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강대국으로 가는 가시밭길에 서서
- 시청각중복장애인 교육과 재활 국제세미나에 다녀와서
우리나라는 과연 복지 선진국의 대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일까? 3월 15일 오후 2시 국회 도서관 강당에는 300여명분의 객석이 모자랄 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시청각중복장애인 국제세미나를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일반인들보다는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처해 있는 장애인들의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 우리사회의 복지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구청의 지원을 받아 매년마다 열리는 동제가 오로지 노인들의 동네잔치가 되어버린 것처럼, 장애인 당사자들과 그들을 안내하기 위해 시간을 쪼갠 도우미 및 복지사 등을 빼놓으면 과연 순수한 관심 때문에 찾아온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될까?
세상 밖에선 도무지 무관심한 이들의 목소리가 한낮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 것인가? 말 하는 사람도 장애인, 들어주는 사람도 장애인!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줄 일반인들은 정말로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나라 복지의 씁쓸한 현주소인 셈이다.
이들의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온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매일처럼 싸우기에 바쁜 여당과 야당이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을 위해 모였다는 것이 기쁘다”고 전하며, “국가와 사회가 소외계층에게 그들의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빈으로 참석한 전재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시 정부의 무관심을 꼬집었지만, “아파본 사람이 아파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며, 정화원 한나라당 의원과 장향숙 열린우린당 의원이 함께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하는 모습은 반갑고도 고마운 일이라고 전했다.
이들의 인사말과 축사를 전해 들으면서도 언제까지 아픈 자들만이 계속 아프게 내버려 둘 것이냐고 아무도 묻지 못했다. 결국 다시 아픈 자들의 몫으로 남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사렛 대학교와 함께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은 “그나마 이번에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장애인 운동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단결과 단합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인들 스스로가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그야말로 병신육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 사회의 나태함에 대한 따가운 일침을 가했다.
공동주최자인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 역시 우리나라의 복지현실을 개탄했다. 또한 장애인들 중에서도 더 소외당하는 장애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절감하게 되었다며, “이번 세미나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인프라 구축의 시초가 될 것이며, 좋은 배움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자가 누가 있을까? 그 시작이 미비한 탓이라지만, 이번 세미나에 발제자로 나온 10여명의 관련 학자들 중에는 시청각장애인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누군가 쓰다 버린 논문을 그대로 짜깁기한 인상을 남기는 참으로 어설프고 미비한 연구실적을 발표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학자는 학문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심중에 시청각장애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이는 그들의 학문 역시 ‘죽은 자의 외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이 아직은 출발 단계이기 때문에 겪는 시행착오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이다.
물론 그중에는 시청각장애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준 발제자도 있었다. 진정한 학자의 면모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학문도 아니고 ‘복지’ 관련 학문이기 때문에 그들의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애정과 관심은 당연히 그 연구의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제언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무엇보다 먼저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실태조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중복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무지와 무관심이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할 수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독자적인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 그들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당사자 중심의 협회 추진도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특성화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들의 장애 특성에 맞추어 교육을 전담할 수 있는 교육기관 설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시청각장애인들의 교육이나 취업은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 밖에서 시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도울 수 있는 일명 ‘점화’(손가락으로 점자를 손등에 찍어 의사를 소통하는 방식)교육에 힘쓰는 것, ‘한소네’와 같은 점자단말기 등 기자재의 보급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무수한 편견과 차별이 존재한다. 하늘이 내린 천부인권마저 자신들의 탐욕 아래 독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사회의 가장 약자인 그들을 내세워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파렴치한들이 서로의 이권을 위해 장애인을 사이에 두고 이권다툼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 잔인하지만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다.
복지 강대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가시에 찔리면서 가야하는 험난한 길인 것이다. 이번 세미나를 참관하고 돌아오면서 ‘과연 그 아픈 가시에 찔릴 준비를 하고 그 길에 동참하는 순수한 영혼들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부디 자신의 명예나 직위, 사욕 따위 때문에 자신의 양심까지 팔아먹는 위선자들이 나타나 이들의 눈과 귀를 더 많이 아프게 하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