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속으로 들어갔다 반딧불이 날고 있는 개울가 한여름 밤의 숲속으로 무주 구천동 설천(雪川)가 냇물에 발을 담그며 어릴 적 순이를 데리고 와 밤새도록 잠방대며 그녀와 함께 놀았다
올 여름 무주 구천ㄴ동엔 나 혼자서 갔다 동계 유니버시아드도 끝나고 쓸쓸한 뒷마당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우니 늙은 청설모가 와서 함께 날옥수수 붉은 수염을 뜯었다 애반딧불 몇 반짝 떳다 은하수가 숲위에 퍼질러져 예 살던 마을로 둥글게 휘었다 한꼬리는 골목길로 감춰져 철 철 철 맑은 도랑물 소리 내고 있었다
웃옷을 벗어들어 왕눈 반딧불을 쫓던 호박꽃을 따물고 초롱을 날리던 환한 목소리가 현호색 밝은 물소리에 섞여 시려운 니 자그럽도록 반짝였다.
(* 설천 : 무주 구천동의 반딧불 보호구역)
--- 송수권 시집 "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 에서 ---
※ 오순택의 송수권 시인에 대한 이야기 ※
한국 시단의 중견중 대표시인인 송수권 시인을 아시는지요?
"좋은 시인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아니 소리에 그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시인.
참 동시, 좋은 동화를 창작하고 있는 우리 계몽아동문학회 회원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송수권의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속엔 우리의 가락이 있고, 한이 있고, 감칠맛 난 언어가 있고 삶이 있습니다.
송수권 시인의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이란 시집을 한번 읽어보세요.
아하, 시가 이런것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거에요.
(이 시집이 책방에 없으면 빌려드릴께요. 창작에 많은 도움이 될거에요.
그냥 주어도 좋겠지만 송수권시인에게서 선물 받은 책으로 내가 너무나 아끼는 책이거든요.)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정채봉씨가 나에게 한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저는 다른분의 동화를 잘 안 읽습니다. 아주 좋은 작품이면 모르지만, 그러나 좋은 시와 참 동시는 아무리 꼭꼭 숨어있어도 꼭 찾아서 읽지요" 라는 말....
그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아하, 그렇구나. 정채봉씨의 동화문장이 그래서 그렇게 깊이가 있고 감칠 맛이 나는 구나 하고..
동화 작가들은 대부분 시나 동시를 읽지않는다고 하더군요. 정채봉씨의 "물에서 나는 새"를 읽어보면 알수있듯 그가 한 편의 동화를 쓰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의 동화의 문장은 마치 서정시의 한 구절을 읽듯 신선하고 감각적이지요.
정채봉씨는 좋은 시를 읽으면 그 속에선 동화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다시 송수권 시인 이야기...
송수권 시인의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 노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시속엔 감칠맛 나는 언어들이 수북이 들어있지요.
몇가지만 옮겨 볼께요.
♣ 눙치다 : 좋은 말로 풀어서 누그러지게 하다.
♣ 새물내 : 빨래하여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
♣ 현호색 : 양꽃 주머니과의 여러해 살이 풀, 들에 나며 덩굴 줄기는 둥글다.
4월에 홍자꽃 꽃이 핌.
♣ 물너울 : 바다같이 넓은 물에 크게 움직이는 물결
(예. 그 물너울을 세어 보기도 하며)
♣ 에둘음 : 둘러막다
(예. 실개천 에둘음이여)
♣ 고샅길 : 촌락의 좁은 골목길
(예. 어느 고샅길에 자꾸만 대를 위며 눈이 온다.)
♣ 신신한 : 생기가 있고 신선하다.
♣ 잠방 : 작은 물건의 한 끝이 얼른 잠이었다. 뜨는 모양이나 소리
(예. 물새처럼 잠방대며)
♣ 어슴새벽 : 어스무레한 새벽
♣ 먼장질 : 먼 발치
♣ 덧정 : 정이 들면 그에 딸린것까지 사랑스러워지는 정.
♣ 쾌 : 북어스무마리를 한 단위로 세는 말
♣ 두름 : 물고기나 나물을 두 줄로 길게 묶은것
(예. 굴비 한두름은 스무마린데, 북어 한쾌는 스무마리이다.)
♣ 얼레발 : 실을 감는 기구
(예. 이것들 한 품에 싸안고 앞뒷산은 얼레발 친다.)
♣ 건들마 : 남쪽에서 불어오는 초가을의 시원한 건들 바람.
(※ 이같이 우리 곁에서 잊혀져 가고있는 감칠맛 나는 말 들이 송수권 시인의 시속에는 많이 담겨있습니다.)
첫댓글 좋은 시 읽고 갑니다. 학교 다닐 적에 송수권 선생님 시 참 좋아했습니다. 이성복, 최승호, 황지우, 안도현, 김용택 시인과 함께 늘 필독 목록에 들어간 시인이기도 합니다. '산에 기대어'라는 문학사상에서 나온 시집이 생각나는군요.
산문에 기대어야. 송수권 선생이 등단한 일화가 재미있다우. 이어령 선생이 쓰렉;통에 버려진 원고를 찾아내서 뽑혔는데 아마 3년 뒤엔가 수소문 끝에 당선자를 찾아냈을걸 그래서 송 선생님은 쓰레기통 이란 별호가 있으셔요.
아, 그 분이 이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