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찬양할 것인가?
본문말씀- 시 150편
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 지어다
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 어다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 가운데, 그 표현 범위가 가장 넓은 것이 어쩌면 음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은 끝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말(言)은 말하는 사람의 뜻을 전하는 수단이지만, 노래는 단순히 노랫말을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노래는 정서라고 하는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찬양은 찬양하는 사람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적 취향은 사람마다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유일한 순수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중 음악을 즐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취향의 차이가 세대 차이에서 온다고 말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커다란 나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으십니까? 거리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조용한 실내에서 갑자기 들려온 금속성 물체가 부딪치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적이 있으십니까 ?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말씀 3절에서 5절을 보십시오.
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 어다
놀랍게도 성경은 귀한 비파와 수금만이 아닌, 요란한 나팔 소리로도, 그리고 고상한 현악과 퉁소만이 아닌, 소고와 춤으로, 그리고 큰 소리와 높은 소리 내는 제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요즘 TV쇼에서 흔히 보는 요란스러운 장면이 연상됩니다. 일부 청년들 가운데에는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라’는 성경 말씀을 들어, ‘드럼치고 춤추며 찬양하는 것이 성경적이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가지고 값싼 오락 수단으로 전락한 현대 대중문화를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시편 150편은 시편 전체를 마무리 짓는 찬양 시입니다. 호흡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있는 어떤 것으로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존재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있는 것처럼, 음악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객관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호가 예술의 편식을 낳고, 이로 인해 예술에 대한 편견을 가져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베토벤의 음악도 그가 살아있던 당대에는 휴지조각처럼 냉대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얼마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소리를 외쳤습니까?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취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고귀한 태도가 바로 찬양뿐인 것처럼 그들은 오직 찬양하라고만 했습니다.
더 이상의 구구한 설명은 도리어 그 내용을 축소시킬 뿐인 것처럼 시편 150편은 '찬양'이라는 단어를 무려 열한 번이나 사용하며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찬양을 부르는 장소 또는 방법이나 동원되는 악기들을 통해서 무엇을 찬양해야 하며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는 반드시 찬양이 드려져야 합니다.
시인은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소는 유목민이 거주하는 천막의 일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며, 높으신 위엄과 거룩함이 함께 합니다. 그 성소는 바로 권능의 궁창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반드시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찬양이 제대로 불려지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은 그만큼 왜소해지고 하나님의 광대하심은 가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범위만큼 우리의 믿음과 안목은 넓혀질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만 찬양하는 것으로 우리의 찬양을 축소시켜 버린다면 하나님은 예배 때만 등장하는 부분적인 하나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범사에 그를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범사에 능하신 분으로 또 온 세계에 드러나시는 전체적인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찬송할 때 찬양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야 합니다.
'만 입이 네게 있으며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 하겠네'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만 개의 입을 가지고 있어도 그분을 찬양하기에는 오히려 부족합니다.
다윗처럼 옷을 벗고 춤을 추며 찬양하고 손바닥으로 힘껏 두드리며 노래하고 두 팔을 높이 들고 큰 목소리로 외쳐 부를지라도 하나님을 찬양하기에는 그래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당시에 알려진 거의 모든 악기들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찬양은 인간들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리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들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주셨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믿음은 그만큼 더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수금과 비파의 가락에 실은 우리의 고백은 하나님을 그만큼 더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 써서라도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믿음과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애쓰는 성도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명예나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 하나만을 위하여 하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야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여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라는 구절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호흡하는 모든 사람, 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과 피조물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이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은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호흡하는 모든 생물은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둘째는, 호흡이 있는 자란 구절 속에는 ‘호흡이 다할 때까지 찬양의 의무를 가진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짧은 수명에 의해서 중단될 수도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 땅에서 호흡하는 모든 것들이 이 땅에서 끊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노래하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노래한대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합니다. 말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는 말이 담겨 있는 가사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노래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노래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제 노래를 바꾸십시오. 세상을 노래하지 말고 하나님을 노래하십시오. 부정적으로 노래했다면 이제는 긍정적으로 노래하십시오. 할 수 없다고 노래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할 수 있다고 노래하십시오. 노래가 바뀌면 하나님 안에서 그대의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이제는 노래를 바꿔 불러야 합니다.
훌륭한 가수는 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서전을 노래합니다. 자기의 실패, 성공, 뉘우침과 기쁨 그리고 참회와 결심을 모두 묶어서 부를 때 찬송의 의미가 있습니다.
"네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앙의 간절함이 찬송 속에서 피어날 때 비로소 찬송이 되며 그것이 '새 노래'가 됩니다. 찬송은 슬픈 마음을 위로하고, 우울할 때 마음을 위로해 주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며, 지저분한 생각들을 정돈해 줍니다.
예배시간에 찬송을 힘차게 부르는 사람은 마음이 하나님께 집중된 사람이며 예배의 감격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 은혜가 넘치기를 바란다면 열심히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살아가시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