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과 변천과정
1) 창교자와 창교과정
지방교회의 창시자인 워치만 니는 1903년 11월 4일 중국 동남부 복건성에 있는 푸조우에서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워치만 니라는 이름은 그가 기독교인이 된 뒤에 갖게 된 이름이고 그의 중국식 본 이름은 ‘니토쉥’인데 그 뜻은 ‘징치는 자’라는 뜻이다. 워치만 니는 18세 때인 1920년 기독교를 믿게되었고 가두전도에 헌신하는 한편 영국 선교사들을 통해 빌려온 책을 탐독하며 신앙생활에 정진해 나갔다.
1923년 워치만 니는 ‘작은 무리 운동(The Little Flock Movement)’이라는 경건주의신앙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16년만에 7만 명을 전도하였고 700개가 넘는 지역 모임을 만들어 워치만 니를 훌륭한 복음주의 운동가로 평가받게 하였다.
워치만 니는 1952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1972년 20년을 복역, 출소 후 같은 해 사망하였다.
2) 변천과정
워치만 니에게는 두 명의 절친한 동역자가 있었는데 한사람은 현재의 지방교회를 이끌어온 윗트니스 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티븐 강이었다. 상해와 필리핀을 담당하는 대표사역자인 윗트니스 리는 1950년 대 교인들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후 1962년 미국 LA에 최초의 지방교회를 설립하였다.
한국에 지방교회가 전래된 것은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 자처하는 왕중생(한국명 -권익원)씨에 의해 1966년 시작되었다. 한국인으로 중국군의 연대장까지 진급했던 왕 씨는 ‘회복의 복음’을 조국에 전파할 각오로 귀국하여 열정적으로 전도에 힘썼다. 그러나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왕 씨의 성향은 외국의 지방교회와 교류를 어렵게 하였는데 왕 씨의 사망 후 자연스럽게 윗트니스 리의 지방교회와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의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게되었다.
윗트니스 리의 사상적 변화는 1950년대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특히 1950년대 이후에는 ‘신인합일(神人合一)’이라는 그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교리와 활동상황
1) 주요교리와 주장
지방교회의 성경해석은 기성교회와 큰 차이는 없으나 삼위일체론과 인간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① 삼위일체론은 기성교회가 정죄한 양태론적 표현이다.
② 하나님은 아버지였는데 아들이 되었다가 성령이 되었다. 성령이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하면서 신인합일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③ 하나님의 독생자에게는 신성만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인성이 없었다. 그러나 부활 안에서 그는 신성과 인성을 다 지닌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었다.
④ ‘사단의 화신인 죄를 멸하신 예수님을 영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고 함으로 도덕 폐기론적 사상을 주장한다.
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외형과 내형이라면서 하나님은 인간과 꼭같다고 해석한다.
2) 활동상황
예배는 주일 대 예배만 있고 이때 전 신도가 참석한다. 좌석 배치는 신도들이 원 형이나 ㄷ 자 형태로 앉고 설교자는 그 앞에서 설교를 행한다.
통성기도로 예배를 시작하여 찬송을 부르는데 기성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 대신 지방교회에서 제작한 찬송가를 사용한다. 설교자의 설교 후 신도들 중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간증을 한다. 때로는 여러 명이 간증을 할 때도 있다.
대 예배 외 여러 형태의 집회가 행해지고 있다. 여자들은 천주교 미사 때와 같이 머리에 하얀 미사포를 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 437-1에 서울 ‘진리사역원’을 두고 성경교육을 실시하며 분당에 있는 출판사 한국 복음 서원을 통해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저서를 번역 출간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의 교회, 심지어 “천주교는 마귀적이고 개신교에는 그리스도가 없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성교회에 배타적이고 비판적이다. 이 때문에 기성교회와의 마찰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타사항
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75회기 사이비신앙운동 및 기독교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정행업)는 경북노회가 제출한 ‘지방교회의 정체에 대한 질의’에 따라 연구결과 ‘이단’으로 밝혀졌다고 1991년 제 76회 총회에 보고했고 이 보고는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어 제 77회 총회에 ‘추가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어 채택되었다.
현대종교
연구기관: 예장(통합),예장(고신)
통칭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라 불리는 이 단체는 위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사상을 전파, 보급하는 곳으로 구원론, 교회론 등의 문제로 인해 이단 규정된 곳이다.
흔히, 이단 또는 사이비 하면 헌금강요, 가정파괴, 성폭행, 사회혼란 등을 일으키는 단체(또는 사람)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단 문제는 신학적(교리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절대 기준에서 어떻게 벗어 났느냐의 문제가 이단, 사이비를 규정하는데 잣데가 된다는 것이지, 윤리적, 도덕적으로 빗나간 현상 때문에 이단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헌금강요 등 불건전한 현상들이 정통교회보다는 이단자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식교나 지방교회 등과 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별다른 흠을 찾을 수 없는 곳도 이단이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선해도 성경의 내용을 올바르지 못하게 전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위트니스 리(이상수:1905~)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위트니스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 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권익원)씨의 지도 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위트니스 리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 (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예장(통합))
워치만 니에게는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위트니스 리이고, 하나는 스티븐 강이다. 그런데 둘다 미국에 건너가 위트니스 리는 LA 근교의 아나하임(Anaheim)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스티븐 강은 미국 동부에서 자리잡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 계열에 속한다. 현재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하여 카나다, 일본, 브라질, 영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서독, 홍콩, 스위스 등의 나라에 퍼져 있다.
그런데 한국 지방교회는 서울대 사대 출신인 이희득이 전시간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초대교회가 그 지역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처럼(예: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등)오늘날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예;서울교회, 대전교회 등), 자기들의 교회가 모이는 곳이 지방교회의 '집회소'이다.
워치만 니는 결국 기성교회 조직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므로, 형제 운동을 전개하여 계급없는 교회를 이룩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신자들에게 '형제'호칭을 묵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기성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의 표어 내지는 이른바 계급교회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을 예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 같다.(예장(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