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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글쓰기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글쓰기 자료실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윤일호 추천 0 조회 109 07.08.29 11:21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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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8.30 01:02

    첫댓글 흥미진진해서 단숨에 읽었어요. 꼼꼼히 챙겨 읽어볼만 한 글이군요. 이 분의 말씀이 맞다 싶은 부분도 있고 아니다 싶은 곳도 있고 그러네요. 기본적으로 소통의 기능도 있지만 말은 더 깊게 들어가면 그 민족의 의식, 생각의 뿌리와 문화를 만들잖아요. 입말이 표현의 처음과정이듯이 말이 소통의 성격을 가지고는 있지만 말은 그 겨레의 길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어가 사상을 분명하게 한다면 더욱더 후자의 말이 맞지요. 그렇다면 소통의 기능만을 강조하는 말은 한계가 있고 현선생님의 의견이 모순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훈소설가님이나 강준만교수도 너무 커뮤니케이션에 맞추지 않나 싶어요. 또 틀(형식)의 중요성을

  • 07.08.30 01:08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말과 글이 다소 달라도 된다는 걸 이야기했네요. 과연 그럴까요? 이 글의 허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게 얼마나 사람과 삶을 다르게 만드는지 그 결과가 아주 크다는 거 설마 모르고 하시는 말씀일까요? 저는 그런 고민과 경험을 아주 오랫동안 하고 겪었는데요. 글을 보면 진짜 훌륭한 사람같았는데 실제 삶이나 하는 짓은 개차반인 작가들을 꽤 많이 봐 왔어요. 지금도 그렇죠. 아주 글로는 그럴듯 한데 실제 그 사람이 하는 짓이나 행동은 자기 이기주의에 빠져있고 남들에게 우월해 보일려고 폼잡는 거. 삶을 가꾸는 글쓰기 사람들이 절대로 최고의 예술적인 경지에 올라가는 글을 못 쓰고 있다.

  • 07.08.30 01:21

    못쓸것이다. 그런 지적인 것 같네요. 저 아는 작가 한분도 제게 끊임없이 그 이야길 해요. 그건 글쓰기회 식구들이 더 보완해야 될 것이다.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글쓰기 말이에요. 그 말엔 저도 공감해요. 하지만 글과 말은 달라도 된다. 그런데 말이 사상을 명확하게 한다는 말은 너무 큰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김훈씨가 언젠가 우리 한국의 조사는 짜증이 난다고 하면서 외국 말글법의 우월함을 이야기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토씨가 빠진 말들이 매끄럽게 읽힐수는 있겠지만 시가 아닌 이야기말꽃에서 토씨는 사람의 몸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살 같은 게 아닐까요? 뼈에 붙은 살. 지게가 넘어지지 않게 받혀주는 지게작대기

  • 07.08.30 01:26

    같은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준만 교수도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말의 기능만 따지고 있지 그게 겨레의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이 겨레가 나아갈 길과 삶과 문화가 되는 말의 구실의 원형이랄까요? 그걸 간과한 말이 아닌가 싶거든요. 공공적인 글쓰기의 필요성이 넓어졌고 그게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엔 공감해요. 그런게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글을 쉽게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이유와 까닭을 보기 들어주셨고, 연유, 연고 같은 낱말도 들어주셨어요. 그렇다면 제 땅에서 생긴 토박이말에서 따라오는 소리나 뜻이나 모습과 자취있는 말이 전혀 생활도 해 보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들온 말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서 그 익숙

  • 07.08.30 01:32

    한 말을 따라 써야 한다는 건 그게 언중을 위한다고 말한다면 글쎄요. 쉽게 써야 한다고 해서 들온 말을 계속 써야 한다는 건 글쎄요. 제 나라의 모습과 빛깔과 자취가 있는 말을 찾아 쓰고 끌어다 쓰고 새롭게 낱말을 만들어 쓰는 노력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요? 현재 있는 현상만을 전체로 놓고 따라가기보다 근본적인 우리 말글의 길을 따져 그 길이 잘못됐다면 바꿔야겠지요. 저도 현선생님의 글을 좀 더 꼼꼼히 읽어보고 다시 생각해 보겠지만요. 일단 처음 읽고 이런 생각이 들어 제 생각을 흩으러진 모습으로 그냥 적어봤습니다.

  • 07.08.30 01:43

    그리고 글쓰기의 형식에 못 미치는 글쓰기회의 글을 지적하셨는데 일면 공감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그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생각도 들고, 저는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이 보기글로 이야기 할 수 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어떤 사조나 주의라고 하는 것들에서도 저는 결국 빈부의 삶의 토대문제로 보여지기도 해요.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이 굵직하게는 그렇게 나눠지는 것 같아요. 깊게 들여다보면요. 그래서 한쪽에서는 예술성이 떨어진다 하며 우습게 보고 또 한쪽에서는 말장난이다. 진솔한 삶을 드러내는 게 문학의 기능이다 하며 서로 주장하는거구요.

  • 07.08.30 07:40

    아, 이 글을 다시 봐도 자기 모순이 아주 많은 글이군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데요. 현선생님께요. 가장 꼭대기에서 닿아야 할 말, 즉 우리가 써야 할 말이 어떤 말인가요? 일본어 중국어 영어에 견줄 수 없는 게 우리말이란 뜻인가요? 우리가 쓰는 말이나 사상이 중국사람이 와서 "니네 천지인도 우리거고 말도 우리거여. 니네는 아직도 일본의 언어식민지구나." 라고 했다면 뭐라고 대답해 줄 건가요? 들온말을 쓰지 말자가 아니라 할 수 있는대로 우리 토박이말을 찾아 쓰자는거죠. 우리말 40%에 들온말 60%라도 쓴다면 그래도 우리말이 살아남을텐데요. 선생님의 의견대로 이름씨를 버리고 들온말로 이름씨를 대신한다면 최고 꼭대

  • 07.08.30 07:49

    기에서 써야될 언어의 선택이 혼란스럽군요. 언어도 권력입니다. 시대마다 기득권층의 언어가 언제나 시대를 지배하지요. 하지만 누리그물이 발달된 현대에 와서 언어는 새로운 형태로 언중들이나 기득권층의 폭이 좁아지게 만들었어요. 한자말이 줄어들었지요. 하지만 한자가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에 이젠 영어말이 자리를 차지해갑니다. 소통을 위해서라면 사투리 쓰지 말고 표준말 써야지요. 그런데 표준말로는 다양한 삶의 빛깔을 드러내기 힘든 한계가 있어요. 말은 빛깔, 냄새, 자취,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데 연유나 미소나 이런 말들은 무색무취한 느낌을 줘요. 쉽게 그 느낌이나 뜻이 확 와 닿지 않는단 말이지요. 나만 그런가요?

  • 07.08.31 01:07

    현병호님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국어교육과를 다닐 때 국어대사전을 통째로 읽어가며 순우리말을 찾아 시를 썼고, 지금도 영어가 쫙 깔린 아이들 옷을 보면 기분이 상하고, 학술대회에서 원고의 절반이 영어인 걸 보면서 비판을 했지요. 그런데 10년 넘게 글쓰기회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런 부분이 저도 고민이 되어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열어놓고 생각을 주고 받았습니다. 여러 면에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한선생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몇은 감정이 섞여서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못 맞추고 있다 싶어요. 틀린 말씀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 07.08.31 01:09

    계신다고 여겨요.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네요.

  • 07.08.31 08:20

    아 그렇군요. 조효숙 선생님 말씀 잘 들었어요. 제가 현선생님의 말씀을 깊게 잘 알아채지 못한 것 같네요. 저도 현선생님 말씀이 공감가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리고 글쓰기회에 대한 제 나름 고민이 있었는데 조선생님도 고민이 있었다니 들어보고 싶고요. 사실 저는 글쓰기회 활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기도 해요. 아직은 제가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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