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0개 본관별 성씨 중, 은진 송씨, 청송 심씨, 개성 왕씨, 파평 윤씨, 해평 윤씨, 고성 이씨, 성주 이씨, 연안 이씨, 인동 장씨, 절강 장씨(http://cafe.daum.net/molanthro/I4r5/24)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번은 그 마지막 시간이 되겠습니다. 모든 성씨의 위의 그림은 그 성씨의 지역별 퍼센트를 나타낸 그래프이며, 아래 그림은 그 지역의 인구로 보정하여 나타낸 (즉, 인구 10만명 당 몇 명이냐로 나타냈습니다), 상대적 지역 분포에 대한 그래프가 되겠습니다. 모든 자료는 2000년 기준입니다. 통계청 인구자료과 www.surname.info의 성씨별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였습니다.
51) 동래 정씨(東萊 鄭氏)
동래 정씨는 정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성씨이며, 조선 시대에 정승 17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198명을 배출했는데 상신 17명은 왕손인 전주 이씨의 22명에 버금가는 숫자입니다. 시조는 정회문(鄭繪文)으로, 신라의 전신인 사로의 6촌 중 취산 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의 원손(遠孫) 정회문을 원조로 하고 있으나, 문헌이 실전되어 연대와 자세한 사적 및 전후세계를 상고할 수 없다 합니다. 따라서, 고려 초 동래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1세조로 하여 누대에 걸쳐 정착 세거해 온 거칠소부(현 부산 동래)가 동래로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동래 정씨는 왕족인 전주 이씨와 세도척족이었던 안동 김씨 다음으로 많은 정승을 배출하면서도 외척으로 세력을 얻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442,363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정과정곡(鄭瓜亭曲)'으로 유명한 정서, 직제학공파 중엔 중종 대의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 인조-효종 대의 영의정 정태화, 현종 대의 좌의정 정지화, 교서랑공파 중엔 세조 때 좌익공신이었던 정창손, 대호군파 중엔 선조 대의 모반사건으로 몰락에 이르게 한 장본인인 정여립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대구(10만명당 1,827명), 부산(1,569명), 울산(1,493명), 전북(1,381명), 경북(1,303명), 제주(1,226명), 경남(1,205명) 등의 순서를 보여, 대체로 본관과 가까운 분포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눈에 띄이는 것은 전북에 다소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점인데, 의외로 호남지역에서 전북에만 많이 분포하지, 전남과 광주는 거의 분포하지 않는 양상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정여립이 전주 출신이라는 점이 힌트가 아닐까 합니다. 동래 정씨는 경주 정씨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내세우고 있으나, 타 집안과 마찬가지로 문헌의 실전, 전후세계 상고할 수 없음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은 고려초 동래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아마 실제의 창성인 듯 합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정씨는 27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7.4%, O2b*가 11.1%, O2b1이 7.4%, 기타가 74.1%가 나왔었고, 초재님의 한국인 정씨 부계하플로 구성에서, 45명의 정씨 중 C3가 24%, O2b*가 17%, O2b1이 11%, O3a1c가 11%, O3a2c1이 9%, O3a2c1a가 16% 나왔었지요. 물론, 본관별로 조사된 것이 아니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겠으나, C3에 눈길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52) 화산 이씨(花山 李氏)
화산 이씨는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관심이 가는 성씨로, 바로 베트남으로부터 귀화한 성씨로 여겨집니다. 시조 이용상(李龍祥)은 안남국왕 이천조의 아들로 고려 고종 때 망명하여 화산군(황해도 금천군 화산)에 봉해지고, 웅진의 화산을 식읍으로 하사 받아 정착 세거하였다 합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화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는 1,775명에 불과하며, 황해도 신천군과 벽성군에 그 집성촌이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로 고려 때 대제학을 지낸 이용상의 아들 이간, 조선 때 한성부윤을 지낸 이맹운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워낙 인구수가 적어 표본 수가 부족하긴 하나, 인천(10만명당 8.6명), 서울(4.8명), 경기(4.8명) 등 수도권에 조금 더 많은 분포를 보이지 않나 합니다. 황해도에 그 집성촌이 있는 점,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점 등을 보아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북한 지역에는 좀 더 많이 분포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화산 이씨 20명을 조사하였는데, 그들 중 O2b1이 65%, 기타가 35%가 나와 충격을 준 바가 있습니다. 이들이 정말 베트남에서 왔다면 O2b1이 이만큼 많이 나올리가 없으니까요.. 물론,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발생한 O2b1이 베트남에서 정권을 잡은 뒤, 다시 우리나라에 금의환향했다...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요? 저는 우리나라 황해도 화산을 본거지로 한 토종의 한 집안이 창성한 뒤 베트남에서 온 왕족의 후손으로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중국은 너무 많이 써먹었으니까요...여러 집안에서).
53) 우록 김씨(友鹿 金氏)
우록 김씨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성씨로, 일본으로부터 귀화한 성씨로 여겨집니다. 시조 김충선(金忠善)은 본래 일본인으로 사야가(沙也可)라고 불리던 사람입니다. 그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선봉장으로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우리나라에 침공해 왔으나 조선의 문물과 인정, 풍속에 감탄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한 뒤 귀화하였습니다. 그가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과 1627년(인조 5년)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우자 권율과 한준겸이 왕에게 간청하여 정2품 자헌대부에 올랐으며 이름을 김충선으로 하사받아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현재 그의 후손들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 많이 살고 있는데, 워낙 대성인 김해 김씨와의 혼동을 피해 우록 김씨라고도 불립니다. 현재 인구수로 사성 김해 김씨가 199,544명, 우록 김씨로 나타낸 분들이 468명입니다. 물론, 사성 김해 김씨 중 김충선의 후손이 있겠으나, 너무 많은 인구수를 볼 때 대부분은 대성인 김해 김씨처럼 후에 득성하신 분들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되어, 여기서는 우록 김씨만 대상으로 데이터를 제시하겠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역시 대구(10만명당 7.82명)에 절대적으로 많으며, 경북(1.91명), 부산(1.39명), 경남(1.21명) 등의 순서를 보입니다. 퍼센트로만 봐도, 대구에 41%를 비롯하여 영남 지역에 무려 73%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우록 김씨는 모두 46명이 조사되었는데, O2b*가 10,9%, 기타가 89.1%가 나왔었지요. 아마 우록 김씨의 조상이 일본인 사야가가 맞다고 가정한다면, 대다수가 기타가 나왔다는 점은 이들의 주류가 O3계열이거나 C3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사야가가 일본 큐슈 출신이라 하므로, 큐슈 지역에 다소 높은 C3와도 맞아떨어지는 듯 합니다. O3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이들에 대해 다시 정밀하게 조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네요^^
54) 창녕 조씨(昌寧 曺氏)
창녕 조씨는 타 조씨(趙氏)와는 한자가 다른'조'를 성으로 쓰고 있는 집안입니다. 시조 조계룡(曺繼龍)은 신라 26대 진평왕의 사위였다 하며, '조씨세보'에는 그의 탄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아기 때의 속병이 자라면서 더욱 고질이 되었는데, 하루는 스님이 와서 "창녕 화왕산 용지에 가서 빌어보라"하여 예향이 그 말대로 기도 드리러 목욕재개하고 못가에 이르자 갑자기 운무가 일어 대낮에도 캄캄하다가 이윽고 운무가 걷히며 병이 낫고 그로부터 태기가 있었다 합니다 그 후 예향의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나는 동해 신룡의 아들 옥결로 이 아이의 아비이다. 아이를 잘 기르면 크게는 공후가 될 것이요, 적어도 경상은 틀림없을 것이며, 자손이 만세에 번성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산월이 되어 과연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曺'자 모양의 문채가 있어 이광옥이 이 사실을 임금에 알리니 임금이 불러 보고 신기하게 여겨 조씨 성을 내리고 이름을 계룡이라 지어 주었다 합니다. 그러나 이후 세계가 실전되어 신라 말에 아간시중을 지내고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공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된 조겸(曺謙)을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창녕 조씨는 전남 화순군, 진도군, 경남 산청군, 합천군, 경북 영천시 일원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38,222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 격퇴에 큰 공을 세운 조민수, 조선 세조때 영의정이었던 조석문, 남명학파를 창시한 대학자 남명 조식, 민족주의운동을 전개하다 납북된 조만식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비교적 전국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고 있고, 그 중에서도 광주(10만명당 1,540명), 경남(1,069명), 전남(1,068명), 대구(914명), 부산(902명) 등의 남부 지방에 우세한 분포를 보입니다.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대체로 본관과 유사한 분포를 보이고, 집성촌과 들어맞는다...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이 집안 역시 세계가 실전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역시 조겸부터 이 집안의 역사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창녕 조씨의 부계하플로 분석은 아쉽게도 이루어진 바가 없습니다만, 남부 지역에 높은 분포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O2b1이나 C3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55) 신안 주씨(新安 朱氏)
신안 주씨는 주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성씨로 역시 귀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씨입니다. 시조 주잠(朱潛)은 원래 송나라 신안현 사람으로 성리학을 대성한 남송의 대유학자 주문공 주희(朱熹)의 증손이라 합니다. 그는 당시 북방의 몽골족이 세력을 떨치며 송나라를 자주 쳐들어 왔으나 무능한 조정 대신들은 뚜렷한 대책도 없이 화의에만 급급하자 아들 주여경을 데리고 고려에 들어와서 나주에 자리잡고 살았다 합니다. 신안은 중국의 지명을 의미하며,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51,227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충렬왕 당시 판도판서를 지낸 주열이 있습니다. 인구별 분포를 보면, 전남(10만명당 615명), 광주(419명), 부산(368명), 경남(365명), 울산(337명) 등의 분포를 보여, 남부 지역에 집중되는 분포를 보입니다. 한국 희귀성씨 자료에서, 신안 주씨는 5명 중, 2명은 O2b, 3명은 미분석이 나왔었지요. 우리 카페 회원이신 주황색님이 바로 신안 주씨이신데, C3가 나왔었지요. 아마, 신안 주씨도 2가지 계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역적 분포를 보아도, C3 또는 O2b1이지 않겠나 추측되는 바입니다. C3는 주희의 자손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O2b로 나오신 분들은 도저히 주희의 자손은 아니겠죠?
56) 해주 최씨(海州 崔氏)
이번엔 해주 최씨입니다. 시조 최온(崔溫)은 널리 알려진 해동공자 최충(崔沖)의 아버지로 해주 대령군 수양산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하며 그곳의 별칭이 고죽군이라 고죽 최씨라고도 합니다. 시조 최온은 일찍이 해주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으며 문장으로도 명성이 높았고 뒤에 판사부사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해주에서 이루어졌고 또 여러 대에 결쳐서 해주에서 살았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하여 대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81,840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도 언급한 최온의 아들 최충이 있습니다. 최충은 고려 목종 때 문과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며 문종 때 문하시중을 지내고 은퇴하여 개경에 최초의 사학인 구제학당을 열어 많은 영재를 배출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집현전 학자이며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였으며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최만리, 논개의 남편으로 진주에서 전사한 최경회 등이 있습니다. 탤런트 최불암도 이 성씨이군요. 인구별 자료를 보면, 인천(10만명당 772명), 충남(718명), 광주(580명), 경기(505명), 서울(469명), 강원(445명) 순으로, 광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분포를 보입니다. 이북 지역을 조사만 할 수 있다면, 해주를 중심으로 한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최씨의 하플로는 조사된 바가 있지만, 긱 본관별로 조사된 바는 없습니다. 해주 최씨는 우리 카페 회원 사이에선, 대표적인 북방형 부계하플로를 보이지 않을까 보고 있습니다. 아마 M134 또는 C3가 나오지 않을까... 저는 경주 최씨는 O2b 및 JST002611위주, 전주 최씨는 초재님 말씀대로 JST002611과 M134위주로 보고 있죠.
57) 장수 황씨(長水 黃氏)
장수 황씨는 그 유명한 황희 정승을 배출한 가문이죠. 시조 황경(黃瓊)은 신라 경순왕의 부마로 벼슬은 시중을 지냈으며, 그 후 10세손인 황공유가 고려 명종 때 전중감으로 이의방의 난이 있은 후로 전북 장수로 낙향하였고, 15세손 황감평이 후학을 위한 덕망 있는 학자였다는 것 외에는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는 고증할 자료가 없다 합니다. 중시조 황석부는 황희의 증조부로 사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었습니다. 따라서 후손들이 황석부를 1세조로 하고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146,575명입니다. 인구수로는 창원(昌原) 황씨(252,814명)에 비해 적군요. 대표적 인물로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승의 지위에 24년간, 그 중 영의정에 18년간 있었던 황희, 황희의 아들로 우의정을 지낸 황치신, 역시 황희의 아들로 영의정에 오른 황수신, 선조 때 임진왜란전 일본 통신사 정사로 풍신수길의 침략을 우려한 황윤길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전북(10만명당 588명), 광주(562명), 전남(540명), 대전(512명) 등으로 역시 본거지인 전북 장수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황씨는 총 25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4%, O2b*가 12%, O2b1이 12%, 기타가 72%로 역시 다수의 황씨 부계하플로는 비(非)-O2b를 보이고 있습니다.
58) 남양 홍씨(南陽 洪氏) - 당홍계(唐洪系)
남양 홍씨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집니다. 바로 당홍계와 토홍계(土洪系)인데요. 당홍계의 시조인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왕인 영류왕 때 당나라 8학사의 한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하며, 신라 27대왕인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경기도 화성시 남양)에 봉해졌고 태자태사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으며, 당성 이후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자 남양으로 본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조로 하여 대를 잇고 있습니다. 홍은열은 원래 이름이 홍유(洪儒)였는데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태조가 '은(殷)나라 부열(傅說,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과 같다'고 하여 이름을 은열로 하사했다고 합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79,708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홍처량, 영조 때 이조판서 홍계희,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에 오른 홍명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반면, 토홍계는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며, 당성(남양)에 대대로 살아온 선비의 집안으로 고려 때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냈으며 가문의 기틀을 잡아 가세를 크게 번창시켰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였다 합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0,662명에 불과하나, 조선 시대에 상신 2명, 문형 1명, 청백리 3명, 부마 1명, 공신 3명을 배출한 명문이며, 대표적 인물로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홍언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언필의 아들 홍섬, 병자로한 때 주전파였으며 3학사의 한 명인 홍익한, 실학자인 홍대용, 작곡가 홍난파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의외로 제주(10만명당 1,787명)이 가장 많고, 강원(1,383명), 경기(1,033명), 충북(980명), 인천(962명), 서울(910명) 등으로 주로 수도권 위주의 분포를 보입니다. 역시 본관과 유사한 분포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홍씨는 총 27명이었는데, O2b는 18.5%, O2b1이 11.1%, 기타가 70.4%로, 황씨의 경우와 유사하게 홍씨도 비-O2b계열의 부계하플로를 보였습니다. FamilytreeDNA의 Korea Project에 올라온 본관을 알 수 없는 홍씨분의 부계하플로 결과로는 O2b*가 나왔었지요. 순전히 사견이지만, 풍산 홍씨나 토홍계 남양 홍씨는 O2b or O2b1, 당홍계 남양 홍씨의 주류는 O3계열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자세한 결론은 많은 샘플이 모여야 가능하리라 봅니다. 여담이지만, 제주와 강원에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인다...는 데에서 이들이 N, P201 or O2b*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되네요.^^ 이들의 역사 역시 홍은열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59) 한양 조씨(漢陽 趙氏)
한양 조씨는 조씨 중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성씨입니다. 시조인 조지수(趙之壽)는 고려조에서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냈다 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헌이 실전되어 거의 선대와 벼슬하던 왕조 및 생존 연대는 상고할 수 없고, 묘소의 소재도 확실하지 않아 옛날 묘소가 있었다는 함남 영흥군 서면 은곡동에 제단을 모아 춘추로 향사해왔었습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내왕이 막혀 그곳 소식조차 알 길이 없게 되었다 하며, 본관은 그 후손들이 문천군 용진에서 세거하다가 조선 개국 때 한성으로 옮겨 크게 번성하였고 명문거족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에 한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307,746명입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 조인옥, 조온과 기묘사화 때 사사되었으며 개혁정치로 유명한 조선 중종 때 학자 조광조 등이 있습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충남(10만명당 986명), 충북(956명), 경기(873명), 제주(851명), 인천(846명), 강원(837명), 광주(815명) 등으로 영남 지방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균등한 분포를 보입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조씨는 총 14명만 조사되었는데, O2b*가 57.1%로 가장 많았고, 기타도 42.9%를 차지했습니다. 아마, 본관에 따른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소견으로 보이는데, 한양 조씨 역시 문헌 실전, 상고할 수 없다는 등...이들의 역사는 조선초부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고, 이들의 세거지로 추측해 본다면, 이들의 주축은 O3계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60) 밀양 손씨(密陽 孫氏)
어느덧 60번째 성씨가 됩니다. 바로 밀양 손씨입니다. 시조는 손순(孫順)으로, 득성조 구례마의 후손으로 신라 모량리 출신이며 효행이 뛰어나 신라 흥덕왕 때 원성군에 봉군되었고 그의 장손자 손익감이 나라에 공을 세워 응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밀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합니다. 그 후 손부가 이부상서를 지내고 청성부원군에 봉해졌고, 손수는 병부상서를 지낸 후 청도군에 봉군되어 가문을 중흥 시켰다 합니다. 2000년 현재 인구수는 274,665명입니다. 충남 당진시, 경남 밀양시, 경북 영천시 등에 집성촌이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로는,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탄로나서 죽음을 당한 손서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손병희,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지낸 손일민 등이 있습니다. 사실 신라 6촌장 출신의 각 성씨(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배씨, 경주 설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를 언급하기 위해 다른 성씨는 다 언급했고, 처음엔 경주 손씨를 언급하려 했는데 너무 내용이 간략하여 당황했었습니다. 경주 손씨 역시 시조는 손순으로, 손순의 손자인 손익감, 손익담, 손익원 3형제 중 손익원이 월성군(경주)에 봉해지자 본관을 경주로 했다고만 되어 있으며, 이후의 기록은 실전이라 후손인 손경원을 1세조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합니다. 그리고 2000년 현재 인구수도 78,450명으로 밀양 손씨에 비해 적어서, 결국은 고민 끝에 밀양 손씨를 중심으로 글을 썼습니다. 혹시 경주 손씨분들이 계시면,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인구별 자료를 보면, 경남(10만명당 923명), 부산(845명), 대전(706명), 대구(686명), 광주(647명), 전남(646명), 울산(613명) 등으로, 본관인 밀양을 중심으로 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성씨에 따른 한국인집단의 Y 염색체 DNA 다형에서, 손씨는 총 16명이 조사되었는데, N1c가 6.3%, O2b*가 6.3%, O2b1이 25%, 기타가 62.5%로 나왔습니다. 이들이 6부촌장의 후예라고 본다면,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 O2b계열로 봤는데 아닐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죠. 저는 이들이 남부 지방에 집중 분포한다는 점에서 C3나 O2b1이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많은 샘플이 나와야겠죠.
*이상으로 동래 정씨, 화산 이씨, 우록 김씨, 창녕 조씨, 신안 주씨, 해주 최씨, 장수 황씨, 남양 홍씨(당홍계), 한양 조씨, 밀양 손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이상 힘들었지만, 60개 본관/성씨를 정리하게 되어 뿌듯합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은, 60개 본관/성씨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저 손가는 대로, 제가 조금 관심이 있는 중심으로 열거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열거한 본관/성씨 이외 수많은 본관/성씨들이 있는데, 이들을 지면 관계로 다 싣지 못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또한, 각 본관/성씨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 각 문중에서 언짢아할 만한 이야기도 실려 있기에 우리나라의 특수한 정서를 생각하면 좀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서 결국엔 보학(譜學)-분자인류학(分子人類學) 융합(融合)이 이루어진다면, 굉장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이 시간 이후에 아직까지 열거되지 않았던 본관/성씨에 대한 분포를 열거할 일이 있을 때 다시 한 번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졸작(拙作)이나마 여러분들이 관심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다 보니, 새해 첫 글이 되었군요. 회원 여러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세우신 계획 다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 생각해봐도 고대 중세 시대에 춥고 산악지형인데다 유목민족이 천지인 곳을 통과해야 도달할 수 있는 한반도에 과연 중국인들이 강남이나 동남아 만큼 매력을 느켰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한국인 피속에는 중국인의 흔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의 도래가 시작된것은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근세 시기 이후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왔다고 해야, 없는 집안(?)의 명분이 생긴다고 생각했겠죠,, 대부분의 창성, 창본을 한 것이 고려후기~조선초기이므로 어쨌든 이들은 그 시대엔 이미 한반도에 정착한지 오래였겠죠. 이들이 고대에 북방을 거쳐왔든, 중국땅을 거쳐왔든, 황해평원을 건너왔든 그것은 이미 역사이전이었으므로 그 기억이 남아있을리는 없겠죠^^
60개 본관을 정리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조선세종때 장영실의 경우도 부친이 원나라 소주사람이었고 의외로 기록이 남아있는 귀화 성씨가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장영실은 아산 장씨를 쓰는데 시조는 송나라 금자광록대부의 벼슬을 한 무관출신입니다. 아마 족보와 장영실의 부계가 맞지 않는 것으로 이러한 경우가 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쉬울 줄 알았는데 상당히 힘드네요ㅠㅠ 그래도 다하고 나니 좀 뿌듯합니다. 장영실같은 경우도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중국에서 쓰던 성을 그대로 못쓰고 우리나라의 모성으로 바꾼 경우가 많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