트를 갖고 열심히 자신이 모르던 내용을 알려주고 있는 설명문을 열심히 적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 공룡, 2억3000만년 전에 등장해 6500만년전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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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1억6500만 년의 장기 집권자였다. 출처:국립과천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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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대략 2억3000만 년 전에 처음 나타난 아르코사우리아(Archosauria)라는 파충류에서 진화했다. 아르코사우리아로부터 공룡이 분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룡을 비롯한 익룡, 악어류 등이 눈구멍 뒤쪽에 측두와라 불리는 한 쌍의 열린 구멍과 그 구멍 위쪽으로 또 한 쌍의 열린 구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쌍의 구멍은 뱀과 도마뱀에서도 볼 수 있다.
여하튼 아르코사우리아로부터 시작된 공룡은 6500만 년 전까지 장장 1억6500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던 신화적인 동물이다. 그런데 공룡이라는 용어에 많은 사람들이 다소 혼동한다. 대부분 익룡은 하늘을 나는 공룡이고 어룡과 수장룡은 물 속에서 살았던 공룡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공룡은 중생대의 대형 동물 가운데 육상 동물만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대 땅에서는 공룡, 하늘에서는 익룡, 바다에서는 어룡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다.
공룡만이 갖는 중요한 특성은 네 다리가 몸통 바로 밑에 수직으로 붙어 땅에 직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룡이 긴 다리를 발달시켜 뛰거나 걸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파충류인 도마뱀이나 악어는 네 다리가 몸통 옆에 수평으로 붙어 엉거주춤한 상태로 땅을 짚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악어는 배를 바닥에 끌면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닐 수밖에 없다. 만약 수십 톤이 넘는 엄청난 거구의 공룡이 악어와 같은 다리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그들은 몸이 무거워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 것이다. 사람이 만약 팔굽혀펴기 동작으로 옆으로 이동한다고 연상하면 되는데 60kg의 몸이 60t으로 느껴질 것이다.
지구에 태어난 동물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세던 공룡은 곧바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여 쥐라기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공룡이 신비의 동물이 된 것은 지구를 지배하다가 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돌연히 멸종해버렸기 때문이다.
공룡이 인간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기원전 6세기로 추정한다. 당시 중앙아시아의 무역상들이 프로토케라톱스의 골격에서 유래한 그리핀의 이야기를 고대 그리스에 전했다는 것이다. 중국도 공룡에 대한 매우 빠른 기록이 있는데 기원 6세기에 ‘용뼈’의 존재를 기록했다.
● 인간과 공룡의 첫 만남은 16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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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을 최초로 명명한 리처드 오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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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인간이 공룡을 직접 만났다고 인정하는 연대는 1677년이다. 영국의 박물학자 로버트 플롯(Robert Plot, 1640〜1696)이 메갈로사우루스의 대퇴골 그림을 그렸는데 이것이 최초의 공룡그림이다.
그러나 공룡이 본격적으로 인간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영국인 의사 기디언 만텔(Gideon Mantell, 1790〜1852)의 부인이 평소에 이빨 화석 수집에 열중하던 남편의 왕진을 따라나섰다가 이상한 동물의 이빨을 발견했다. 의사로서 해부학에 조예가 있는 만텔은 처음 보는 이빨일 뿐만 아니라 포유류의 것인지 파충류의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그것을 당시 유명한 화석 전문가인 프랑스의 뀌비에와 영국의 버클랜드에게 보냈다. 그들의 회신은 모호했다.
‘어느 파충류의 이빨인 것 같기는 하지만, 육식동물의 이빨은 아니다.’
그 후 갈라파고스 섬에서 살고 있던 이구아나의 이빨과 비슷하다 하여 파충류로 분류되었고 리처드 오원은 1842년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의 디노사우르(dinosaur)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후 디노사우르는 공룡을 총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공룡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이보다 다소 뒤진 1851년이다. 영국 하이드파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박람회에서 복원된 이구아노돈을 전시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공룡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어 세계인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그럴만한 것이 공룡은 무려 1억6500만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하면서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직접 보지 못한 공룡, 어떻게 분류하나공룡은 약 1억6500만 년이나 지구를 활보했으므로 이들을 어떤 단순한 틀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연구에 따라 공룡은 크게 골반과 골격의 구조에 따라 헝가리의 프란츠 놉샤가 분류한 파충류 구조(도마뱀 골반 모양)를 갖는 용반목(류)과 조류의 구조(새 골반형)를 갖는 조반목(류)으로 나눈다.
용반목은 도마뱀처럼 치골이 앞쪽으로 뻗어 있어 좌골과 함께 삼각형 구도를 가지는데 반하여 조반목은 치골이 좌골과 나란히 뒤쪽을 향해 뻗어 있다. 또한 용반목은 수각류와 용각류, 세그노사우리아로 분류되며 조반목은 조각류로 대변된다.
수각류는 주로 육식 공룡으로 두발로 걸어 다녔으며 발의 길이가 너비에 비해 길고 발가락이 길며 뾰족하므로 발자국 화석에 발톱자국이 남기도 한다. 보폭이 비교적 크고 거의 일자 걸음으로 티라노사우루스, 알로사우루스, 오비랍토르, 벨로시랩터 등이 포함된다. 오비랍토르는 타조를 닮은 부리 모양에 이빨이 없으며 머리 위에는 벼슬이 있는데 구부러진 발톱과 발뼈로 보아 달리는 속도가 대단히 빨랐던 것으로 추정한다.
용각류는 대부분 큰 체구를 갖는 초식공룡으로 네 발로 걸어 다녔고 머리가 작고 목과 꼬리가 길다. 초승달 모양의 앞발자국과 둥그런 모양의 뒷발자국을 남기는데 유명한 브라키오사우루스, 아파토사우루스, 부경고사우루스 등이 이 분류에 들어간다. 부경고사우루스는 경남 하동에서 발굴된 새로운 종으로 몸 길이 15m, 무게 20여 t에 목길이만 10m가 되는 대형 공룡이다. 세그노사우리아류는 용각류와 수각류의 특징을 모두 갖춘 공룡으로 오비랍토르에 비해 덜 진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조각류는 두 발 또는 네 발로 걸어 다녔는데 새발자국처럼 발자국이 삼지창 모양으로 발가락 끝이 뭉툭하고 일자로 걷는다. 주로 초식동물들이 이 분류에 들어가는데 이구아노돈, 하드로사우루스(오리주둥이공룡), 힙실로포돈 등이 조각류이다.
●공룡 관련 첫 번째 천연기념물 지정된 ‘제오리 공룡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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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천연기념물 제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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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석권했던 공룡에 대한 기초 정보로 무장한 후 서울에서 출발하여 제일 먼저 방문하는 곳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공룡발자국(천기 제373호)’이다. 1988년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 공사로 산사면이 절개된 후 1989년 여름 홍수로 절개면에 새로운 지층면이 드러나면서 발견되었다. 1993년 6월에는 공룡에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지정된 천연기념물이다.
제오리 공룡발자국이 발견된 화석산지는 약 1억1000만 년 전 강과 범람원 지역에서 퇴적된 지층으로 316개의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공룡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경상누층군에 속하는 사곡층으로 주로 담회색의 사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40도 이상의 경사를 갖고 있는 암석 위에서 발견되므로 이 지역의 험난한 지각 변동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발견된 공룡발자국은 초식공룡인 용각류가 가장 많고 조각류 및 육식공룡인 수각류 발자국도 발견된다. 특히 용각류 발자국은 12마리 이상의 보행렬이 확인되며 조각류의 경우 10마리 이상, 수각류 공룡 1개가 지나간 흔적도 확인된다. 단일 층리면에 노출된 316개의 발자국은 초식공룡인 발굽울트라룡, 발목고성룡, 발목코끼리룡, 육식공룡인 한국큼룡(Megalosuripus Koreanensis) 등 4종류의 공룡 25마리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용각류 발자국은 뒷발자국이 앞발자국보다 훨씬 크며 조각류는 뒷발로만 걸었으므로 이족보행 발자국을 남겼다. 뒷발자국은 발가락 세 개가 뚜렷이 보이고 발톱은 뭉툭하며 발자국의 폭과 길이가 거의 같다. 수각류의 발자국도 보이는데 이들의 특징은 발가락의 폭이 좁고 발가락 끝이 날카로우며 발자국 길이가 폭보다 큰 특징이 있다.
의성군은 우리나라에서 공룡 발견의 신화를 일으킨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3년 1월 부산대학교 김항묵 교수가 제오리와 인접한 금성면 탑리 봉암재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룡뼈 화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교수가 발견한 공룡 뼈 화석은 석회암 속에 보존되어 있었는데 지름이 35밀리미터이고 골수가 있던 가운데 부분에 구멍이 나 있었다.
또한 금성면 만천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아기 공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제오리 공룡발자국이 여타 공룡 천연기념물과 달리 큰 주목을 받은 것은 내륙지역에서 발견되었고 높은 밀집도의 발자국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중앙고속도로 의성IC에서 의성 읍내를 벗어나면 공룡발자국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28번 국도로 의성에서 영천 방향으로 내려가다 10킬로미터 지나면 사곡이란 동네로 좌회전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후 약 2킬로미터 정도 들어가면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나오는데 안내판이 많이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접근성은 모든 차량 진입이 가능하므로 매우 좋다.
특히 관광지 개발과 관련이 없어 자연을 배경으로 느긋하게 공룡발자국을 관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199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풍화로 인해 보존에 문제가 생기자 2003년 보호각을 세웠다. 그러나 주차 및 관람객의 관람 공간 즉 안전로가 부족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방문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앞에 금성산이 보이는데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금성산에 약 1000여평의 평지가 있는데 그곳이 천하 명당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곳에 조상묘를 쓰면 당대의 만석꾼이 될 수 있지만 정작 마을은 가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금성산 정상에 올라 몰래 묘지를 썼나하고 땅을 확인한다고 한다.
앞에서 김항묵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룡뼈를 발견했다고 적었지만 우리나라 학계는 공식적으로 40여 년 전인 1973년 8월에 공룡 화석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인정한다.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수문동 해안 지역에서 경북대학교의 양승영 교수가 공룡의 알 껍질이 암석 속에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표에 김항묵 교수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이 1973년 1월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지역에서 공룡의 골격 화석을 발견했으므로 양승영 교수보다 7개월이 앞선다는 것이다.
문제는 김교수의 발견이 학회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고 양 교수보다 다소 늦은 1977년에야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발견 시점과 발표 시점의 논란으로 비화되기까지 하였는데 <과학동아>는 1997년 3월호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결론은 학계에서 정확한 판정을 내려주기 전까지는 발표 시점을 중요시해서 한국에서 공룡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양승영 교수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