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복의 추억 / 김선경
“콩닥콩닥 콩 다다닥!” 동네가 온통 콩 볶는 소리로 요란하다. 난리의 진원지는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이다. 코로나 시국에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사격훈련을 하는 모양이다. 그 소리에 과거로 까무룩 속절없이 빠져든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동안 동원 훈련을 받으러 다닐 때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그 시절의 예비군은 마치 경쟁이나 하듯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멀쩡한 젊은이도 얼룩덜룩한 개구리복만 입으면 행동이 완전 개차반이었다. 술에 취해 팔자걸음에 복장 불량은 기본이요, 애꿎이 남의 집 담벼락에 지도 그리기, 지나가는 여자 희롱하기 등 눈꼴사나운 짓은 골라가면서 다했다. 오죽하면 훈련장 안에서만 예비군 복장을 하고 정문 밖에서는 사복으로 갈아입게 하였을까.
예비군 훈련은 난도가 그리 높지 않다. 필수 코스인 야외에서의 영점 사격을 마치고 나면, 대강당에 모여서 받는 시청각이나 정훈교육 시간에 깜빡깜빡 조는 게 일과였다. 간혹 사주 경계란 명목으로 행군을 갔다 오기도 하지만, 예비군도 현역처럼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어김없이 돌아간다. 한 이삼일만 어영부영하면 사회인으로의 복귀는 따 놓은 당상인데, 그새를 못 참고 훈련을 면제받기 위해 별별 희한한 짓을 다했다.
하루는 예비군 훈련장에 보건소 차량이 찾아왔다. 한참 산아제한을 위한 정관 수술이 권장되던 시기였다. 수술을 받으면 주택청약 가산점에 나머지 훈련을 빼 준다고 했다. 나는 총각이라 별 관심이 없었으나 여러 명이 차량을 타고 떠났다. 나중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3대 독자인 외동아들이 미혼인 채로 정관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과장된 뜬소문일 수도 있겠으나 예비군복만 입으면 충동적으로 얼토당토않은 짓을 저질렀다.
예비군의 올챙이 시절인 현역들도 예측 안 되기는 매일반이다. 최전방 철책선 근무를 할 때였다. 그 당시 병사들 간의 자조 섞인 유행어는 전봇대에 치마만 둘러놓아도 예뻐 보인다는 말이다. 민통선 지역이라 민간인 자체를 볼 수 없어서 나온 말이다. 그러다가 휴가를 가면 얼이 반쯤 빠져나갈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 전방에 어느 날 뜻밖의 희소식이 날아왔다. 대대 연병장에서 위문 공연이 있다고 했다. 스트립쇼까지 한다는 소문에 전우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군용 트럭을 타고 푹 꺼진 곳에 위치한 공연장에 도착하니 병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무대가 막사를 등지고 제법 그럴듯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건장한 연예 병사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됐다. 군가로 잠시 흥을 돋운 후, 소문대로 눈부시게 하얀 몸매를 가진 무용수의 스트립쇼가 펼쳐졌다. 군용 모포 위에서 실연되는 야릇한 율동으로 연병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애태우는 몸짓이 절정에 이를 즈음, 혈기를 참지 못한 대여섯의 병사들이 기습적으로 난입하여 공연장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급히 나타난 사회자가 불청객들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정신을 차린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퇴장했다.
연기자가 그런 수모를 당했으니 파국을 맞을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한데 달랐다. 그녀는 진정한 프로였다. 잠시 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나머지 공연을 현란한 몸짓으로 마무리했다. 외설적 선입견이 예술적 감동으로 정화되는 순간이었다. 내무반에 돌아와서도 무용수의 우아한 자태가 가물거려 밤잠을 설쳤다. 이건 실화이다.
내용은 다르지만 이런 실화도 있다. 노총각 시절인 1983년 8월경. 휴일이라 집에서 봉황대기 고교 야구 결승전을 TV로 느긋하게 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왜~애앵”하는 민방공 훈련 사이렌이 울리고, 매월 15일이면 듣던 익숙한 목소리가 “국민 여러분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지금 적기가 서해안과 인천을 공습하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반복적으로 숨 가쁘게 되뇌었다.
텔레비전 화면은 선수들이 철수한 동대문야구장만 휑뎅그렁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비군복을 꺼내놓고 소집에 응할 채비를 했다. 중공 미그기 한 대가 귀순한 사건이었는데, 민방위 훈련을 할 때의 톤으로 실제 상황임을 외쳐댔으니 얼마나 놀랬던지. 다음 날 신문은 국민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최고의 민방공 대피 훈련을 했다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군인들은 짬밥을 싫어한다. 사회 밥에 물든 예비군들은 그 정도가 더하다. 예비군 훈련소에서 주는 급식이 부실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군대 시절 생각이 나서 더 그랬다. 이런 사정으로 예비군 훈련 때면 전방 철책선 근무를 하면서 봤던 무용수처럼 가슴 설레며 만나는 여인이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훈련장 느슨한 철조망 밖 산등성이에 게릴라처럼 나타나는 소고기 국밥 아지매가 그 주인공이다. 콩나물을 듬뿍 넣은 설설 끓는 국밥은 정말 별미였다. 가격도 저렴했던 것 같다.
연전에 인터넷에서 “예비군 훈련장 ‘부실 급식’에 분통. 교도소 식사도 이 정도는 아냐.”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진 속 식판에는 오이무침 두 조각과 단호박 샐러드, 김치 등의 채소 반찬과 짬뽕으로 추정되는 국, 하얀 쌀밥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리 시절 잣대로는 그 정도면 양호한데, 요즘 젊은 세대에게 육류가 빠진 식단은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으리라.
오랜만에 듣는 총소리에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렀다. 군인, 예비군을 거쳐 직장민방위대에 편성된 30대 후반 무렵, 민방위대 집합교육을 받으면서 대원끼리 하던 말이 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을 때가 좋지 이마저도 의무 해제되면 좋은 시절 다 간다.” 우스개로 했던 말이 씨가 되어 정말 세월이 무상할 나이가 되었다. 그땐 하릴없이 개구리복을 추억하는 날이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첫댓글 다시 개구리복을 입고 각개전투 한번 해 보았으면... 세월이 무상합니다.
그땐 평생 안 늙을 줄 알고 나이 많은 사람을 꼰대라고 비하했던 것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