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註解)《환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 (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 제오 (蘇塗經典本訓 第五)
신시(神市)의 세상에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가 있었다. 대호(大嘷)와 동문(同門)에서 수학하고 이미 도(道)가 통하였다. 바야흐로 저(渚)와 풍산(風山) 사이에서 유람하고 있었다. 문득 성화(聲華)를 듣고 아사달(阿斯達)을 보니 제천의 예를 마치었다. 인하여 송(頌)을 지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대일(大一) 즉 극(極)은 양기(良氣)가 이름이다. 없는 듯 있는 듯 혼(混)하고, 빈 듯 거친 듯 묘(妙)하다. 삼일(三一)은 그 체(體)요 일삼(一三)은 그 용(用)이다. 혼묘(混妙)는 하나의 고리(環)로 체와 용은 갈라지지 않는다. 커다란 허공(虛空)에 빛이 있으니 이것이 신(神)의 모양이요, 커다란 기운이 오래오래 있으니 이것이 신의 조화(造化)이다. 진명(眞命)의 근원이요 만법(萬法)이 여기서 나온다. 일월(日月)의 아들(子)은 천신(天神)의 충(衷)이다. 비추어 선(線)이 되고 원각(圓覺)하여 능히 세상에 크게 내리어 만 가지 그 무리가 있게 된다. 고로 원(圓)은 일(一)이요, 무극(無極)이며, 방(方)은 이(二)요, 반극(反極)이며, 각(角)은 삼(三)이요, 태극(太極)이다. 무릇 홍익인간은 천제(天帝)가 환웅에게 내린 까닭이다. 일신강충(一信降衷)과 성통광명(性通光明)과 재세이화(在世理化)와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신시(神市)가 단군조선(檀君朝鮮)에 전한 이유이다.」고 하였다.
환역(桓易)은 우사(雨師)의 관(官)에서 나왔다. 때에 복희(伏羲)가 우사가 되어 육축(六畜)을 길렀다. 이때에 신룡(神龍)이 해(日)를 쫓아 해가 12번 변색하는 것을 보고 곧 환역을 만들었다. 환(桓)은 곧 희(羲)와 같은 뜻이다. 역(易)은 곧 옛날 용(龍)의 본자(本字)이다.
자부선생(紫府先生)은 발귀리(發貴理)의 후(後)다. 나면서부터 신명(神明)하여 도를 얻고 비승(飛昇)했다. 일찍이 해와 달이 얽히는 것을 측정하고 이어서 오행의 수리(五行之數理)를 추고(推考)하여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지었다. 이것이 칠성력(七星曆)의 시작이다. 뒤에 창기소(蒼其蘇)가 또 그 법을 다시 연(演)하여 오행치수법을 밝혔는데 이것 또한 신시 황부(黃部)의 중경(中經)에서 온 것이다. 우인(虞人) 사우(似禹)가 회계산(會稽山)에 찾아와 조선(朝鮮)에서 가르침을 받고 자허선인(紫虛仙人)에게 부탁하여 창수사자(蒼水使者) 부루(扶婁)를 만나보고 《황제중경(黃帝中經)》을 받았다. 곧 신시(神市) 황부(黃部)의 중경(中經)이다. 우(禹)가 그것을 써서 치수(治水)에 공이 있었다.
환역(桓易)은 체(體)는 원(圓 )이고, 용(用)은 방(方)이다. 무상(無象)에 연유하여 실(實)을 안다. 이것이 천(天)의 이(理)이다. 희역(羲易)은 체는 방이고 용은 원이다. 유상에 연유하여 변화를 안다. 이것이 천(天)의 체(體)이다. 금역(今易)은 호체(互體) 호용(互用)이다. 스스로 원(圓)이 되어 원, 스스로 방(方)이 되어 방, 스스로 각(角)이 되어 각이다. 이것이 천(天)의 명(命)이다. 그리하여 천(天)의 근원은 일대허무(一大虛無)의 공(空)일 따름이다. 어찌 체(體)가 있다고 할 것인가. 천(天)은 스스로 본래 무체(無體)이며, 28수(宿)는 곧 거짓으로 체(體)가 된 것이다. 대개 천하(天下)의 물(物)은 호명(號名)이 있으므로 다 수(數)가 있는 것이다. 수가 있으므로 다 역(力)이 있다. 이미 수가 있다고 말하였으니 유한(有限) 무한(無限)의 다름이 있고, 또 역(力)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유형(有形) 무형(無形)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물(物)이 그것으로써 말(言)이 있는 것은 다 그것이 있는 것이요, 그것으로써 말이 없는 것은 다 그것이 없는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은 천제(天帝) 환국(桓國) 구전(口傳)의 서(書)이다. 환웅대성존(桓雄大聖尊)께서 천강(天降)한 후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써 그것을 썼다. 최고운 치원(崔孤雲致遠)이 또한 일찍이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갱부작첩(更復作帖)하여 세상에 전한 것이다. 그러나 본조(本朝)에 이르러 유서(儒書)에만 전의(專意)하고 조의(皂衣)와 더불어는 상문(相聞)하지 아니하여 살아남고자 하였으니 그 또한 한(恨)인 것이다. 그런고로 특히 그것을 표출(表出)하여 후래(後來)에게 보인다.
천부경 81자 (天符經 81字)
일시(一始) 무시일(無始一) : 1은 시작이나 1에서 시작하지 아니하고,
석삼극(析三極) 무진본(無盡本) : 3극을 쪼개어도 근본은 없어지지 아니한다.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 천은 한 번 움직여서 수(數) 1을 얻고, 지는 천 다음으로 한 번 움직여서 수 2를 얻고, 인은 지 다음으로 한 번 움직여서 수 3을 얻는다.
일적십거(一積十鉅) 무궤화삼(無匱化三) : 1이 나뉘어 10까지 커져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3으로 변화한다.
천이삼(天二三) 지이삼(地二三) 인이삼(人二三) : 천이 두 번 움직여서 3과 합하고, 지가 두 번 움직여서 3과 합하고, 인이 두 번 움직여서 3과 합한다.
대삼합육(大三合六) 생칠팔구(生七八九) : 큰3(天一, 地二, 人三)을 합하면 6이 된다. 6이 7,8,9를 낳는다.
운삼사성(運三四成) 환오칠(環五七) : 3을 움직여서 4를 이루고 5,7로 돌아온다.
일묘연(一妙衍) 만왕만래(萬往萬來) : 1이 묘하게 퍼져서 만왕 만래하니
용변(用變) 부동본(不動本) : 써서 변하여도 근본은 움직이지 아니한다.
본심(本心) 본태양(本太陽) : 본심은 본래 태양이니
앙명(昻明)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 사람 속의 천지일은 밝고도 밝다.
일종(一終) 무종일(無終一) : 1은 끝이나 1에서 끝나지 아니한다.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은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헌원(軒轅)에게 주어서 그것을 사용하여 마음을 씻고 의(義)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삼청궁(三淸宮)에서 살았다. 궁(宮)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으 양지(陽地)에 있었다. 헌후(軒侯)가 친히 치우(蚩尤)를 조현(朝見)하려고 가는 길에 명화(名華)가 있어 승문(承聞)한 것이다. 경문(經文)은 신시의 녹도(鹿圖)로써 그것을 기록하였다. 나눠서 3편(篇)이 되었다. 후인(後人)이 추연(推演)하고 가주(加註)하여 별도로 신선음부의설(神仙陰府之說)이 되었다. 주진(周秦) 이래 도가자류(道家者流)의 의탁한 바가 되어 간혹 연단(鍊丹) 복식(服食)하는 일이 있었는데 허다한 방술(方術)의 설(說)이 분운(紛紜)하게 잡출(雜出)하여 혹닉(惑溺)하는 일이 많았다. 서복(徐福)이 한(韓)에 이르러 마침내 역시 회사(淮泗)의 산(産)으로서 본디 반진(叛秦)의 뜻이 있으므로 이에 이르러 입해(入海)하여 구선(求仙)한다고 말하고 인하여 도망하여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일본(日本)의 기이(紀伊)에 서시(徐市) 제명(題名)의 각(刻)이 있다. 이국(伊國)의 신궁(新宮)에 서시의 묘사(廟祠)가 있다. 서복(徐福)을 일칭 서시(徐市)라고 한다고 하였다. 시(市)는 복(福)의 음이 혼동된 것이다.
《삼일신고(三一神誥)》는 본래 신시개천(開天)의 세(世)에 나와 서(書)가 된 것이다. 대개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의 뜻으로써 본령(本領)을 삼고 있으며 5장(章)으로 나누어 천신 조화의 원(天神調和之源)과 세계인물의 화(世界人物之化)를 상론(祥論)하였다. 그 1장 허공(虛空)은 1은 시작이나 시작을 같이하지 아니하고 1은 끝이나 끝을 같이하지 아니한다는 것과 더불어 외허내공(外虛內空)중에 상(常)이 있다는 것이요, 그 2장 일신(一神)은 공왕색래(空往色來)가 주재(主宰)가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은 삼신(三神)이 대제(大帝)가 되어 실로 공(功)이 있다는 것이요, 그 3장 천궁(天宮)은 진아(眞我)가 사는 곳으로 만선(萬善)이 자족하는 영원한 쾌락이 있다는 것이요, 그 4장 세계는 모든 별은 해에 속하며 많은 백성이 있고 대덕(大德)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이요, 그 5장 인물(人物)은 삼신귀일의 진(三神歸一之眞)에서 같이 나왔는데 이것이 대아(大我)라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혹 《삼일신고(三一神誥)》를 도가(道家)의 초청지사(醮靑之詞)라고 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대단한 잘못인 것이다. 우리 환국(桓國)은 환웅(桓雄) 개천으로부터 천신(天神)을 주제(主祭)하고 신고(神誥)를 조술(祖述)하고 산하(山河)를 회척(恢拓)하고 인민을 교화(敎化)하였다. 오호라 신시 천황(神市天皇)의 건호(建號)는 지금 이미 삼신 상제(三神上帝)의 가르침을 받아 무량의 홍조(洪祚)가 웅호(熊虎)를 초무(招無)하고 사해(四海)를 안정하여 위로는 천신(天神)이 홍익인간의 뜻을 높이 들고 아래로는 인세(人世)가 무고의 원(無告之怨)을 풀었다. 이때에 사람은 스스로 순천(順天)하여 세상에는 거짓과 망령됨이 없고 무위자치(無爲自治)하고 무언자화(無言自化)하였다. 풍속은 산천(山川)을 중히 하여 서로 침섭(侵涉)하지 아니하였으며 서로 굴복하는 것을 귀히 하여 죽음에 뛰어 들어가 위급함을 구제하였다. 이미 의식(衣食)이 고르고 또 권리가 평등하여 함께 삼신에 돌아가 서원(誓願)하는 기쁨을 나눴다. 화백(和白)하여 공정히 하고, 책화(責禍)하여 믿음을 지키고, 통력(通力)하여 일을 바꾸고, 분업(分業)하여 서로 돕고, 남녀가 다 직분이 있었으며, 노소가 복리를 함께 누렸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쟁송(爭訟)하지 아니하고 국가와 국가는 서로 침탈(侵奪)하지 아니하였다. 이를 말하여 신시 태평의 세상이라 하였다.
삼일신고 총 366자 (三一神誥 총 366字)
제 1장 허공 36자 (虛空 36字)
제(帝)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 오가(五加)의 무리들아. 창창(蒼蒼)한 것이 하늘이 아니다. 현현(玄玄)한 것도 하늘이 아니다. 하늘은 형질(形質)이 없고, 단예(端倪)가 없고, 상하사방(上下四方)이 없고, 허허공공(虛虛空空)하여 없는 것이 없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다.
제 2장 일신 51자 (一神 51字)
신(神)은 무상(無上)의 제일위(第一位)에 계시며 대덕(大德)하시고 대혜(大慧)하시고 대력(大力)하시어 하늘을 낳고 무수 세계(無數世界)를 주재(主宰)하시며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 하나 빠뜨림이 없이 밝고도 신령하게 하시니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다. 음성(聲)과 기운(氣)으로 원하여 빌면 친히 보이는 일을 끊으시니 자성(自性)으로 구자(求子)하여라. 너희의 뇌에 내려와 계신다.
제 3장 천궁 40자 (天宮 40字)
천신(天神)의 나라에 천궁(天宮)이 있나니 계단(階)은 만선(萬善)이요, 문(門)은 만덕(萬德)이다. 일신(一神)이 유거(攸居)하니 군령(群靈)과 제철(諸哲)이 호시(護侍)하며 대길상(大吉祥) 대광명(大光明)의 곳이다. 성통(性通)하고 공완(功完) 한 자라야 뵙고 쾌락을 영득(永得)한다.
제 4장 세계 72자 (世界 72字)
너희는 삼렬(森列)해 있는 별들을 보았느냐. 그 수(數)는 다함이 없고 대소(大小) 명암(明暗) 고락(苦樂)이 같지 않다. 일신이 많은 세계를 만드시어 해세계(日世)의 사자(使者)가 700세계를 거느리게 하였다. 너희의 땅이 스스로 큰듯하나 한 알(丸)의 작은 세계인 것이다. 중심의 불이 흔들려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가 되고 곧 형상을 보게 이루었다. 신께서 기(氣)를 불어 밑을 싸고 햇빛과 열로 따뜻하게 하시어 걷고(行), 날고(翥), 화하고(化), 헤엄치고(游), 심는것(栽)들을 번식하게 하셨다.
제 5장 인물 167자 (人物 167字)
인물이 한가지로 삼진(三眞)을 받았으나 오직 무리(众)만이 땅을 헤매어 삼망(三妄)이 뿌리를 내렸다. 진(眞)과 망(妄)이 서로 마주하여 삼도(三道)를 지었다.
성(性)과 명(命)과 정(精)이다. 인(人)은 그것을 전유(全有)하고 물(物)들은 그것을 편유(偏有)했다. 진성(眞性)은 선하여 악이 없으니 상철(上哲)이 통하고 진명(眞命)은 청(淸)하여 탁(濁)이 없으니 중철(中哲)이 알고 진정(眞精)은 후(厚)하여 박(薄)이 없으니 하철(下哲)이 보(保)한다. 돌이키면 진일신(眞一神)이다.
심(心)과 기(氣)와 신(身)이다. 심이 성(性)에 의지하여 선악(善惡)을 이루나니 선은 복이 되고 악은 화가 된다. 기가 명(命)에 의지하여 청탁(淸濁)을 이루나니 청은 수(壽)하고 탁은 요(夭)한다. 신이 정(精)에 의지하여 후박(厚薄)을 이루나니 후는 귀하고 박은 천하다.
감(感)과 식(息)과 촉(觸)이다. 전성(轉成)하여 18경(十八境)이 된다. 감은 희, 구, 애, 노, 탐, 염(喜懼哀怒貪厭)이다. 식은 분, 난, 한, 열, 진, 습(芬爛寒熱震濕)이다. 촉은 성, 색, 취, 미, 음, 저(聲色臭味淫抵))다. 무리들은 선악, 청탁, 후박을 서로 섞어 경도(境道)를 따라 마음대로 달리다가 생, 장, 소, 병, 몰(生長宵病歿)하는 괴로움에 빠진다. 철인(嚞)은 지감(止感)하고 조식(調息)하고 금촉(禁觸)하며 일의화행(一意化行)하여 망(妄)을 고치므로 진(眞)이 대신기(大神機)를 발하여 성통(性通)하고 공완(功完)한다.
《신지비사(神誌秘詞)》는 단군 달문(達門)때의 사람 신지 발리(發理)가 지은 것이다. 본래 삼신고제(三神古祭)의 서원문(誓願文)이다. 무릇 상고(上古) 제천(祭天)의 중요한 뜻은 백성을 위하여 복을 빌고 신을 축복하여 나라를 흥왕하게 하는 데 있다. 지금 호사자(好事者)는 《신지비사》를 가지고 도참(圖讖)의 성점(星占)과 서로 출입한다고 하고 추수(推數) 부연(敷演)하여 말하기를 그것이 《진단구변도(震檀九變圖)》라고 한다. 또 감결(鑑訣) 예언(豫言)의 선하(先河)라고 한다. 역시 잘못인 것이다.
그 「저울대(秤榦)는 부소량(扶蘇樑)이다.」고 한 이것은 (辰韓)의 고도(古都)를 말하며 또 곧 단군조선이 도읍한 아사달(阿斯達)이 이것이요, 또한 곧 지금의 송화강(松花江) 합이빈(哈爾濱)이다.
그 「저울추는 오덕지(五德地)다.」고 한 이것은 번한(番韓)의 고도를 말하며 지금의 개평부(開平府) 동북 70리에 소재한 탕지보(湯池堡)가 이것이다.
그 「저울판은 백아강(白牙岡)이다.」고 한 이것은 마한(馬韓)의 고도를 말하며 지금의 대동강(大同江)이요, 곧 마한 웅백다(熊伯多)가 제천한 마한산(馬韓山)이 바로 이것이다.
조용히 삼한(三韓)의 지세(地勢)를 가지고 여러 형석(衡石)에 비유하면 부소량(扶蘇樑)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오덕지(五德地)는 나라의 저울추와 같고 백아강(白牙岡)은 나라의 저울판과 같아서 삼자 중에 하나가 빠지면 물건을 달수가 없듯 나라는 백성을 보호할 수가 없다. 삼신고제의 서원은 오직 삼한 관경(管境)에 사는 민중을 진실로 기쁘게 하려는데 뜻이 있을 뿐이다. 《신지비사》가 전하는 바도 역시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므로 위국일념(爲國一念)과 아울러 충의를 장려하고 제사를 지내서 신을 기쁘게 하여 서원하여 복을 받게 되면 신은 반드시 충(衷)에 내리고 복은 반드시 나라를 흥왕하게 할 것이다. 직접 실행하고 구하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실행하되 구하지 아니하면 일을 이루게 되나니 구하는 자가 어찌 공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의 문자(文字)는 옛날부터 있었다. 지금 남해현(南海縣) 낭하리(郎河里)의 암벽(岩壁)에 신시(神市)의 고각(古刻)이 있다. 부여인(夫餘人) 왕문(王文)이 쓴 법류부의전(法類符擬篆) 자부선생(紫府先生)의 내문(內文) 태자(太子) 부루(扶婁)의 오행(五行)은 다 환단(桓檀)의 세상에서 나온 것이다. 은학(殷學)과 한문(漢文)은 대개 왕문(王文)의 유범(遺範)이다.
《유기(留記)》에 이르기를 「신획(神劃)은 일찍이 태백산(太白山) 푸른 바위벽에 있었다. 그 모양은 ‘ㄱ’ 과 같았으며 세칭 신지선인(神誌仙人)이 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문자를 만든 시초(造字之始)라고 하였으니 그 획의 직(直)은 ‘ㅡ’ 이고, 곡(曲)은 ‘=’ 의 형 이며, 그 뜻은 관제(管制)의 상(象)이 있고 그 모양과 그 소리는 또 계(計)에서 나온 것 같으니 생각해보면 그럴 듯한 것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신인(神人)의 덕으로써 인세(人世)를 애구(愛求)하여 그것에 준하여 진교(眞敎)를 행하면 반드시 인사(人事)가 다 바르게 된다. 현능(賢能)한 사람은 직위에 있고 노유(老幼)를 공양하고 장자(壯者)는 의(義)를 따르고 다자(多者)는 권화(勸化)하고 간사한 자는 쟁송(爭訟)을 멈추고 간과(干戈)는 모사(謀)를 그칠 것이니 이 또한 이화(理化)의 한 도(道)인 것이다.
《대변설(大辯說)》주(註)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의 계곡 암상(岩上)에 신시 고각이 있다. 그 문(文)은 「환웅(桓雄)이 출렵(出獵)하여 삼신(三神)에게 치제(致祭)하였다.」고 하고 또 그 글에 이르기를 「대시(大始)에는 옛일을 전할 때 다만 구설(口舌)에만 의지하였으나 후에 곧 형상을 그림으로 그리고 또 다시 그림이 변하여 문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대개 문자의 근원은 국속(國俗)을 존신(尊信)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일기(一氣)로부터 삼기(三氣)로 갈라진 것이 즉 극(極)이다. 극은 즉 무(無)다. 무릇 하늘의 근원은 곧 삼극(三極)을 꿰뚫어 허(虛)가 되고 공(空)이 된 것이다. 아울러 내외(內外)도 그렇게 된 것이다. 천궁(天宮)은 바로 광명이 모여서 만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며 하늘의 일신(一神)은 능히 그 허(虛)를 체(體)로 하며 그 주재(主宰)이다. 그러므로 일기(一氣)가 곧 천(天)이요, 곧 공(空)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중일(中一)의 신(神)이 있어 능히 삼(三)이 된다. 삼신(三神)은 곧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신이다. 일기(一氣)가 능히 스스로 동작하여 조(造), 교(敎), 치(治), 삼화(三化)의 신이 된다. 신(神)은 즉 기(氣)다. 기는 즉 허(虛)다. 허는 즉 일(一)이다. 그러므로 땅에는 삼한(三韓)이 있어 진(辰), 변(弁), 마(馬)가 되었다. 삼경(三京)의 한(韓), 한(韓)은 곧 황(皇)이다. 황은 곧 대(大)다. 대는 곧 일(一)이다. 그러므로 사람에는 삼진(三眞)이 있어 성(性), 명(命), 정(精)이 되었다. 삼수(三受)의 진(眞), 진은 곧 충(衷)이다. 충은 곧 업(業)이다. 업은 곧 속(續)이다. 속은 곧 일(一)이다. 그러므로 일(一)에서 시작하여 끝에서 끝나 그 진(眞)을 회복한다. 곧 일(一) 즉, 삼(三)은 선(善)에 대합(對合)한다. 미립(微粒)이 적립(積粒)하여 일(一)로 돌아가는 것이 미(美)다. 곧 성(性)의 선(善)한 바요, 곧 명(命)의 청(淸)한 바요, 곧 정(精)의 후(厚)한 바다. 다시 어찌 유(有)가 어떻고 무(無)가 어떻고를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진(眞)은 물들지 않는다. 그 물드는 것은 망(妄)이다. 선(善)은 쉬지 않는다. 그 쉬는 것은 악(惡)이다. 청(淸)은 흩어지지 않는다. 그 흩어지는 것은 탁(濁)이다. 후(厚)는 줄어들지 않는다. 줄어드는 것은 박(薄)이다. 집일함삼(執一含三)하는 까닭은 곧 그 기(氣)가 일(一)이고 그 신(神)이 삼(三)이기 때문이다. 회삼귀일(會三歸一)하는 까닭은 곧 이것 역시 신(神)이 삼(三)이 되고, 기(氣)는 일(一)이 되기 때문이다. 무릇 살아 있는 자의 몸은 이것이 일기(一氣)다. 일기(一氣)의 안에 삼신(三神)이 있다. 지(智)의 근원도 역시 삼신(三神)에 있다. 삼신을 밖에서 일기가 싸고 있다. 그 외재(外在)가 일이다. 그 내용(內容)도 일이다. 그 통제(統制)도 일이다. 역시 다 함회(含會)하여 갈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글자의 근원이 되었다. 함회집귀(含會執歸)의 뜻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신시(神市)에는 산목(算木)이 있었다. 치우(蚩尤)에는 투전목(鬪佃目)이 있었다. 부여(夫餘)에는 서산(書算)이 있었다.
그 산목(算木)은 이다. 그 전목(佃木)은 이다.
《단군세기(檀君世紀)》의 단군 가륵(嘉勒) 2년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정음(正音) 38자를 찬하니 이를 말하여 가림다(加臨多)라고 한다.
그 문자는
이다.」고 하였다.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 옥진총담(玉塵叢談)에 이르기를 「발해국(渤海國)은 글이 있었다. 당(唐)나라의 온 조정에 그것을 푸는 자가 없었다. 이태백이 능히 풀어서 그것에 답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이르기를 「헌강왕(憲康王) 12년(A. D.886년) 봄에 북진(北鎭)에서 알리기를 「적국인(狄國人)이 진(鎭)에 들어와 편목(片木)을 나무에 걸어놓고 돌아갔다. 」고 하며 곧 가져다 바쳤다. 그 나무에는 15자가 써져 있었는데 「보로국(寶露國)이 흑수국인(黑水國人)과 더불어 함께 신라국(新羅國)에 대하여 화통(和通)하려 한다.」고 하였다. 또 고려 광종(光宗)때 장유(張儒)가 접반사(接伴使)로써 소문이 났는데 처음에 피란하여 오월(吳越)에 이르렀다. 월씨(越氏)에 호사자(好事者)가 있어 거문고 밑바닥에 ‘동국한송정곡(東國寒松亭曲)을 새겨가지고 물결을 거슬러 떠다녔다. 월(越)이 그 사(辭)를 풀지 못하였다. 마침 장유(張儒)를 만나 절을 하고 그 사를 물으니 장유가 즉석해서 한시(漢詩)로써 그것을 풀어 말하기를 「달 밝은 한송정의 밤(月白寒松夜), 물 맑은 경포의 가을(波晏鏡浦秋), 슬피 울며 오가는(哀鳴來又去), 한 마리 사구(有信一沙鴟).」라고 하였다. 대개 거문고의 바닥에 조각한 문자는 옛 가림다(加臨多)류가 아니였던가 의심한다.
원동중(元董仲)의 《삼성기》 주(注)에 이르기를 「왜(倭), 진(辰), 여국(餘國)은 혹 횡서(橫書)하고 혹 결승(結繩)하고, 혹 계목(鍥木)하였다.」고 하였다. 오직 고려(高麗)만이 영법(潁法)을 모사(模寫)하였다. 생각하면 반드시 환단(桓檀)의 상세(上世)에 반드시 문자의 모각(模刻)이 있었다. 최치원(崔致遠)은 일찍이 신지가 고비(古碑)에 새긴 《천부경(天符經)》을 얻어 다시 회복하여 첩(帖)을 만들어 세상에 전하였다고 한다. 바로 낭하리(郎河里)의 암각(岩刻)은 이것이 다 실적(實跡)에 적중(的中)하는 것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시(神市)에는 녹서(鹿書)가 있었다. 자부(紫府)에는 우서(雨書)가 있었다. 치우(蚩尤)에는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鬪佃文束)은 바로 그 잔흔(殘痕)이다. 복희(伏羲)에 용서(龍書)가 있었다. 단군(檀君)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러한 자서(字書)들은 백산(白山), 흑수(黑水), 청구(靑邱)등 구려(九黎)의 지역에서 널리 쓰였다.」고 하였다. 부여인(夫餘人) 왕문(王文)은 처음에 전(篆)을 번거롭게 만들었으나 점점 그 획을 생략하여 새로이 부예(符隸)를 만들어 그것을 썼다. 진(秦)때에 정막(程邈)이 숙신(肅愼)에 봉사(奉使)하여 한수(漢水)에서 왕문(王文)의 예법(隸法)을 얻었다. 또 그 획을 가지고 약간 바꾼 것이 지금의 팔분체(八分体)이다. 진(晉)때에 왕차중(王次仲)이 또 해서(楷書)를 만들었는데 차중은 왕문의 원예(遠裔)이다. 지금 문자의 기원을 궁구하여 보면 다 신시(神市)의 유법(遺法)이며 지금의 한자 역시 그 지류(支流)를 이은 것이 분명한 것이다.
《삼일신고》 구본은 분장(分章)되어 있지 않았다. 행촌(杏村) 선생이 처음으로 1.허공(虛空), 2.일신(一神), 3.천궁(天宮), 4.세계(世界), 5.인물(人物)로 분장하였다. 무릇 허공은 하늘의 본질이다. 일신은 하늘의 주재(主宰)다. 천궁(天宮)은 하늘이 조화를 준비하는 곳이다. 세계(世界)는 만세 인물(人物)의 시(市)다. 인물은 우주 삼계(三界)의 원훈(元勳)이다. 대개 태백진교(太白眞敎)는 천부(天符)에서 기원하였으며 지전(地轉)에서 합하여 또 인사(人事)에서 절(切)하는 것이다. 이로써 정사(政事)를 폄에 있어서는 화백(和白)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덕을 다스림에 있어서는 책화(責禍)보다 선(善)한 것이 없다. 재세이화(在世理化)의 도는 다 천부에 준하여 불위(不僞)는 지전(地轉)에서 취하고 불태(不怠)는 인정(人情)에서 합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니, 천하의 공론(公論)이 어찌 한 사람이라도 다름이 있을 것인가. 《신고》의 5대(五大) 지결(旨訣) 역시 천부(天符)가 본이며, 《신고》의 구경(究竟) 역시 천부 중일(中一)의 이상(理想)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비로소 문자의 근원이 오래인 것을 알았다. 문자의 뜻은 큰 것이다.
세전(世傳)에 목은 이색(牧隱李穡)과 복애 범세동(伏崖范世東)은 다 《천부경》 주해(註解)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지금의 시속(時俗)은 비록 한 자의 글씨라도 정주(程朱)에 부합되지 아니하면 뭇 화살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날아와 유생(儒生)의 필봉(筆鋒)이 바야흐로 사나우니 《천경》과 《신고》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나 어찌 쉽게 득론(得論)하겠는가.
신시(神市)의 악(樂)은 공수(貢壽)라고 하였다. 혹은 공수(供授)라고도 하였다. 또 두열(頭列)이라고도 하였다. 무리가 돌아가며 열(列)을 지어 노래 소리로써 삼신을 크게 기쁘게 하여 국조(國祚)의 길창(吉昌)과 민심(民心)의 윤열(允悅)을 대언(代言)하였다.
《백호통소의(白虎通疏義)》는 조리(朝離)라고 하였다. 《통전(通典)》 악지(樂志)는 주리(侏離)라고 하였다. 《삼국사기》는 도솔(兜率)이라고 하였다. 대개 기신환강(祈神歡康)하고 지족순리(知足循理)하는 뜻이 있다. 단군 부루(扶婁)의 때에 어아의 악(於阿之樂)이 있었다. 대개 신시의 고속(古俗)에서 삼신(三神)을 제사하며 맞이하는 노래로 그것은 대조신(大祖神)을 삼신이라 하고 하늘의 주재자(主宰者)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양(太陽)의 모양을 본뜨고(儀象), 빛(光)과, 열(熱)로써, 능히 공(功)을 이루고 생화발전(生化發展)으로써 정지(情志)를 삼고 화복보응(禍福報應)으로써 정의롭게 하였다. 이로부터 속에서는 《참전(参佺)》을 숭상하여 조의(皂衣)에는 계(戒)가 있고 의관(衣冠)에는 율(律)이 있었는데 반드시 궁시(弓矢)를 찼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반드시 높은 자리를 얻었다. 착한 마음은 수행(修行)의 근본이 되었으며 과녁은 가상적 악의 우두머리 되었다. 제사는 반드시 삼가하여 보본(報本)을 알게 하였으며 일심으로 단결하여 스스로 마땅히 접화군생(接化群生)하여 안으로는 수양하고 밖으로는 겸손하게 하였다. 모든 것이 시의(時宜)를 얻었으므로 배달국(倍達國)의 광영이 백백천천년(百百千千年) 쌓인 바가 되어 그것이 높아졌다. 대 은덕이 어찌 가히 일각에 잊혀 지겠는가.
고자(古者)에 제천에는 무천(舞天)의 악(樂)이 있었다고 하였으니 《요사(遼史)》 예지(禮志)에 이른바 요천(繞天)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무릇 제사라는 것은 반드시 선조가 살아 있을 때를 본떠서 선조가 항상 살아 있는 것처럼 치성(致誠)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신주(神主)를 세우고, 젯상을 진설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은 곧 친히 뵙는 예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나간 먼 일을 사모하여 조상에 보답하는 것은 지금의 삶이 이어져 거듭하기를 바라는 후손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대변경(大辯經)》에 이르기를 「단군 구물(丘勿)이 국호를 고쳐 대부여(大夫餘)라 하고 장당경(藏唐京)으로 개도(改都)하였다.」고 하였다. 지금의 개원(開原)이다. 역시 평양(平壤)이라고 칭한다. 삼조선(三朝鮮)의 칭(稱)은 단군 색불루(索弗婁)에서 시작하여 미비(未備)하였으나 이에 이르러 완비하였다. 삼한(三韓)에는 분조관경(分朝管境)의 뜻이 있었다. 삼조선(三朝鮮)에는 분권관경(分權管境)의 제(制)가 있었다. 이보다 먼저 대교(大敎) 다단(多端)의 인(人)과 무능한 행자(行者) 때문에 연침(燕侵)이래 전화(戰禍)는 거듭하여 밀려오고 해마다 흉년이든 데다가 또 치화(治化)를 잃어 국력(國力)은 갈수록 쇠하여졌다. 어느 날 제(帝)가 천제(天帝)의 몽교(夢敎)를 얻어 대정(大政)을 개신(改新)하고자 천제의 묘정(廟庭)에 대목(大木)을 세울 것을 명하여 북(鼓) 삼칠(三七)을 달고 기약을 하여 연치(年齒)를 따라 서로 마시며 성책(成冊) 할 것을 권화(勸化)하였다. 이것이 구서(九誓)의 회(會)가 되었다. 회 때마다 구서의 문(文)이 있었다.
초배(初拜)를 하고 무리에게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가정에 효도하여라. 가정에는 부모와 처자가 있다. 성심 성경하고 나아가 우애하여라. 정성으로 제사를 받들어 일본(一本)에 보답하여라. 공경스럽게 손님을 접대하여 이웃과 잘 지내라. 자제(子弟)를 권교(勸敎)하여 영재(英才)를 양성하여라. 모두가 인륜(人倫) 교화(敎化)의 대자(大者)다. 이것이 효자순례(孝慈順禮)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들이 일제히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재배(再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형제에게 우애하여라. 형제는 부모의 나누인 바다. 형이 좋아하는 바는 동생이 좋아하는 바요, 동생이 좋아하지 않는 바는 형이 좋아하지 않는 바다. 물질을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은 너와 내가 같은 것이다. 몸이 물질에 미치면 친함이 멀어지게 되나니 이와 같은 도(道)를 향국(鄕國)에 옮기면 향국은 일어날 것이요, 천하에 옮기면 천하는 가히 감화될 것이다. 이것이 우목인서(友睦仁恕)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삼배(三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사우(師友)를 믿어라. 사우는 도법(道法)이 서 있는 곳이다. 덕과 의를 서로 닦고 잘못을 서로 깨우쳐 학문을 수립하여 사업을 성취하는 것은 모두가 사우의 힘이다. 이것이 신실성근(信實誠勤)이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를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사배(四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나라에 충성하여라. 나라는 선왕(先王)이 세운 것이다. 지금 백성이 먹는 곳이다. 국정을 개신하고 국부(國富)를 증진하고 국토를 수호하고 국권을 회장(恢張) 함으로써 국세를 공고히 하여 역사를 빛내는 것은 모두가 국가의 장례다. 이것이 충의절기(忠義節氣)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오배(五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무리 (원주:일운비하(一云卑下) 에게 공손히 하여라. 무리는 모두 천제의 백성이며 우리와 더불어 삼진(三眞)을 같이 받은 사람이다. 주성(主性)의 근본이 되는 바다. 국력이 메이어 있는 곳이다. 위에서 불손하게 하면 아래로 오른쪽이 떨어져 나가고 아래가 불손하면 왼쪽에서 벗어져 나가고 앞에서 불손하면 뒤가 물러난다. 아래가 불손하면 위에서 싫어하고 왼쪽이 불손하면 오른쪽이 떨어지고 뒤가 불손하면 앞이 소원(疏遠)하게 된다. 지금 손양(遜讓)하고 상존(相尊)하고 합군(合群)하고 통력(通力)하면 외모(外侮)가 가히 그칠 것이며, 내치(內治)가 가히 닦일 것이다. 이것이 손양공근(遜讓恭謹)이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육배(六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정사(政事)를 명지(明知)하라. 정사는 치란(治亂)이 관계된 바다. 풍백(風伯)의 입약(立約)과 우사(雨師)의 시정(施政)과 운사(雲師)의 행형(行刑)은 각각 직권이 따로 있으니 서로 침월(侵越)하지 못한다. 지금 지식과 견문은 고매(高邁)하고 언로(言路)를 널리 수렴하고 기예(技藝)를 연마하고 경험을 치적(致積)하면 국무(國務)는 가히 균등하게 될 것이며 민사(民事)는 펴질 것이다. 이것이 명지달견(明知達見)이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칠배(七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전진(戰陣)에서 용감하여라. 전진은 존망이 결정되는 곳이다. 나라가 망하면 군부(君父)는 떨어져 목우(木偶)가 되고 주인이 서지 못하면 처자는 몰락하여 인노(人奴)가 되다. 응사접물(應事接物)은 우리의 도가 아닌 것이 없다. 수세전교(售世傳敎)도 또한 우리의 도가 아닌 것이 없다. 나라 없이 태어나서 주인 없이 사는 것이 어찌 나라 있이 죽고 주인 있이 마치는 것과 같을 것인가. 지금 분명히 나를 버리는 희생의 풍이 있으니 규제(規制)가 정숙(整肅)하고 선군(善群)이 자치(自治)하여 상과 벌이 필수정평(必須正平)하고 남과 내가 또한 신의(信義)로 서로 규제하고 많은 사람을 양육하면 능히 천만인의 복이 될 것이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팔배(八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너희는 몸을 청렴하게 가져라. 불렴(不廉)을 행하면 양심은 스스로 몽매하여지고 능렴(能廉)하면 신명(神明)이 자통(自通)한다. 사리(私利)를 편기(偏嗜)하면 반드시 중풍을 앓고 독선자긍(獨善自矜)하면 반드시 부패하고 준준자족(蠢蠢自足)하면 자해(自害)하며 해인(害人)하고 인순(因循)이 상적(相積)하면 침닉(沈溺)하여 구할 수가 없다. 이것이 염직결청(廉直潔淸)이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구배(九拜)하고 맹세하기를 「힘써라. 직업에 임해서는 의로워야 한다. 사람이 직업을 만들어 취업하는 데는 반드시 책임이 있다. 불의 하나가 있으면 실각자진(失却自盡)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모학(侮謔)하고 훼괴(毁壞)한다. 만약 정의가 있어 식력(食力)을 공신(公信)하면 누가 가히 능모하여 침탈할 것인가. 의(義)라는 것은 군력(群力)이 일어나는 곳이다. 정기(正氣)가 피어나는 곳이다. 말아(捲)서 구규(九竅)에 감춰놓은 것을 넓혀서 천지(天地)에 차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의공리(正義公理)다. 감히 수행하지 않을 것인가.」하였다. 무리가 소리 내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 않는 자는 쫓아버립시다.」하였다.
이로부터 세속에 순후(淳厚)함을 숭상하여 공전(公戰)에는 용감하고 공리(公利)에는 근면하고 공사(公事)에는 민첩하고 공덕(公德)에는 명철하여 선업(善嶪)을 권하고 과실(過失)을 규제하니 스스로 예의를 이루어 자애의 풍속이 삼신에 동귀(同歸)하여 귀명(歸命)의 화(化)가 이루어졌다.
《단군세기》에 이르기를 「엄지손가락을 교차시켜 오른손을 보태어 삼육대례(三六大禮)를 행하였다.」고 하였다. 엄지손가락을 교차시킨 다는 것은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시작점으로 하고 왼쪽 엄지손가락을 끝점으로 하여 오른손을 보태서 태극(太極)의 모양을 만든다는 것이다. 고자(古者)에 궤(跪)를 할 때는 반드시 먼저 읍(揖)을 하였다. 배(拜)를 할 때는 먼저 읍을 하고 궤를 하였다. 곧 예의 상도(常道)다. 읍을 말할 것 같으면 취(聚)다. 마음을 모아 손을 잡고 하늘을 생각하였다. 궤는 순(順)이다. 순기(順氣)가 무릎에서 합하여 땅에 감사하였다. 배(拜)는 헌(獻)이다. 몸을 바쳐 머리를 조아려서 선조에게 보답하였다. 헌은 일작(一作)에 현(現)이다. 머리가 손에 닿는 것을 배수(拜手)라고 하고 머리가 땅에 닿는 것을 고두(叩頭)라고 한다. 고두는 계상(稽顙)이다.
《참전계경(参佺戒經)》은 세전(世傳)에 을파소(乙巴素) 선생이 전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일찍이 백운산(白雲山)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천서(天書)를 얻었는데 이것을 《참전계경》이라 한다. 대시(大始)에 철인이 상천(上天)에 있어 인간의 360여 일을 주재하였다. 그 강령에 8조가 있는데 성, 신, 애, 제, 화, 복, 보, 응(誠信愛濟禍福報應)이다. 성(誠)은 충심(衷心)이 생겨나는 곳이요, 혈성(血誠)이 지켜지는 곳이다. 6체(體) 47용(用)이 있다. 신(信)은 천리(天理)가 반드시 합해지고 인사가 반드시 이루어진다. 5단(團) 35부(部)가 있다. 애(愛)는 자심(慈心)의 자연(自然)이요, 인성(仁性)의 본질이다. 4범(範) 43단(團)이 있다. 제(濟)는 덕의 겸선(兼善)이요, 도(道)의 뇌급(賴及)이다. 4규(規) 32모(模)가 있다. 화(禍)는 악의 부르는 곳이다. 6조(條) 42목(目)이 있다. 복(福)은 선(善)의 여경(餘慶)이다. 6문(門) 45호(戶)가 있다. 보(報)는 천신이 악인이 화로써 갚고 선인은 복으로써 갚는 것이다. 6계(階) 30급(及)이 있다. 응(應)은 악은 악보(惡報)를 받고 선은 선보(善報)를 받는 것이다. 6과(果) 39형(形)이 있다. 고로 하늘이 비록 말이 없으나 척강(陟降)하여 주호(周護)한다. 나를 아는 자는 열심히 이것을 구하므로 일(一)을 성실하게 하여 참전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깨우침을 준다.
을파소(乙巴素)가 그것을 첨(籤)하여 말하기를 「신시(神市) 이화(理化)의 세상에 8훈(訓)을 날줄로 하고 5사(事)를 씨줄로 하여 교화가 크게 행하여져 홍익제물(弘益濟物)하였으니 참전의 이룬바가 아닌 것이 없다. 지금 사람들도 이 전계(佺戒)로 인하여 더욱 몸을 열심히 닦으면 백성을 편안히 모으는 공에 어찌 어려움이 있겠는가.」하였다.
※ 주해(註解)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한 저작권은 <빛의 공동체>에 있습니다. http://cafe.daum.net/raysociety
첫댓글 정오 : 삼일신고(三一神故)-->三一神誥, 헤엄치고(遊)-->游, 전성(戰成)-->轉成, 난(爛)-->
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