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곡 (穀)-색 (穡)-종선 (種善)-계린 (季疄)-숙 (塾)-]
휘 계린 (季疄) 공무공 (恭武公)
의 맏며느리가
되시며 휘 숙 (塾) 상예공 (相禮公) 의 배위가 되시는 숙인 (淑人)
안동김씨 (安東金氏) 는 통정대부 좌사간
(通政大夫 監察孟廉祖左司諫; 정3품) 김고 (金顧)의 따님이요, 제학 (提學;
종2품) 김익달
(金益達. 혹은 김익위/金益偉)
의 손녀요, 김진
(金縝)의 증손녀요, 동래인 (東萊人) 예조참의(禮曹參議, 정3품) 정절
(鄭節) 의 외손녀 이다.
숙인 김씨 역시 여느 한산이문 며느리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명문가 집안에서 곱게 성장하신 분이였음을 쉽게 알수가 있는데, 우린 일찌기 공무공 배위 정경부인 (貞敬夫人)
청주이씨 (淸州 李氏) 편에서 숙인의 시어머니되시는 분은 태종 이방원의 맏외손녀되신 분이란것을 살펴 보았었다.
숙인 김씨의 조부되시는 제학공 (提學公) 김익달 (1340?~1400?) 은 구 안동김씨의 대파중 하나인 제학공파 (提學公派)
의 파조 (派祖) 가 되는 인물로,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敬順王) 의 10대손이 되는 구 안동김씨 중시조 충렬공 (忠烈公) 김방경(金方慶) 의 현손이
된다. 충렬공 김방경은 삼별초의 난과
왜구를 토평하며 상락군 개국공신 (上洛郡 開國功臣) 에
봉해진 인물이였다. 김익달의 후손 제학공파는 김사렴 (金士廉) 의 안렴사공파 (按廉使公派), 김사형 (金士衡) 의 익원공파 (翼元公派) 와 함께 구 안동김씨의 60~7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2000년 인구조사에서 구 안동김씨가 대략 42만명으로 밝혀진 바 제학공파의 후손숫자만해도 대략 8-10만명에 육박하지 않겠냐하고 대략 추측을
할수가 있겠다. 물론 경주김씨등을 둘러싼 경순왕 하계 족보 허위날조여부가 논란이 되니, 구 안동김씨를 포함한 대성들의 인구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제학공은 1380년(고려 우왕6년) 나이 41세경에 병과(丙科) 5위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정순대부 밀직사좌부대언(正順大夫 密直司左副代言) 을 거쳐 나중 벼슬이 보문각직제학 지공조사사 (寶文閣直提學
知工曹司事) 에 올랐다. 묘는 실전(失傳) 이며 충남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도정사에 설단 (設壇)하여 시제일은 음력 10월 6일로 지키고
있다.
(제학공 김익달의 묘비)
숙인의 친정아버지되는
사간공 (司諫公) 김고(1389~1431)의 자는 경보 (警甫) 였으며, 1404년 (태종4) 사마시 (司馬試) 에 입격하였다. 1408년 (태종8) 에 문과 (文科) 를 거쳐 이후 벼슬이 좌사간 (左司諫) 에 올랐다. 향년은 43세이며, 묘는 경기도 장단군 소남면 도리촌 우봉계(長湍郡 小南面 桃李村 牛峰界)에 있었는데,
가정-목은 부자의 사부가 되는 익재 (益齊) 이제현 (李齊賢)
묘 아래 (휴전선 북방) 위치해 있었다;
김고의 묘소가 익재 선생묘소 아래 위치해 있었던 이유는 김고의 외조부 되는 영해인 (寧海人) 밀직사 (密直司)
박동생 (朴東生) 이 익재 이제현 선생의 사위였기
때문에 연유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선대의 가정-목은선조와 익재선생의
인연이 나중 한산이문-안동김씨 후손을 혼인으로 연결해 주었지 않나 미루어 짐작해 알 수 있는 것이다.
김고의
묘 장소가 속칭 수회촌 (水回村) 으로 현 개성시 소남면 약정동 (開城市 小南面 藥井洞) 자좌 (子坐) 인데 6.25전쟁시 엄청난 접전지라서 현 그 묘소 형체라도 남아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한다. 1987년
4월 경남 산청군 생초면 월곡리 (山靑郡 生草面 月谷里) 에 설단하였다. 시제일은 음력 3월 15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이름을 떨치고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된 명장 충무공 (忠武公) 김시민 (金時敏, 1554 ~ 1592) 이 사간공의 7대손이 된다.
사간공 김고의 누이, 즉 숙인김씨의
고모되는 분이 여흥인 (驪興人) 민무회(閔無悔, ?~1416) 의 부인이 되었으니 민무회는 숙인김씨에겐 고모부가 된다. 민무회는 대광보국
민변 (閔忭) 의 손자이자 여흥부원군 (驪興府院君) 민제 (閔霽) 의 아들로서 태종 이방원에겐 처남이
되는 사람이며 세종의 외삼촌이다. 민무회가 바로 태종의 비 원경왕후 (元敬王后) 의 막내 남동생이였고, 민무회의 친형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민무구
(閔無咎), 민무질 (閔無疾), 민무휼 (閔無恤) 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민씨 4형제들은 모조리 싹 다 정치적인 숙청을 당해 싸늘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허무하게 사라지고 마는데, 민무구-민무질 두 형제가 유배와 옥사후에 먼저 1410년에 죽음을 맞는다. 이후 숙인김씨의 고모부 민무회는 1415년 불충한 말을 하였다고 탄핵되어
청주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1416년 형 민무휼과 함께 사약을 받고 죽고 만다. 이때 태종의 외척이 되는 여흥민씨집안은 완전 풍비박산이 되었으니, 4형제의 아버지가 되는 민제는 화병에 1408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자신의 고모집이 태종에 의해 박살되어 초토화되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중 장성하여 태종의 맏외손녀를 시어머니로 모셔야했던 숙인김씨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우리는 휘 연기
(衍基) 판제용감사공 (判濟用監事公) 배위 정부인 (貞夫人) 순흥안씨 (順興 安氏) 편에서 정부인 안씨의 조부되는 안원 (安瑗) 이 태종의 밀명을 받고 외척으로서 횡포를 부리던 민무구-민무회 형제를 탄핵하여 유배시켰다고
익히 알고 있다. 이렇게 역사의
실타래 란 것이 친가-외가-친척-인척-사돈 집안들을 둘러싸고 묘하게 얽혀 꼬여 있는
것이다. 그 실오라기를 하나씩 하나씩
풀며 비밀을 파헤치다 보면 어느땐 우리는 놀랍고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간공 김고의 묘비문)
숙인 김씨의 외조부가 되는 정절 (鄭節)
은 동래정씨 충정공파 (忠貞公派) 12세로 태조때에 시사
(侍史), 지형조 (知刑曹),
좌윤 (左尹), 판종부시사 (判宗簿寺事) 의 벼슬을 거쳐 나중에 태종대에 판예빈시사 (判禮賓寺事), 예조참의(禮曹參議) 에 이르른다. 나중 정절의 후손들은 양주 (楊州), 포천(抱川) 등 경기지역 (京畿地域) 에서 많이 살았고,
그의 6대손되는 정치소 (鄭致韶)의 대(代) 이후에 일부가 경남 (慶南) 양산 (梁山) 에 가 정착 (定着) 하였다고 전한다.
왕실의 외손서 (外孫壻) 되는 집안의 맏며느리 자리는 결코 쉬운 역활이 아니였을 것이다;
안으로는 엄한 시집의 법도와 규율을 따라야 했고 밖으로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정치변동에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숙인은 그 역활을 잘 소화해 낸 것처럼 보여지며, 남편 휘 숙 상예공과 금실이 좋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슬하에 1남5녀를 두셨는데, 첫째며 외아들 되시는 분은 휘 지강 (止堈) 춘천부사
(春川府使) 요, 둘째 1녀는 교하인 (交河人) 노공필
(盧公弼) 에게 출가하였는데, 노공필은 휘
보기 (保基) 부정공 (副正公)
배위 숙부인 (淑夫人) 교하노씨편에서 잠시 언급된 적이 있으니 그는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노사신 (盧思愼) 의 아들로서, 6조판서를 두루 거친 명신이였다. 아마도 숙부인 교하노씨의 친정 아버지 노정산 (盧定山) 과 노공필 집안은 가까운 일가가 아니였겠나 조심스레 추측을 해 본다.
셋째 2녀는 박형원 (朴亨元)
에게 출가, 넷째 3녀는 이영
(李英) 에게 출가, 다섯째
4녀는 고령인 (高靈人) 현감수림
(縣監秀林) 박언손 (朴彦孫)
에게 출가, 여섯째 5녀는 창녕인
(昌寧人) 공조판서 (工曹判書)
성현 (成俔) 에게 출가하였다.
이상 내 멋데로 풀어 본 우리 할머님네 이야기였다.
첫댓글 제가 올리는 할머님 연재물의 출처는 다양한데 그 첫째가 족보 (행장) 며, 그 다음으론 인명백과사전, 왕조실록입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위키피디아, 신문기사들, 개인 블로그 글도 참조를 하나 재검토후에 진실된 사항만들을 포스팅 하려고 노력합니다. 미약한 솜씨로 연재물을 잇자니 혹 선조님들의 행적중 일부가 누락되거나 생략되는 점에선 관계되는 후손들께 사과말씀드립니다. 그럴때엔 댓글을 이용해 내용을 보완-보충 혹은 정정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일가님 너무 큰 일을 하고 계십니다.그 많은 자료를 다 봐가면서 작업을 한다는것은
너무 시간을 많이 써야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존경스럽군요. 고맙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우리 한산이문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쓰시는 여러 어르신들의 수고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수준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이 일을 잘 마칠 수 있기를 바랄뿐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