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선도 수련기
이 수련기는 진기 승단때 제출했던 수련기 입니다.몇가지 빠진점이 많지만 전문적인 수련하는 분들께 도움이 될수 있슴니다.모든것은 자기 각자의 할일이 있슴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 각자 맡은바 일을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지요.그리고 이 수련기의 형태는 행공 수련을 많이 하면 몸이 변화 하는 가운데 기운이 스스로 개통되는 현상을 설명 한 것입니다. 기초적인 축기가 되어서 행공을 통하여 유통 하는것이 국선도의 정통적 수련 방식 이죠.그러나 저의 경우는 축기가 안된 상태에서 행공시간을 많이 투자 하였기에 우연한 기회에 스스로 개통되는 변화를 경험 하였지요.저의경우는 진기단법의 이론을 모르고 수련 하였기에 수련에 좋은 경험을 한것 같슴니다.그리고 삼진이란 용어도 모를 시기였죠.
안녕 하세요 박용길 수사입니다.
정확한 날짜별로 기록해 놓은 것은 없지만 공부를 시작한 동기와 함께 기억을 떠올려서 이 글을 써 보겠습니다.
1991 년에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내에서 대순진리회 다니고 있는 여자분을 맞나 일주일 정도
다니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탈퇴 하였고 그후로 몇 달이상
후유증이 왔었지요. 그때 생각에 인간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구나 하고 느꼈고 몇칠동안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등의 의문을 품고 살아가던 때에 서점에 가서 역사책이나
민의학 책을 본격적으로 탐독 하는 계기가 되었고
우연히 서점에 들려서 단전호흡이란 책을 보게 되었지요.
그 중에 단학선원(단학인) 이란 책을 우연히 구입하였고
몇칠후 단학선원에 문의하여 입도하게 되었지요.
이때에도 국선도를 잘 모를 때 이었지요
그렇게 단학선원을 1992년부터 대략 8개월 이상 다녀 는데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못 다니게 되었지요.
93년 부터는 직장을 다니다가 군에 입대 하였고 96년 제대후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요
97년쯤 과거의 고등학교 다닐때 합기도 스승집을 찿아 뵈었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까지 몇십년동안 무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공부를 연구해 본결과 내공 수련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 하였고 국선도 수련을 다니라고 추천하여
주었지요.
그래서 곧바로 서점에 가서 국선도 1,2,3 권의 책을 구입하여
스스로 글을 탐독 하였고 그중 1권의 내용에
역사의 관한 글이 나왔는데 산해경, 역대신선통감, 전한서
등등의 논 한 것을 볼때 정통적으로 내려온 수련법 이로구나
하고 인식 하였고 그 후에 제 나름데로 도장에 안 다닌 상태에서 행공 수련을 해보니까 몸에 변화가 와서 수련을 2-3주
이상 중단하고 국선도 본원에 찿아가서 처음부터 수련하게
되었고 1998년 5월 11일에 입도하게 되었지요.
처음 중기단법을 우습게 보았는데 막상 2-3개월 지나니까
오히려 중기단법을 더 많이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도장에서는 6 개월 정도면 건곤으로 올라 갔지만 저는 8개월
정도 하였고 하면 할수록 중기단법이 중요 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전편 ,후편 따로따로 하는 것을 한꺼번에 50 동작을 새벽
첫부에 시작 하여 회사 출근 할때까지 연속해서
약 2시간 20분 정도 매일 같이 새벽타임에 주로 하였고
회사에서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면 10시 - 11시가 되어
곧바로 씻고 자고 새벽 4시 30분쯤 일어나
도장에 나갔지요. 매일같이 이런 반복 속에 생활을 하였지요
어느날 회사에 어려움이 곁쳐서 사무직이나 기능직을 몇 명
정리 해야할 형평 이였기에 솔선수범 하여 사직을 하였지요.
저의 경우는 기계 가공직에 근무 하였으며
반도체 장비 등을 만드는 회사여서 어디르 가나 기술이 있어
걱정이 없겠구나 하였고 마침 저는 공부를 깊이하고 싶은 상황 이였고 왠지 홀가분한 기분 이였죠.
그래서 본격 적으로 98년 11월 부터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에 몰두 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부터는 아침에 도장에 가서 2 시간 40분 정도 수련 하다가 집에 와서는 독서 또는 음악감상 하고 난후 오후에는
도장에서 수련하는 시간보다 더 길게 하였는데
선도주 테이프를 처음에는 3분정도 녹음하여 하다가 몇 달 후 부터는 꾸준히 4분 정도 한 동작씩 50 가지를 다 하였으며
대략 집에서 4시간 30분 이상 꾸준히 하였습니다.
중기단법을 하면서 처음 몇주는 지루 하였지만 그렇게
하다보니까 마음이 무심 하여져 갔고 호흡하는 것이
재미있어 졌고 점점더 시간을 많이 투자 하였지요.
1999년 1월 달에 건곤으로 넘어와서는 모 명숙 법사님에게
지도 하시는데로 하였고 건곤단법을 하고 약 2-3주 지나니까
몸이 민감해 지는 동시에 후각 기능이 발달 하였지요.
이 후각 기능이 발달 하니까 온갖 종류의 냄새를 맡게
되었고 특히 병의 생기는 원인도 조금씩 알아 가기 시작 했지요 예를들면)
도시 가스의 연소시 연통에서 방안으로 들어오는 경로의
과정을 몸으로 직접 느낄수 있었고
상대방이 감기 걸렸을때 몸에서 나는 탁기 현상이 엄청나게
심하였고 ,상대방 분이 장부가 안좋을때 나는 냄새도 심하였고 그 외의 지하철 안의 사람들의 냄새, 에어콘 이나 난방기 종류 등의 냄새와 여러 종류의 냄새로 인하여 저의 몸이 먼저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마음도 같이 변화가 오게 되었죠.
이 후각 기능이 발달 하면서 부터는 서울 생활이나
도장에서의 수련이 점점더 힘들어 져서 도저히 서울시내에서
살수가 없어 중소 도시 순천으로 이사가게 되었지요.
99년 3-4월쯤 순천시내 외곽에 있는 가곡동 유신천 근처로
이사가게 되었고 그 즉시 순천도장에 가서 6 개월 회비를
등록하고 순천 도장에서 수련할 계기가 되었죠.
이 순천에서는 주로 아침부터 점심 무렵까지
집에서 6 시간 정도 수련 하였고 오후에서는
순천도장에서 2 타임 연속 수련 하였으며 이렇게
하루에 8시간 이상 연속으로 수련 하였고 한 두달 부터는
기초 호흡을 비롯하여 24시간 호흡을 할려고 노력하였지요.
이렇게 순천에 와서는 다른일을 하지 않았으며
오직 수련에만 매달리게 되었죠.
이때에는 수련하는 자체가 재미 있었고 수련을 게을리 하면
마음이 이상 하였기 때문에 오직 수련에만 매달리게 되었죠.
하루일과는 아침에 6 시전에 일어나 수련하면 12시가 넘게
하였고 언제나 수련끝나고 음악감상을 30분 이상 경청 하였고
도장에 가서 오후 3시 30분쯤부터 수련하면 오후 7시 정도
마치고 집에와서 식사 하고 라디오 듣다가 아니면 독서를 하거나 음악감상을 하였고 이렇게 하루일과의 생활을 하면서
매일 똑같은 생활을 99년 8월 23일 까지 계속 생활 하게 되었죠.
가끔 집위의 산에 아침 새벽에 일주일에 3-4번씩 산에 올라가 곧바로 내려 왔었고 산에서 30분 정도 수련하고 내려 올때도 있었지요.
99년 4 월달에 원기 단법을 올라갔고 이상하게 건곤단법의 시간을 많이 투자 하다가 원기 단법을 하니까 원기 단법이
수월해 져서 한꺼번에 건곤단법을 한동작에 4분씩 하고 원기단법 1번도 연속해서 수련 하였지요.
원기 단법 1번은 좀 수월 했지만 2번 이상 올라 가니까
힘이 좀 부쳤습니다.
그래도 건곤단법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원기단법이 약간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동작 한동작 성의껏 꾸준히 하였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건곤과 원기 1,2번을 함꺼번에 연속으로 수련 하였고 3번을 올라 갈때도 똑같이 연속으로 하였으며 4번부터 올라 갈때는 건곤,원기 2번,3번,4번 으로 연속 하였고 건곤은 99년 8월달 까지도 계속 원기단법과 함께 행공 수련 하였지요.
이렇게 수련만 하는 가운데 나라 안 밖은 사건과 자연에 대한 재앙이 심각 하였고 특히 지진과 태풍등이 심각 하였지요.
이때 생각에는 세계의 환경파괴 로 인하여 지구가 몸살이 났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그해에 심각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죠.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을 2차로 발사 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도 있어 세계가 나라 안 밖으로 시끄러웠지요.
이러는 가운데 수도에만 매달리게 되었고 행공 수련이 힘들때면 지구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도 건전하게 삶을 누렸으면 하는 생각을 새기며
수도 하였으며 수련을 할수록 무심하여 졌고 행공이 힘들면 힘들수록 모든 것을 끌어안고 가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련 하였지요.
그리고 저는 이공부를 처음 시작하기 전부터 이 공부가 바늘구멍 통과 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느껴었기 때문에 처음
중기단법부터 한동작 한동작 성의것 시작 하였고 갑작스런 몸의 변화가 오기전인 1999년 8월 말까지 꾸준히 하였지요.
이러는 가운데 국선도에 나와있는 모든 자료를 구입 하려고 하였고 탐독도 하였지요. 그러나 옛날 수련도서는 잘 안보았고
국선도 관한 자료만 보았죠. 그때 저에게는 청산 선사님의
육성자료인 숨의 원리를 찿아서 란 육성테이프만 갗고 있었고
다른 테이프는 갗고 있지 않았지요.
99년 8월 말쯤 되어서 생활비도 한달정도 남아서 다시
회사를 다닐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때까지 경기가 안풀려서
여기저기 알아 보았지만 쉽지가 않았지요.
저의 경우 군에 가기전에 도배와 전기공사 등을 했었고
사회의 직장에서는 기계 가공직의 전문직종에 다녔고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순천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순천의 도시가 학교 위주의 생활 터전이 되었기 때문에
산업화가 다른 도시보다 덜 되었으므로 저와 맞는 것이 없어 지요. 그래서 용역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99년 8월 23일에 용역 일을 하루정도 나갔죠.
그전에 집에서 수련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은 처음 이었고
용역 일도 삽질만 하는거라 좀 힘들었지만
집짓는 주인이 시골 동네 누님같은 분처럼 열심히 사는분 같이 생각이 들어서 삽질 하는 일을 요령을 안피우고
이것도 공부다 하고 열심히 일만 하였죠.
비록 행공으로 몸을 단련 하였지만
용역 일은 좀달라 한쪽으로 치우친 일은 몸에 무리가 오게 되어 있죠. 그때 일은 땅을 평탄하게 하는 작업을
오전 오후에도 계속 삽질만 하였지요.
결국 집에와 보니까 허리 쪽에 무리가 오게 되었으며
그날 일을 끝나고 제과점에 빵을 사 먹었는데
그 빵집 주인이 덤으로 기름에 튀긴 빵도 같이 주어서
집에서 와서 그 빵을 먹었는데 그 다음날 설변을 하였지요.
이러는 가운데 그 다음날은 용역 일을 못가게 되었지요
이렇게 집에서만 2-3일 이상 방에만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전까지 저는 고구마,당근,감자 등등을 식혜와 섞어서
생으로 믹서기에 갈아먹고 죽염약콩 된장국과 홍화씨,도라지
등등과 함께 화식밥도 조금씩 먹었기 때문에 기름에 튀긴빵은 몸에 잘 안맞은 때였습니다.
약 일주일 이상 계속 설변을 하였고 처음 몇칠은 앉아 있지도 누워 있지도 못할 정도 였습니다.
그때 저는 죽을 병에 걸렸구나 하고 생각 되었지요.
그 다음날 몸을 추스르고 동래 산에 올라 가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지만 한발자국 한 발자국 서서히 올라 갔고 산위에서 약간 쉬었다가 곧바로 내려왔죠.
이렇게 몸이 힘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죠.
그래서 더 이상 그다음날도 산에 가지 않고 도장에도 못가게 되었고 하루종일 집에서만 누워만 있거나 벽에 허리를 기대어 있거나 하였죠. 그리고 설변이 있었기에 이때 누워있는 상태는 평상시 잠자는 자세로 옆으로 누워 있었죠. 지금 생각 해보면 진기 단법의 자세와 비슷 하였죠.
이 옆으로 누워있는 자세에서 있는 동시에 설변을 안할려고
항문을 오므리고 있었고 호흡은 흡지 상태에서 계속 항문을
바라보면서 호흡하였죠.
그전에 저는 행공시간이 끝났을때 좌사법에서 흡지 연습을 길게 하는 연습을 평상시 하였기에 흡지가 30초에서 1분이상 오래 자연스럽게 되어였죠.
이렇게 호흡이 길어졌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도 설변을 안할려고 항문을 오므리고 항문 쪽을 계속 바라 보면서 흡지를 계속 하였고 천천히 미세하게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흡지한 시간이 많아 졌었고 몸 전체가 맥박이 뛸 정도로 고요한 상태에서 항문쪽만 바라 보면서 호흡을 하였죠.
이런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오래 있으니까 (방향은 왼쪽허리가 당바닥에 닿아진 방향인 좌측 방향으로 누워있었지요)
왼쪽 신장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울리면서 출령 하더니 순간 탁구공 만한 것이 위장 밑까지 올려온 순간 곧바로 하단전을
걸쳐 회음 쪽으로 강타 하였고 이때 강타한 순간 배는 아파으나 그뒤 곧바로 배가 시원 하였죠.
이런 변화가 다음날도 오른쪽으로 누워 있는데 오른쪽 신장에서도 똑같이 큰소리가 울리면서 출령 하더니 하단전 을 걸쳐 회음 쪽으로 기운이 강타 하는 현상이 왼쪽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죠.
한번 이러고 나면 아랫배가 시원 하였고 설변 하는것도 어느정도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듯이 누워 있었는데 30-40분 이상 지난
상태에서 흡지를 고요히 오래 길게 하는순간
하단전 중심으로 배가전체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는 순간
기운이 독맥을 타고 머리 앞쪽 인당에서 기운이 눌르면서
귓가에는 윙 윙거리는 소리를 들리니까 하도 이상 하여 목만 들었는데 머리가 뒤로 뜅겨 나듯이 뒤로 밀려 났었고
잠시 머리가 바닥에 기대어진 상태에서 쉬고 있다가
한번더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다시 고요하게 호흡하다가
흡지를 서서히 길게 하니까 똑같은 변화가 일어 났지요.
이런 경험 또한 난생처음 경험해보아서 두 번 이상 반복 하였고 항상 머리는 텅 비어 있을 정도로 잡념이 없었으며
몸 상태도 약간 호전되어 가는 상태 였지요. 그러는 가운데 마음의 눈은 항상 항문쪽 으로만 쳐다 보았지요.
그 후부터는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지요. 평상시 서 있으면 머리가 뒤로 밀려 나가는 현상이 주로 많았었지요
오디오 스피커에서 나오는 자기장 현상이
제 몸에서 느껴졌고 또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바닥에서 용천을 통하여 기운이 올라 오는 것을 느꼈고 일반 콩크리트 바닥이나 흙에서는 기운이 강하게 올라 오는데 도로 아스팔트 위에는 약하게 올라 오는 것을 느낄수 있었고
그리고 수퍼 마트에 가기전에 제일 은행 365 코너의 현금 서비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지하에서 전기 같은 것이 윙윙
거리가 심하였고 기분이 묘 했으며 몸이 전기 시스템 한테
민감한 반응을 보였죠.
이러는 가운데 다시 마트에서 파드득나물 이나 오이 등을
많이 구입하였고 그 몇칠 후에는 오이를 주로 많이 구입하였고 몇칠 지나고서는 복숭아.청사과, 포도, 등등을 같이 구입하서 먹었지요.
그리고 마트에서 음식을 구입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갔고
음식을 먹고 그대로 옆으로 누워 있거나 편안하게 흡지만 게속 하고 있었죠.
이번에도 왼쪽 옆으로 누워 있는데 갑자기 하단전에서 불떵어리 같이도 하고 전기 떵어리(두께는 엄지 보다 굵은선) 같기도 한 것이 인정 사정없이 독맥을 타고 머리 뒤 녹로관 쪽으로 강타 하였고 이때에는 정신이 얼떨떨 할 정도 였으며 계속 누워만 있거나 앉아서 만 있어도 그 얼떨떨한 증상 없어지지 않기에 국선도 준비운동을 하니까 정신이 맑음 해진는 것이 였습니다. 그래서 준비 운동을 끝나고 머리를 빗질을 5분 이상 하였지요. 머리 빗질도 하니까 머리가 엄청 맑아지는 현상이 발견 하였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 날때는 항상 준비운동을 끝나고 머리빗질도 하였지요.
이 기운이 녹로관 까지 인정 사정없이 강타 했을때는
준비운동(기혈순환유통법)과 빗질만 하였고
또 그다음날에도 누워 있는데 불떵어리같은 전기 에너지 떵어리가 하단전에서 녹로관을 걸쳐 백회를 지나 인당 부위까지 기운이 방출 하였고 이때에는 머리가 마치 술먹고
아침에 일어날 때 머리가 아플때처럼 머리가 아파왔지요.
대략 2-3분 동안 머리가 아파 왔으므로 순간
서울에서 모명숙 법사님께서 건곤단법을 올라가기전에 임독 자개 경로를 가르쳐 준 것을 순간 회상하여서 누워 있는 상태에서 앉는 상태로 전환 하였고
이 자세는 가부자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태의
앉은 상태였고 손은 그대로 무릅위에 올려 놓은 상태에서
기운이 인당까지 계속 방출 하는 동시에 머리가 아파왔으므로 그상태에서 그대로 흡지 하면서 인당 부위에서 곧바로 정중앙으로 머리 귀뒤 쪽으로 숨을 흡지 상태에서 쭉쭉 빨아 먹었지요. 호흡도 편안한 상태의 흡지를 하면서 하였지요.
이 때에는 딴 정신이 없었고 오로지 앉은자세에서 손은 무릅위에 자연스럽게 놓았고 숨을 들려 안 마시면 머리가 아파기 때문에 그대로 숨만 인당에서 들여 마셨지요.
이 상태에서 대략 10분 이상 계속 하니까 머리가 아픈 것이
안 아파 졌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왜 이런 현상이 왜 일어 나는지 몰랐지만
이 인당까지 기운을 뚫고 난 부터는 이 현상이 임독이 뚫어지는 과정 이구나 하고 알아 차렸으며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주방에서 음식을 먹고 준비 운동 순으로 하였습니다.
인당부터 트여진 부터는 음식을 고요히 먹었는데 먹는 순간
신장하의 단전자리 가 기운이 강하게 뭉친 동시에 눈에 보이진 않지만 땅위에서 몸을 통하여 올라온 동시에 단전으로 기운이 모여지기 시작 했지요. 동시에 음식의 에너지가
먹는순간 팔다리 몸 전체 이빨 까지도 기운이 뻗어 갔죠.
이때부터는 음식을 먹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소화 흡수가
되었으며 이빨도 아싹 아싹 강하게 씹어 졌으며
이마 인당 부위에서 기운도 동시에 강하게 분출 하였지요.
거울로 내 열굴을 비치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 볼수 없을 정도로 인당의 방출한 기운이 강해서
쳐다볼수 없을 정도였고 거울로 저의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
였죠. 이렇게 주방에서 오이를 비롯한 청사과 ,복숭아, 포도등등을 껍질이나 씨도 안버리고 통체로 먹었지요.
그리고 나중에는 항상 생수(솔잎을 물에 담가 두었던물)을
마직막에 먹었죠.
그때 마음 상태는 이 현상에 일어나는 것에 대한 감사를
마음속으로 하면서 그냥 그 변화에 맡겼을 뿐이였습니다.
음식을 먹을때는 자연이 내게준 선물이다 하고 감사히 먹고
그리 묵묵히 생각하고 아무생각없이 음식을 먹었고
이빨이 거인처럼 아싹아싹 십어진 상황과 여러 변화에
그런변화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런 변화만 해도 인간 상식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현상 이었지만 저는 이 현상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먹고난후 대부분 방 안에서 합장한 상태에서 시계방향으로
5분이상 흡지만 한 상태에서 발끝을 세워서 돌고 난후
사방을 바라보면서 인사를 하였죠.
그 때 마음상태는 내가 자연에 참여하는 고마음과
이 도법을 전수해준 스승님과 저를 이세상에 태어나게해준
부모님과 선조님들과 그리고 현재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합장 하면서 인사를 하고
난후 기혈순환 유통법을 시작 하였죠.
처음에는 먹고 , 준비, 끝나고 누워만 있다가 좌사법으로 하였고 한편으로는 왜 이런 변화가 왜 일어나는가?를 궁금해서
책도 보았지요. 책을 보기 전에는 보통 누워만 있었는데
갑자기 하단전에서 허상같은 해가 독맥을 타고
2-3초 간격으로 몇 번 올라 왔었고 처음에는 등 뒤에나 목 근처에서 사라 질때도 있었고 좀더 시간이 지나니까
또 녹로관을 순간 강타 하였지요. 이때에는 왜 자꾸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궁금하여 책을 보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책을 보는순간 1.2초 간격으로 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 왔었고 제가 그당시 처음 보았던 책들은 천자문, 사자소학. 주역 , 참동계, 음부경, 풍수에관한 책 국선도 1.2.3 권, 삶의길 등등을 보았고 흰구름 청산이거를 이란 책 내용도 보았지요.
이 흰구름 청산 이거를 책 내용은 국선도 1,2,3 권의 내용에
들어 있었고 실제 그림처럼 해보니까 그림의 상황처럼 다른 것 같아서 계속 책을 보게 되었죠. 이 글 의 통기법 내용은 국선도 1,2,3권의 내용에도 있었죠
저한테는 83년도판 국선도 1,2,3권 과 삶의길이 없었기 때문에 순천도장의 선해영 법사보 님께 찿아가 이 두 종류의 책을 빌려 와서 보게 되었지요.
이때 부터는 본격적으로 삶의길이나 83년판 국선도 1,2,3권의 책을 읽게 되었지요.
읽은 순간 마치 청산선사님께서 옆에 있는것처럼
글 내용이 머릿속에 속속 들어오은것이 였습니다
기운이 독맥으로 올라가면 머리가 초고속으로 트여져 왔고
마치 아이큐가 200-300 이상 된 것 같았지요.
이상태에서 글을 읽게 되었지요.
그리고 삶의 길의 내용이 중요 하기 때문에 노트 공책에
중요한 부분을 옮기기 시작 했지요. 이때 상황은 잠이 없어졌지요 대략 일주일 정도 잠이 없었고 하도 이상하여 일부러 잠을 잤지요. 이렇게 몇칠 정도는 잠도 안자고 삶의길 내용을 조금씩 노트에 옮겨 놓았죠. 이런 상황에도 스스로 하단전에 기운이 곽차게 모였으며 기운이 상승할려는 기미가 보이면 그 앉아 있는 상황에서 합장을 하였고 합장한 손과 가부자한 바닥이
동시에 자석같이 붙어진 상태이고 아주 안정적인 상태에서 신장하 쯤에서 손바닥 만한 것이 척추속의 압력이 눌르면서 아주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고 눈을 떠나 감으나 그 빗은 보였죠.
이런 변화 후에도 시간 나는데로 책을 노트에 옮겨 놓았죠.
지금은 삶의 길의 책이 있지만 그때에는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제 노트에 옮겨 놓았죠.
그리고 83년도판 국선도 1,2,3권을 인쇄소에 가서 복사
하였지요. 이때부터는 주로 국선도 에 관한 책만 보게 되었죠.
이렇게 몸이 변화하는 중간에 국선도 책도 보게 되었고
몸이 변화하는 중간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몸에 탁기가
점점더 쌓인 것 같아 준비 운동을 하루에 4번 이상 한적도 있었지요 이 국선도 준비 운동이나 행공을 하게 되면
머리가 엄청 맑아 졌기에 하루에 4번이상 한적도 있었지요.
이 준비 운동도 한호흡에 흡지 상태에서
처음부터 끝가지 하였으며 준비운동중에 팔 다리로 기운이
뻗어 갔으며 발이나 몸이 왜곡이 되어도 스스로 바르게 잡아 졌고 이때 마음 상태는 아무 잡념이 없는 정신이 통일된 상태이고 마치 우주에 동참 하듯이 우주적인 마음에서 준비운동을 하였지요.
몸이 변화 하는 가운데 원기단법을 하다가 건곤단법도 해보고 중기단법을 50동작 한꺼번에 해보고 하였고 특히
처음 불떵어리 같기도 하고 전기 에너지 떵어리 같기도 한
기운이 임독맥을 통과 할때 오장육부가 혼란이 오게되는
상황에서 우연히 원기를 해보다가 그리고 건곤도 해보다가
마지막에 중기단법을 해 보았는데 중기단법을 하고 몇분 지나니까 이 몸의 오장 육부가 마음에 통솔을 받는 현상이
발생 하였고 그때부터 심리와 생체리듬 즉 생리 현상이
순조로워 졌고 더 이상 몸에 탁기가 발생하지도 않았으며
심리와 생리가 아주 조화롭게 되었지요.
즉 몸이 마음의 통솔을 따르는 현상이 발생 하였지요.
이 현상이 일어난후 마음도 한결 가벼웠고 여유도 있었으며
그냥 하단전만 바라본 상태에서 마음만 돌리거나 바라보아도
하단전에 기운이 스스로 모을수 있었지요.
그리고 순천시내를 걸어 가면은 사람들이 모두다 선남선녀
같이 보였고 마음은 청청 했으며 정신과 시야가 맑게 트여졌고 귓가에서는 매미소리 인지 귀뚜라미 소리 인지 아주 부드럽게 들려왔고 기분은 상당히 좋았지요.
그전에는 몇칠동안 배가 고무풍선처럼 24시간 계속
불려 있었고 하루에 한두번 스스로 때가되면
신장하 하단전의 미려쯤에서 빗을 o 란 현상으로 손바닥 만한 것이 척주속 중앙을 중심으로 통체로 상승 하였고
아주 서서히 올라 갔었지요. 대략 20-30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목 근처에서 빗이 사라 졌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도 2-3일 이상 기운이 올라가는 강도는
틀려 졌고 나중에 목 위상 해가 올라 오니까 나와 똑같은 몸이 목위 근처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 순간 분신이 하늘로 올라 갔지만 마치 생생한 꿈을 꾸는 듯 했지요.
그 때 부터는 마음으로 나누는 분심법이 저절로 되었으며
즉 눈을 감으면 제 모습이 그대로 보여졌고 평상시
집 위에 산에 자주 갔던곳에 뛰어놓고 수련도 하였지요.
이 분심법을 공부하기 전에는 항상 큰 해를 한번 독맥으로
상승 시키고 나서 피부호흡이 된상태에서 분신을 뛰우고 수련 하였지요.
국선도 책의 삼합단법 의글을 보고 분신을 처음 뛰우고
숙달하는 방법데로 그대로 따라 하였지요.
국선도 3권의 255p 에 삼합단법 과정같이 분신을 자기높이
띄우는 과정에서는 저의 경우는 머리 위에서 흡지상태에서 지붕 위로 분신을 올리고 호 하면 머리 위까지 오고 다시 머리 위치에서 흡지 하면 50 미터쯤 집위의를 기점으로 곧바로 상승 하였고 다시 호 하면 다시 머리 위까지 왔었고 또다시 흡하면
이번에는 순천시내가 바라볼 정도로 높이 분신을 올리고
이런 방법으로 한반도 위를 비롯한 은하계 까지 갔다오고
머리위에서 토하고 하는 연습을 하였지요.
이런 방법을 해보고 나서 가까운 산에다가 분신을 띄어놓고
수련을 하였지요.
그리고 몸이 완전하게 체질이 바뀌면 국선도 3권의 조리단법
과정중 261p 하단의 글처럼 ---- * 이때는 기(氣)를 낼 수도
안 낼 수도 있으며 자연인이 되는 첫 단계에 발을 디딘
것이다. 선악(善惡 )이 나의 자식이다. * -----이란 글처럼
실체 다시 한번 몸이 바뀌는데 그때는 하단전에서 호흡을 안하면 기가 안모이게 되고 그리고 하단전을 바라보면서
호흡하면은 기가 저절로 모아지는 현상이 되어지지요.
이렇게 기운을 모을수 있고 안 모을수 있는 체질이 되지요.
그 전에는 몇칠동안 하단전이 24시간 불러 있었고
계속 때가되면 하루에 한두번 기운이 올라가고 갑자기
차원높게 공부가 되었다가 다시 본래의 몸으로 왔다가
하는 기운의 폭이 심하게 나타나지요.
이런 현상은 스스로 콘트롤 할수 없는 상황이고
그자체가 몸에서 스스로 진행되는 상황 이였죠
이런과정을 걸치고 몸이 바뀌게 되면 자연인이 될 수있는
첫단계에 발을 디디게 되죠.
그리고 국선도 외공 준비동작을 따라 해 보았는데
첫 번째 동작인 뒤로 젖히는 동작에서는 척주뼈가 물속에
있는 것 같이 부드럽게 우득득 약한 소리를 내면서
고무같이 뒤로 젖히었지요.
척주자체의 뼈가 영롱하게 변한 것을 느낄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국선도를 통한 운기공부가 이 척주를 점점더
위 글처럼 바꾸도록 하는 것이라고 짐작을 할수 있었지요.
그리고 외공준비동작중 2번과 4번동작에서는
그동작을 취하면 단전에서 발의 용천까지 주먹보다 작은 해
빗이 통과 한 것을 체험 하였죠.
그리고 원기단법을 16번에 들어가서도 각각 운기동작에서는
임독 12경,14경.365혈 동작을 돌리면
12경자세에서는 장강 부위에서 각각 빗을 통체로 다리로 내려갔고 다시 올려서 등의 척주를 타고 목 부분 대추혈 부분에서 양손 끝까지 보냈고 이때에도 주먹만한 아주 작은 해를 손으로보내고 다시 목부위로 와서 머리 위로 올렸다가 임맥으로 내렸죠 그리고 14경과 365혈도 똑같이 국선도 책의 방법데로 돌렸지요. 모든 것은 통체로 돌렸지요. 음경이나 양경이니 하는것과는 틀리고 한의학의 혈도와는 전혀 틀리지요.
선이 한가닥 같이 가는것도 아니지요. 이렇게 기운은 통체로 흘러 가는 것을 알수 있었죠.
그리고 계속 해서 유통은 하면 할수록 몸에 에너지 가 발생하는 강도는 높았고 몸과 마음에도 변화가 많이 왔었지요.
주위에 동래를 걸어가도 축진법 같이 걸름 걸이가
왼발 오른발이
짝 짝 짝 당바닥이 자석같이 붙으는 동시에 걸름걸이가 경쾌 하였으며 몸은 가벼우면서 빠르게 걸어갔고 귓 가에서는
주위의 환풍기나 자동차 엔진 소리가 텡크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으며 저 자신도 그런 상황에서 무슨 소리냐? 할 정도로 의하해 하였지만 그래도 정신을 통일된 것을 유지 하면서 걸어 갔지요.
어떤때는 기운이 올라 가는 상황에서 집 옆에 있는 전신주가 팍닥파닥 전기 스파그가 나고 옆집에 자취하는 대학생은 눈알이 돌아간다고 하고 건너 주인집 2-3층에 사시는 전도사 집에는 갓난 아이가 심하게 울어서 기운을 돌릴때 좀 미얀한 느낌도 들었지요.
이상외 여러 가지 몸과 마음에 변화가 있었지만
삶의 길의 328 p 에 무운 도사님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일흔 가지가 있다는 글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저 역시 그런 변화가 일어나면 헛것이다 하고 인식 하면서 수련 하였지요.
특히 원기단법의 심법을 하게 되면서 올라가면 더욱더
몸과 마음의 변화가 많이 왔였죠.
이 원기 단법의 심법은 도가 통한 상태에서 심법을 기준으로
동작과 같이 하고 마치 우주적인 입장에서 심법을 하면서
수련 하였죠.
그래서 지금 생각 해보아도 국선도 도법 즉 법통은 우리가
이미 과거나 현재나 계속 배우고 있고 국선도 행공 (심법) 속에
다 있는 것을 알수 있었죠. 일부 국선도에서 갈라나온 세계국선도 연맹의 허경무 씨가 국선도 법맥은 자기 의 기준으로 몇몇 사람 한테 전수 했다고 하는데 막상 제가 과거의 경험이나
국선도 실체를 바라볼때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수 있었죠.
이미 우리는 배우고 있고 국선도 행공속에 법맥이 다 있고
우리가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했을 뿐이지 수련을 많이
한 만큼 자기 받그릇만큼 체득이 되지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기운이 강하면 강할수록 다른 수련 장소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순천 외각에 사시고 황토 옷을 만들고 침술도 하시는 분을 찿아 갔지요.
그집에서 저의 수련이야기를 조금 해주니까 지리산 남부 쪽
자기가 아는분의 집이 비워 있다는 말을 했고 확실하게
그집의 상황을 보고 우리 집으로 다시 연락 해준다고 하였고
그 집에서 밥을 처음으로 먹고 오니까 저녁 8시 반이 되서야
올수 있었죠. 이날 처음으로 축기를 안하게 되에 기운 돌리는 것을 하루 못하게 되었죠.
그때도 알았지만 항문을 자연스럽게 풀면 기가 더 이상 단전에 스스로 모이지 않게되죠.
이렇게 몇칠을 기다리는 동안에 연락이 오지 않아서 기다린 것을 포기 하였죠.그동안에는 기운을 안모으고 운기도 안하는 상황 이였죠. 이유는 지리산에 몇칠후가면 이어서 공부한다는 생각에 있었기 때문이였죠. 그래서 연락이 오는 것을 포기 하고
제가 직접 지리산 남부 쪽으로 한두번 둘려 보았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또 대부분 이상한 방향으로 공부 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여 지리산 쪽에서 수련 하는 것을
포기 하였죠.
그리고 갑작 스럽게 방이 나가게 되어서 고민끝에 제가 태어난곳 시골 섬으로 이사하게 되었죠.
막상 시골에 와서 수련 해볼까 생각도 했는데 그리 쉽지가
았았지요 .7개월 동안 시골 섬에서 있으면서
낚시도 하고 농사도 하고 집안 일도 도와주고 하고
있었고 바닷가의 생활은 마음의 성품을 안좋게 되어
진 것을 볼때 다시 육지에 나와 공부하고 싶었지요.
이 시골에 있으면서 국선도를 한번더 세상 밖에서 바라보았고 생활 하면서 국선도의 필요성을 공감 할수 있었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과거 순천의 지도 사범인
정현진 사범이 저의 섬으로 통화 하였고 몇칠후 2000,6월쯤
경기 미금도장에 지도 보조 사범으로 가게 되었죠
처음으로 지도를 하여 보았지만 도장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저 또한 운기 공부를 중단한 상황 이었고 제몸의 상태도
잘 모른 상황 이었고 과거 같이 수련이 된 상태가 아니라서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죠. 2000년 6월쯤에서 2001년 2월달까지 지도자 보조 사범으로 있었고 우연히 도장이 이명수 사범님에게 인수되어 저도 몇칠후 그만 두게 되었죠.
특히 도장 생활을 하면서 세계국선도 허경무씨가 사범들을
가르친 것을 간접적으로 보고 큰 실망을 하였고
즉 사범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켜서 자기한테 의지 하게끔
유도하는 말을 들었을때 사기성이 있음을 저는 이미 이시기에 확실하게 알았지요. 한예를 들면 )공부를 되게 해 주겠다고 사범들에게 유혹하였으며 사범들은 그말을 믿고 그를 더욱더 믿어서 저로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지요.
그리고 기신법 과 입단공 등도 자꾸 변형을 하고 조작하고 하는 것을 볼때 허경무씨의 밥그릇을 짐작 할수 있었죠.
그때 정현진 사범이 외공을 가르쳐 준다고 하여도 저는 일부러 안 배웠지요 허경무 씨가 만든 오공법 4번까지 공개가 되었전 시기였죠 그러나 저는 국선도 행공을 비롯한 모든 수련법이 중요 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국선도 외공의 위력은 도가 통한 상태에서 하게되면 상상을 초월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저도 과거 고등학교때 합기도 국술을 조금 하였지만
국선도 외공는 도가 통한 상태에서는 어떤 타 무술보다
상상 할수 없을 정도로 뛰어 난 것을 저로서는
알고 있었지만 거짓된 사람이 전수해준 것을 배우기는 싫어서 일부러 안 배웠고 언젠가는 제대로 배울날이 있겠지 하고 외공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죠.
그래서 마침 도장 인수가 되어서
수련 지도를 그만두게 되었고 또 지도 하는데 미숙함을 깨닭고 마침 더 깊게 수련하고 싶어서
2001년 4월 쯤에 섬으로 돌아와서
한달뒤 지리산 남부 에 텐트만 같고 깊은 산속에서 수련 하게 되었죠.
산에 텐트치고 비닐루로 치고 대나무로 운막을 수리 하여
지냈고 행공수련은 처음엔 3시간정도 하였지만
움막을 짓는 동안 13일쯤 지나서 하단전에 복압력이 평소보다
강한 것을 느꼈고 그즉시 하단전 호흡을 시작 하였으며
단전 부위가 점점더 빵빵하게 모아지기 시작 하였죠.
이 현상이 일어난 부터는 제 몸이 수련이 잘되는 구나하고 이제야 알았었죠.
그 후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행공 수련을 계속 하였으며
축기 된 상태에서 건곤단법을 통하여 유통 공부를 시작
하였고 원기 단법도 동시에 하였지요.
원기단법을 할때도 언제나 건곤단법을 먼저 하고 원기 단법을 하였으며
축기가 된 상태에서 건곤을 먼저 할때에는 운기가 되어야만
원기 단법 행공을 24동작씩 연속 해서 하였고
운기가 수월하게 된 상태에서 원기 동작을 하니까
12경 유통 동작에도 몸이 기혈이 트여졌고 과거의 순천에서
변화가 왔던 현상과는 다른 상황 이였죠. 2001,5월쯤에는
원기 단법을 들어갈때는 아침에는 축기가 되고 기초 서서 자세나 누워 있는 자세에서 운기 위주로 시간을 많이 투자 하는 동시에 원기 행공도 건곤을 기본으로 하고 원기 9.10.11번을 연속으로 하고 오후에는 원기 9번만 하고 서서나 좌사법에서 축기가 강하게 되면 누워서나 서서 의 동작중에서 운기 위주로만 하였지요.
이렇게 축기가 되고 운기도 법데로 잘 되어 지니까
몸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왔지요 과거의 순천에서 만큼은
공부의 2/8 만큼은 못 되어졌지만 여러 가지 체험을 하였지요. 다시 축기가 잘 되어지고 운기도 잘 되어졌지만 하단전에 빗은
보이지 않았지요. 그렇치만 준비동작을 서서히 하면 온몸이
시원 하면서 기혈이 트여지는 현상이 새로웠고 또 축기가 되고 운기가 잘 되어진 상태에서 건곤단법을 히게되면
건의 임법 이나 축법에서 귓가에서 윙윙 거리는 마치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청각이 많이 트여지는 현상을 발견 하였지요.
산에서 야채 등의 식량이 떨어져서 시내로 나가게 되면
지나가는 버스나 차들의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렸지요 .
그렇치만 과거의 순천에서 수련 할때와는 약한 소리였죠.
운기 현상도 처음에는 50분에야 기운이 상승 하는 것이
건곤단법 갑법을 하자마자 3분도 안되서 운기 가 상승 하였지요. 그리고 누워서 운기를 숙달시키면 약지 손가락 보다
더 가늘한 것이 자기 스스로 온몸을 돌아가면서 인체의
약한 부위를 치료 하듯이 움직이는 변화를 경험 했죠.
나는 이때 과거 순천에서 수련했던 것 같이 똑같은 변화가
오는 것이 아니냐? 마음 속으로 인식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14시간을 투자하여 수련 전진 하였지요.
과거의 몸이 한번 트여진 경험이 있어서 진도가 빠른 것 같았지요 원기는 이주일마다 한단계씩 올라갔고 2001년 5월달초부터
2001년 8월 말 까지 원기 동작을 24동작을 기본으로
원기 24번 까지 지리산 남부지역에서 수련 하였고
저는 과거에 수련 할때 알았지만 운기공부를
들어갈때는 섭생을 중요 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산속 깊은곳에서 밭을 일구어 보았지만 햇볏이 잘 안들어와
농사를 짓는 것이 어려웠고 잘 안되었지요.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볼때 섭생을 중요 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지리산 남부 지역에서 하산하여 민가의
지역을 찿아 보았지요. 수련할 만한 민가를 찿기란 쉽지 않아서
다시 시골 섬으로 가게 되었지요.
시골고향집에서 몇칠 있다가 우연히 저녁에 6 시 내고향 이라는 방송을 보고 지리산 뱀사골 지역으로 2001년 9월초에 민가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었지요.
여기의 민가지역은 큰 길가에서 35분 이상 산길을 올라가야
마을이 있었고 60 세 가까이 된 아주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고 그아주머니 아드님도 같이 살고 있었죠.
그 아주머니는 무속인처럼 살고 있었고 저가 보기에는
동자신이라 든가 등등의 영이 몸으로 접신이 된 것이 아니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게 점을 보아주는 것 같았죠.
이 마을도 이런 분위기 였지만 그래도 갈곳이 없는 저로서는
거기서 기거 하기로 하였지요.
빈집을 구하 였지만 그 주인 아주머니는 전기세도 안 내도 된다고 하였지요 지금 생각 해보면 참으로 고마음 분이였죠.
그래서 겨울에는 전기세를 안낸 대신 그 주인집 아주머니 집에 나무장작도 도와주고 하였고 곳감을 만들때도 감을 따서
집까지 운반도 해주고 등등의 일도 조금씩 도와주면서
생활 하게 되었지요.
이때만 해도 제가 가장 아끼던 오디오를 몇 달전 오디오를 친구한테 80만원 주고 팔았고
이 생활비가 있어서 이 아주머니 동래에서 빈집을 무료로 구해서 수련할 계기가 되었지요.
이렇게 본격 적으로 이 동래에서 수련하게 되었고 이집에서
아침부터 오후 점심 무렵까지 수련 하였으며
이때에도 원기행공을 24 동작을 연속으로 하였고
처음 시작 할때는 2분 40초를 따라 하다가 익숙해 지면
과거에 제가만든 한동작에 4분짜리 선도주 cd를 틀고서 하였고
처음 축기가 잘되어지면 건곤단법을 통하여 운기위주로 하였고 운기가 잘 되어지면 곧바로 원기 행공이나 유통 위주로
수련 하였지요.
원기 행공도 동작을 많이 하였지만 기초적이 동작에서
운기 공부도 많이 하였지요.
원기동작은 1달정도는 기초 동작을 하다가
2001년 10월말에 다시 원기 24번부터 시작 하여
2002 년 1월 초까지 2주만에 한단계씩 올라가서
30번 까지 한번 해 보았고 2002년 2월 부터는 동작이
잘 안된 것을 연습 하는 동시에 유통 공부 위주로
수련 하였지요.
이때 겨울에는 운기 공부를 할수록 힘 차원이 아주 더디게
좋아졌지요. 산골 길가에 눈을 치우기 위해 삽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허리 한번도 안펴고 1시간30분이상 삽질만 힘차게 하였고
힘을 쓸수록 기분이 좋았지요.
무거운것도 지게를 지어도 별로 약간 힘들었지요.
이렇게 수련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 할려는 시기 였고
생활비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고 해서 도시에 가서
생활비를 벌어 와야 겠다는 생각에 2002년 3 월달 쯤 되어서
서울로 오는 계기가 되었죠.
과거에 도배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몇칠만에 곧바로
아파트 공사의 현장에서 도배일을 시작 하였죠.
그리고 도배를 하고 있는동시에 수사 교육도 함께 받았고
자격도 취득 해서 2002 년 6월 중순에 생활비를 벌어와
지리산 민가로 오게 되었고
다시 그 앞동래로 이사를 한번더 가게 되었죠.
이 새로 이사온 동래는 햇빗도 잘 들어오고 하여
살기에는 참 좋았지요. 처음 빈집은 4 가구였고 1 가구만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이 동래도 큰 길가에서 40분을 올라 와야 산골 마을을 올수가 있었죠.
이 한사람이 먼저 있던분도 시내로 가게 되어 2002.7월달부터 2004.9월달까지 저 혼자만 살고 있었고 이 후로 3 가구가
더 늘어나 현제 사람이 살고 있는 가구수는 총 4가구 이지요.
그리고 이동래로 이사오는 부터는 집 주소를 지리산 쪽으로 옮시게 되어 의료보험 등과 전기세도 내여야 하고 한달의 생활비도 좀 들어가고 집도 처음부터 수리하여야 하고 등등에
돈이 많이 들어 갔지요. 도배하여 돈을 벌어왔던 생활비도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래서 서울의 작은 누이가 한달에 5만원씩 2002년 7월달부터 2005년 5월달 까지 생활비를 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고
2005년 부터는 자체적으로 일을 하였고 고리쇠와 농산품 직거래, 곶감, 벌꿀 등을 부수적으로 일을 하여 지금까지 생활해 오고 있죠.
이렇게 여기서 생활 하면은 게절 마다 바쁘게 되었고
집중적으로 수련할 시기는 겨울에 2-3달 정밖에 시간이 없죠. 봄, 여름, 가을,겨울에 수련 할때는 아침 6시 쯤 되어서
오전 10시 까지 꾸준히 수련 해왔고
11시쯤되어서 생식을 먹고 오후에는 일하고 ,여러가지 등등을 하고 저녁 7시 되어서 생식 하고 난후 텔래비젼도 보고
등등의 생활을 계속 하고 있죠.
그리고 2003년에 초에도 생화비를 벌기위해 도배 하러
서울에 갔었는데 국선도 가 양쪽으로 갈라지는 상황 이었고
허경무씨를 따르는 사범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허경무씨의
법통을 인정 하느냐? 마느냐? 등등에 상황이었고
이런 계기로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 하여 완전히
나누어 지게 되었죠. 저의 경우는 과거의 조경진 사범과 정현진 사범 과 같이 도장에서 보조 사범으로 있었기에 처음 저와 인연이 있는 강남의 조경진 사범의 도장으로 찿아갔지요.
이때까지는 국선도가 완전히 갈라지지 않았고 그 갈라진 상황을 저는 모르는 상황 이었죠. 그냥 국선도 외공을 배워볼까 하고 찿아 갔지요. 이대승 사범한테 허경무씨가 변형된 오공법을 4번까지 배웠고 몇칠후 다시 찿아가는데 강남 조경진 도장의
회원분 한분이 국선도 분파가 되었다고 하길래 그때 알았죠.
그때 저는 집으로 돌아와 주위의 사범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 상황을 파악 하였지요.
저또한 과거의 지도자 보조로 있을씨 허경무씨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지리산이나 과거의 순천에서 수련할 때 제 수련 경험을 통하여 허경무 씨가 문제가 있고
그런 수련법을 따르면 큰일 나겠구나 하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국선도가 나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조경진 사범이 지도하는 도장에는 가지 않았지요.
그리고 기념일 행사에 참가 하였고 본원을 찿기 위해
법사님들과 사범님들 그 외 지방에서 올려온 분들과
본원근처의 모텔이나 찻집에서 논의 하였으며
허 경무씨를 따르는 제자들이 본원을 내어주지 않았지요.
저를 비롯한 저의 쪽의 인원수가 별로 없었고 대부분 지방에서 올려온 사범님 들이라 서울에서 오래 머무를수 없는 상황 이였죠.
그래서 그 다음날 지방에서 올라온 분들은 다 흩어졌고
이것은 법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저를 비롯한 대부분 분들이 흩어졌죠.
저는 곧바로 도배 일하러 아파트 공사로 가서 일 하였고
2-3달 생활비를 벌어서 다시 지리산 민박 마을로 오는 계기가 되었죠.
이렇게 세월이 흐르는 와중에 공부 할때 무언가 맏히게 되면
임경택 법사님이나 진목 법사니께 문의를 듣고 하였고
가끔씩 부산 화명동에 가서 외공도 배우고 등등을 하고
지리산에서 계속 현재까지 생활 하게 되었지요.
공부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많은 실험을 하였지요.
생식을 안하고 화식을 7개월 정도 해보고
화식을 먹고 생식과 같이 먹고 후 수련이 잘되는 상태와
생식만 먹고 수련 상태와 화식만 먹고의 수련 상태와
운기가 잘될때 육식을 먹어보고 공부가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소화 기관이 잘 살아나는 상태와 여러 가지 가공식품이
몸에서 반응 하는 상태와 축기된 기운이 잃어버린 상태에서
처음부터 어떻게 쌓아가는지 와 기초적인 운기를 어느정도
투자하여야 기운이 잘 트여지게 되는가? 왜 도시에서 현대인의
수련은 잘 안되는지? 등을 제 나름데로 제 몸을 통하여 연구 하였고
이런 내용을 참고를 하여 제가 알고 있는만큼 인터넷에 올려 주었지요.
저의심정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수련이 잘 되기를 바라고 모든 수련장이 활기가 넘쳐서 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해주기를 바라는 입장 입니다.
만약 저가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3년 전부터 도장을 지도 하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도장을 운영했겠지만
우선 제 혼자 수련이 잘된 것 보다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이 수련이 잘되어 지기를 바라며
특히 도장에 수련지도 하시는 원장님 분들이 저보다 먼저
도장이 잘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과거에 제가 알고 체험한 것들을 인터넷에 제 밥그릇 만큼
공개적으로 발표 하였고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상 저의 수련기와 회고록을 마칩니다
2006. 박용길.
출처 : | 국선도와 살아가는 이야기 | 글쓴이 : 파란띠 | ||
첫댓글 교수님, '국살이' 카페에도 가셔요?....저는 그곳에서 '하얀띠' 입니다....^^
하얀띠는 늘 비어있음을 의미합니까?...^^*
초심, 첫마음이지요~^^
아~~~ 처음은 끝과 같은 것이니... 처음을 잃지마라~~~검은 띠로 바뀌어도 마음은 늘 하얀 띠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