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과 김일성의 관계
모택동과 김일성은 항일투쟁으로 인해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6.25때 모택동은 김일성의 남침이 미군의 참전으로 실패했을뿐 아니라, 한미연합군의 북진으로 북한이 멸망직전상황에 이르자,아주 적극적으로 참전하여 미군측과 국운을 건 전투를 벌이게 된다.모택동은 이 전쟁에 자기의 장남아들을 참가시켰을 뿐 아니라(미군폭격으로 전사) 중국공산당에서 자기 다음 서열인 부주석 팽덕회을 직접 지원사령관에 임명하고 20만 대군을 주어 참전토록 하였다.
이정도면 단순참전이 아닌것이다.아주 적극적이었으모 팽덕회 사령관역시 자신의 장남을 데리고 참전하였다(역시 전사) 그렇게 북중연합군이 전쟁수행하였는데 처음에는 성공적(1.14후퇴)이었으나 점차 백중세를 갖게 되었고 51년 4월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51.4.22 '간성 대전투'에서 북중 연합군이 UN연합군과의 치열한 전투중이었는데 갑자기 김주석은 중공지원군사령부쪽에 아무 통보없이 자기의 휘하 북한군 6개사단을 모두 빼 서부전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로인해 빈공간으로 진격한 UN군에 의해 중공군 1만2천이 전사하게 되었다.이에대해 병술가들은 김주석이 자신의 군대만 살리기위해 중공군을 휘생삼았다고 평가하는사람들이 많은 바,전쟁역시 전체를 보고 난 후,판단해야하므로 성급한 근시안적 판단으로 보여진다. 아무튼 이로 인 해
소중한 자기의 군대 1만명이나 잃은 지원총사령관 팽덕회 장군은 이를 김주석에 강력히 항의하게되었는데 김주석은 이렇게 말했다"당신네 중국군은 나를 도와주러온만큼 내가 여기 총사령관이고 당신은 내 지휘 하에 있다.내가 꼭 필요한 작전을 수행함에 있어사사로운 감정을 갖고 항의하는것은 부당할뿐아니라 반역죄에 해당한다"며"내가 동부전선에서 북한군을 빼 서부요충지에 배치한것은 지금 당장보다는 향후 전체적인 승기를 잡기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라고 말했는데,이를 들은 팽덕회는 너무 격분하였다 "우리는 너네들을 돕기위해 이 멀고 열악한 타국땅 전장터에와서 목숨을 버리며 전투하고 있는데 보호해주지는 못할망정,뭐? 되려 너네군대위해 희생하는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야 이 새끼야~그걸 말이라고 하냐? 통일전쟁도 실패한 주제에 어따대고 부하취급을 해?"어린놈에 새끼가!!"하면서 김주석의 귀싸데기를 한대 갈기며 분노를 표출하였다"
여기서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조선시대 사대주의사상이나 지금 한미관계처럼 신 사대주의로 보면 안된다.또한, 군 전술적으로도 냉정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김일성과 모택동은 서로 동지로 부르며 예의를 갖추는 동일한 공산당 체제하 최고지도자로써 사회주의 공산당 조직 서열 최고 지도자이며 이러한 최고의 동지적 개념은 서열이란 개념이 아니라 전우라는 단어에서 볼수있드시 두사람 관계는 서로 의지하는 평등한 관계로 볼 수 있다.팽덕회의 분노는 장수로써 당연할수있다.그러나 전술적으로 바른 행동이었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해봐야 할 필요가있었는데 이부분에 크게 부족했다고 볼수없는 타당한 이유는 당시 북한 전황은 김일성 말대로 북한땅이고 김일성은 북최고사령관이고 팽덕회는 북한보다 수십배큰 대국장수 그것도 서열2위인 부주석이긴 하지만 사회주의 공산당체제하에서는 김일성 아래가 맞고 당시 전황은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이 맞으므로 한단계 더 들어가 본다면 고차원적 전략개념에서 어느군대든지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북중군 양쪽이 그 피해를 나눠갖는게 이로운가? 한쪽만 피해입고 다른 한족은 온전히 보존하면서 이다음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것인가? 생각해봐야하고 만약,책임지고 이후를 승전하는데 필요하다면 김주석의 행동이 군사전술적으로 타당한것이다 그렇게 과감히? 행동했다면 실재로 그 결과가 그 상황에서 필요한 전략자산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며 재배치하여 이후의 전승에 대비하고 실질적으로 이후 전승 성과를 거둔다면 훌륭한 병술이 된다.
이러한 당시의 한국전 상황을 전체적 관점에서 볼때
아무래도 향후 휴전을 위한 출구전략적 전투를 위해서는 중공군보다는 지리에 밝은 김일성군대가 온전한것이 효과적일수있고 실재로 이후,북중연합군은 북한군의 선봉적 활약에 힘입어 38선을 다시 회복하는데 결정적 전과를 이루었는 바, 그 주력군은 분명히 북한군이었슴으로 결국 젊은 김일성의 군사적 용병술이 팽덕회보다 한수위였다는 것이 증명된 바, 전쟁에 있어서 개인감정적 처신은 군법(병법)상 금기시 되어있는 맞는 사항이다.
또하나
김일성과 모택동의 관계는
모택동과 팽덕회처럼 군신관계가 아니라 의형제를 맺은 사이 이기도하지만 사회주의 국가 체제상 엄연히 동급이며 이 사건에 대해 김주석은 직접 모주석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강력히 항의하며 적절한 처벌이 없으면 국교단절까지 고려하겠다고 통첩까지 하였다.모택동주석은 일단,돌아온 그에게 원수칭호를 붙여 격려하였으나,기존의 부주석에서 강등하여 부총리에 임명하였다.그러나 김주석은 여전히 화를 풀지 않아 북중관계가 소원한 상태로 유지되자 마침내 66년 팽덕회를 문화대혁명의 반역자라는 죄명으로 체포,공개 인민재판시킨 후, 구금하였고,74년 76세로 감옥에서 사망했다.
이와같은 일을 보더라도
국제사적으로 모택동과 김일성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특별한 관계였다는건 분명하겠다.
그러고보니
전임 문대통령이 중국방문했을때 왕이 외교부장이 무례하게 군 일이 있었는데,김일성이었다면 절대 못그랬을거란 얘기다 그랬다간 공개처형될수있기때문이다.그 일에 대해 시진핑주석은 특별히 말한 바 없다고 알려졌으나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불퀘하게 여겼다는 사실이 흥미롭다.이 일이 있고난 후, 방북한 왕이 외교부장이 두번이나 알현을 거듭 요청했지만 거부당하고 결국 그냥 돌아가야만 했는데 이 부분도 특수한 북중관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봐야한다. 몇일전 윤대통령이 미국서열3위인 하원의장 방한때 휴가중이란 이유로 미팅을 거절한것은 국익차원뿐아니라 우리나라으 위상을 높이는 행위였다는 점을 참역사 회원분들은 충분히 생각해주리라 믿는다.(62%가 만났어야 했다고 여론조사된바 더욱 가치 있슴)
★쉿~!!이건 극비사항임/이글 읽은분먄 속으로 그랬구나~하고 알아두시길/중국에 고려왕씨 후손분들이 조금 계신데 아이러니하게도 왕이외교부장이 바로 고려왕씨라는 사실입니다.이것은 참역사 운영진이 DNA적으로 확인한 내용입니다.사실이 이런만큼 누구보다 그 내용을 잘알고있는 당사자가 의식적으로 그런 무례를 범했던것같다는 것이 참역사 운영진 판단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있다.아무리 남북이 반분상태의 현실로 대단히 적대적 상황이지만, 속의 피는 하나이란 사실은 부정할수없는 진리다. 얘를들어 러시아가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침략한것과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즉, 러시아가 북한을 참략했다면? 중공이 북한을 침략했다면? 일본이 북한을 침략했다면? 심지어 미국이 북한을 침약했더라도 남한의 절대다수 국민들은 같은 피가 몸속에 흐르고있기때문에 정혀 다른 결과가 필수적이란 얘기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본능이 우선하며 감정에 지배되는것이 사실이며 인간적으로 정상이라 할 수 있다.위와같은 일이 발생해 북한사람들이 외국군에 의해 마구 죽게된다면?
남한사람들은 피가 끓어 도저히 그냥 앉아 구경할수 없게된다.그래서 피가 물보다 찐하며 혈연관계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역사를 논하는데 해돋는산님을 안급핮 않을수 없는것은 산님께서 오래전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바 있다.
사실, 북한을 제재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우리 남한을 재제하는것이다.
~ 피는 물보다 찐 하다 ~
라고 말씀하신바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나이들면서 세삼 이런 말씀이 떠오른다.
평화통일 해야만 하는 이유다. 어떤경우에도 그 끈을 놔서는 안된다.
어떤 이유던 이 사명 의무 책임을 반대하고 회피하고 부정하는 사람이있다면
토중인 이왕손들일 뿐이리라 확신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백산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