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칼리성으로 신경통·류머티즘 탁월, 호텔·료칸 또는 목욕권 구입해 이용 - 난이도 다른 명문 골프장도 3곳, 천혜의 계곡따라 걷기여행·산림욕 덤 - 안중근 의사 유필 등 한국과 인연도
기쿠치(菊池)? 웬만한 여행지는 다 다녀본 이들에게도 생소한 지명일 것이다. 기쿠치는 일본 규슈 중부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인구 5만 명의 조그마한 소도시로 예로부터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온천이 발달해 있다. 규슈지역 온천하면 대부분 벳부나 유후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 온천의 연간 관광객은 40만 명이나 될 정도로 많다. 그만큼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일본인에게는 유명한 온천이다. 요즘 입소문을 타고 온천여행지로 기쿠치를 찾는 한국 관광객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온천과 골프여행
기쿠치신사 초입에 벚꽂이 가득 피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일본 전문 여행사 토마토재팬의 배민금 가이드는 "일본 온천을 수없이 많이 다녀봤지만 기쿠치 물은 단연 으뜸일 것"이라고 말했다. 물이 얼마나 좋길래? 그 말을 듣고 기쿠치 온천욕을 하고 난 일행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누가 다 씻겨지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물 자체가 굉장히 미끌거렸다. 자연히 온천욕을 하고 난 피부 역시 매끈매끈해졌다. 일본 모 화장품 광고처럼 '스베스베(すべすべ·반들반들한)'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다.
기쿠치시는 "우리 온천은 물이 좋아 '피부미용의 탕'으로 불리고 있으며 지난해 일본 전국 3000여 개 온천 중 100위 내 드는 '명탕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일본 내에서 꽤 유명하다"고 자랑했다. 기쿠치 온천은 알칼리성 온천으로 무색 투명한 것이 특징. 알칼리성 온천은 피부미용은 물론 신경통 류머티즘 등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내 '와이후'라는 동네에 온천탕이 밀집해 있어 기쿠치시는 영어 와이프(Wife)와 발음이 같다는 데 착안해 '아내를 위한, 여성들을 위한 온천 쉼 여행'을 테마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일본 온천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물이 좋은 기쿠치 온천.
숙박시설인 호텔과 료칸(일본 전통식 여관) 내 온천탕이 있어 숙박을 하면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 숙박을 하지 않고 온천을 이용하려는 관광객들은 슈유켄(周湯券)으로 온천욕을 즐기면 된다. 1000엔짜리 1세트(3장)를 사면 숙박시설조합에 가입된 료칸 및 호텔 3곳에서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 기쿠치관광호텔 세이류소 시로노이료칸 모리아먀소 시로야마소 호라이칸 기쿠치그랜드호텔 사사노야 모치즈키료칸 사카에야료칸 유모토료칸 등이 조합에 가입된 숙소다. 슈유켄은 기쿠치 시내 유메미술관이나 료칸조합, 관광물산관 등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료칸이나 호텔을 이용하면 일본 전통 만찬인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기쿠치에서는 말 육회가 유명해 추가로 주문하면 가이세키 요리와 함께 즐길 수 있다.
골프장은 기쿠치 시내에 총 3곳이 있다. 1979년 개장, 기쿠치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인 기쿠치컨트리클럽은 총 18홀로 전반적으로 코스가 굴곡이 많고 그린 속도가 빠른 난코스로 공략하는 재미를 준다. 기쿠치고원컨트리클럽은 27홀로 규모가 크다. 일본 골프 투어 경기가 열리는 투어 챔피온스 클럽 중 하나인 구마모토중앙컨트리클럽은 18홀로 국제 경기를 치를 만한 세계 기준의 시설을 자랑한다. 기쿠치CC와 고원CC 평일 그린피는 6800엔, 주말 9800엔. 구마모토중앙CC는 평일 7735엔, 주말 1만1235엔이다(캐디피 별도).
■기쿠치 계곡 '걷기 여행' 백미
기쿠치컨트리클럽에서 골프 관광객이 티샷을 치고 있다.
온천과 골프에 이어 계곡도 기쿠치의 대표적 관광코스다. 기쿠치 시내에서 약 17㎞ 떨어진 산속에 위치한 천혜절경의 기쿠치계곡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 크고 작은 다양한 여울과 웅덩이, 폭포를 가지고 있다. 기쿠치강의 근원인 계곡으로, 계곡물 양옆으로 산책로가 형성돼 있다. 입구에서부터 1㎞ 정도로 30분가량을 걷는 코스와 2㎞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코스 두 가지가 있다. 중간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거나 휴식처가 있는 끝지점까지 간 뒤 다리를 건너 반대 방향으로 하산하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한여름에도 계곡물의 평균 수온이 14도 이하로 낮아 피서지로 적당하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되지는 않았지만, 위험하지 않고 산을 타야할 정도로 험한 코스도 없어 산림욕을 즐기며 걷는 산책길로서는 손색이 없다.
■기쿠치성 등 볼거리도 풍부
일본 전통 만찬인 가이세키 요리.
기쿠치에서는 온천과 골프, 걷기여행만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적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기쿠치성은 현재 건물 없이 성터만 남아있다. 팔각고루와 무기고, 쌀저장고 등 건물은 구마모토현이 10년 전 복원한 것으로, 현재는 성터와 복원된 이들 일부 건축물만 볼 수 있다.
기쿠치성 역사는 백제 멸망의 시점으로 거슬러올라간다.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자 일본 야마토 조정은 원군을 보내지만 663년 백촌강(현재 금강) 전투에서 대패해 망명을 원하던 백제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오게 된다. 신라와 당나라가 일본까지 침공해올 것을 우려한 야마토 조정은 당시 방위력을 증강시키기 위해 규슈 요충지에 여러 고대 산성을 쌓았는데 그중 하나가 기쿠치성이다. 세월이 지나며 소실된 것을 최근 구마모토현이 복원했다. 기쿠치성터에서 발굴된 보살입상 기와 목제품 등은 모두 우리나라 유물과 비슷해 백제의 영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유물뿐 아니라 토사를 다져 쌓아올린 이른바 판축 기법으로 지어진 보루 등 전반적 기쿠치성 축조 방식이 백제의 기술이라는 것이 구마모토현 측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기쿠치 시내에서 차를 타고 1시간가량이면 활화산인 아소산과 구마모토성에도 쉽게 다다를 수 있다.
■한국과의 인연 강조
안중근 의사 전문 작가인 쓰루 케사토시 씨가 기쿠치시에 기증된 안 의사의 유필 사본을 설명하고 있다.
기쿠치시는 뿌리부터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한국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후쿠무라 미쓰오 기쿠치시 시장은 한일 무비자 운동을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주창한 지자체인 점을 강조했다.
일행이 지난달 29일 기쿠치를 방문했을 때 일본인으로서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책을 유일하게 집필한 쓰루 케사토시 씨가 안 의사의 유필이 새겨진 족자 사본을 공개했다. 쓰루 케사토시 씨는 기쿠치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다.
사본 족자에는 안중근 의사가 처형되기 한달 전인 1910년 2월, 재판장의 일본인 통역관(기쿠치 출신)에게 마지막으로 준 글 '日韓交誼善作紹介'가 쓰여져 있다. 통역관의 손녀가 그간 보관해오던 사본을 지난 3월 기쿠치시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원본은 행적을 알 수 없다. '일본과 한국이 서로 좋은 점을 소개해 서로 교류하자'는 뜻으로 안 의사가 한일 간의 교류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 기쿠치 가는 길
- 후쿠오카서 1시간30분 소요 - 현재는 직행버스 없어 불편
후쿠오카에서 기쿠치는 버스로 1시간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하지만 기쿠치로 가는 직행버스가 없어 가는 길이 조금 불편하다. 먼저 후쿠오카에서 구마모토시로 이동한 뒤 구마모토시에서 기쿠치까지 연결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구마모토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해 총 3시간가량 걸려 이동시간이 좀 길다. 신칸센을 타고 구마모토역에 내려 기쿠치까지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구마모토공항에서 기쿠치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김해공항-구마모토공항 취항 노선은 현재 없고, 인천공항에서는 주 3회 운항하고 있어 수도권 사람들의 여행이 좀 더 편리한 실정이다. 후쿠무라 미쓰오 기쿠치시 시장은 "부산 경남권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김해공항-구마모토공항 취항 노선을 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므로 토마토재팬(051-468-3322) 등 기쿠치 전문 여행사를 통하면 좀 더 편리하게 기쿠치를 여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