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꽃 열번째 시집
애채
얼음꽃 시창작회
책머리에
이 시집은 시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 2009년 9월부터 문복희 교수님의 지도하에 한 학기를 공부한‘애채’들의 시모음집입니다.
“시는 언어의 건축이다”라고 한 김기림 시인의 명언을 인용한 지도 교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기 위해 열심히 기초를 닦고 있습니다.
그동안 회원들이 서투른 솜씨로 다듬고 서로 격려하면서 창작한 시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꾸며 보았습니다.
시집을 빛내기 위해 지도 교수님과 동료 시인들 그리고 이미 등단한 선배님들의 시도 함께 묶어 열 번째 작품집을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원들은 다음 학기에도 계속 정진하여 “언어의 아름다운 집”을 짓도록 노력하며 보다 나은 시집이 나오도록 힘쓰겠습니다.
2010년 2월
회장 배 상 운
차례
초대시
장삼현 벽계마을………………………… 2
가슴앓이 1……………………… 3
모상철 자운영…………………………… 4
대보름달………………………… 5
화분의 고무나무에게 ………… 6
노정숙 종………………………………… 7
제사……………………………… 8
공한성 이슬……………………………… 10
간다……………………………… 11
꽃봉오리………………………… 12
고운석 설雪……………………………… 13
환희……………………………… 14
풍년豊年 ………………………… 15
인연因緣 ………………………… 16
등천리…………………………… 17
지도교수 시
문복희 연꽃……………………………… 20
망해사…………………………… 21
첫눈이 오면 …………………… 22
얼음꽃 동인 시
김건호 별………………………………… 26
단비……………………………… 27
피안彼岸 ………………………… 28
나 무 -아내를 위한 소묘………… 30
성탄축하………………………… 31
검정고시………………………… 34
경원시창작반…………………… 36
가을바람 소리 ………………… 39
김진희 갈등……………………………… 42
눈밟기…………………………… 43
가을앓이………………………… 44
향단이 曰 ……………………… 45
저녁하늘………………………… 46
송편만들기……………………… 47
배상운 친구……………………………… 50
추석……………………………… 51
나이테…………………………… 52
오누이…………………………… 53
달성공원………………………… 54
겨울잔치………………………… 55
겨울풍경………………………… 56
변사또의 변 …………………… 57
성보용 고백 1…………………………… 60
함박눈…………………………… 61
이도령夢龍과 술 한 잔………… 62
이도화 달빛……………………………… 64
메밀꽃…………………………… 65
겨울풍경………………………… 66
향단이의 짝사랑 ……………… 67
10월 마지막 날………………… 68
이종현 만추……………………………… 72
도시의 나비 …………………… 73
질경이의 노래 ………………… 74
소라껍질 이야기 ……………… 75
제비꽃 누이 …………………… 76
자갈밭을 걸으며 ……………… 78
새벽 성수대교에서 …………… 79
최양숙 월매사랑………………………… 82
추석전야………………………… 84
월동준비………………………… 86
별이야기………………………… 88
한기수 밤꽃……………………………… 90
텃밭……………………………… 91
인생……………………………… 92
행운목…………………………… 93
두릅나무………………………… 94
홍시나무………………………… 95
싸리골의 태동 ………………… 96
소 팔러가던 날………………… 97
강아지의 가죽신발 …………… 98
허필란 겨울햇살…………………………102
여차해변…………………………103
그대안의 별 ……………………104
12월의 단풍 ……………………105
시월의 마지막 밤………………106
초대시
장삼현
모상철
노정숙
공한성
고운석
벽계마을
장삼현
그대 아시나요 내 고향 벽계 마을
산 높고 골이 깊어 은빛 냇물 고왔네
초가집 지붕 위에는 수줍은 하얀 박꽃
물수제비 놀이하며 제기차기 말뚝 박기
고사떡 돌리던 넉넉한 마을 인심
고드름 추녀 끝에서 햇빛 받아 반짝였지
황혼녘 텅빈 들엔 바람만 혼자 울고
돌아갈 길을 잃고 초라한 모습 하나
부모님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 그립다.
가슴앓이 1
장삼현
숨소리 고요했던 까닭이 있었구나
길 잃은 아이 하나 갈 곳도 모른다네
비바람 삼십여 년에 햇살마저 그리워라
일상은 실오라기 그리고 장난감으로
그것도 즐거우면 뜻대로 하여주마
미소 짓는 네 모습에 내 억장이 무너진다.
울어도 함께 울고 웃어도 울어야만 하는
가슴에 뭉친 아픔 천 갈래 만 갈래 길
세월은 그저 그렇게 서쪽으로만 가는구나
장삼현 : 양평 출생
월간 '문예사조' 수필 등단・계간 '시조생활' 시 등단・
경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역임
국립 울란바타르 대학교 철학박사 및 객원교수 역임
국사편찬 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양평군 향토유적보호위원 ・양평문화원 향토사료조사위원
사단법인 화서학회 법인이사
저서 - 「성남・광주의 설화」, 「화서학파의 척사사상 연구」
「대한독립단 도총재 박창호 실기」
「한국전쟁 양평 전란사략」, 외 다수
자운영
모상철
뿌려진 씨 돌보는 이 겨우내 없었건만
서릿발 무너지고 갈가마귀 떠난 뒤
논배미 저희 꿈밭에
보라 물결 넘실대네
나물 캐는 아낙네 눈요기나 시켜주고
벌 나비와 황홀한 입맞춤 한창일 때
하늘 땅 뒤집는 쟁깃날이
목을 죄고 마는구나
타고난 명 빼앗겨 씨 한 톨 못 남겨도
너의 몸 던진 곳에 풍년가 피어나니
울음도 못 거둘 한을
흙에 묻고 살거라
대보름달
모상철
어찌 두려움 없이 쳐다볼 수 있었을까
티 없이 맑은 모습 속 비치는 거울을
때 끼고 허물투성이 어지럽던 나날에
조촐한 소원조차 빈 보람 헛될 것을
그 시절엔 미처 몰라 남 먼저 외워댔지
휘영청 솟는 달 우러러 횃불 높이 휘두르며
꿈마다 거품으로 흘러간 마른 냇가
숨결 감춘 가지 끝에 남은 조각 하나 걸려
두둥실 언제 떠오랴 내 마음 속 대보름달
화분의 고무나무에게
모상철
옥죄는 그릇 가득 억지로 뿌리 담겨
유배지에 갇힌 향수 굳이 한스럽거든
고향땅 그대 형제들 눈에 그려 보아라
형체 잃은 밀림 속 노예로 말뚝 박혀
표독한 칼날 끝에 살갗 깊이 찢긴 채
진한 피 뚝뚝 토해내 깡통 채워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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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상철 :‘문학과 어린이’지 신인문학상 수상
‘시조생활’지 신인문학상 수상
문협, 시조시인협, 아동문학회,
아동시조작가협 회원
작품집‘기다리는 아이’(동시조)
‘이야기 거울’(시조)
종
노정숙
대대로 종만 만들었다는 한 사내를 만났다 울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종들 아래서 숫된 그의 눈과 마주 쳤을 때 우리는 원시의 언어로 하나가 되었다 땀으로 젖은 등 갇혀 있던 말들이 서로를 위로한다 모나고 거친 몸이 깊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 둥글게 태어난다
그는 백 년 전에 이미 내 안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의 혀는 너무 능란했다 나는 기어이 그의 종이 되었다
목을 직각으로 꺾어야 볼 수 있는 첨탑 그가 줄을 당기면 비로소 나는 몸을 던져야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한 죄로 오래오래 울어야한다 그리운 손 떨리는 입술 내 것인 것을 알아 본 죄로 다시금 돌아와 무릎을 꿇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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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숙 : <현대수필>로 등단 , <문학사계>로 시 발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분당수필문학회 회원. <현대수필〉편집위원,
수필집《흐름》,《사막에서는 바람이 보인다》
제사
노정숙
광대였던 내 아버지 제삿날,
우리는 택시를 잡고 물 좋은 곳으로 가자 했다
어느 곳이나 기사가 정보통이지
20여 분 달려 내려준 곳은 거대한 성곽 앞
입구서부터 쾅쾅 고막을 울리다 못해
가슴에 대포를 쏘아댄다
번쩍대는 간판 아래
30세 이하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음, 맘에 드는군
산전수전까지는 몰라도 생의
그늘은 좀 알아야 한단 말이지
카펫이 깔린 널찍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귀가 보챈다
심장은 저 혼자 끙끙대다 말면 그만이지만
고막이 성내는 건 심각한 일
휴지를 말아서 살짝 귀에 넣고 달랜다
앳된 조성모가 무대 앞자리로 이끈다
강비트 음악과 함께 겹겹 성문이 열리고
철벽을 배경으로 선 무희는 남자가 제격이다
훤칠한 키에 적당히 근육이 붙은 단단한 몸
완벽하다
오른손 올려 왼손 올려 허리를 돌리고
제자리 뛰기
그의 구령에 맞춰 굳은 몸이 열린다
취한 오색 별 아래
물결치는 맨몸이 캭캭
각을 세우고 튕겨질 때 마다 터지는 괴성
덩달아 흠뻑 젖을 무렵 하늘에선
가짜 눈이 내린다
밖엔 폭염주의보가 내리거나 말거나
새로운 성에선 새 시간이 피어난다
키 큰 내 아버지의 등도 따라 넌출넌출,
이슬
공한성
솔잎 끝에 맺힌
너
언제쯤 내 가슴 깊이
들어오려나
코끝에 닿는 솔향 마저 촉촉하다
너 닮은 것
바라만 봐도 이내 젖는다.
간다
공한성
배 떠난 부두에 바람을
방향을 잃고
질퍽한 어시장 노인의
걸음걸이
선술집 흙담 밑 토악질한
분비물이 널려있고 옆을
지나가는 워리는 힐끔 보고
바다 가운데 떠 있는 배
환한 불빛으로 유혹하는
고단한밤
빛바랜 신문지벽에 등 기대고 앉아서
먹다 남은 조개 꺼내어 막소주 한 사발 마시고
어제 밤 꿈에 보았던 고풍스런
벽지 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
손잡고 간다.
꽃봉오리
공한성
꽃봉오리야 꽃을 활짝 피우려고 하지마
벌에 쏘여 피웠거든 유혹하지마
너에 향기 꿀맛에 취해 밤이슬에
꽃잎 젖는지 모르고 행복해서
흐르는 눈물이
열매도 맺기 전에 통곡에 눈물방울 되어
너를 닮은 봉오리 패부 깊숙한 곳에
떨어져 요동칠 때 그 고통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도 훗날 열매 맺고 싶을때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보이지 마라
바람에 맞아 흔들릴 때 바람에 연적까지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 탐스런
열매를 맺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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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성 : 세계미술협 운영이사
문학신문 운영이사
plp. EARIST. UNIVERSITY 운영이사
사주대체의학 연구소 운영
설雪
고운석
하얀 눈 내리는 날
은빛 옷 춤을 춘다
하늘엔 너울너울
고향의 부모님은
차가운 냉기 속에서도
자식 생각 하는 날
환희
고운석
초조한 가슴으로
기다림 밝아오고
아가의 울음소리
귓가에 들려오니
새 생명
큰 기쁨으로
우리네 축복祝福이라
풍년豊年
고운석
파아란 뭉게구름
하늘엔 둥실둥실
탐스런 석류알은
하얀 이 드러내고
뜨거운 햇살 아래 그을린
황색 얼굴 누런 물결
둥근 해 미소 질 때
수숫대 머리 숙여
멋쩍은 웃음으로
세상은 희망 가득
농부들 기쁨의 춤을 추며
풍년가 노래하네
인연因緣
고운석
수줍어 숨겨놓은 그대의 마음 안에
따뜻한 숨소리로 녹여서 열게 하니
세상은 축복 넘치는 사랑의 환희라네
애초에 우리 둘은 하나로 점지됨을
이제야 너와 나는 확인된 사랑의 끈
입김의 따스함으로 하늘의 인연이오
긴긴밤 지새우며 약속한 밀어들은
지금도 활짝 열린 마음에 채워놓은
그대는 사랑의 샘물 한평생 동반자요
등천리
고운석
내 친구 정수네는 산으로 둘러 싸여
고개를 뒤로 하면 능선이 보일 만큼
푸르른 산허리를 보며 하루가 시작된다
언제나 열려있는 대문 밖 개울 속엔
송사리 맑은 물에 노닐며 춤을 출 때
아이는 작은 돌 주워 시새움 부려본다
낯선 이 찾아와도 쉽사리 어울리며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자연과 친해져버린 행복한 마을이네
고운석 : 전북 정읍 生
천안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교육행정 석사)
경원전문대학 사진영상과 졸업
옥조근정 훈장 受勳
시조생활사 제정 신인문학상 수상
한국사진작가협회 촬영지도위원 1기 (3대 회장)
제1급 아마추어무선기사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이사 역임 및 평생회원
지도교수 시
연꽃
망해사
첫눈이 오면
연꽃
문복희
볼수록 그리운 그대
등에 업고 눈물난다
만질수록 외로운 손
호주머니에 품었다가
천년 후
아무도 몰래
뜨겁게 사랑하리
망해사
문복희
바다 향한 절벽 위에
과묵히 앉은 사내
번개에도 깨지지 않을
청솔 밑에 뼈를 묻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
살을 태운 망해사
첫눈이 오면
문복희
첫눈이 오면
비밀의 숲으로 가자
첫 떨림
그 성스러운 눈물의 골짝에서
한 움큼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별이 되자
첫눈이 오면
사랑의 숲으로 가자
첫 남자
그 가슴 저린 은빛의 품속에서
온 몸의 세포를 깨우고
빛으로 성화聖畵되자
얼음꽃 동인 시
김건호
별
단비
피안彼岸
나무
- 아내를 위한 소묘 -
성탄축하
검정고시
경원시창작반
가을바람 소리
별
별을 보며 노래하던 윤동주 시인처럼
하늘의 뭇별들을 노래할 수 있다면
별들의 하얀 속삭임
들을 수 있다면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조국과 별 하나에 어머니를
소담한 이 내 마음에
담을 수만 있다면
이 어둔 세상에서 내 영혼 불태워서
갈 길 몰라 방황하는 뭇 영혼 비춰 주는
작은 별 될 수 있다면
아낌없이 태우리
나의 사랑 나의 아픔 빛으로 승화 되어
무너지고 주저앉아 찢기고 상한 영혼
그들을 곱게 보듬어
세상 환히 비추리
단비
곱게도 내려오는
단비의 밀어密語는
그 옛날 내 아내가
들려주던 속삭임
이 땅에
뿌려진 씨앗
기쁨으로 움트리
피안彼岸
혼자라는 느낌이 내 몸을 엄습할 때
한 마리 새가 되어 끝없이 날고 싶다
어딘지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날고 싶다
정착할 아무데도 찾을 수 없지마는
내 영혼 편히 쉴 곳 그곳이면 좋아라
고독이
나를 휘감는
그곳만 아니라면
내 나이 마흔 아홉 지천명 눈앞인데
이토록 힘든 것은 주님의 선물일까
영원 속
짧은 인생길
험난한 눈물 고개
그리운 피안의 땅 머물 곳 찾건마는
내 지은 죄 너무 커 바랄 수 없는 그곳
하나님
죄로 얼룩진
내 영혼 받으소서
한 순간 순간마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
두려운 몸짓으로 온전히 받아들여
우리 주
예비하신 길
걸어가는 이 죄인
기도를 드리리라 온 몸 저민 기도를
회개와 거듭남의 기도를 드리리라
더 이상
피안의 땅을
동경하지 않도록
나무 - 아내를 위한 소묘 -
나의 곁에 심어진
연초록 고운 잎새
세찬 바람 눈 비속에
온 몸 떨며 울더니
어느덧
연한 가지는
굵은 등걸 되었네
무수한 날들 속에
마른 잎 떨궈 내고
세월의 아픔 딛고
땅속 깊이 뿌리 뻗어
이제는
곤한 내 영혼
등 구부려 받아주네
성탄축하
1. 배상운 선생님께
배움의 자세로 한평생 살아온 삶
그 누가 뭐라 해도 꿋꿋이 지내온 길
올곧은
배 선생님의
그 모습을 사랑합니다
2. 한기수 선생님께
세상의 모진 풍파 온몸으로 이겨내신
일송의 푸른 기상 사무치게 부러워
눈물로
흠모하다가
이 밤도 잠 설칩니다
3. 성보용 교수님께
작은 자의 아픔을 마음 깊은 눈물로써
위로해준 교수님의 깊고 깊은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눈물만 흘립니다
4. 주낙균 선생님께
오늘도 나와 앉은 목계장터 벤치엔
십이월 찬바람에 낙엽만 춤추는데
옹골찬
주 선생님의
삶의 자세 부럽습니다
5. 최양숙 권사님께
그리스도 가신 길 온몸 바쳐 걸어가며
작은 자를 위하여 한 잔의 물 건네는 손
이 땅에
하나님나라
이루려는 깊은 사랑
6. 문복희 권사님께
마음속 가득히 사랑의 눈물 담아
아파하는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소중한
권사님 마음
항상 감사 드립니다
7. 허필란 선생님께
삶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열정
휘날리는 말갈퀴 다부지게 부여잡고
저 거친
광야를 향해
질주하는 필란의 꿈
8. 이도화 선생님께
새로운 날을 향해 도전하고 달려가는
이도화 선생님의 꽃처럼 예쁜 모습
수밀도
꽉 찬 영혼은
이 밤도 세상 밝히네
검정고시
아버지 뒤따라가 일년간 휴학하고
돌아오던 열세 살 2월의 그 어느 날
소년의 마음속 깊이
사무치는 절망감
다음날 그 소년은 강 건너 유리공장에
아줌마들 따라서 돈 벌러 출근했고
그렇게 시작되어진
세상의 모진 풍파
소년의 가슴 속에 한으로 맺혀 있던
지나온 사 반 세기 그 발자국마다에
점점이 아로새겨진
무학無學의 눈물자국
아무리 애써 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공부에의 열정이 끝끝내 식지 않아
마침내 합격통지서
소년나이 서른아홉
이제는 또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가리라 대입자격 검정고시
아버지 영전에 드릴
눈물어린 졸업장
경원시창작반
한아름 들꽃 따다 포장지 곱게 감싸
사랑하는 당신께 정성 다해 드립니다
지나온 하많은 세월
고이 담은 이 선물
배꽃 밟고 지나간 초여름의 반달은
아직도 내 가슴에 애잔하게 서리는데
고르게 숨을 내쉬며
깊은 잠 자는 당신
성근 별 그러모아 반짝이는 이 선물을
고운 꿈 날개치는 당신께 드리오니
지난 날 모든 아픔은
이제 고이 접으소서
최면에 걸린듯이 숨가쁘게 살아온 날
한 시도 맘 편히 누울 수 없던 시절
이제는 평안과 사랑
넘쳐나는 이 가정
분홍빛 고운 입술 날 위해 바치던 날
입술보다 더 붉게 빛나던 첫 순결
그 날이 어제 같건만
하마 흐른 수십 년
문소리 나기만을 기다리던 당신이
날 위해 차린 밥상 호텔식 먹었다고
내 어찌 마다하리요
사랑하는 아내여
이 빠진 동그라미 제 짝 찾아 헤매듯
오직 한 길 달려온 삶 후회는 없으리니
오롯이 함께한 당신
감사하는 이 마음
김치조각 무짠지에 식은 밥을 먹더라도
사랑하는 당신과 마주 앉은 이 순간
원앙은 행복에 겨워
새 희망을 먹는다
허공에 날리고픈 달려온 지난 날
남겨진 그 흔적은 나의 땀 나의 눈물
이제는 무심함으로
한 세상 살아가리
김 서려 올라오는 당신의 굵은 이마
송글송글 솟아나는 당신의 땀방울은
새 날을 향한 길목의
징검다리 일지니
이토록 내 마음에 새론 희망 돋아나니
서툰 몸짓 뜨겁게 고운 당신 보듬어
우리들 새날을 향해
비상하는 날갯짓
가을바람 소리
사뿐하게 내려앉는
갈색 고운 잎새에
간지르듯 속삭이는
십일월의 숨소리
따사론
어느 봄날에
다시 부를 희망가
김진희
갈등
눈밟기
가을앓이
향단이 曰
저녁하늘
송편만들기
갈등
북풍은 느티나무 잔가지 흔들고
싸늘한 서릿발 가슴을 얼린다
밤 새워
퉁퉁 부은 눈
거울 속엔 빨간 코
일출을 보려하면 노을이 펼쳐있고
발길을 되돌리면 아침해가 손짓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오
코트깃을 당기니
눈밟기
밤새
민들레 꽃씨
사락사락 내리면
눈싸움 길
토끼 걸음
뽀복 뽀복 뽀보복
학원 길
거북이 걸음
뽀드득 뽀드득
가을앓이
찬 서리에 단풍잎
저녁노을 물들인다
춤추던 은행잎
비틀비틀 쓰러지면
외로움
깊은 병보다
서글픈 독거노인
향단이 曰
한 때 쇤네는 아씨가 부러웠죠
광한루에 서방님과 꽃향기 흩뿌리며
오작교
건너가실 때
분홍치마 눈부셨죠
한양가신 서방님은 기억이나 할까요
변 사또 쏘아보다니 칠 척 칼에 옥살이죠
당장에
옥비녀 내던지고
거문고나 뜯자구요
저녁 하늘
눈썹 달 개나리랑 도란도란 속삭이면
샛노란 꾀꼬리 노래도 잠이 든다
초저녁
하늘가지 끝엔
북두칠성 반짝이고
하나 둘 헤어졌던 잿빛 구름 몰려오면
보고 싶던 견우직녀 버선발로 달려간다
오작교 다리 아래선
은하수도 훌쩍이고
부끄러워 빨개진 저녁노을 도망가면
밤하늘은 남색 바다 물고기는 수정이다
송편만들기
머리머리 맞대고 반달을 빚어보자
쑥 송편 주물주물 깨 송편 조물조물
톡하고
터져버렸네
눈치 보며 하하하
손에손에 팥고물 둥근 소망 접어 빚자
분홍 초록 알록달록 하양 노랑 우쭐우쭐
오미자
핑크빛 얼굴
부끄러워 호호호
배상운
친구
추석
나이테
오누이
달성공원
겨울잔치
겨울풍경
변사또의 변
친구
가까이 있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
공허하지 않고
자주 보지 않아도
그 생각만으로
외롭지 않고
요란하지 않아도
그 웃음만으로
즐거움 한없다
추석
여덟 번째 조각달에 부산한 황금들판
살랑대는 오곡과 농염해진 백과는
한가위
차례상 위에
초대받기 위함이다.
송편모양 반달에 바빠지는 사람들
벌초하는 남정네 잔치 준비 여인들
한 뿌리
조상님들을
공경하기 위함이다.
십오야 보름달이 쪽빛 하늘 가득할 때
아낙네 정겨운 수다 아이들 재잘거림
한 줄기
자손이라고
자랑하기 위함이다.
나이테
남풍이 잠든 나를 살며시 깨우고
보슬비 촉촉하게 거친 몸 적실 때
보리밭 노고지리들 새 옷을 채근한다.
쓰르라미 매미들 품속에서 노래하고
김매는 농부들이 새참 먹고 한숨 쉴 때
한줄기 세찬 소낙비 푸른 옷 씻어준다.
그림자 길어지고 소슬바람 불어오면
색동옷 나불대며 건방지게 뽐내는데
찬 서리 모진 등쌀에 속절없이 벗겨진다.
천년 꿈 땅속 깊이 들킬세라 감추고
나이테 다시 새길 빈자리 기다리며
벗은 옷 고이 덮어서 긴긴밤 잠재운다.
오누이
과수원 눈꽃 피는 고즈넉한 섣달 밤
화로에 단밤 익는 따스한 아랫목
할머니
옛날이야기
울고 웃는 오누이
강가에 가지 말란 엄마 말 흘려 듣고
긴 고드름 피하며 방천 둑 미끄러져
보리밭
새하얀 들판
내 달리는 오누이
달성공원
저만치 시비詩碑가 보이는
회화나무 가랑잎 어질러진 나무의자
다소곳이 앉은 그녀의
슬픈 눈동자
어두움 깔리는 달성공원
노란 잔디 스치는 서러운 바람
아픈 이별
긴 세월 쌓인 정
감춘 눈물 하염없이 치마폭에 떨어진다
애잔한 풀벌레 소리
가슴 시리는
시월의 마지막 날
떠나간 마돈나 사무치는 그리움
겨울잔치
서북풍 몸을 실어
찾아온 철새
무리되어 춤추는
갯벌의 주인
떼지어 날개치는
들판의 손님
대자연 무대 위의
현란한 잔치
미루나무 까치들
황홀한 탄성
겨울풍경
눈비 오가는 찌푸린 보도 위
흩뿌려진 낙엽 질척거리고
탄천 건너 달려드는 된바람에
한산한 거리는 추위에 떨고 있다
앙상한 나뭇가지의 질긴 잎새는
한사코 매달려 서럽게 울고 있는데
감춘 모습 드러낸 까치집의 주인은
문틈으로 철없이 구경만 하고 있다
갈 곳 없는 낙엽이 부딪쳐 맴돌고
집 없는 고양이 눈치 보며 어슬렁거리는
고추바람 지나가는 아파트 골목길
짙은 어두움이 빠르게 다가온다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 빛무리는
먼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야할
한 장 남은 달력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변사또의 변
이도령 두고 떠난 절세가인 춘향이
한 마리 홍학 되어 물위에 내려 걷듯
동헌 뜰 내딛는 걸음 숨 막히는 고운자태
독수공방 헛된 수절 가련한 춘향아
젊은 몸 시들음이 한량없이 안쓰러워
살갑게 운우의 정으로 보듬코져 하는데
앙칼진 수청 거절 무엄하기 짝이 없다
신관사또 삼일 째 지엄한 영 거절한 죄
남원 골 다스리기에 피치 못할 일벌백계
구슬픈 옥중가 바람 되어 사무치고
들려오는 십장가 내 마음 처량하다
생일날 한 잔 이별주 한없이 두렵구나
성보용
고백 1
함박눈
이도령夢龍과 술 한 잔
고백 1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때 그 곳이
지금 여기인 것을
함박눈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우주에 머무는 시간이다
어제와 내일이 여기에서
소년 되어 만나는 향연이다
문명이 태고太古에서 정지되고
영원永遠이 송이송이 담겨 내린다
무한無限이 소복소복 여기에 쌓인다
내리는 시간에 가슴 벅차고
쌓이는 공간에 입맞춤한다
고향이면서 고향이 아직은 아니기에
그 선물이 떠나려 채비할 때
나는 다시 빗자루를 든다
새롭게 태어난 순수의 약동으로
이도령夢龍과 술 한 잔
약관弱冠에 암행어사 이제 막 시작인 것을
눈 덮인 징검다리 두들겨 건너가고
낮에는 힘써 일하고 저녁에는 걱정할지니
사랑에 시험이라 달려가야 할 것을
누군들 춘향 보고 달 보듯 하겠는가
춘향이 작은 가슴 연꽃으로 피워라
그대와 한 잔 술에 건곤乾坤담겨진 것을
한 잔에 청산 담고 또 한 잔 달빛 담아
땀 젖은 저잣거리 이 또한 풍류라네
건곤괘乾坤卦 머물다가 태어난 몸인 것을
한 소객騷客 인정 있어 한 잔 한 수 얻음에
둔탁한 이 마음 깨워 한 소절 적어 보노라
이도화
달빛
메밀꽃
겨울풍경
향단이의 짝사랑
10월 마지막 날
달빛
담장을 오르고
지붕을 오른다.
어두운 밤
오르고 올라도 기어가는 낮은 곳.
절구통에
양철통에
달뜨고
달 뜬 밤
지푸라기 요 펴고
구름이불 잠이 깊다.
달빛 담은 하얀 꽃
마디마디
동그란 박 조롱조롱.
메밀꽃
별이 마을을 내려다본다.
슬금슬금 마을에 내려앉은 은하수
바람이 흔들어주는 그네 타고
하르르 하르르 웃고 있었다.
밭뙈기에 갇혀 있는 별들
따뜻한 쌀밥덩이 되어
하늘에서 눈처럼 쏟아져 내리게
마구 흩트려
먹어도 허기지는 배고픈 사람들
밥솥 넘치도록
모두 다 받아먹을 수 있게
하늘로 쏘아 올리고 싶다.
겨울 풍경
장광에 동치미 익어가는 저녁
풀 먹인 이불 홑청 들추는 소리
늦은 밤 언니의 편지 쓰는 소리
세상을 덮는 소리 없는 겨울소리
사르락 사르락
밤새 내린 눈에
무 묻은 구덩이
하얀 섬 되고
인적 없는 무인도 된다.
찌그러진 개밥그릇에
소복소복 쌓인 눈
반짝이는 햇살에
흰 쌀밥처럼 윤기 흐른다.
찌꺼기조차 배불리 먹지 못함이 안쓰러워
밤새 담아준 고봉쌀밥
과분하여 먹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눈 온 날 아침.
향단이의 짝사랑
달뜬 밤
몰래 몰래 숨죽인 울음
창호지를 뚫고 문지방 넘어
마당을 지나 담장 너머
감나무 흔들어 감 떨군다.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향단이 숯 검댕이 가슴엔
화석 되어 찍힌다.
상전이 아니라면
언감생심 꿈이라도 꾸련만
아프고 또 아픈 맘 부둥켜안고
달뜬 밤
달만 품는다.
10월 마지막 날
아무 생각 없이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주행
버스표를 끊고
26번 좌석에 앉아
어둑해지는 차창 밖을 바라본다.
버스 창밖으로 눈발 같이
달려가는 낙엽들
한때 봄이건 가을이건
이유 없이
밤기차를 타고 버스를 탔던
시간의 흔적들, 그림자들
흘러가는 것들 견딜 수 없어
아프다 징징대는 아이 두고
내가 더 아프다
내가 더 아프다
무작정 버스를 탔다.
어둠이 온 세상에 내리고
비가 내린다.
가을은 어느 계절의 종점인가
내일은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버스에서 내릴 것이다.
이종현
만추
도시의 나비
질경이의 노래
소라껍질 이야기
제비꽃 누이
자갈밭을 걸으며
새벽 성수대교에서
만추
늦가을 갈색나절
숲 속을 걷노라면
낙엽은 융단처럼
아득히 펼쳐지고
꿈꾸듯
내딛는 발길
구름 위를 걷는다.
가지를 놓아버린
만취된 단풍잎
약속처럼 계절을
저만큼 멀어지고
소슬한
바람 끝으로
서걱이는 억새무리.
도시의 나비
하늘은 폭풍우로 빌딩을 내리치고
무심한 누런 물은 잠수교도 삼켰다
남산의
아득한 불빛만
서울의 성을 지킨다
퀭한 노동자가 지하철에 몸을 싣다
빈 가슴 파고드는 광선 같은 자유 한 줌
창밖엔
도시 야경이
저 홀로 어지럽다
터보엔진 상자는 도시를 빠져가고
아홉 개 역을지나 정해진 종착역에
친구야
넌 도시의 나비
날개 한쪽 잃었구나.
질경이의 노래
잡풀이 우거진 곳 좁다란 농로 길을
함성이 휩쓸 듯이 세월에 짓밟힌 땅
그곳에
모진 생명이
뿌리를 내리더니
바퀴에 짓눌리고 벌레마저 외면했지
억세게도 자랐구나 흉터만 새겨놓고
그 무슨
뜻이 있길래
찾아온 나비 한 마리
무서리가 내린다 줄기만 홀로남아
탯줄 끝 어린 생명은 저 달 속에 숨겼는가
또 한 해
휑한 가슴을
새봄까지 앓아보자.
소라껍질 이야기
여객선도 돌아서던 낯설은 부둣가에
소금 절은 손끝마디 아낙의 그렁한 눈빛
전복을
가르는 칼끝에
깊은 한숨 보탠다.
몸 부딪는 파도에 울대 앓는 바다 새
해미 먹고 자라난 방파제 뒤 동백도
어촌의
외로움인가
어느덧 사위는데.
저 멀리 작은 그 섬 사진첩에 숨어들고
장맛비 지난 뒤 무너진 모래성에
지금도
귓전을 도는 듯
소라껍질 이야기.
제비꽃 누이
한가한 뒤뜰에 흙먼지 날아오고
부서지는 담장에 첫 바람 스칠 때
어제 밤
넝쿨광대들
몽롱한 꿈을 꾸었다
때묻은 당목치마 포근한 누이무릎
불러주던 자장가에 살포시 잠이 들어
코끝은
젖내음 속에
엄마품만 같았다
대나무밭 마른 잎 물방울이 흐르고
보라색 입술이 땅바닥을 물들일 때
해맑은
꽃잎 얼굴은
찬 서리에 메말라 갔다
어스름이 짙은 밤 달빛을 따라
먼 들판 가르는 열차 소리 들려올 때
끝내는
가을의 땅에
꽃물로 물들였다.
자갈밭을 걸으며
창밖의 빗소리에 가슴은 젖어들고
둥지 잃은 작은 새 날아드는 뒤뜰에
가지를
흔드는 바람
선잠을 깨운다.
먹구름 드리운 채 세월은 흐르고
빽빽이 살아나는 어지러운 그림자
지나온
발자국마다
눈물이 고인다.
넘어가는 석양에 개울물도 싸늘하고
자갈밭을 밟으며 그 얼굴 그리지만
희미한
기억들마저
강물에 잦아든다.
새벽 성수대교에서
안개비 소리 없이 내리는 새벽 강가
바람도 오다말고 울면서 돌아서는
터 울진 풀포기 길을 나 홀로 걷고 있다
모두들 숨죽이고 잠이 든 이 시간에
강물도 밤하늘도 묵상 속에 고요한데
이따금 자동차 바퀴에 물소리만 질퍽인다
그 많던 사연들은 오염으로 멍들었나
세파에 도진 상처 강물에 식히는 밤
강 너머 헝클어진 불빛 내 가슴을 휘젓는다
저 별 속에 잠들었던 조각난 내 영혼
신선한 아침 기운은 기지개를 켜는데
육신은 라면 상자처럼 바람 속에 뒹군다
최양숙
월매사랑
추석전야
월동준비
별이야기
겨울풍경
월매 사랑
에미의 숨은 사랑
사실은 하나였다
방긋이 웃는 얼굴
보석처럼 빛이 나고
천지간
어느 꽃인들
비길 수가 있을까
사랑가 운우의 정
노래하던 원앙 한 쌍
십장가 마디마디
피 토하는 절규되니
이몽룡
향한 사랑은
열녀문에 비길까
양반집 규수됨이
무에 그리 대단타고
한 맺힌 치맛바람
가슴 치는 춘향모는
겨울비
질척댄 길을
꺼이꺼이 헤맨다
추석전야
달빛
교교히 흐르는 늦은 밤
텅 빈 신작로엔 인적이 없다
색동저고리 동정 손에 들고
뛰어가는 어린아이
높이 뜬 달 속으로
빨려들듯 어지럽다
초저녁 왔던 둥근달은 어디가고
시린 달 쫓아와 겁을 준다
그림자 짙게 드리우니
작은 심장 점점 오그라든다
이 골목 저 골목
송편 냄새 기름 냄새 가득하고
방안에 모여든 낯선 목소리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개들도 짖어댄다
눈 질끈 감고 달음박질치는데
저만치 앞장서 가는 하얀 달은
담장 넘어 방안으로 들지 못하고
마당에서 서성이는 이방인 된다
월동 준비
내 마음의 월동 준비를 하고 싶다.
내 어머니 겨울 채비는
하얗게 속살 내비친 배춧잎
멍석 깔린 시골집 마당에
동네 아낙들 웃음소리
양념되어 버무려지는 김장이었고
아슬 아슬 쌓아올린 연탄이었다
멍석인양
마루에 신문지 펼쳐 놓고
동치미 총각김치 가지가지 김치들로
겨울 채비 해 보건만
베란다 장독대
마음 담은 항아리는
빈 바람으로 운다
떠 올리는 이름만으로
영혼이 환해지는
봄날 닮은 친구
시가 되어 피어나면
내 마음은
벽난로 불꽃이 된다
별이야기
먼지 낀 하늘 이고 사는 난
어릴 적 즐겨 찾던 별자리를 잊었다
넓은 평수 서울 하늘엔 별이 살지 않는다
맑은 영혼들 모여 사는 곳
그곳
별들이 수정빛 맑은 소리로
부딪치며 얘기한다
쨍그렁~ 쨍그렁~
어느 바닷가 선착장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은 넓고 넓은 별밭
낮엔 농사짓고 밤엔 별밭지기
워~ 워~
새벽기도 나서는 길
태풍이 옮겨 심은 별들의 합창
서울 나들이에 흥겨워
까르르~ 까르르~
겨울풍경
1월 하늘 조각들이
눈으로 내린다
깊은 숲 겨울풍경
침묵 속에 빠져들고
세상 밖
날고픈 산새
발자국만 외롭다.
한기수
밤꽃
텃밭
인생
행운목
두릅나무
홍시나무
싸리골의 태동
소 팔러가던 날
강아지의 가죽신발
밤꽃
늘어진 여름날에 밤나무 개꼬리 꽃이
그 향기 시린 멀미 서러움 가슴 안고
청상靑孀댁
뒤척이면서 지새우는 하얀 밤
산마다 밤나무 꽃 번져오는 새털구름
꿀벌은 하루 종일 꽃술에 입 맞추고
뻐꾸기
우는 소리에
환생하는 고운님
말매미 쓰르라미 다녀간 산언덕에
가을은 주렁주렁 하늘에 매달리고
청상댁
행주치마엔
잉태되는 밤송이
텃밭
화사한 아침햇살
텃밭에 내리는 봄
아버지 갈퀴질로
마늘밭 걷어 내니
서리 속
연록의 이파리
아침마다 새롭다
아버지 굽은 등은
갈퀴를 닮으셨나
수족이 성했으면
무엇을 걱정하랴
왜바람
*옹춘마니런가
흘러간 그 세월이
*옹춘마니..꼬부라지고 오그라 들어 볼품없는
인생
칡넝쿨 가시넝쿨 헤치며 살아온 생
아득한 그 옛날이 꿈같은 인생인 걸
잡힐 듯
보이지 않는
걸음마다 시리다
폭풍우 이는 날도 눈보라 비탈길도
지나간 그 옛날이 끈질긴 인생인 걸
저마다
빛光 지고 가다
흙이 되는 사연을
행운목
유성기 바늘처럼
흰 뿌리 내린 동강
이십년 지난세월
시련도 많았지만
보란 듯
이렇게 한 길
몰라보게 자랐구나.
경매가 붙을 때도
거실을 지켜왔고
이사를 다닐 때도
운명을 같이한 너는
꽃대를
확 밀고 나와
금의환향하였구나.
두릅나무
큰 주먹 들고 나와
위엄만 보이더니
해마다 겪는 시련
올해도 마찬가지
어쩌면
눈길 한 번도
안간 곳이 없구나
홍시나무
청계천 나무시장 눈 못 뜬 어린 묘목
감나무란 이름표 아직은 어설프지만
먼 훗날
감 꽃이 피면
담장안이 환하리.
비바람 몰아칠 때 하르르 날린 감꽃
수상한 시련 견뎌 홍등을 달았구나
가을이
저문다 해도
혼절昏絶하지 말거라.
싸리골의 태동
싸리골의 아침이슬이 옹골차다
태양이 뜨면 증발하고 말 이슬이지만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반 세기만에 보는 눈들이
이슬처럼 영롱하다
하늘에 비밀이 선포되던 날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지고 뭉개져서
주룩주룩 녹아내리는
가슴마다 이슬이 되어
태양을 잉태하는 어둠이었으리
불타는 싸리골에 역사가 그려지던 날
요람에서 하늘까지
구구 절절 부끄러움 뿐
나는 내가 아니란 걸 안다
그날 밤
호두나무 우듬지 사이로 별을 보았다.
소 팔러가던 날
장날 아침
이른 새벽부터 콩도 많이 넣어 쇠죽을 쒀
배가 빵그레 지도록 먹이더니
털을 반질반질하게 쓰다듬고
굴레도 새로 짜 한 인물 나게 하고
장으로 끌고 가시는 아버지
백암 장 쇠전에는 들어서기도 전에
중개인이 고삐를 빼앗아 끌고
어떤 놈이 먹였는지 소 참 좋다.
소 방둥이를 사정없이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쇠전거리로 몰고 간다
얼마면 돼.
석 장 반.
흥정이 한창인데
소가 꽁지를 치켜들고 설사를 시작한다
아침에 먹인 것들 다 쏟아낸다
아버지, 영락없이 물먹은 얼굴이다
강아지의 가죽신발
추석빔으로 사주신 까막 고무신을
신어본 적 있다
고무신이 닳을까봐 신을 들고 다닌 적 있다
나물죽도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행복만은 가난하지 않았지
아버지의 신발은 늘 짚신이었고
감자가 나오는 그런 신발이었다
밤이면 등잔불 아래서 지푸라기 춤을 추고
아침 봉당엔 간밤에 만들어진
새 짚신이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기다렸다
구두 한번 못 신어 보신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유명메이커 구두 한 켤레 사서
하늘나라 택배로 띄울거나
손자가 가죽구두를 신고 걸음마를 배우고
강아지도 가죽신을 신고 대청을 뛴다.
허필란
겨울햇살
여차해변
그대 안의 별
12월의 단풍
시월의 마지막 밤
겨울햇살
온통 까맣기만 하던 바깥세상
달리는 서울지하철2호선 차창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겨울 햇살
비단 같은 햇살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고이고이 펼쳐 모아 고운 포장을 해 봅니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그대에게
포장된 햇살을
이른 연말선물로 배달시킬까 합니다.
그대여,
내 선물 받으시면 다림질하여
이 겨울 내내 날 품듯 가슴에 품고
따뜻한 겨울 보내 주소서.
여차해변
아름다운 거제
겨울햇빛이 동백잎에 부서지다 튀어나와
바닷물에 띄워진 여차해변
은가루 금가루 가득 뿌린 여차의 바닷물에는
무슨 축제가 준비 중인가.
찬 바닷바람도 무색해서 기氣를 잃고 마는
반짝이는 동백잎 사이에 피를 토하는
동백꽃의 유혹
축제를 기다리는 여인의 설레임으로
동백의 유혹은 즐비하다 바람의 언덕까지
여차해변에서 바라다 보이는 이름모를 숱한 섬들
서로에게 할 말이 많은 듯 마주보고 웃으며
겨울 찬바람 맞으며 일몰의 황혼 속에서
축제 준비에 분주하다.
여차하면 놓칠 것 같은
일몰의 숨죽이는 아름다움.
뉘라서 그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뉘라서 그 눈부심에 사랑을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대 안의 별
무심히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네.
나 아닌 이를 나처럼 대하는
그대 안의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네.
세월의 무심함을 까맣게 잊었네.
초롱한 눈빛의 수정에서 나와
사파이어. 루비의 화려함도 갖추었지.
세월이 길다 탓하지 않고
불타는 청춘 고이 불살랐네.
이젠 진주의 우아함으로
그대 안의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네.
눈먼 그대가 몰라준다 해도
온몸으로 빛 발하는 그대안의 별이 되어
아쉬운 시간들이 몸부림치지 않게
고이고이 잠재우는
그대 안의 별이 되고 싶었네.
12월의 단풍
넌
세월의 흐름을 잊었더냐.
비껴간 시간들이
우두커니 제자리걸음하며
너와 동행하고 있거늘.
선홍빛 너의 자태는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너만의 시간을 머금고
어제 모습 그대로 오늘도
이 싸늘한 가슴을 데워주는
은은한 온기의 화롯불 같은
12월에
더욱 아름답구나.
시월의 마지막 밤
가을이 떠나는 소리
사각사각 밤 서리 내리듯
무반주의 오페라로 들려온다.
아쉬움이 애처로운 자태로
가을 손끝을 부여잡고
기어이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은
못 다한 사랑의 아련함이려니
거둘 것 없이 바빠지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속절없이 굴러가는 낙엽에 묻어 보내고
나는 또 새로운 날을 마중 갈 수밖에
얼음꽃 열번째 시집
애채
2010년 2월 20일 발행
지은이 ‧ 얼음꽃 시창작회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산 65
경원대학교 평생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