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이 힌두교 왕국에서 종교적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의회 민주국가로 바뀐지 4년이 지났다. 그러나 최근 다시 네팔이 힌두교 국가로 복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현지 교회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다. 법률상의 신앙의 자유는 여전하고, 다시 헌법을 뜯어고쳐 힌두교를 국교로 삼을 가능성도 별로 없지만, 현장에서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처벌 당해야 할 범죄로 취급되고 있고, 교회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밀한 지하교회 모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한동안이나마 교회가 양지로 나왔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다.
폐위되었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의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가야넨드라 샤 전 국왕의 동향도 관심거리이다. 힌두교 사회에서 국왕은 신과 동격으로 취급된다. 그는 2008년에 폐위되어 평민 신분으로 왕궁을 떠난 후 현재까지 유지해 온 침묵을 깨고, 한 대규모 힌두교 축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행한 연설에서 네팔 왕국은 끝나지 않았으며, 국민들의 성원이 있다면 왕위 복귀의 용의가 있다고 말해 앞으로 왕정복위 운동을 벌일 계획임을 시사했다.
전 총리이자 광범위한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인 크리쉬나 프라사드 바타라이가 개헌문제를 언급하면서 무조건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과거의 것들 가운데 좋은 것들을 살려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일각에서는 그가 네팔을 힌두교 왕국으로 규정한 1990년의 헌법을 선호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앞서 집권당은 오는 5월까지 개헌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으나 지금에 와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팔교회위원회의 사무총장인 로카야 박사는 “배신감을 느낀다. 우리 교회를 포함한 네팔 국민들은 의회 의원을 선출하면서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세속주의를 신장시켜 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민의 요구를 배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팔의 개헌 데드라인인 5월 28일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의회에서의 개헌 추진 작업이 지지부진 해지자 점점 과거로의 회귀 주장이 세를 얻어가고 있다. 또 힌두교계에서는 이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내고 있다. 힌두교계의 저명한 설교가인 칼리다스 다할은 3월에 카트만두에서 있었던 9일간의 집회에서 힌두교를 다시 국교로 삼을 것을 촉구했다. 이 집회에는 매일 수 천 명의 군중들이 참석했다. 이들 군중들 가운데는 전직 총리 3명과 집권당 최고 지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힌두교인인 상황에서 힌두교 성직자들의 주장은 그대로 국민들에 의해 진리로 믿어져 여론화되고, 이를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를 너무 지나치게 빠르게 추진한 것이 실수였다.”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집권 동맹 가운데 5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테라이 마데스 로크탄트릭 당의 의원이며 장관을 지낸 바 있는 흐리다예쉬 트리파티의 말이다. 또 하나의 충격은 라스트리야 프라자탄트라당으로부터 날아 왔다. 이 당은 2008년의 선거 당시 유일하게 왕정과 힌두교 왕국을 옹호했던 정당이다. 이 정당은 지금 헌법의 개정 방향을 국민투표를 통해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압박하는 전략으로 수도 카트만두와 인근의 또 다른 도시에서 동시에 대규모 시위를 벌여 도시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국민들이 원한다고 해서 왕정복위가 쉬운 문제도 아니다. 왕정을 폐지하기 위해 10년 이상 무력투쟁을 벌이다가 제도권으로 들어온 네팔의 마오쩌뚱주의 계열의 공산당이 또 다시 무력반정부투쟁 노선으로 돌아설 경우, 내전이 재발된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데드라인이 촉박해 있는데 개헌의 논점이 왕정복고 여부와 힌두교 국교 채택 논쟁에 머무른다면, 인권이나 종교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소흘하게 다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다행히 힌두교국교화가 다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해도 신앙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네팔은 2006년에 전제군주국가에서 입헌군주국으로 국체가 바뀌었고, 2008년에는 국왕을 폐위시키면서 왕정자체를 폐지했다. 힌두교 국교 조항도 폐지했으나 실제로는 여전히 힌두교가 사실상의 국교이다. 정부 예산이 살아 있는 처녀신인 쿠마리의 관리를 위해 투자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수많은 힌두교 축제에 정부 예산이 지원되고 있다. 특히 가드히마이 축제 같은 경우에는 제물로 한꺼번에 수천 마리의 새가 목이 잘라지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음에도 정부 지원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의 축제나 행사에 대해서는 어떤 정부 지원도 없다. 또 개헌을 위한 국회의원 가운데도 기독교인의 명단은 없다. 총리가 개헌에 소수파들의 목소리도 반영하기 위해 소수종교와 소수종족에게 의석을 할애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렇다. 교회는 새로운 헌법이 종교에 대한 편향과 차별을 크게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하고 개종할 자유와 선전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정부가 종교에 대해 어떤 간여도 하지 말 것을 함께 주장하고 있다. 특히 힌두교 축제나 행사, 제도 유지 등에 대해 예산을 배정하고 지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종교계의 인사문제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되며, 정부 소유의 땅과 건물에서 힌두교 행사가 열리는 것도 허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반정부 무장투쟁을 벌이다가 왕정폐지를 계기로 제도권으로 들어온 마오주의자들이 잠시 집권하는 동안 쿠마리에 대한 재정지원을 철폐하려고 했다 범국민적인 시위에 직면한 적이 있었고, 결국은 철폐 방침을 철회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