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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초등학교 총동창회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세상이야기(영상컬럼) 스크랩 그 길 위로 추억이 드러누워 있다(두문.영오.영현.봉발.송계.대흥초등학교)
기산들 추천 0 조회 100 09.01.14 10: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 길엔 추억이 드러 눕고 있었다.
[글.사진 / 기산들 ]
2009. 1. 10.

 

   래전 부터 생각했던 그 길을 오늘에사 떠나 보기로 했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추억의 본질을 일깨워줄 것 같은 이 길.

   흙먼지 나던 신작로,

   그리고 줄지어 서 있던 미류나무(버드나무)

   예전 그 길은 사라졌지만 이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있음을 길을 나서면 다 알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벼릇끝 영현중 가던 시오리 그 길 말입니다.

  오늘 필자는 이 길을 따라 가면서 그 곳(벼릇끝)을 향했던 초등(국민)학교와 추억만 오롯이 남아 있을 여러분들의

  고향마을도 발길 닿는대로 가 볼 예정 입니다. (아직 다 가지 못한 마을도 있어 그곳들은 또 시간내어 다녀올 것 이다.)   

   

은퇴한 영현중 교정 전경 (2009년 겨울)

    오늘 내 길의 시작점은 우리집 일곱남매가 인생의 시작점이었던 두문초등학교다.

   격동기였던 1944년 5월 27일 설립되어 1948년 9월1일 6년제 공립학교로 인가 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몇번이나 통.폐합

   의 기로에 서 있었다. 최근엔 면내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금곡 초등학교와 통합을 이룰려고 하였으나 교명 문제로 이견

   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교명은 "금곡"으로 학교 교사(校舍)는 필자의 모교인 이곳이 유력해 그나마  그 자취

   는 남을것 같아 위안을 삼아야 하겠지... 

  

     정에 들어서자 두 아름드리도 넘는 우리들 형이 아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심었던 수령 50여년도 더 된 모교의 상징

    이었던 푸라다나스 숲이 얼마전 전기톱에 댕강 잘려져 나가 의아하다.

    오늘(2009. 1. 13.)학교측에 나무들이 잘려 나간 연유를 물었더니 푸라다나스 잎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질이

    인체에 해가 되는 독성이 있어(???) 학교 운영위원회와 학부모와 협의하여 나무를 잘랐단다.

    그렇다면 이렇게 민감한 상황이라면 다른 학교도 모두 푸라다나스 나무는 잘라야 할텐데 그렇치 않은 이유는 뭘까? 

 

    지금의 학교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들이야 이 학교 출신이 아닌자들이 대다수 이고 학부모들 역시 마찬가지로 

    이 나무에 대한 추억과 이 나무들에 담긴 의미를 알겠는가? 

    혹 선.후배님들 중 학교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푸라다나스 나무에서 정말 독성이 분출되어 교육 당국에서 이 나무를 벌목

    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를 댓글로 좀 달아주시면 참고하여 이 부분에 대한 대처를 필자가 할려고 합니다.   

    아무튼 필자는 너무 속상하고 기분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쓸한 마음을 가다듬고 고향강 영천강을 건너 영오 초등학교로 갔습니다.

   지금은 지자체에서 필요하면 교량 건설이 쉽게 이루어 지지만 예전에는 영천강의 교량 건설은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의

   단골 메뉴로 등장해 수년간 약발을 받았던 공약(空約)중 공약 이었습니다.

 

   당시 금곡과 오서(옵실)는 너무 가깝고도 먼 곳 이었습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홍수가 나면 등진 사람들 처럼 얼굴마져 볼수가 없었던 절해고도.

   외로움과 호연,동경과 도전.체념 초조함과 느긋함이 공존했던 지역이였고 진양군과 고성군이라는 지역 이기주의 또한 

   팽배해 유일한 이 지역의 배움터였던 "영진고등학교"마져 폐교된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을 합니다.

 

   영진고등학교 소재가 진주시로 되었다면 아마 더 번창한 학교로 존립 했을거라고...

   뭔 넘의 행정구역이 이미 사라진 예전 하천을 경계로 삼다니 섭천 쇠가 웃고 하품할 일 입니다.

   영오 초등학교는 1929년에 개교하여 1932년에 4년제 1회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98년 영동초교와 통합했다.

   고성군 영오면 영대리 소재로 당시 영현중 영천분교와 영현중으로 진학했다.

   지금은 영천중이 영현중을 흡수 통합하여 영현중은 은퇴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작로를 달려 영현면 침전리로 접어 들었다.

   영현 초등학교.

   방학으로 텅빈 운동장엔 스산한 바람이 불어 땅위에 떨어져 말라 비틀어진 잎들을 뒹굴고 있다.

   1928년 5월 24일 영현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39년 3월 1일 6년제로 인가되고

   1993년 3월 1일 인근 봉발초등학교와 통합 하였다. 

   강 건너 은퇴한 영현중학교 건물이 쓸쓸히 필자의 눈에 다가온다.

     

  릇끝 다리를 건넌다.

  양키집 아줌마로 불리어지던 이쁜 아줌마 진빵집도 세월에 늙어갔다.

  그리고 필자의 동네에서 시집와 찐빵과 떡국장사를 하며 훌륭하게 자식들을 키운 누님도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중후하게 늙어가고 계셨다. 눈에 선하던 면사무소도 새 청사로 단장되었고 파출소며 빨간 우체통이 정겹던 우체국도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수가 없지만 그 터 그 자리에서 그 날을 이야기 한다. 

 

  럽습니다.

  뜨거운것이 왈칵 목젖까지 차오릅니다.

  자유롭게 드나들던 교문에 쇠줄로 된 바리케이드가 설치 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사선을 넘듯 쇠줄을 들어올려 교정에 들어 섭니다.

  죄를 지은듯 교정을 담으려는 필자는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인지 아니면 소설의 주인공이 내?었던 절규인지 " 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귓전을 자꾸만 때립니다.

    

   래 머물수가 없어 둘러 보지도 못하고 다시 쇠사슬을 넘을려다 눈에 들어오는 작은 비(碑)하나를 보았습니다.

   교적비

   영현중학교 터

   1955년 6월 20일 개교하여

   졸업생 4,038명을 배출하고 2008년 3월 1일 폐교되었음

 

 

   릇끝의 상징이자 지킴터에 오랜 세월동안 풍상을 겪어온 느티나무가 이 길에 선 길손을 반깁니다.

    강은 바닥을 드러내고 강둑엔 겨울 바람만 흐느끼며 지나가고 있습니다.

    징검다리가 있었던 그 강은 배움에 대한 열정과 냉정 사이의 균형을 맞추던 강 위의 우리들 길이었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던 한 시대의 궤적, 

    벼릇끝 샛강 영천강은 그래서 우리들 가슴속을 지금도 마르지 않고 흘러 가는지 모릅니다.

  

                                                                             법촌  

  금태산 모롱이를 돌아 나가자 갈림길이 나옵니다.

   우측으론 추계를 해서 상리 부포로 가고 좌로 가면 법촌 과 신촌 그리고 송계 대가 갈천등이 나오더군요.

   벼릇끝 학교생활 3년동안 필자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곳(마을)이 훨씬 많습니다.

   오늘 필자는 그때 한번도 가지않은 그 길에 서 있습니다.

   금태산자락에 남향을 하고 터 잡은 법촌과 신촌은 보기만 해도 참 따뜻하게 보입니다.

   이 길은 방과후 먼지를 마시며 고모(아버지의 이누이)집을 몇차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고모집 누이들이 무척이나 날 좋아하며 따랐지만 필자는 지금 그녀들의 행방을 알수가 없는 무심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 누이도 영현중학교를 나왔는지...

    

                                                    여기는 상법촌인지 이 동네 입구에 고모집이 있었다.

  고향은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이요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내뿜는 분수다.

  고향은 언제나 느긋하게 누워있다.

  사람이 고향을 떠나지 고향이 사람을 떠나지는 않는다.

  하여 등돌려 가다가도 다시 돌아서 보는게 바로 고향이 아닐까?

  신정마을 입구 가난이 죄가 되었던 시절을 대변하듯 무던히도 그리웠던 돌담집이 세월에 졸고 있다.

 

                                                   신정마을(혹 고향이름이 틀려도 댓글 다시고 이해바람)  

   송계로 접어 들었다.

   여기에도 퇴역한 초등학교가 있었다.

   송계초등학교,

   1920년 11월 1일 개교하여 1997년 3월1일 대흥초등학교로 통폐합 되었다는 교적비가 두그루 적송아래 비목처럼 서 있다.

   내 친구들, 그리고 선배님과 후배님들이 고사리 손으로 다듬어 이룬 교정은 인근 소목장의 퇴비사 처럼 널버려진 짚

   부서러기와 쓰레기가 뒹굴어 영욕의 세월들을 말해준다.

   퇴역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닌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퇴역한 송계초등학교 전경

                                                                         대흥초등학교 교정  

 

    그 시절 바다로 보였던 대가저수지 위 대가면 소재지에 대흥초등학교가 있는줄 이 길을 따라가다 알았다.

    살아 있는듯 방학 기간이라도 생동감이 넘쳐나는 교정에 들어서자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일보과 주관한 아름다운 학교에 선정 되었다는 교문앞 표지판이 아니더라도 이 학교는 인근에서는

    보기드문 아름다운 학교임을 필자도 느끼고 간다. 

 

   대흥초등학교를 나와 난생 처음 우회 산길을 올라 외갈천으로 내려왔다.

   천비룡사라는 절이 보였고 산중 저수지를 보았다.

   이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필자의 평생에 한번이라도 이곳을 지나갔을까? 

   역시 길은 새로운 만남을 이어준다.

  

   역한 봉발초등학교,

   1993년 영현초등학교와 통합되기전 까지 전형적인 농촌학교로 발전하여 인재 양성에 힘써온 우리들 이웃 학교였다.

   잡초가 덤불이 되어 교적비 조차 찾을수가 없어 안타깝다.

   내 친구 오틸리아도 달빛 선배님도 그리고 고무골 후배가 아마 이 학교를 다니지 않았을까?

   92년인가 이웃 누이가 이곳으로 발령받아 근무할적에 그 누이의 남편과 찾아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퇴역의 기로에 놓인 학교도 

   이미 퇴역한 학교도 

   그리고 힘겹게 명맥을 유지 할려고 안간힘을 써보는 학교도 

   모두 우리 학교이며 벼릇끝 가족들이 다녔던 평생 잊을수 없는 모교들 입니다.

   우리 기억 합시다.

  영욕의 세월,

  억겹의 시간들을 뚫고 푸른꿈을 일깨워 주었던 우리 삶의 시작점이였던 모교와 어머니 같은 고향을 ...

  시간나는대로 가지못한 추계등과 금곡지역의 고향 마을을 찾아 길을 나서겠습니다.     

        

 고무골인줄 처음 알았다.

 

 금능

 여긴 봉발2구인지

 이곳은 아래 법촌(?)

 

 영현면 소재지

 영동

 영부리

 

 고봉

 

 봉림

 침전1구

 침전2구

 평촌

 신분리

  연화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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