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중의 오지 3둔4가리. 일부는 도로가 뚫려 속세와 만나게 됐지만 3둔4가리는 아직까지 오지여행의 대명사로 꼽힌다. 3둔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의 살둔, 달둔, 월둔을, 4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그리고 명지거리를 말한다. 예언서 정감록에는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곳-피장처로 3둔4가리를 꼽고 있을 정도이다. ‘둔’은 산기슭의 펑퍼짐한 땅, ‘가리’는 계곡가의 살만한 땅을 뜻한다. 사방이 험산으로 둘러싸여 바깥으로 노출이 안되는 데다 물이 있고 경작 가능한 땅이 있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곳, 그러니 온 세상에 난리가 나도 능히 숨어살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방태산, 구룡덕봉, 가칠봉, 개인산 등 해발 1천2백∼1천4백m 급 고산자락에 깃들어 세속의 접근을 거부하고 원시의 자연미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주민들은 3둔4가리의 속내가 매스컴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사양한다. 그 산골 마을 사이로 포장도로가 생겨나면서 3둔4가리는 피장처가 아니라 피서를 겸한 트레킹 명소로 변신하고 있다. 3둔 가운데 여행대상지로 추천되고 일반인들이 대중교통이나 승용차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살둔이고 4가리 중에서는 적가리 정도이다.
은둔의 땅.....살둔마을 먼저 3둔부터 여행을 떠나보자. 홍천군 내면 살둔마을을 소개하자면 내린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내린천은 계방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자운천과 오대산 자락에서 흐르는 계방천, 그리고 점봉산에서 발원한 방태천이 합류, 50여km를 흘러내려 소양강 상류 합강에 이르는 하천이다. 내린천의 기점은 홍천군 내면 광원리 모래소 위쪽, 종점은 인제군 기린면 현리 소양강 합류점이며 홍천군 내면과 인제군 기린면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따 이름이 지어졌다. 내린천은 모래소를 지나고 동강의 뼈대 같은 절벽 지대도 통과하면서 인제군으로 넘어가기 직전 살둔마을을 만난다. 하회마을처럼 물도리동을 이룬 살둔마을 앞 강변은 무지한 여행자들의 환경오염을 철저히 거부하는 곳이다. 56번 국도가, 446번 지방도가 지금처럼 포장되지 않았더라면 살둔은 오래오래 은둔의 땅으로 남았을 터이다. 지난 1995년 56번 국도가 완전 포장되면서 살둔은 도시인들의 접근을 허락했다. 대표적 오지 중의 하나였던 살둔마을 가구 수는 지금도 고작 8가구 정도에 불과하다. 밭농사 짓는 것이 주된 수입원이다. 살둔마을 정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살둔산장이 그곳에 있어서이다. 율전리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내린천과 합수하는 지점 강변에 산장은 2층집 구조로 서있다. 이 집은 1985년 윤두선이라는 사람이 처음 지었다. 통나무를 귀틀집 방식으로 올렸으며 2층 다락방이 독특한 외양을 이룬다. 다락방은 사방에 유리창문이 달려 늦잠을 잘 수 없는 곳이다. 앞 뒤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계곡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온다. 함석 지붕이라 실내가 더울 듯하지만 안으로는 피나무 껍데기 등을 잘라 붙여 열기를 막아낸다. 그 독특한 건축 양식 덕분에 이 집은 모 출판사가 펴낸 ‘한국의 살고싶은 1백대 집’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1층 전면에는 툇마루가 둘려있는데 큰 방 앞에는 난간이 달려 있고 거기에 응접세트가 하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툇마루나 난간 적당한 곳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소나무향기, 내린천 물소리, 산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과 근심이 깨끗이 사라진다. 산장 손님의 90%는 산사람들이고 나머지 10%는 일반여행자들이다.
신선타운을 지나 월둔으로 월둔은 살둔으로 들어가는 신선타운 삼거리에서 삼봉휴양림 방면으로 1km 가량 가다가 왼쪽의 월둔교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지나고 민가가 끝나는 지점에 자동차 통행을 제지하는 차단기가 서있다. 그 안쪽이 월둔골이고 계속 산길을 올라가면 구룡덕봉과 아침가리로 이어진다. 매년 5월 말일까지는 영림서에서 산불예방을 이유로 통행을 금지시킨다. 그 뒤에도, 피서시즌을 포함해 연중 외부차량의 출입이 통제된다. 월둔골 안에 이 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 있어서 그렇다. 일부 몰지각한 여행자들이 청산가리를 풀어 열목어며 산천어 씨를 말리고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라고 마을 사람은 말한다. 차단기를 지나 아침가리와 구룡덕봉으로 갈리는 월둔고개 삼거리 지점까지는 도보로 1시간 가량 걸린다. 임시도로가 잘 닦여 있기는 하지만 승용차 통행은 어림없는 길, 4륜구동차라야 겨우 갈 수 있다. 그마저 마을 사람들이 통제하므로 월둔골은 물놀이피서지로 적당하지 않고 다만 구룡덕봉 등산이나 아침가리로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트레킹 코스 중 일부라 하겠다. 해발 1,388.4m의 구룡덕봉(일명 참석봉)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대청봉, 중청, 끝청, 귀청 등 설악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지를 이룬 정상에는 쥐오줌풀이 군락을 이뤄가며 피어있다. 사방을 둘러보면 오대산, 계방산 그리고 홍천과 인제의 산하들이 가슴으로, 가슴으로 가득가득 밀려든다.
집터만 남아있는 달둔 달둔을 가자면 월둔교에서 삼봉휴양림 방면으로 올라가다가 홍천학생야영장, 칡소폭포 입구, 하얀 민박집을 차례로 지난다. 민박집을 지나자마자 얼마 못가 오른쪽 계방천 위로 작은 다리가 하나 있다. 달둔교라는 이름의 이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 시냇물을 따라 3km 가량 산 속으로 가면 달둔이다. 민가는 전혀 없고 채소밭이며 묵은 밭, 집터 등만 남아있다. 이곳 역시 승용차는 통행불능이고 텐트 칠 자리조차 마땅찮다. 국도변 적당한 곳에 주차를 시켜놓고 걸어들어가서 바위가 좋은 곳에 진을 치는 것이 현명하다. 아니면 하얀 민박집 바로 아래 계방천 물가에서 한나절의 무더위를 식혀도 좋을 듯싶다.
물을 끼고 도는 오지, 4가리 인제군에 위치한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거리(거리는 가리와 비슷한 의미). 모두들 물을 끼고 있는 오지의 땅들이다.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곳들이다. 그러나 적가리에 방태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 ‘가리’는 그 진면목을 비로소 드러냈다.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자리잡은 방태산자연휴양림(033-463-8590)은 1997년 5월 개장했다. 적가리골 상류에 통나무집이 들어서 있고 주변의 마당바위와 2단폭포는 절경이다.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계곡 바람은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피나무, 박달, 소나무, 참나무류 등 수종이 다양해서 계절에 따라 녹음, 단풍, 설경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열목어, 메기, 꺽지 등의 물고기와 멧돼지, 토끼, 꿩 노루, 다람쥐 등 야생동물도 다양하게 서식한다. 숙박시설인 산림문화휴양관은 다른 곳에 비해 우수한 시설이다. 9∼12인용 원룸형 숙소 9개가 있다. 방마다 수세식 화장실, 샤워시설, 싱크대, 가스스토브 등을 갖추었다. 야영장과 놀이터도 보유,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도 좋은 곳이다. 휴양림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방동약수는 위장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이름났다. 방동약수는 1670년 무렵 어느 심마니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하며 무색 투명의 광천수로 천연가스를 함유하고 있다. 약수터 바로 아래에는 민박집이 두어 채 있다.
아침가리, “소개하지도 말라” 아침가리는 방동약수에서 계속 산 속으로 들어가도 되고 월둔마을에서 월둔고개를 넘어가도 된다. 차량을 이용할 경우라면 방동약수를 거쳐가야 한다. 지금은 폐교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까지는 그런 대로 도로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분교부터 명지거리와 월둔고개까지의 상류 지역 길 사정은 4륜구동차에게도 매우 나쁜 편이다. 분교에 산다는 주민은 이름을 물어도 ‘가방끈이 짧으니 어려운 것 묻지 말고, 아침가리 사진 찍지 말고, 어디에 소개하지도 말라’고 강조한다. 얼마나 도시 사람들이 산골을 오염시켰길래 그러는 것일까. 어쨌든 호젓한 피서지를 고집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조경동분교를 지나 아침가리골 안쪽으로 더 들어갈 일이다. 싸리꽃과 망초꽃이 사이좋게 피어있는 원시림을 따라서 3km 가량 산중으로 가면 기막힌 절경 지대가 기다린다. 커다란 소가 산길 옆에 숨어있고 하얀 자갈밭이 시퍼런 물빛을 다소 누그러뜨린다. 연가리는 방태산휴양림과 방동약수의 초입인 방동교에서 쇠나드리 방면으로 한참을 가야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방태천을 따라 형성된 추대계곡과 진동계곡을 지나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드디어 하천 건너편으로 연가리골이 숨어있다. 어디에도 연가리골을 알려주는 표지판은 없다. 물을 건너야 하고 민가도 없으므로 피서지로는 그리 알맞은 곳이 아니다.
◆ 여행쪽지(지역번호 033) 영동고속도로 속사나들목을 빠져나간 다음 운두령 고개를 넘는다. 홍천군 내면 창촌리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삼봉자연휴양림 방면으로 오르자면 광원리가 나타난다. 이곳의 신선타운휴게소에서 좌회전하면 살둔마을과 미산계곡으로 갈 수 있고 그냥 국도를 따라 직진하면 월둔마을 앞, 달둔 입구를 지나 삼봉휴양림 입구에 닿는다. 이 길은 미천골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양양으로 이어진다. 숙박시설로 살둔산장(435-5928)이나 삼봉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435-8536), 휴양림 내 삼봉산장(435-8535) 등을 이용한다. 월둔마을에는 숙식시설이 없고 달둔 입구 56번 국도변에 하얀집 민박(435-8975)이 있다. 맛집은 광원리에 운형식당(033-435-7838), 동명양어장(435-7210), 신선타운(435-8702) 등의 맛집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