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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훈 헬레나 67세. 수원교구 상현동성당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8-9)
저는 세례받고 반 세기가 넘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났습니다.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나고 나니 그동안 살아왔던 신앙생활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제 생각과 같지 않은,
제 생각 위에 드높이 계신 아빠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드높은 신비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제가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만나고 크게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내 안에 ‘내 뜻’과 ‘하느님 뜻’이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두 뜻의 구체적인 실체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신앙 세계에 눈을 떴습니다.
그 시각으로 저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니 ‘내 뜻’대로 산 에고의 신앙 시기와
‘하느님 뜻’에 위탁한 내맡김의 신앙 시기로 양분되었습니다.
동생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제가 9살 때인 1965년,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엄마 아빠 온 가족 아홉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던 1남 3녀의 맏딸로,
성당 일에 광적이라 할 만큼 열심인 엄마와 착하고 자상한 국어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평범한 유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학생 때는 성당 마당이 학교 밖 놀이터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집보다 먼저 성당으로 가 엄마를 찾았고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고는 신앙의 자유를 외치며,
외아들은 신부가 되기를 세 딸은 수녀가 되기를 소망했던 엄마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냉담을 선언했습니다.
비신자인 남편과의 결혼은 신앙의 무덤이었습니다.
직장과 육아와 남편 사업에 정신을 쏟으며, 제 영혼육이 무너지기까지
성당과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늘 저만치 지경 밖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게 믿음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놀기만 한 것 같던 그 시절 그곳이 믿음의 본향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사업을 하겠다고
패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시작한 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집을 팔고도 제 월급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밤이면 심한 회오리 바람에 지붕과 벽체가 날아가고,
허허벌판에 덩그라니 누워 자는 두 아들의 바람막이를 구하러
밤새 허우적대다 땀에 절어 잠에서 깨어나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빚은 교사였기에 대출이 쉬웠던 제 명의였고,
제 명의의 가계수표를 만들어주면서 은행의 독촉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왔고,
어디서든 전화벨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쪼그라들며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사방이 출구 없는 절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옥죄어 오는 공포로 심한 우울증에 걸렸고,
삶은 피폐할대로 피폐해져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함께 고통없이 죽을까를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을 때
아래층에 사는 자매가 철야기도를 가자고 했습니다.
그동안 떠나 있던 하느님을 생각하니 이 어둠에 실낱같은 구멍이 뚫릴 것도 같았습니다.
밤 10시, 쭈삣대며 들어선 낯선 성당엔 성가 소리가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존에 들어왔던 느리고 나지막한 가톨릭풍의 성가가 아니었습니다.
빼곡하게 자리를 채운 사람들이 눈을 감은 채
성가에 맞춰 손을 흔들며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맨 뒤 구석 자리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기존에 보아왔던 성당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당혹스러워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제대엔 길게 현수막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양손을 펼쳐 내밀고 계시는 예수님 사진 위에
‘보라, 나는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겨 넣었다.’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습니다.
순간 예수님의 팔뚝 근육이 움찔하더니
예수님의 펼친 손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음악이 조용하게 바뀌며 성가 가사가 가슴속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부끄럽고 당황스러워 감정을 수습하려고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휘둘러보았지만 쏟아지는 눈물 콧물은 빗줄기처럼
이미 내 의지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그날 밤은 성가 구절구절이, 말씀 마디마디가 수문을 여는 눈물보였습니다.
함께 갔던 자매가 건네 준 두루마리 화장지를 다 쓰고 나서야 눈물샘은 그 보를 내렸습니다.
새벽 4시, 철야기도가 끝나고 일어서는데 몸이 없는 듯 가쁜했습니다.
머리가 상쾌하고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성당문을 나서니 밤하늘이 빛났습니다.
가로수 잎도, 낮은 쥐똥나무도, 계란꽃의 노른자와 흰자도 빛이 났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잠자는 남편한테도, 두 아들한테도 빛이 났습니다.
벽에 걸린 낡은 액자에게도 화초에게도 저절로 존댓말이 나왔습니다.
학교에 가니 학생들에게도 빛이 났습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너무도 존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 빛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게 깊던 어둠도 우울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 15년 정도 철야기도를 다녔지만 그 빛을 다시는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상태가 너무도 심각하니 아버지께서 급처방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첫날밤의 아버지와의 찐한 만남으로
저는 아버지를 향한 열정으로 불타 올랐습니다.
늦둥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철야기도를 다녔습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도 방석 위에서 깊게 잠 드는 아들들이 참으로 신통했습니다.
파견미사 때 깨워 성체를 영하게 했던 기억이 있으니
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도 데리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내적 치유 은사가 있는 신부님이 강사로 오실 때면
학교를 안 보내고 피정 장소로 아들들을 데려가곤 했습니다.
아들들이 유치부 주일학교를 들어갈 때 주일학교 교사를 자청해 들어갔습니다.
그래야 아들들의 주일학교가 일상으로 자리잡을 듯 싶었습니다.
아들들이 복사를 하면서는 매일 아침 저녁 미사를 데리고 다녔고,
주중엔 교사회합, 금요일엔 철야기도, 토요일엔 주일학교,
발바닥에 불이 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육적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철야기도를 다녀오면 일주일을 살아낼 힘이 생겼습니다.
토요 휴무가 없던 때라서 금요 철야기도가 새벽 4시쯤 끝나면
두어 시간 눈 붙이고, 아들들 깨워 등교 준비시키고 출근을 하는
토요일의 출퇴근길은 늘 졸음과의 전쟁이었습니다.
어디서든 잠시 눈을 붙여야만 오고 갈 수가 있었습니다.
갓길에 잠깐 눈 붙이고 출근하고, 길가에 잠깐 눈 붙이고 퇴근해서는
아이들 데리고 주일학교 갔다가 늦은 저녁에 귀가해서는
일요일까지 죽은 듯이 늘어져 충전하고 다시 한 주일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내 뜻’으로 살 때는 모두가 내 짐인 무거운 삶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하느님과의 찐한 만남이 있은 후엔 모든 게 그냥 감사했습니다.
제게 일이 있음이 감사했고,
일이 있어 집안을 건사할 수 있음이 감사했고,
일이 있어 피곤할 수 있음도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아들들을 키워낼 수 있음이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감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하느님 한 분이면 족하다고
하느님 사랑이 정점을 찍고 있을 때 덜컥 임신이 되었습니다.
‘진짜 니가 나를 사랑하니?’ 하느님께서 시험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임신이 되고 나니 그동안 찬미 찬양했던 하느님은 온 데 간 데 없고,
현실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과
우유값도 끌어낼 수 없는 현재의 경제 상황이 떠올려졌고,
근래에 먹은 감기약과 친정아버지 생신 때 먹었던 술까지도 떠올려지며
에고는 아이를 낳지 못할 타당한 요인을 정신없이 찾아대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낳고 싶지 않았습니다. 양쪽 부모님 도움 없이
두 아들을 키우면서 가슴에 피멍이 든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불덩이처럼 끓는 아이를 놔두고 출근하는 아픔도,
이른 출근으로 놀이방 건물 앞에 떨궈 놓고 가면서
놀이방 문 열기까지 지켜주시라고 드렸던 간절한 기도도
아들들이 귀한 만큼 감당해야 했던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며 발생하는 모든 것은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아픔이고 고통이었습니다.
아들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그런 맘고생으로부터 벗어났는데,
(그 때가 큰 아들이 12살, 작은 아들이 10살이었습니다.)
또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정말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그냥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간밤에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휴, 꿈이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야'
누군가와 이렇게 수다를 떨고 끝나는 꿈이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 사랑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적당히 믿을 걸, 개신교 다닐 걸... 그러면 낙태가 쉬울 것 같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하느님께서는 뱃속 아이의 정체를 생각케 하셨습니다.
열 달 후면 두 아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날텐데,
그때 그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럼 뱃속 아이와 아들들과의 차이는 뭘까를 생각하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뿐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자기 자식까지 죽이는 여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낙태는 지금까지 몇 년간 잠 안자고 드렸던 철야기도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다녔던 매일 미사가
모두 헛짓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40년 같은 2주일이 지났을 때,
(그때 정말 하루가 10년 같았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대녀가 “하느님도 선생님 처지 아시니까 용서해 주실 거예요.
내일 병원 가요.” 이 말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그래 맞아 하느님도 내 처지 아시니까 용서해 주실거야,
아니 용서해 주셔야 돼!’ 낙태를 결심하고 토요일 연가를 냈습니다.
병원갈 일이 너무도 무거워 쇼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습니다.
꿈 속이 전쟁통이었습니다. 거리는 쫓고 쫓기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인데,
단발머리 아가씨가 칼 든 남자한테 쫓기고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도망을 가다가 건물 지하로 뛰어들었는데
지하 3층까지 내려갔지만 마주친 것은 막다른 흰벽이었습니다.
이때 아가씨가 바짝 따라붙어 등 뒤에 칼을 들이 대는 남자에게 돌아서더니
남자의 칼 든 손을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아저씨,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그때 칼이 툭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아침 6시였습니다.
그냥 무릎을 꿇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제 목숨 내놓고 낳겠습니다.
내 딸이어도 남편 딸이어도 안 낳습니다. 당신의 딸이기에 낳겠습니다”
이 꿈을 통해 뱃속 아이가 딸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으로 태교를 하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 태교 일기를 쓰는데 그 시간이 정말 꿀보다 달았습니다.
수업하고 나와 쉬는 시간 10분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방학 때는 9~10시간씩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씀에 푹 빠져
성경을 읽고 묵상 일기를 썼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보니 임신 기간 동안 신구약을 3번 통독하고 묵상일기 8권을 썼더라구요.
성경으로의 이끄심은 현실적인 문제를 통째로 잃어버리게 하신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임신을 하고 겨울방학 때 평소엔 직장 때문에 못 가던 반 모임엘 갔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하느님께 순명은 했지만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답이 안보인다고 현실적인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앞에 앉아 계시던 반장님께서 걱정 말라고 자기가 키워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그 자매님 전 가족이 반 정도 육아비를 받고,
그것도 아이를 위해 다 쓰시면서 지극한 사랑으로 5살까지 키워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정말 ‘야훼 이레’였습니다.
아버지께선 다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내 뜻으로는 분명히 불가능해 보였는데,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풀어가셨습니다.
우유값도 없었던 현실이 아이를 낳고 나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임신은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쌓인 축복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축복의 실체는 더욱 더 선명하게 빛을 발했습니다.
모든 가족의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생수였으며
지금도 역시 집안의 활력소입니다.
그런데 고난이란 포장지에 쌓인 축복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늦둥이를 낳고 백일 쯤 되었을 때
청주에서 치매인 시아버지를 돌보던 시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시아버지 혼자 둘 수 없어 먼저 서울 집으로 모셔 왔고,
1년 반 정도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하던 시어머니도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돈도 없고, 요양보험도 없던 시절이라서 집에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퇴근해 집에 오면 하루종일 똥오줌 싸고 누워 계신 어머니 씻겨 드리고,
시아버지 저지른 일들 처리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 빨래 청소하고,
7식구 밥 챙기고, 학교에서 가져온 일처리하고, 그때는 정말 죽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한 자리에 누워 계셨지만,
치매인 시아버지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저지레를 하셨습니다.
김치통에 똥을 누기도 하고, 계란을 이불 속에 감추어 구더기가 들끓게도 하고,
귤 한 상자를 한꺼번에 다 드시고 온 집안을 설사로 도배하기도 하고,
집 나가 못 찾아오셔서 일 주일 만에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 찾아오기도 하고,
함께 산 10여 년의 세월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다사다난했습니다.
어머니가 오시면서 늦둥이 낳고 못 가던 철야기도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철야기도를 다녀오면 마약 먹은 것처럼 모든 걸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씻기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시아버지 저지레를 처리하면서도
제 영혼과 아이들의 영혼을 만져주시라는, 죄를 씻어주시라는,
나는 자녀들에게 이런 짐이 되지 않게 해 주시라는,
이런저런 청원기도를 하면서 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발은 딱 일주일이었습니다.
한 주라도 철야기도를 빠지면 그 다음 주는 완전 지옥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씻기는 손은 화가 붙어 매질에 가까웠고, 설거지통은 깨진 그릇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요일 밤이면 무거운 몸이 밤길을 나서기까지
‘가자’와 ‘가지 말자’로 ‘내 뜻’과 ‘하느님 뜻’은 끊임없이 시소게임을 했습니다.
이렇게 ‘내 뜻’과 ‘하느님 뜻’이 시소게임을 하다가
결국은 ’내 뜻‘이 주는 강력한 마약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세상이 주는 재미에 빠져버렸습니다.
이 마약 이야기를 하려면 직장과 승진 이야기로 넘어가야 합니다.
어려움은 또 다른 힘을 길러내는 것 같습니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능감이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월급 말고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게 큰 돈 버는 달란트는 안 주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고 나니
시간 투자하고 정신 집중해서 해결되는 일은 다 ‘그까짓거’였습니다.
학교일은 시간 투자하고 정신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거든요.
그 당시 장동민이 ‘까이꺼 뭐“라는 코미디 프로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격하게 공감하며 시청했습니다.
학년 초가 되면 힘든 업무는 피하고,
수업은 1시간이라도 덜 하려고 교사들 간에 눈치싸움이 심합니다.
그럴 때면 기피업무를 가벼이 맡아 하곤 했습니다.
40년 교직 생활 동안
26년은 국어교사로, 14년은 관리자(교감 7년, 교장 7년)로 근무를 했습니다.
교직에 들어와 17년 차까지 제가 관리자가 되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교감이 되고 난 뒤 어떻게 내가 이 자리까지 왔나를 되짚어 보니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고 섭리였음을 알았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획하시고 이끌어가신 ’야훼 이레‘였습니다.
교직 경력 15년 차 때 시와 군을 함께 관장하는 교육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때 친구가 전화를 해서 집에서 15분 거리인 시로 발령 받을 수 있는 편법을 귀뜸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출퇴근 1시간 거리인 군으로 발령이 났는데
이것이 교감이 된 첫 관문이었습니다.
발령 난 학교 옆에 바로 성당이 있었습니다.
공강 시간이면 성전에 가 잠시 머무르곤 했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년 후 수업시수 조정으로
보통은 5년은 근무해야 갈 수 있는 시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성당이 주는 행복 때문에 포기하고 다른 선생님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교감이 된 두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그러고 1년 후에 승진 항목에 군에만 주어지는 농어촌 점수가 생기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승진 점수가 쌓여갔습니다.
승진을 할 때 꼭 필요한 항목이 교육 현장 연구를 해서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 때문에 승진하지 못하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시로 가는 것을 포기한 그해에 연구통 젊은 교감선생님이 부임해 오셨고,
그분을 통해 승진이라는 개념이 처음 머릿속에 들어왔고,
승진에 군 점수가 쓰인다는 것도,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까지 눈 뜨면 학교 가고, 수업하고, 퇴근해 식구들 건사하고, 성당 가고,
철야기도 가는 것이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
결국 그 교감선생님의 강력한 푸쉬로 현장 연구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두 번째 쓴 연구보고서로 2만대 1을 뚫고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상을 타고 교사들 연수에 강의를 갔을 때 강사 대기실에서 만난 교수님을 통해
저를 대통령상으로 강력하게 밀었던 교수님의 이름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교수님 이론이 제 연구의 기본 뼈대였거든요. 그때 또 확실히 알았습니다.
‘아~~ 모든 것 다 하느님께서 하셨구나~~!’
뇌물에 굴복하기 싫었던 것도, 성당 때문에 많은 이득과 편리를 포기한 것도,
그 시점에 농어촌 점수가 생긴 것도, 연구통 교감님을 보내 주신 것도,
하물며 심사 교수까지 선정하여 최고상을 타게 하신 것도,
마지막에 경쟁자 없는 상황을 만드시어 스트레스 1도 없이
3년 동안 필요한 근무 점수를 받게 하신 것도
모두가 아버지의 섭리이셨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대통령상을 타고 나니 갑자기 실력자로 급포장이 되었습니다.
학교 밖 여러 곳에서 일을 하자고 불러댔고,
일을 해 보니 그 성취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200여 장이 넘는 위촉장을 받으며 결국은 일중독에 걸려
성취감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많은 시간 허우적거렸습니다.
승진을 하고 가톨릭상담심리학회에서 상담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학회장 수녀님과 2년 가까이 개인 상담을 할 때 제가 던진 화두가
남들은 일을 안 해도 행복한데 ‘저는 왜 일을 해야만 행복합니까?’였습니다.
수녀님 진단이 상담 용어로 ‘사회적 자아’는 한없이 커져 있는데,
‘내적 자아’가 쪼그라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런 사람들이 퇴직하면 심한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하면 자살도 한다고,
2년 동안 내적 자아를 키우는 미션을 수행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제가 하느님께 눈 멀어 있던 시간에도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시며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느님 홀로 일방적인 사랑을 저에게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제가 거내영을 통해서
하느님은 사랑을 주고 받기 위해 당신 영을 불어 넣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인간을 사랑하는 만큼
인간에게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이제 나는 바보스러울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리라는
단 하나의 소망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나를 이끄는 것은 오로지 사랑 하나뿐이다.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소화 데레사)
눈 멀었던 제가 하느님을 사랑해 드리는 일이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저도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하느님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작은 딸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제가 거내영을 만난 것은 퇴임을 6개월 앞둔 때였습니다.
퇴임 후엔 죽는 날까지 하느님 일만 하겠다고 결심하고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까’를 탐색하던 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통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을 소개받는 순간
느낌이 와서 그 자리에서 다음 카페 ‘마리아처럼’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두 서적 ‘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딸랑 이거 하나로 제가 이렇게’와
무형의 성전(마리아처럼 카페)의 ‘내맡김 영성’과 ‘내맡긴 영혼’을 읽고는
‘와~~ 대박이다!’ ‘찾던 것이다~~!!!’
‘야훼 이레’를 외쳤습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찾아다니던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들고 다니던 시험지의 정답지를 구한 느낌이었습니다.
먼저 가슴을 울린 것은
한 사제의 겸손함과 솔직함이었습니다.
‘내가 해 보니까 되더라.’ ‘나같은 사람도 되더라.’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하느님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은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나같은’이라는 겸손함에 너무도 강렬하게 묻어났습니다.
신부님께서 하라시는 대로만 따라하면 되겠구나~~!!!
100%의 신뢰로 스폰지처럼 빨려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폰지처럼 빨려드는 것이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임을 거내영을 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지 알면 다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내영은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너무도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문장인데,
그 속에 담겨진 너무도 타당한 논리와 깊이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저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처음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와 ‘네가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고력과 자생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핵심 동력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이것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성전의 다양한 게시글들과 내맡김 영성을 공부하면서
‘내 뜻’의 가치관과 ‘하느님 뜻’의 가치관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다는 것과
‘내 뜻’으로 살아올 때는 다이아몬드였던 것이
‘하느님 뜻’ 안에서는 쓰레기로 변모되는 현상이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 완전히 100%!, 0.00001%,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맡김,
‘내 뜻’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느님 뜻’만 남은 상태,
그것이 거룩한 내맡김 영성이다. >
< 티끌 하나라도 하느님과 다른 것이 남아 있다면,
반드시 그 티끌을 털어 낸 다음에라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티끌을 털어내는 곳을 ‘연옥’이라 부른다. >(창화살 p.31)
거룩한 내맡김을 통해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어느 날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죽어서나 가는 곳인 줄 알았던 연옥이나 천국이
지금 여기서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이끄심 따라
연옥 과정을 거쳐 천국으로 이끌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인지하면서
거내영을 모르고 죽었다면 ‘내 뜻’의 티끌을 털어내기 위해
얼마나 긴 연옥의 정화 과정을 거쳐야 했을지 생각만으로도 아찔했습니다.
‘내 뜻’과 ‘하느님 뜻’을 알고 나서
아버지를 뜨겁게 만났던 철야기도 때부터 ‘내 뜻’으로 행한 40여 년의 신앙을 되돌아보니 끊임없는 도돌이표였습니다.
기도하고 말씀 들을 때는 충만했다가 일상인 현상으로 복귀하면 다시 질곡으로 떨어지는 냉탕과 온탕의 무한 반복이었습니다.
벌과 복의 양쪽 주머니를 차고 계신 권력자 하느님 눈에 들기 위해
높은 성취 기준을 정해 놓고 그를 실천하려 뼈를 갈았지요.
도달하면 해냈다는 교만감이
도달하지 못했으면 게을렀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이
내 뜻으로 행한 신앙생활의 실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뜻’으로 행하는 신앙 행위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저의 신앙에 대한 인지구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내맡기면 영혼의 냉온탕이 사라집니다.
늘 하느님의 사랑으로 뜨거워진 온탕에서
그동안 죄로 인해 차거웠던 여러분의 영혼을 따끈하게 덥힐 수 있습니다. >
0.00001%도 남김없이 ‘내 뜻’을 온전히 하느님께 드리는 내맡김의 삶만이
냉온탕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내맡김의 삶은 지금까지 거룩하다고 믿어왔던 신앙 행위들까지도 다 갈아 엎어
인생 리셋이 되어야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하느님 뜻’으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 분명한 것은,반드시 누구나 '철부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철부지가 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길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 길이 바로 '내맡김의 삶'입니다. >(창화살 머리글)
지도신부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시는 철부지 앵앵이가 되라는 말씀이 이거였구나~~
내맡김은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차동엽 신부님의 책에서 인간 안에는 하느님의 자리가 있어,
그 자리는 하느님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 자리를 인간의 것으로 채우려고 하기에
인간이 늘 외롭고 허허롭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내영을 모를 때는 그 하느님의 빈자리를 발바닥에 불이 나는
미사참례와 성체조배, 묵주기도 등의 숫자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 자리의 주인을 확실하게 압니다.
그 자리의 주인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자리는 의무감과 숫자로는 채워질 수 없는 진정성과 따뜻함으로,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신뢰와 사랑으로, 끊임없이 드리는 감사와 찬미로 채워지는 곳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몰라도 너무도 몰랐습니다.
<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느님을 모르면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창화살, p.20)
하느님을 몰랐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몰랐고,
진정으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내 뜻이 행하는 사랑과 심신 행위에
하느님께선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거 말고 네 사랑과 가슴을 다오’ 하시건만
알아 듣지 못하고 꾸역꾸역 내 뜻의 율법적인 미저리식 사랑을 해댔습니다.
종교와 과학을 넘나드는 ‘무형의 성전’(다음 카페, 마리아처럼)의 다양한 게시글들을 통해
우주만물에 대한 인식과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인지가 넓혀지면서
‘그대가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다'(성 아우구스티노)라는 말씀을 알아들으며
반 세기 동안 믿어 왔던 하느님도 제 좁은 인지가 만들어 낸 우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앎을 통해 저는
제 틀에 갇혀 계시던 하느님 아버지를 하느님의 원자리로 꺼내 드렸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지금 현재 여기서 저를 사시며
‘내 뜻’의 속박으로부터 조금씩 때론 왕창 저를 꺼내 주십니다.
먼저 시간의 속박에서 저를 건져 내시며
매 시간 ‘나 여기 있다.’ 하시며 저를 만나주십니다.
< 시간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시간을 잃어버리면 하느님을 만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창화살 p.236)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게 시간은 정말 돈보다 소중했습니다.
‘멍 때리기~~’ 이런 화두도 노년기에 들어서야 수긍이 갔습니다.
한참 일에 미쳐 있을 때는,
1시간이면 처리할 수 있는 일을 하루 종일 붙들고 있는 주변 사람을 보면서
저 일을 가져다 대신 해주고 나머지 시간을 내가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삶은 늘 동동거렸고 무엇엔가 쫓겼고,
머릿속은 다음 처리할 할 일들로 항상 꽉 차 있었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퇴임을 하고도 남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그리 바쁠 것도 없는데 무엇엔가 쫓기듯
시간에 매여 동동거리는 저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면서 아버지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보기로 작정하고
제 모든 계획을 아버지께 내어드렸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아버지께 저의 모든 시간을 내어드리고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너무도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습니다.
약속이나 일이 중복될 때도 내맡겨 드리고 기다리면
어느 한쪽이 자동적으로 취소되거나 변경되면서 정리되는 것을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거듭될수록
‘정말 아버지께서 나를 살고 계시는구나’
제 안에서 저를 살고 계시는 아버지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형제들과 함께 진천 부모님 산소를 거쳐 청주 삼촌집을 들렀다가
6시 수원 회의에 참석하는 3건이 잡힌 일정이었습니다.
일정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그날 꼭 참석해야 하는 6시 회의는
끝날 시간에 가거나 ‘엄청 지각이겠구나’ 짐작하고 있었는데
한식인데도 길이 뻥뻥 뚫리면서 회의 장소에 도착하니 그나마 양호한 6시 30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의실로 들어가니 시작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뭐지?’ 했는데 회의 시간이 6시 30분이었던 것을 6시로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도 ‘와~~ 우리 아버지~~!!’ 하고 전율했습니다.
한번은 앱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나갔는데,
택배 작업이 있었는지 층층이 묶여 엘리베이터가 안 내려왔습니다.
앱을 보고 시간 맞춰 나왔기에 ‘버스 놓치면 안 되는데’ 하는 조급함이 살짝 올라오려는데,
그때 머릿속에 ‘내가 똥 누는데 니가 왜 힘을 주냐?’ 이 말이 떠올려졌습니다.
‘아~~ 그치, 시간의 주인은 아버지시지~!’
알아차리고 아버지께 도로 주인 자리를 내어드리고 느긋하게 기다렸습니다.
지각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시는 거라면 받아들여야지 했는데,
그날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게 하셨습니다.
무형의 성전에서 댓글을 쓰다가도 외출할 시간이 되면 느낌을 주십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아~~ 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하느님께서
그 영혼 안에 직접 생각을 떨어뜨려 주시고 계획까지 세워주시므로
그 영혼은 오로지 그분의 도구로써, 그분의 계획에 따라, 그분의 뜻대로
기쁘게 이끌려 드리기만 하면 된다. >(창화살 p.46)
내맡겨 드리니 생각을 떨어뜨려 주시고, 시간을 조정해 주시면서
‘니 안에 나 있다’ 하시며 저를 사시는 당신을 알려주십니다.
제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공간과 율법의 속박으로부터도 저를 꺼내 주셨습니다.
내맡김 전에도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성전이나 성지, 성체조배실처럼 특정 공간에 계시는 아버지께 집착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니 안에 나 있다’고 실시간으로 일깨워 주시는 아버지를 만나니
일상의 공간이 성전이며, 아버지께서 역사하시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마약(성령)은 철야기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태어나기 전부터 내 안에 계셨건만,
눈 멀고 귀 먹어 알아 뵙지 못했던 것이지요.
생수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던 사막의 여인이
이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오아시스, 거내영을 만났습니다.
게다가 그 오아시스의 주인이 바로 저의 생부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저는 찐 아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이젠 집 나가 생고생, 개고생 하지 말고 내 안에만 머물러 있으라.’ 하십니다.
아버지의 딸이 되고 나니 많은 것이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종인 줄 알았을 때는 주인 눈에 들기 위해 눈치기도, 의무기도를 드리면서
그 댓가로 떨어뜨려 주시는 축복에 눈독을 들였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너는 내 딸이니 당당한 상속자라고,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젠 진정 아버지 딸로서 누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 가장 탁월한 벙법은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뜨거운 열망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이다.
거룩한 내맡김의 끊임없는 화살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샘물인 성령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
(지도사제 17.09.27)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매일매일 아버지께 드리는 성전에서의 사랑편지가 마중물이 되어
일상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이 따뜻함으로 충만함으로 꽉 차 오릅니다.
이원론으로 한정되었던 사랑에서 벗어나
우주만물을 품어 안으시는 아버지의 무한의 사랑을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 안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실 수 있는 모래 그림판의 작은 모래이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 사랑의 바다에서 아버지 손길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되는 물방울이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꿈같은 무한의 사랑을 소망함이,
이런 꿈같은 무한의 사랑으로 조금씩 때론 왕창 이끌림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도 감사해 수시로 울컥 울컥합니다.
아버지의 손길은 평생 억압이었던
돈의 속박으로부터도 저를 건져내 주셨습니다.
저는 돈에 대한 욕망이 그리 강하진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자가 되겠다든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빚더미에 있을 때도 처음 몇 년간은 카드 돌려막기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했고.
또 다음 몇 년간은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0이 되길 기도했고,
형편이 좀 핀 후에는 통장 잔고가 100만 원만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지금까지 눈 먼 돈을 한번도 만져 본 적이 없습니다.
일해서 월급 받고, 강의해서 강의료 받고, 심사해서 심사료 받고, 원고 써서 원고료 받고,
평생 모든 수입은 노동의 댓가로 받은, 날 것 그대로의 수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면서 뿌리 깊게 박힌 생각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먼 돈은 없다는 것,
철저한 내돈 내산, 수입 안에서 계획성 있게 사는 것이 저의 경제관이었습니다.
기부와 헌금도 그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내맡김을 살면서도 한동안 이 부분은 내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저의 모든 것을 내어드렸기에 제 집의 경제도 아버지께서 주인이시라고
머리로는 내어드렸지만 예전과 똑같이 계획하고 계산하며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저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모골이 송연해지는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 내신 대형 사건을 통해
아버지 아니시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이미 다 날라갔음을 온 몸으로 체득하면서
진정 저의 모든 것의 주인은 아버지시라는 것과
이 집 경제의 주인도 아버지이심을 체감하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제 돈이 아닌 아버지 돈이기에,
아버지 통장에서, 아버지께서 느낌 주시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계획에 없는 지출도 때론 왕창 감행하곤 한답니다.
또 책임감과 죄책감의 속박으로부터도 건져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 내맡긴 영혼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적어도 100% 내맡긴 영혼은 말입니다.
일어난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섭리)으로 받아들입니다. >
(내맡긴 영혼은, 생각은 짧게 위탁은 길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니
어떤 환난이나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도 잠시 휘청은 하지만 곧바로 평정을 찾습니다.
이 사건 안에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버지의 계획이 있음을 철석같이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어나는 모든 일에 원인과 결과를 따져대며 들이대던
‘왜?’가 제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올 6월에 다녀온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에 코로나가 걸렸습니다.
그것을 아는 순간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백신을 5차까지 맞았고, 3여 년간 한 번도 안 걸렸으며
하물며 집에 환자가 생겼을 때도 저만은 비켜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간 이 일정에 코로나?
습관대로 ‘왜 하필 이때?’가 잠시 올라왔지만
이것이 ‘내 뜻’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이 순례 시기에 주신 코로나에도 아버지의 깊은 뜻이 있음을 믿으며 차분히 기다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답이 ‘나만 바라보라!’였습니다.
아버지 사랑에만 흠뻑 취하겠노라 결심하고 출발한 성지순례였는데
아버지보다 함께 간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는 저를 보게하셨습니다.
코로나로 판명되고 나니 나름의 분리가 일어났습니다.
밥도 혼자 먹고, 차도 맨 뒷자리에 혼자 앉고, 순례길도 혼자 걷고, 잠도 혼자 자고,
다른 이들은 혼자 있는 제게 측은지심을 보냈지만,
저는 혼자가 아닌 예수님과 둘이서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며 아주 행복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지금 그곳에 계시는 예수님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머릿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떠올려졌습니다.
그러면서 ‘코로나로 이런 행복을 느끼는구나’
저도 지도신부님 따라쟁이 되어 외쳤습니다.
‘아~~ 복된 병이여~~!!!’
아픈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제가 꼭 병균의 전파자인 것 같아 미안하고 괴로웠습니다.
기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간장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건 네가 아파해야 할 몫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순간 너무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제겐 책임감에 대한 과잉 반응, 내탓증후군이 과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형성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군가 잘못되면
‘혹시 내 탓인가?’ ‘내가 뭘 잘못했나?’
자동반사적으로 저를 들여다보며 괴로워하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긴 세월 살면서 남에게 바른 소리, 큰 소리 한번 못한 것도
혹시라도 모를 내 탓을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습니다.
이 내탓 증후군은 그동안 깊은 내면에서
저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조종하던 어둠의 세력이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불가항력인 것 너의 책임 아니라고’,
‘이젠 모든 것 다 내가 책임진다고’,
‘너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젠 진정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버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느낌 따라 이끌리며, 종종 ‘아님말구’를 받아들이며
평안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내맡김은 ‘내 뜻’이라는 껍질을 벗고, ‘하느님의 뜻’으로 갈아입는 하나의 변태다.
‘내 뜻’이라는 질기디질긴 껍질을 스스로 뚫어 찢고 벗어나야 한다.
거기에는 큰 고통이 따른다. >(창화살 p.166)
처음엔 내맡김이 단순하고 쉬워 보였습니다.
까이꺼 내맡기면 되지 뭐~~
막말로 이젠 욕심 낼 것도, 집착할 것도 없는데, 뭘 망설여?
평생 찾아다닌 것이 사랑인데, 이토록 진정으로 날 사랑하시는 아버지를
사랑해 드리는 건데, 뭘 망설여?
평생 소원이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거였는데, 뭘 망설여?
평생 머리에 쥐가 나도록 생각했는데, 생각하지 말라는데, 뭘 망설여?
아버지께 내맡기라고 열거되는 모든 것이
평생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들이라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벗어던지고 아버지가 차려 놓은 식탁에 숟가락만 얹으며 된다고 가벼이 생각했습니다.
영적지도 사제의 영적 지도를 받기 전에는
이 쉬운 것이 잘 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지도신부님께서 날카롭게 지적해 주지 않으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벗겨내야 할 내 뜻은 삶과 한덩어리가 되어 살던 자리 그대로에 눌러 붙어서는 저를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의 정화 과정은 아버지께서 함께 해 주시기에
아버지께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아버지 때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힘주라 하시면 힘주고, 찢으라 하시면 찢으며, 아버지의 손길에 온전히 이끌려 드립니다.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 55,9)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복된 시간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진정 깊은 감사와 찬미와 사랑과 영광을 드립니다.
하느님을 향한 외골수가 되도록 이끌어주시는 지도 신부님과 영적 선배님들,
그리고 함께 하는 모든 식구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물바람님,
마치도 거내영의 진수를 한달음에 재인지시켜 주시는 듯한 정돈된 증언글에서
아버지의 이끄심을 새로이 맞이했습니다.
살아오신 삶의 켜켜에서 님을 이끌어 주신 아버지를 저도 함께 만나면서
그저 놀랍고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있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면 됐지 않습니까!
아버지께서 저를 이렇게 살게 하시고 기꺼이 당신 손으로 저를 이끌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고 어렵고 무서우리요!
이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모든 것 다 내려 놓고 맡겨드리어
오직 아버지 뜻만이 이루어 지길 소원할 뿐입니다.
부족한 저는 지도 사제와 선배님들과 님을 따라쟁이 할렵니다.
아버지 뜻대로만 살으신 예수님과 성모님과 모든 성인성녀들을 따라쟁이합니다.
무지하고 비천한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걸어가는 데 용기를 내게 하신 아버지,
제가 아버지만을 죽도록 뜨겁게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물바람과 <딸랑 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마음껏 무한찬미영광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사완영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이렇게 스폰지처럼 빨려드는 것이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임을 거내영을 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지 알면 다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내영은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
<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아멘,아멘!
사랑하는 물바람님,
귀한 증언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너무나 힘들게 살아오신 세월만큼
수고 많으셨다고 포옥 안아드립니다.
밭에 묻혀 있던 보물을 선물해 주신 아버지께
온마음 다해 올려드리는 이 거룩한 증언으로
얼마나 많은 불쌍한 영혼들이 아버지의 품안으로 돌아올런지요.
평생을 '내뜻'의 시종이 되어 살던 저희들이
거내영이라는 '아버지뜻'의 신비의 관리인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에 한껏 소리높여 올려드리는 사랑의 노래가
너무나 아름답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베풀어 주시는 모든 은혜에 감사합니다.
물바람과 <딸랑2>의 모든 것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이렇게 스폰지처럼 빨려드는 것이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임을 거내영을 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지 알면 다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내영은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멘!아멘!
정말 그렇습니다.
아버지께서 눈과 귀를 열어주지 않으면 정말이지 아무나 이 거룩한 영성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거내영을 전하는 과정에서 많이들 체험을 하지요.
사랑하는 물바람님의 이 거룩하고도 귀한 증언으로
영혼구원의 사명에 충실히 이끌려드려 아버지의 기쁨이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 30)하신 말씀에서처럼
아버지께로의 방향 전환만이 온 인류가 살 길임을 재천명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오아시스인 거내영을 만나
아버지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내맡김의 기도로
지금여기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며, 재창조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현존을 느끼며
매순간 아버지 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내영의 삶은 참으로 신비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퇴임하고 남은 생을 온전히 투자할 큰 일을 만났다고
일상의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자신있게 선배에게 전하던 님의 확신에 찬 모습이 떠오르네요.
이 거룩하고 복된 증언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 내맡겨드리고 아버지만 뜨겁게 사랑해 드리면,
세상 모드에서 하느님 모드로 저절로 옮겨가는 이 놀랍도록 단순한 진리를
한 영혼이라도 제대로 깨달아 참 신앙인의 길로 들어서기를 소망해 봅니다.
아버지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복된 거내영의 삶을 허락해주심에
엎드려 뜨거운 감사와 찬미와 흠숭을 드리며,
저희 내맡긴 영혼 모두가 영혼구원의 사명에 보다 충실히 이끌려드리도록
더욱더 아버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
물바람과 < 딸랑 2 증언 >의 모든 것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 내맡김 영성 ■
16. 왜, 하느님께 내맡기지 못하는가? (2)
지도사제 10.01.12 22:52
무엇보다 자신의 삶의 가치기준 때문이다.
'내맡김의 영성'이 그토록 탁월한 영성이며,
그 영성을 살아가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의 삶을 시작할 수 있고,
성인, 성녀가 되는 지름길이며, 그러하기에 연옥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
직행할 수 있는 '참으로 복된 영성'이라고 아무리 가르쳐 드려도,
실제로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겨 드리기로 결심하기까지는 참으로 '어려움'이 크다.
그 어려움은 하느님 보다 이 세상의 지식, 명예, 능력, 재물, 사람, 일, 취미,
재미, 쾌락 등에 조금이라도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머리로는 신앙인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마음으로는 세상의 것들에 삶의 가치가 더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카 12,34)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1요한 2,15)
세상의 것들이 나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하느님만이 나의 미래이시고 나를 보장해 주신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확실히 100% 보장해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히브 6,17)
하느님만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시다.
재물보다 하느님을 먼저 청하고 구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마귀가 흩트려버린 순서를 올바로 잡아야 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그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이 세상의 것들에 의지하기보다 하느님께 더 큰 가치를 두고 하느님께 의지할 때,
'의지'가 아니라, '의탁'이 아니라, '완전히 100% 위탁'할 때,
즉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맡길 때', 잃었던 '인간성이 회복'되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며,
그때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기어이 다 내어주신다.
하느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시고, '하느님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되어 주신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진실이다. 진리이다. 참으로 진리이다. 머리 굴리지 마시라.
짧은 머리 돌리고 굴리지 마시라! 자칭 머리 좋다는 저도 짧은 머리 돌리고 굴리다 피 봤다!
예전부터 머리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그들의 기가막힌 끝말도 말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이사야 55,9) ]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끊임없는 화살기도와
매일매일 아버지께 드리는 성전에서의 사랑편지가 마중물이 되어
일상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이 따뜻함으로 충만함으로 꽉 차 오릅니다.>
아멘!
사랑하는 물바람님
거룩한 증언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내영의 이론을 이렇게 일상의 증언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간추려 올려주셔서 부족한 제가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부족한 저도 열심히 따라쟁이 하겠습니다.
물바람과 <딸랑2>의 모든것을 통하여 당신 마음껏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증언으로 더 뜨겁게 사랑해 주심을 느끼게 해 주신
하느님아버지,참으로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이렇게 스폰지처럼 빨려드는 것이
아버지의 특별한 은총임을 거내영을 전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몰라서 못 왔지 알면 다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거내영은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
<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아멘 아멘~!!
온 몸으로
삶을 살아 와 시리도록 가슴이 아프네요 사랑하는 물바람님.
아이를 두고 출근하는 그 마음이 ...
그나마 믿음이 있었기에...
기댈 수 있는 주님이 있었기에....
매섭토록 차가운 세파속에서
아이를 뒤로 하고 걸어가던 그 발걸음이 얼마나 떨리고 가슴이 졸였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거내영>은
아무나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가면 갈수록 느껴지는 것이
온전히 아버지께 내맡겨 드릴수 있도록
은총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것임을
<거내영>을 전하면서
알게 되네요.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사랑하는 물바람과 <딸랑 2>의 <거룩한 증언>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이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모든 순간 함께 해 주셨던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때는 정말 죽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물바람님,
이 한 마디가 님의 인생여정을 대변해 주네요.ㅜㅜㅜㅜ
<어머니가 오시면서 늦둥이 낳고 못 가던 철야기도를 다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철야기도를 다녀오면 마약 먹은 것처럼 모든 걸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맞아요. 저도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
기도며 피정이며 온갖 좋다는 곳은 다 찾아 다녔지요.
님의 말처럼 약발은 잠시 분이었지만요.ㅜㅜ
<처음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다’와 ‘네가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고력과 자생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핵심 동력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이것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성전의 다양한 게시글들과 내맡김 영성을 공부하면서
‘내 뜻’의 가치관과 ‘하느님 뜻’의 가치관은 정확하게 대척점에 있다는 것과
‘내 뜻’으로 살아올 때는 다이아몬드였던 것이
‘하느님 뜻’ 안에서는 쓰레기로 변모되는 현상이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아멘, 아멘!!!
정말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충격이었지만
너무나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생각없이 아버지 생각으로 가득 채워 무위행으로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입니다!
<창화살>내용을 중간중간 집어넣어 주시면서
체험과 비교하여 증언하여 주시니
더욱 이론?과 함께 읽는 이들에게 더 깊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깔끔한 문장과 정돈된 내용으로 너무나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이 이렇게 거내영으로 마감할 수 있으니 얼마나 복된 영혼인가요?
모두 아버지의 은총이니 우리 함께
아버지만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면서 잘 이끌려 드려요~^^.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물바람과 <딸랑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아빠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거내영은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너무도 쉽고 간결하게 쓰여진 문장인데,
그 속에 담겨진 너무도 타당한 논리와 깊이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저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
< 생수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던 사막의 여인이
이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오아시스, 거내영을 만났습니다.
게다가 그 오아시스의 주인이 바로 저의 생부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저는 찐 아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아버지께서
‘이젠 집 나가 생고생, 개고생 하지 말고 내 안에만 머물러 있으라.’ 하십니다.
아버지의 딸이 되고 나니 많은 것이 저절로 해결되었습니다. >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있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물바람님,
결혼 후부터 몰아치는 거센 파도들을 몸으로 막아내며
너무도 잘 건너오셨습니다.
거친 파도 덕분에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을 다 쓸 만큼
눈물 콧물 쏟아 내며 아버지 품에 다시 안기셨으니
고통과 은총은 한 묶음인가 봅니다.
이제 아버지가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입어
산 남고 물 건너 이 시대의 마지막 영성인 < 거내영 >에 안착 하셨으니
봉헌을 통해 새롭게 창조 된 새 인간으로
땅을 밟고 사는 하느님 나라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고 힘차게 살아가십시다.
우리 손 꼭 잡고 언제까지나 함께 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 거내영 >과 물바람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마음껏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첫날밤의 아버지와의 찐한 만남으로
저는 아버지를 향한 열정으로 불타 올랐습니다. >
우와~
사랑하는 물바람님의 아버지 부르심은 이렇게 시작되었었군요.
< 우유값도 없었던 현실이 아이를 낳고 나서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는데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
비현실적인 사실이지만, 궁핍 속의 풍요를
부족한 저도 이유도 모르며 누린 때가 있습니다.
내맡긴 영혼이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었음에 목놓아 울게 되었지요.
그런 같은 맥락임을 알겠기에 더 꼭 안아드리며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 눈 멀었던 제가 하느님을 사랑해 드리는 일이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을 알게 되면서
저도 소화 데레사 성녀처럼 하느님만을 죽도록 죽기까지
뜨겁게 사랑해 드리는 작은 딸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내맡김은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앎을 통해 저는
제 틀에 갇혀 계시던 하느님 아버지를 하느님의 원자리로 꺼내 드렸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아멘아멘아멘!
눈멀고 귀멀었던 영적 소경들이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고 또, 그것이 전부가 되어
아버지의 영광만을 노래하는 아버지의 참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만방에 알리는
사랑하는 물바람님의 속속들이 드러난 증언에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견뎌오신 그 모든 시간,
내맡긴 영혼으로 부르시기 위한 아버지의 섭리였음을 직감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맡긴 영혼으로 새 하늘 새 땅을 살게 된 물바람과
<딸랑 2 증언>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물바람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들을 가르치시느라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학생들은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학창시절.
많은 학생들의 사랑받는 선생님이셨을것 같아요.
교육자의 길을 충실하게 이뤄 내신 물바람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학교업무에게 힘드셨을턴데 가정사까지 겹치는 어려움을
현명하게 이끌어 가신 물바람님은 능력을 갗추신 (제가 보기에는)
대단한 능력가이십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도 주시는 분.
그러니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랑하는 물바람님!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우리 아빠 아버지께 감사감사 드리며 거룩한 증언과 함께
아버지께 찬미영광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무형의 성전에서 댓글을 쓰다가도 외출할 시간이 되면 느낌을 주십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아~~ 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
< 내맡겨 드리니 생각을 떨어뜨려 주시고, 시간을 조정해 주시면서
‘니 안에 나 있다’ 하시며 저를 사시는 당신을 알려주십니다.
제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공간과 율법의 속박으로부터도 저를 꺼내 주셨습니다.
내맡김 전에도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성전이나 성지, 성체조배실처럼 특정 공간에 계시는 아버지께 집착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니 안에 나 있다’고 실시간으로 일깨워 주시는 아버지를 만나니
일상의 공간이 성전이며, 아버지께서 역사하시는 성지가 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물바람님,
증언 글 잘 읽었습니다.
1인 몇 역을 하셨는지, 아버지께서 도구로 쓰시기 위해
여러가지 모양으로 일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장하다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함께 가는 이 길에 한껏 힘이 납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저도 님 따라쟁이로 기쁘게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 딸랑2 증언 >과 물바람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 홀로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귀한 한 영혼의 증언을 이끄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생수를 찾아 이곳 저곳을 헤매던 사막의 여인이
이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오아시스, 거내영을 만났습니다.
게다가 그 오아시스의 주인이 바로 저의 생부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저는 찐 아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 잘하고 싶은 마음, 있는 것보다 포장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평생 저를 지배한 제 뜻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발가벗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드높이 계시는 아버지의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롭게 창조하며
천국의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물바람님,
참으로 수고 많으셨어요~
아버지께서 주신 고통의 시간들이
진정 아버지의 나라에서 모든 것을 누리도록
계획하신 아버지의 섭리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네요~
<거내영>이전에도
어여쁘신 아버지의 정배로 고이 이끄셨고,
<거내영>으로
아버지의 사랑으로 새로 창조되셨으니,
온전히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늘 빛이 나십니다~
이 증언 글이 아버지의 구원 사업 안에서
아버지의 영광의 도구로 쓰여질 것이니, 더욱 감사하네요!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사제와 <딸랑2증언>과 물바람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