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흥종교와 종교의식구조 날짜: 출처: I. 머리말 한국사람의 종교심성을 한마디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인류학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샤머니즘적 신흥종교적 심리학적 종교학저 사회학적 역사학적 민속학적 정신의학적 등의 측면에서 '다각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신흥종교라는 반사경을 통해서 거기에 투사된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한국은 종교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스런 각종 종교단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60여개의 기성종교와 313여개의 신흥종교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외국인들 가운데 인류학자나 민속학자를 비롯하려 종교에 관심있는 인사들이 한국에 와서 받는 인상은 한국인이 종교적인 민족이라는 사실이며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우람한 아름드리 수목만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험산준령, 고목, 기암, 강과 바다만 보아도 거기에는 신령님이 있다고 신성시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우리가 말하는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은 자연숭배사상을 신앙화한 것이며 그 연원은 단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민속학자 김태곤은 한국인이 섬기는 귀신의 종류가 자그마치 273 종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수많은 신령을 섬겨온 한국인은 유교나 불교, 기독교 등 고동종교에서 총족시킬 수 없는 종교욕구를 다신론적이고 범신론적인 샤머니즘과 고등종교의 무속화에서 총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있어서 그 참 모습을 우리는 신흥종교를 통해서 어떻게 유출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II. 한국인의 종교심성 1. 기복성 신흥종교가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현세적 이익을 약속하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처럼 요행과 운명 운수 행운의 개념에 민감한 국민도 아마 드물 것이다. 매년 정초가 되면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1년간의 운세를 점쳐보기 위해 토정비결을 보거나 점술가를 찾아 문전성시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설, 정감록비결 등 도참사상까지 가세하여 한국인은 숙명론 속에 살아오고 있다. 신흥종교는 믿기만 하면 만병통치가 되고 소원성취, 부귀영화, 만사형통을 할 수 있다고 목전의 이익을 약속한다. 일본에서 도입된 일련정종 창가학회의 경위 입신하여 회원이 되면 7년내에 모든 소원이 이뤄지고 뜻대로 된다고 선전한다. 같은 일본계의 신흥종교인 천리교에서는 심신불이라하여 용심에 의한 육체적 조건의 변화를 통해 마음의 병을 바로잡으면 그 결과로 육신의 병이 낫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악한 것 제거하여 주시고 도와주소서. 나무천리왕님이시여!"라고 읊조리면서 마치 유희를 하는 제스처를 하면서 신락가란 노래를 21회 부르고 옥수란 물을 소금과 함께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주장한다. 박태선 전도관에서는 생수를 마시고 박태선 교주로부터 안찰을 받으면 병이 낫고 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찬물교 계통의 신천지대안도나 삼법교화수도원, 용화삼덕도 등에서는 찬물를 마시고 단식으로써 병도 낫고 심신의 죄악을 씻고 도통의 경지에 이른다고 믿고 있다. 그외 대부분의 신흥종교 집단에서는 방법과 수단은 다소 상이할지라도 치료, 기자, 만사형통 등 현실적인 이익을 내세우는데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상기한 제현상들이 기성종교에 도입되어 특히 개신교의 경우를 예로 들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영육간의 축복의 개념은 다만 물질적인 풍요를 구하는 원시적인 기복의 개념으로 변형되고 있다. 따라서 기성종교는 점차로 기복종교화하고 있어 한국인의 종교심성은 만사형통, 무병장수, 운수대통, 소원성취, 부귀영화, 만병통치 등 현세적인 문제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현실성 기성종교가 흔히 내세,피안,천국,극락등 타계지향적인 데 반해서 신흥종교는 퍽 현세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막연한 의미의 천국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가시적인 지상천국의 실현을 꿈꾸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대부분의 신흥종교 집단에서 볼 수 있는 실현가능한 지상천국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부단한 외세의 침략과 박해, 그리고 현실주의적인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상과 미래보다도 현실과 현재를 더 중요하게 여겨왔고 또 그런 방식으로 생활해왔다. 특히 현세적인 지상천국 사상이나 후천개벽 사상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고통을 받고 도탄 가운데서 희망과 용기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한가닥 소망과 위안을 주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인내와 새로운 삶에 대한 용기를 준다. 동학의 경우 개벽사상은 천지의 운행질서를 바꾸는 천지개벽, 나라의 정치사상과 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민족개벽, 인간개인의 정신상태가 일신되는 정신개벽 등을 들고나와 이것이 인내천사상의 근본원리가 되고 있다. 한국의 근대 종교사상사에서 동학, 증산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김일부의 정역사상에서도 그 주축은 후천개벽이라고 볼 수 있다. 본명이 김항인 일부는 36세 때인 1861년 연담 이운규로부터 주역을 배우다가 60세 때인 1855년에 깨달은 바 있어 주역의 원리를 재구성하고 한국적인 해석을 통해서 정역을 내놓았다. 정역에 있어서 중국의 주역에서 말하는 후천천세계는 모두 선천세계인데 반하여 정역은 한국이 중심이 되어 이룬 역사의 후천세계를 내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일부의 정역은 선후천사상, 일월개벽사상, 신명개벽사상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박태선 전도관의 천년왕국, 천년성, 통일교의 복귀된 선의 세계, 세계일가공회의 한님의 세계, 용화교의 용화선경, 단군교의 능원 세계 등은 모두 실현 가능한 지상천국에 대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잇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락과 영생을 약속하고 있는 신흥종교는 그러므로 민중의 강한 지지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한국인의 종교심성은 신흥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단히 현세적이고 구체적이며 실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igmund Freud는 편집증의 연구란 정신분열증논문에서 세계멸망의 환상과 세계재건의 환상을 제시한 바 있으나 이것은 신흥종교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지상천국, 유토피아 건설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독선배타성 흔히 신흥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계층을 살펴보면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고 힘센 자에게 억압받고 남에게 인정받지 못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발버둥쳐 보았으나 불의한 자에게 짓밟히고 실패한 사람,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으나 가난의 수렁을 헤어날 수 없는 만년 가난뱅이, 연애.결혼 등 사랑에 실패한 사람, 가정이 파탄된 자, 입학시험, 취직시험 등 치열한 사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 사회 불공평을 한탄하고 절망과 실의 속에서 자살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자, 난치병 고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자, 기성종교에서 멸시와 냉대를 받고 쫓겨난 자,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신흥종교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실패하고 패배한 사람들끼리 동류의식이 강화된다. 이 동류의식은 동지의식으로 굳어진다. 필자는 동류의식은 동지의식을 합하여 끼리의식이라고 명명해 보았다. 이 '끼리의식'이 고착되면 배타성과 독선의식이 된다. 전도관의 경우 그들의 교주가 아닌 사회인은 모두 마귀의 자식이요 사탄이며 기성교회의 목사와 신부 등 성직자는 마귀의 우두머리라고 부른다. 그들 그룹에서는 대단히 협조적이고 우애스럽지만 전도관 밖의 사람들은 모두 멸망당할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신앙적인 독선은 매우 강하여 전도관 울타리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비록 그룹에 있을지라도 교주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 교주로부터 '아무개네 마귀 씌웠다'하면 지금까지의 협조와 우애는 간곳없이 모두 외면하고 지나가며 어린 아이들까지 침을 뱉고 따돌려 결구 재산을 포기하고 이탈케 해버린다. 통일교의 경우, 교인들끼리는 '식구'라고 부른다. 이것은 장황한 교리적 설명을 요하지만 개관한다면 문선명 교주 부부는 타락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에 있어서 원죄없던 아담과 하와같은 존재이므로 인류의 참된 부모라고 한다. 그 '참 부모'외에 모든 신도들은 자녀들이므로 '식구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기도 끝맺음에 반드시 "참 부모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정하고 있다. 역시 통일교에서도 자기네 외에는 모두 사탄에게 속해 있으므로 이를 정복해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한국인은 흔히 내가 못 사는 이유를 남에게 돌리고 있다. ' 때문에 의식'이 강한 국민들 중의 하나가 우리 한국인일지 모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각종 당쟁 당파싸움도 엄밀히 따지면 이 ' 때문에 의식' 때문이다. 항상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남을 믿지 못하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일 수 있다. 신흥종교는 기성종교를 공격하고 비난함으로써 막연하게나마 피해의식을 보상받는다. 4. 신비주의적 성향 한마디로 말해서 신흥종교는 신비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 신비의 베일을 쓰지 않은 신흥종교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설혹 있다 해도 명맥을 유지할 수가 없다. 특히 교주의 신비적 체험은 말할 것도 없으며 창교과정의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신비성 문제이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경우 그들의 경전인 원리강론 총서 17면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문선명을 보내셨으니이 분은 수십 성상을 두고 역사이래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조차 없는 황망한 무형세계를 헤매시면서 혈혈단신으로 영계와 육계의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의 수많은 성현들과 자유로이 접촉하시며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하는 가운데 모든 천계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말하자면 문교주는 이미 16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비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막계리 청계산 저수지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기독교 장막성전교회(교주 유재열)의 경우, 17세의 어린 소년으로 교주가 된 유재열은 1965년 1월 어느날 영등포 대방동에서 길가던 중 예수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때 예수는 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하늘에서 소리나기를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네게 큰 일을 밑기노라"고 했다고 한다. 1966년 3월 1일에는 우물가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한줄기 태양빛이 강하게 비치기에 방안으로 피해 들어갔더니 빛이 따라 들어와 그대로 쓰러졌는데 그때 입을 벌리고 두루마리 성경을 받아먹었다고 하면서 27명의 증인까지 있다고 우기고 있다. 한걸음 더 나가 악명높은 동방교(현재 문공부에 재단법인 밀알복음 전도선교회로 등록하여 '주간기독교'란 신문까지 발행하고 있음)의 교주 노광공은 심판주요 창조주로서 평양에서 태어났는데 난지 3시간 만에 말을하고 7시간 만에 혼자 보행을 했으며 부산 앞바다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녔다고 비밀 경전인 경화록에 기록하고 있다. 이상 대표적인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았지만 아무튼 신흥종교는 그 신비성을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 신앙의 내용에 있어서도 이상스러운 방언, 에언, 투시, 진동, 이적, 엑소시즘, 치료등 신비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통일교를 비롯하여 증산교, 동학교 할 것 없이 공히 주장하고 있는 해원사상이야말로 신비성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통일교가 1975년도에 '희망의 날 대향연'이란 것을 전국 대도시에 전개한 바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드리는 해원성사라고 문교주는 말하고 있다. 신비주의는 종교적 신앙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idea의 세계가 형식화하거나 외형적인 예배 또는 교리로 굳어졌을 때 일어나며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매혹시키지만 특히 교양있고 지적인 사람들이 쉽게 매혹된다. 한국인들은 신비적인 것을 좋아하고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때때로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5. 복합이중성 신흥종교는 혼합종교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종교의 교리를 종합하여 핵심만을 뽑아서 만든 혼합주의적인 교리를 갖고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민간신앙이요 원시종교로서 민간 사이에 전승되어온 바 항상 외래종교와의 만남에 있어서 그 놀라운 침식력은 외래종교, 고등종교의 무속화현상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신흥종교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타종교의 교리까지도 혼합 융화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신흥종교의 교리치고 유불선(儒佛仙)합일지도를 표방하지 않은 집단이 오히려 소수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천도교의 경우, 교조 최수운은 "오도(吾道)는 원래 유도 아니고 불도 아니며 선도 아니다. 연(然)이나 오도는 유불선합일이 아니라 즉 천도는 유불선이 아니로되 유불선은 천도의 한 부분이니라. 儒의 윤리와 佛의 각성과 仙의 양기는 사람성의 자연스런 품성이며 천도의 고유한 부분이니 오도는 무극도원을 잡은 자니라"라고한다. 便正儒道란 교리를 가진 일심교의 정식 명칭 '時運氣和儒佛仙東西合一大道大明大吉儒道便正敎化一心'에서도 syncretism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전래된 일관도계인 국제도덕협회는 유불선회취까지 합일했다고 주장하며 각세도는 유불선취 합일지교라고 말하고 있다. 찬물교파 중의 하나인 사단법인 삼법수도교화원 역시 유불선을 삼법이라고 하며 이 삼법합일지도가 바로 자기네 교리의 진수라고 주장한다. 통일교의 경우 원리강론은 기독교의 성서를 인용함은 물론 주역의 음양오행설, 정감록비결, 샤머니즘, 불교적인 요소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특이한 것은 각기 다른 종파의 교리가 이렇다할 저항없이 융화되어 syncretism을 형성한다. 이 복합성은 외형상 통일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항상 갈등과 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외적인 수용성과 내적인 거부성은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강한 자에겐 약하고 약한 자에겐 강하며 권력 앞에서는 약한 듯 하면서도 내적으로 항상 반항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냉수 먹고이 쑤신다'란 속담은 이러한 복합적이고 이중성을 지닌 한국인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한 경우이며 이러한 현상은 신흥종교 중 교리의 이중성을 지닌 사교집단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체면과 외면치레를 중시하는 한국민의 성격 형성은 신흥종교의 복합적인 교리 속에서 잘 파악된다. 6. 동적 오락성 기성종교가 정적이라면 신흥종교는 매우 동적인 것이 특징이라보 볼 수 있다. 불교에 있어서 좌선, 참선, 천주교에 있어서 장엄한 미사의식, 개신교의 예배의식 등은 모두 정적이다. 그러나 신흥종교는 샤머니즘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동적 오락성을 지니고 있다. 뛰고 흔들고 뒤틀고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광란적이고 열광적이다. 전후 일본의 신흥종교를 연구했던 니일 맥팔랜드 교수는 신흥종교가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고 있는 원인을 지적하면서 환희적이고 동적인 성향을 들었지만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박태선 전도관을 비롯하여 계룡산의 여호와새일교단, 장막성전 등 기독교 계통의 신흥종교는 예외없이 모두 템포 빠른 찬송가에 박수를 치며 심한면 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예배의식을 진행한다. 일련정종 창가학회의 경우 '남묘호랭게교'란 일어 주문을 외며 두 손바닥에 주수(염주)를 굴리며 두 눈은 똑바로 뜬채 본존을 응시 한다. 본존이란 일본의 개국신인 천연대신(아마데라쓰오미까미), 16대 천황인 흥인천황, 호국신 등의 이름이 새겨진 목판부적이다. 이들의 주문이 연송됨에 따라 동작은 매우 격렬해진다. 그외 증산교나 단군계의 종파에서도 이런 동적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은 절기에 따라 놀이가 매우 발달되어 있다. 풍악놀이, 농악놀이 심지어 샤머니즘에서 양식은 노래와 춤으로 일관하고 있다. 3세기경 진나라 사람 진수가 쓴 '위지 동이전'에 보면 우리나라의 원시종교 형태가 기록되어 있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한의 소도, 예의 무천 등을 보면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연일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우리의 원시종교 형태에서 보듯이 동적인 오락성은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깊은 뿌리가 돼왔으며 최근 특이한 것은 세계 종교, 고등종교라고 불리우는 기성기독교 속에도 이런 동적인 오락성이 스며들어 괄목한 만한 발전을 갖져왔으며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는 서울시내의 몇몇 교회들은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정적인 의식의 교회는 급성장하지 못하고 동적인 의식을 행하는 교회는 급격히 성장 발달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의 의식구조 특히 종교심성은 퍽 동적임을 알 수 있다. 7. 숭배형 심성 신흥종교에 있어서 교주는 신의 대리인이거나 바로 신,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도들은 불가시적인 신앙대상으로 만족할 수 없고 가시적이며 구체적인 카리스마(charisma)를 요구한다. 우리의 샤머니즘에서도 막연한 신보다는 보이는 산과 바다, 바위, 해와 달, 별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산에는 산신이 있는데 산신의 구체화를 호랑이로 보고 있다. 또 물 속의 용왕과 연결해주는 수단으로 거북을 이용한다. 기독교계 신흥종교는 메시아의 의인화를 그들의 교주에게서 찾고 있으며 불교계 신흥종교단체들도 미륵불의 구체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들의 교주라고 보고 있다. 또한 반왕조적 민간신앙인 도참사상에서는 정도영신앙이 그들의 교주에게서 구체화되고 있다. 토마스 오데아는 그의 저서 The Sociology of Religion에서 the living God의 개념을 설정하고 있는 바 신흥종교의 교주들은 한결같이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 산 부처님, 메시아 구세주인 것이다. 한국의 신흥종교에서 신도들이 그들의 교주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숭재하려는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열등감, 무력감, 개인의 무의미등이 마음에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권위주의에 의지함으로 안도감을 얻는다. 토마스 오데아는 고난을 가져다주는 사회적 상황은 때때로 눌린자, 피압박자에게 이 현실과 내세의 구원을 약속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서 '메시아적 운동'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교주 숭배행위는 성스러운 존재와의 관계에 있어서 연합의 재연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동학의 최수운 교조를 대신사, 제세주, 천사주로 증산교의 교주 강일순을 천신, 옥황상제, 구천상제로, 일심교의 강태성을 영신황제로, 신천지대안도의 부경순을 천지어머니, 미륵세존, 옥황상제로, 정도교의 이순화교조를 대천주님으로 동방교의 교주를 이레신명, 심판주, 여호와이레, 이래천부로, 신권도학연구소의 교주를 하나님의 둘째 아들, 재림주, 심판장으로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를 메시아, 참 아버지, 우주의 아버지로, 단군교의 이창교 교주를 영모님, 국사님으로 각기 신격화시켜 지칭하는 것은 신흥종교 신도들의 교주를 향한 가시적인 메시아사상의 표현이라고 볼수 있다. 신흥종교에 있어서 교조숭배사상은 세상에서 소외당한 자, 공동체 안에서 버림받은 자, 기성교회로부터 염증을 느끼고 뛰쳐 나온 자, 사회의 불공평을 한탄하고 사회의 밑바닥에서 그날 그 날의 삶을 영위하는 자 등 기층권에 속한 자들에게 그들을 구제 해주고 소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전인전능의 화불(活佛) 생신(生神)으로 대망된다. 이때 이러한 교주는 하늘에서 스스로 하강한 자여야만 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인류 구원의 목적을 위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마음대로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전능한 신인적 지고의 존재여야 한다. 이러한 교주숭배 유형의 사상은 기성종교 속에서도 목사,신부,승려등 성직자를 섬기며 숭배하는 신도들의 태도로 보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동소이한 현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III. 맺는 말 신흥종교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한국인의 종교심성은 다채롭고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교리면에서는 모든 교리를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도 가지고 있어 혼합주의 교리가 보편성을 띠고 있다. 기성종교가 그 의식면에서 정적이라면 신흥종교는 동적인 오락성마저 띠고 있고 기성종교가 현실보다는 타계지향적인데 반하여 신흥종교는 지극히 현실적이요 가시적인 메시아, 실현가능한 지상천국의 전개를 약속한다. 뿐만 아니라 신도들은 신비주의적이며 기복적이고 교주의 권위에 스스로 복종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이로 인하여 위기의식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조상 대대로 외세의 부단한 침략에서 생존하기 위한 슬픈 수단의 하나가 의식화되어 나타난 현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은 요행과 운명, 숙명을 지닌 채 체념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이제 점점 숙명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 서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가를 살펴보고 새로운 역사창조의 분수령에 서서 새로이 전개되고 있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향하여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
첫댓글 동양이나 서양이나 민간신앙의 보편적인 정서는 현세에서 얼만큼 자신의 삶이 보호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정도차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에서 조차 민간신앙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기존 종교는 민간신앙에 비하면 덜 인격적이며, 덜 구체적인 신성격을 갖고 있죠. 신흥종교는 교주가 신 자체로 받아들여지기에 민간신앙 보다도 훨씬 더 인격적입니다. 바로 바로 응답하는 현존하는 신, 그 신과 함께하기 때문에 갖게되는 안정감 그것은 대단하지요. 현세에서 부러울 것 없는 사람도 그 안정감에 도취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불안해 한다는 것이죠.
교주가 이 불안을 없애주기 때문에 거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불안한 존재이며, 그 불안을 해소하는 동기조차 굉장히 복잡합니다. tv에 나타난 교주의 유치한 행위에 열광하는 신도들을 보면 무슨 생각드십니까? 사실은 거기서 신앙의 힘이 나온답니다. 그 신앙의 힘이 아름답게 전개될 때, 테레사 수녀가 되고, 슈바이처도 되는 것이죠. 보통사람으로서는 교주에 미친 신도나 테레사나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쪽은 미친*이 되고, 한쪽은 성인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신앙의 힘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방향만은 올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