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바닷길(노을길-삼천포 코끼리길) 걷기(#35-34)
2023년 2월 5일 (일)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6도~영상 10도
거리 : 18km 5.5시간 동행 : 17명
<무위(無爲)와 유위(有爲)>
노자 ‘도덕경’을 다시 음미해보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흔히 이를 인위적인 손길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상태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속세의 삶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삶이라고 풀이하는데 ‘도덕경’과는 전혀 동떨어진 풀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위(無爲)는 무행(無行),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위(爲)란 위(僞)로 억지스러움이니 무위란 행하되 억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당연히 유위는 뭔가 의도나 의지를 갖고서 ‘억지로 행한다.’는 뜻이 된다.
노자가 볼 때 아마도 억지스러움 중에서 가장 억지스러운 것이 공로를 세웠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고 내세우는 것이었던 것 같다.
‘도덕경’ 곳곳에서 이 점을 말한다.
“공로가 이루어지면 몸을 물려야 하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다.”
“스스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밝아지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훤히 드러나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니 자기 공로가 있게 되고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니 오래간다.”
“이것이 노자가 말하는 자연(自然), 억지스럽지 않음이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는 공로가 없어지며 스스로를 내세우는 자는 오래갈 수 없다.”(이한우의 간신열전)
<사천의 바닷길>
정월대보름!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은 예로부터 한 해의 시작을 정월대보름에 무운장구를 바라는 마음으로 각종 민속축제를 열었다.
풍랑과 태풍으로 목숨마저 잃는 주민들은 한 해의 안녕을 두 손 모아 빌고 바램을 기도하며 염원했다.
사천대교 옆 논에는 대나무와 짚으로 쥐불놀이를 준비하고 있다.
남파랑길 코스를 벗어난 오늘 걷기는 사천대교가 있는 거북선 마을에서 시작한다.
거북선 마을은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데 장송, 금문, 주문, 신평 4개 마을인데 농촌체험 활동과 노을이 아름다운 모자랑포(주문의 옛 이름)에서 사천만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거북선 마을
거북선 마을 사천대교 밑에서 보는 풍경은 유럽의 옛 도시를 연상시키는데 뾰족한 돌탑과 일곱 빛깔 도로 보호대가 조화를 이뤄 멋지다.
사천대교는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와 용현면 주문리를 잇는 2.145km로 2006년 12월에 개통되었다.
하동과 남해 그리고 사천, 고성과 접근이 쉬워져 경상남도 서남부 지역 균형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된다.
사천대교
이순신 바닷길은 사천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산책하거나 드라이브하기 좋은 코스로 5개 코스가 있는데 각각 고유의 매력이 있다.
오늘 걷게 되는 길은 그중에서 최초 거북선 길과 살안 노을 길 그리고 삼천포 코끼리 길 일부이다.
‘최초 거북선 길’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축조한 선진리성에서 모충공원까지인데 이순신에 의해 격파되기도 한 전적지이다.
‘실안 노을길’은 사천시 송포동 해안과 연접해있는 도시자연공원인 모충공원에서 삼천포대교를 지나 늑도까지 연결된다.
모충공원은 공원 지형이 거북이의 등을 닮았다고 하여 거북 등이라고도 한다.
공원의 아래쪽은 잔잔한 바다를 건너 멀리 선진리성이 내려다보이고 한려수도의 물결을 따라 노량의 목이 보인다.
‘삼천포 코끼리 길’은 삼천포대교 공원에서 대방진굴항을 거쳐 코끼리바위까지 이어진다.
바닷가를 따라 잘 조성된 길은 신평 마을을 지나 바다를 접한 교과서적인 선상지에 도착한다.
바다 쪽으로 설치된 데크 길을 따라 걸으니 주변 풍광이 가히 최고다.
선상지는 부채꼴 모양의 땅이라는 의미로 하천의 상류에 퇴적작용으로 생긴 충적평야이다.
삼각주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 현상이다.
대포항
와룡산과 각산의 모습이 아침 햇살과 해무에 뚜렷하지는 않지만, 육산의 기개가 주변을 압도한다.
대포 마을에 있는 대포항은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로 고깃배들의 피항과 수산물 거래가 많이 이루어진다.
미룡 마을로 가던 중에 심포마을(지픈 개 : 깊은 포구가 있는 심포마을의 옛 이름)이 있는데 이곳은 서산대사의 스승인 부용 영관 대사 출생지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구국의 승병들은 영관 스님의 법손(法孫 : 부처님의 자손이라는 뜻으로 한 스승으로부터 부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대를 이은 불제자를 이르는 말)들이다.
부용 대사는 가야에 불교가 전해 내려온 이후 조선 고종까지 2,000년 동안 고승 200명 중의 한 분이다.
모자랑포(茅茨廊浦)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사천 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1592년 음력 5월 29일 최초 출전한 거북선을 앞세운 함대가 사천 선창에서 적선 13척을 분멸하고 이동하여 밤을 지새운 곳으로 난중일기와 장계에 기록된 역사적인 현장이다.
접전할 때 적의 철환이 왼편 어깨에 맞아 등을 뚫었으나 중상은 아니었고, 나대용과 전봉사 이설도 화살에 맞았으나 모두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난중일기에 기록되어있다.
송천 마을
두 개의 장례식장을 지나 공장들이 밀집된 송천 마을을 지나 모충공원에 도착했다.
모충공원은 충무공 이순신의 넋이 서린 곳인데 사천 해전에서 승리한 후 관통상을 입고 모자랑포에서 밤을 지새우며 상처를 치료했다.
모자랑포는 각산의 한 줄기가 돌출하여 강지 바다로 이어 내린 곳으로 산등성이인 거북 등에서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거북 등 서북간 바로 밑이 장자곡이라는 곳이 있는데 강지 바다를 한눈에 관망할 수 있는 초소 역할을 하였다.
한 개의 정자와 누각이 세워진 모충공원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서 있고, 주변이 잘 정비되어 쉼터로는 제격이었다.
따뜻한 차와 과일 그리고 찹쌀떡으로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쉰 후 삼천포 펜션이 많이 있는 마리나 해변으로 향했다.
하얀 풍차, 쪽빛 언덕, 노을 마중과 같은 예쁜 상호를 보며 벚나무가 있는 언덕을 지나 영복 마을에 접어들었다.
영복 마을은 예전에는 매우 큰 축산단지였는데 지금은 빈 축사와 흉가가 대부분이고, 몇 군데가 냄새를 풍기며 가축을 키우고 있다.
마을을 지나 산분령 소공원에 도착했다.
산 쪽으로 장례식장 팻말이 보이는데 남파랑길 코스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갈림길이었다.
삼천포공원에서부터 이곳까지 해안 길을 걸은 후 각산 임도로 이어지는 코스로 우린 역방향으로 가면 된다.
사천 마리나 항
산분령마을항
산분령 마을 항으로 내려서는데 오래된 모과나무와 슬레이트집의 빨랫줄에 매단 물메기(물 텀벙)가 파란 하늘과 바닷바람에 잘 마르고 있다.
서커스단이 설치된 근처 공터에는 대보름 쥐불놀이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현수막과 삼색 천이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서너 개의 연들이 펼치는 곡예도 볼만하다.
해양 관광로를 따라가며 죽방렴이 설치된 사천만과 4개의 섬이 이루는 조망이 아름답다. 커다란 대구가 말라가는 어촌 풍경이 이색적이었는데 작은 것은 5만 원, 큰 것은 현금 7만 원을 부르는 주민의 천정부지 가격에 소름이 돋았다.
대구 말리는 모습
멀리 금오산이 보이고 늑도와 신도, 두응도, 마도, 저도가 보이는 이곳은 저녁 석양 노을 촬영의 적지이다.
늑도는 말굴레처럼 생겼다고 하며, 중국의 진나라 반량전이 출토되었고, 변한, 진한의 칼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신도는 신섬이라고도 하며, 조개처럼 생겼고 노을이 아름다운 섬이다.
두응도는 둥근 섬이라고도 하며, 실안 노을이 걸쳐질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마도는 말을 닮은 섬이라고 하며 전어가 많이 잡히고 전어잡이 그물에 갈(송진)을 먹이면서 부른 노동요 ‘마도 갈 방앗소리’ 어요가 전해져 온다.
저도는 한지의 주원료인 닥나무가 많다고 딱 섬으로 불렸으며 작지만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실안 낙조는 전국 9대 일몰 중의 한 곳으로 고려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죽방렴과 등대 그리고 옹기종기 떠 있는 그림 같은 섬들이 한 폭의 작품과 같은 경관을 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실안(實安)의 어원은 바다에서 나는 임금님 진상품인 돌미역, 개불, 감성돔, 볼락, 주꾸미, 돌문어 등이 많이 생산되어 편안한 삶을 누린다는 뜻이다.
본래 실안(失眼)의 의미는 노을을 보고 눈을 빼놓고 간다는 어원도 있다고 하며 2002년에 사천 8경으로 지정되었다.
데크를 따라 한참을 가면 힘찬 용의 조각상이 나타나는데 근처 섬들과 삼천포대교와 멋진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있다.
희망의 빛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조각상은 아름다운 노을과 여의주의 빛깔을 보고 승천하는 용의 기상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실안 낙조 이야기>
옛날 사천에는 승천하지 못해 한을 품은 두 마리의 용이 있었는데, 구룡산에 누워있던 ‘구룡이’와 와룡산에 엎드려 있던 ‘와룡이’었다.
어느 맑은 날 구룡산에는 승천하기 위해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힘을 주고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 구룡이의 꼬리에 무엇인가 터 억하니 걸려 고개를 내려다보니 꼬리가 커다란 바위를 쳤던 것이었다.
그걸 본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려버려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구룡이는 승천하지 못하였고 낙심한 나머지 아홉 달을 내내 드러누워 울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와룡산에 살던 와룡이는 ‘나는 꼭 승천하고 말 거야!’라고 다짐했고, 승천을 위해 3일 동안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승천하기 전날 와룡이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쌓인 묵은 때를 모두 벗겨내고 깔끔하게 몸단장을 해야 한다며 밤새도록 저수지에서 목욕하였다.
승천하기로 한 날이 되자 와룡이는 따스한 햇볕에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잠시 졸고 말았다.
깜빡 조는 사이에 와룡의 굽은 등이 산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왔고, 등이 간지러워 깬 와룡은 승천하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산이 움직인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와룡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조용히 그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다 내려가기를 기다리다가 그만 때를 놓쳐 승천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 승천하는 날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승천하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여의주를 갖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백 년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여의주를 찾아다니던 두 용은 마침내 여의주가 잠들어 있던 실안 바다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두 용이 여의주를 동시에 쥐는 순간 여의주에서 형용할 수 없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승천했다고 한다.
이때 여의주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너무 강하여 순식간에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말하기에 ‘그 빛이 너무나 밝아 순간 눈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하여 두 용이 승천한 바다를 눈을 멀게 할 만큼 아름답다는 뜻의 ‘실안(失眼)으로 불렀다고 한다.
바람도 잔잔하고 파란 하늘을 수놓고 있는 케이블카는 연신 각산과 늑도를 왕래한다.
실제 크기가 같게 제작했다는 거북선이 있는 공연장 마루에서 점심을 먹으며 편하게 쉬었다.
준비한 도시락과 빵 그리고 반찬들이 출출한 배를 채웠다. 커피로 입가심하며 이내 삼천포대교 밑으로 지나며 걷기를 계속한다.
삼천포대교
삼천포대교를 멋지게 촬영하며 근처를 지나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를 만났다.
화장실에서 보았다는 대방진굴항이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지나는 길에 만나다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을까?
인공적으로 만든 군항인데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요새여서 신기했다.
좁은 수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둥근 원형의 포구가 있고, 배를 정박하고 적으로부터 전혀 보이지 않았던 대방진굴항이다.
사천 대방진굴항은 연안을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으려고 만든 군항 시설이다.
순조(1800~1834) 때 군대 간에 연락하고,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설치한 대방선진(大芳船鎭)인데 보통 선진에는 병선을 정박하려고 둑을 쌓아 활처럼 굽은 모양의 굴 항을 설치하였다.
당시에 이곳에는 전함 2척과 300명의 수군이 상주하고 있었다.
굴 항 북쪽에는 수군 장이 머무는 동헌과 일반병이 머물던 관사가 있어 수 군 촌을 이루었다고 하며 곡식 2만여 섬을 저장할 수 있는 선진창(곡식을 저장하던 창고)도 있었다고 한다.
삼천포항
각산
유람선 선착장을 바라보며 언덕 위 청널 공원으로 향했다.
사천 시내 사방을 볼 수 있는 청널 공원으로 가는 골목에는 예전 어촌의 어려웠던 모습을 풍자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유럽풍의 정원이 아름답다.
익살스러운 쥐치포의 유래 탑과 삼천포대교의 멋진 풍광이 사천 최고의 전망대로 틀림없다.
하얀 풍차가 있는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조망하고 계단 옆에 걸린 멋진 사진들을 감사했다.
카페에 들러 커피와 음료수를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걷기 여행의 하루를 늘어지게 만끽했다.
와룡산과 사천시내
대교 공원과 노산 공원을 지나니 오늘 걸은 코끼리 길의 마지막 남일대해수욕장으로 가는 중의 사량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대보름 행사 준비로 떠들썩한 선착장은 많은 숙박업소와 식당들이 들어차 삼천포항 최고의 관광지로 분주하다.
사천 바닷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걷기 여행의 으뜸 코스가 여기가 아닐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넉넉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카메라가 향하는 곳이 사진이 되는 신기함도 가득했다.
여유와 즐거움 그리고 편안한 걷기로 행복한 하루였다. 와룡산과 각산 그리고 사천만이 어우러진 축복받은 여정이 너무 좋다.
박재삼 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