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는 전설의 명당 곡전재 |
먼저 간단히 곡전재의 뜻과 건물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곡전재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각이 아니고 집재(齋)의 한자를 써서 곡전의 집 즉, 곡전이 살았따는 집이란 뜻입니다.
곡전이란 호를 사용하셨던 "敎"자 "臣"자는 성주이씨 문열공파 21대손으로 농업에 관련된 호를 사용하고 관직에 나가시지 않고 농업에 전념 하시며 휴배양성에 정진하셨고,
평소 일기 형식으로 한시를 매일 쓰셨으며 또한 조상의 시를 4대째 보관하여 후손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곡전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곡전의 손자 순백께서는 당신이 기거하셨던 집을 대대손손 보전키 위해 곡전재라 하여 관리해 오고 있습니다.
곡전재는 1910년경부터 박승림이란 분이 明堂을 찾기 위해 십여년을 많은 地官과 함께 수색끝에 토지면 오미리 環洞(환동)이 금환락지로 확정 짓고 건축하게 되었으며 현재 5代째 살고 있습니다.
원래는 6채 53칸 한옥으로 지어졌으나 인수당시 동행랑과 중간채가 훼손되었다가 현재 소유주 이순백께서 1998년 1월 새로이 동행랑과 중간 사랑채를 복원하고 누각을 신설하여 "춘해루"라 이름 지어 5채 51칸 연못(洗淵:세연)을 확정하였습니다.
현재 운영자인 저는 성주(星州)이씨 24대손으로 여기서 나고 자란 순수 금환락지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선대의 뜻을 이어받아 어떻게하면 이집을 깨끗하게 유지하고, 문화적 가치를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을까 항상 마음에 두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던 중에 군청 문화관광과의 추천으로 고택관광자원화사업의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우리 고유의 한옥과 선대의 생활상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수도 있고 곡전재를 보존하는 데도 도움이 되어 이것이야말로 선대의 뜻을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도 민박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곡전재를 우리고유의 저통에 현대식을 가미하여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건물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도 해결하고 우리선조의 생활상을 알릴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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