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는 관료에서 쫓겨난 이중환, 택리지를 쓰다
글/조경렬(경형)
※참고로 이 글은 <헤럴드저널> 2024년 3월 복간호에 실린 글을 옮겨 봅니다.
택리지(擇里志), ‘마을의 입지를 가려서 택하다.’ 필자가 전국의 100대 명산을 찾아 명산대천을 감상하고 산행 명산기를 쓰면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이중환의 「택리지」였습니다. 그만큼 택리지는 우리나라 강산 곳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명산의 지세를 잘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택리지가 한반도의 역사지리를 통찰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지리서의 구성 방법이 예전의 「동국여지승람」과는 창의적인 시각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한반도 지리적 특징을 표현했기 때문에 논자들이 자주 인용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택리지에는 200여 종의 이본(異本)이 존재하지요. 이 책이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인기가 있는 만큼 필사본도 많고 이본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근 십 수명의 지리학자가 합심하여 발행한 「완역 정본 택리지」(안대회 외 9명, 휴머니스트)를 기본서로 독서 후 감상을 적어 보고자 합니다.
이중환은 1690년에 태어난 17세기 말 조선시대 사대부 출신으로 택리지가 1751년에 세상에 나왔으니까 이중환이 환갑쯤에 이 책을 완성한 셈이지요. 그는 조선 말 성리학파 중 남인 명문가에서 났습니다. 「성호사설」을 쓴 이익(李瀷)이 대표적인 실학자로 가문의 할아버지뻘이 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열중한 끝에 24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었습니다. 숙종 말엽 남인은 노론과 치열한 경세 다툼으로 당파 싸움이 극에 달한 시기지요.
이때 이중환은 노론 4대신이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고 고발한 목호룡의 고변 사건에 연루되어 관료로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또 1728년 무신 난의 가담자인 사천 목씨 집안 사위라는 명분으로 정계에서 완전히 축출되고 맙니다. 이때부터 낭인 신세로 팔도를 떠돌게 되는데, 그의 성품이 워낙 올곧고 청청하여 아첨과 비방을 싫어했기 때문에 특히 미움을 받았다고 그의 문우(文友) 이희가 증언한 바 있습니다.
사대부가 타의로 정계를 떠났다는 말은 곧 참담한 삶을 의미합니다. 이중환도 수많은 고문과 형벌로 피폐한 중년을 보냅니다. 이런 참담한 중년의 삶은 그를 환난이나 전쟁, 천재지변에도 살만한 곳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환난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살만한 곳은 어디겠습니까? 첩첩산중 두메산골이 아니고서야 어디에 있으랴!
그래서 그는 산중이면서도 자연지세가 인간이 살기에 수려한 적막강산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런 연유로 쓰인 책이 「택리지」입니다. ‘주거를 택하는 방법’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지요. 그럼에도 그는 책의 구성을 매우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편제로 구성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전혀 다른 체계의 역사 지리서 편제 구성
택리지의 편제 구성을 살펴보기 전에 필자는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는 불후의 명작임에는 어떤 현토(懸吐)도 달 수 없는 수작이지만, 그 세세한 부분을 통독하다 보면 사대부로서의 숨은 기질의 표출이나 편향적인 판단, 지나친 지방에 대한 편견이 부분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옥에 티라고 봅니다.
이중환은 택리지 서(序)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마을을 가려서 산다는 말은 공자와 맹자에게서 나왔다. 마을을 가려서 살지 않으면 크게는 교화를 펼치지 못하고, 작게는 편안하게 살지 못한다. 따라서 반드시 마을을 가려서 살고자 한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미에 “무릇 의식이 부족한 곳이나 사기(士氣)가 사그라진 곳, 무력만을 앞세우는 곳이나 사치하는 풍속이 만연한 곳, 또 시기하는 풍습이 드센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몇 가지 조건에 따라 가려낸다면 어느 곳을 선택해야 할지 잘 알 수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자, 그럼 택리지 편제의 독창성을 살펴보겠습니다. 크게는 팔도론과 복거론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팔도론에서는 조선 팔도를 그 지형과 지세, 그리고 풍속을 역사적으로 고찰했습니다. 그리고 복거론에서는 지리와 생리로 구분하여 전국을 지리적으로 삶의 경제적 토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민총론 즉 서론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래와 함께 사대부의 역할과 사명, 그리고 사대부로서의 행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사례를 지키기 위해 여유 있는 생업을 가져야 하며, 살만한 곳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팔도론에서는 우리나라 산세와 위치를 중국의 고전 「산해경(山海經)」을 인용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을 「산해경」의 불함산(不咸山)으로 생각하고 중국의 곤륜산(崑崙山)에서 뻗는 산줄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팔도의 위치와 그 역사적인 배경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즉, 경상도는 변한·진한의 땅이고 함경·평안·황해도는 고조선·고구려, 강원도는 예맥(濊貊)의 땅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고조선과 삼한, 고구려와 백제·신라의 건국, 고려의 건국과 그 경역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논하고 있습니다. 또 사대부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표현하고, 사대부의 기원과 역사적인 변천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사대부 출신인 만큼 사대부에 대한 자부심과 사대부가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를 고심하는 내용도 엿보입니다.
도별로 서술한 지지에서는 도(道) 전체의 위치와 자연을 서술한 뒤 간략하게 자연환경, 인물과 풍속 등을 전체적으로 언급하고 소지역으로 나누어 읍치(邑治) 중심의 지리와 역사, 생업·경치 등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도내에서의 지역 구분은 하천과 산맥을 경계로 했습니다. 평안도에서는 청천강을 경계로 청북(淸北)과 청남(淸南)으로 구분하고, 황해도에서는 멸악산맥을 경계로 이북과 이남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충청도에서는 차령(車嶺)을 경계로 남북을 나누고 차령 이북은 경기에 가깝고 남쪽은 전라지방에 가깝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이어서 복거론은 이 책 전체 분량의 거의 반을 차지할 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18세기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주거지 선호의 기준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주거를 선정하는 기준으로는 지리·생리·인심·산수를 들었고, 그 어느 것이 부적당하여도 살 곳이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리는 풍수(風水)에서 말하는 지리의 뜻이고, 생리(生理)는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유리한 위치를 말합니다.
생리에서는 비옥한 토지, 어염과 내륙의 곡물과 면화가 교역되는 위치, 그리고 해운과 하운의 요지 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인심에서는 세상 풍속이 아름다운 곳을 말하고 있으나 사대부의 경우는 성리학적 당색(黨色)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또한, 산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인심을 순박하게 하는 데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저자는 아름다운 산수를 찾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주요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를 살펴 이름난 산수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를 중심으로 완역한 최초의 책입니다.
지리에 우둔해서인지 필자는 이 책을 읽고 매우 뛰어난 지리서지만 이런 점이 지나친 비약이다 이렇게 봅니다. 이중환은 중국 고전의 산해경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 백두산으로 이어진다라고 봤는데요.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고 봅니다. 실존하지 않는 곤륜산은 성리학적 관점으로 상상의 지역인데요. 그 곳은 히말라야 티베트 지역으로 추측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히말라야 티베트 지형과는 완전히 다른 판을 이루는 한반도와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