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자전거 여행
10박 11일의 자전거 여행 - 2013년 7월 27일(토) ~ 8월 6일(화)
십수년전 내가 부산에서 개량한복차림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적이 있었다. 방학 때는 아내의 학원차 운전기사로 시간에 매어 있었는데 그게 답답하기도 해서,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한 바퀴 휑~하니 돌아오고 싶은데, 가도 되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 때 아내는 “혼자는 너무 위험하니 유강이가 대학 가거든 둘이 같이 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라며 말렸었다. 꼭 아내가 말려서 그렇다기보다, 도로여건이나 내 체력을 감안해볼 때 자전거 여행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고, 또 옛날과 달리 차가 많은 지방도로에 자전거로 다니는 게 무척 위험할 것 같아, 아쉽지만 ‘아들녀석이 대학생 될 때까지만 참자며 그 생각을 접었더랬다.
세월이 지나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또 꺼냈는데 돌아온 답은 예상 밖으로 충격적이었다.
“그 위험한 여행을 아이 데리고 간다고요? 정 가고 싶으면 당신 혼자 가는 게 어떨까 싶은데....”
‘허, 그 참.... 아니 전에는 둘이 같이 가라 하더니, 이젠 나 혼자 가라고?’
아내의 반대 탓도 있지만 ‘도로를 달리는 차는 예전보다 더 많아져 있을 게고, 나는 그 때보다 더 나이가 들었고... 차가 씽씽 달리는 지방도로 갓길을 자전거로 달린다는 것은 용기도 용기지만 내가 만약 사고를 당한다면 가족들은?’ 이런 생각에 또 자전거 여행을 접었었다.
세상사 알 수 없다더니... 나이 50이 다 되어 내가 경기도로 이사를 올 줄이야?
경기도 용인에서 성남을 거쳐 잠실쪽 한강으로 흘러가는 ‘탄천’이란 곳 가까이 살게 되어 자전거 탈 여건이 좋았다. 평소 왕복 10Km 정도의 짧은 거리만 다니다가 무엇에 씌었는지 2005년 한 여름에 뭣도 모르고 아무 준비도 없이 길에 적힌 ‘한강 25Km’ 그 글자만 보고 한강까지 달려갔다가 돌아오면서 배도 고프고 목마르고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날 다녀와서 냉장고에서 캔 맥주 하나 꺼내먹고 팬티바람으로 대자로 뻗어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초아가 깜짝 놀라며 “아빠, 이게 뭐야? 화상 입었잖아! 가만 있어봐. 내가 오이팩 해주께.” 그날 초아가 찍은 사진이 하나 남아있다.
분당에 있는 학교로 옮기고 다시 자전거로 왕복 10Km 정도를 출퇴근 하면서 몇 번 한강까지 나간 적이 있다. 말 안 듣고 자꾸 빗나가려는 우리반 남학생 한 녀석을 정신교육 시킨다고 한여름에 같이 자전거로 다녀왔고(그 녀석 좀 늦었지만 올해 연세대학교 경영학부에 편입해 들어갔다. 올해 보낸 메시지에... 선생님 병준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이네요. 인사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곧 인사 드리겠습니다. 오늘 날씨가 마치 한강 자전거 탄 날만큼 덥네요.)
여름날 출근하면서 소나기를 흠뻑 맞으며 정말 신나게 달린 적도 있었고, 3학년부장을 맡을 땐 담임샘들과 단체로 한강까지 놀러 나가기도 했다. 재작년에 이 학교로 전근 오면서 제일 불만이었던 게 자전거 탈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학교가 너무 언덕에 있고 차가 다니는 언덕의 도로 폭이 좁아 도저히 자전거를 타기에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자전거는 그냥 먼지만 덮어쓰고 있었다.
그러던 올해 3월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하여 뒷동산을 돌고도 시간이 남아 마북공원을 한 바퀴 산보를 하는 데 공원옆 차가 다니지 못하는 비탈길을 자전거로 끙끙 용을 쓰고 오는 체육선생님을 만났다. 놀라웠다. 이런 비탈길을 자전거로 출근하다니, 아무리 30대 후반의 체육샘이라지만, 그건 내게 충격이었다.
“비탈길, 그 자전거로 안 어려운교?”
“어렵죠. 처음엔 자신 없어서 며칠 고생하다가... 마지막 비탈은 아주 악을 쓰면서 겨우 올라옵니다. 지금도 힘들어요. 하하.”
차가 다닐 수 없게 말뚝을 쳐둔 공원 옆 비탈길은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경사도로 치면 15도를 넘을까? 이래저래 출퇴근에 자전거는 안 된다고 지레 겁을 먹고 자전거는 아예 접어두고 있었는데 체육샘이 타는 걸 보고 ‘나도 이참에 자전거를 타봐?’ 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드는데, 친구 도다리가 부산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냅다 동참을 통보하고 초아한테 가서 자전거를 빌려왔다. 처음 타 본 게 4월 16일. 하이브리드 자전거라던가? 바퀴 폭이 싸이클 보다 조금 굵지만 집에 있던 낡은 자전거보다는 엄청 가늘다. 타보니 아주 잘 나갔다. 그걸 타고 한강에 나갈 때 뭐가 기어가 잘 안 들어가기에 ‘고장난 모양이다’하고 1단으로 계속 몰고 갔다.
한강에서 나를 기다리던 도다리, 내걸 타보는 순간, 비틀비틀....
“에게, 바퀴가 헛 도네? 평지에 무슨 기어를 1단으로 해 놨노?”
“몰라, 고장 났는지, 기어가 안 바뀌더라. 그래서 그냥 왔는데?
“뭐? 1단으로 여기까지 계속 왔다고..... 26Km를? 하이고, 이 도다라!”
기가 막힌 도다리가 나를 보고 도다리라 카더니, 여기 저기 눈을 진짜 도다리처럼 굴리더만 기어 올리는 스위치를 찾아 위치를 고쳐준다.
“아니, 이런 것이 있었나? 나는 고장인 줄 알았지. 기어를 올리고 내리고가 하나로 되는 줄 았았는데, 그게 따로 있었구나? 아이고.... 이렇게 편한 것을....”
집에 돌아올 땐 7, 8단으로 그냥 왔다. 아까 헛 페달질 힘들게 했던 것 생각하면 거의 평지라 대충 저어도 오더라.
그렇게 초아 자전거로 출퇴근하다가 초아가 자기도 자전거 운동해야 한다고 해서 돌려주고 다른 자전거를 구입, 연습에 들어갔다. 팔당대교까지, 다음엔 양수리까지, 나중엔 서해갑문까지 왕복 150Km가 넘는 길을 다녀오기도 하고, 7월 들어 학교 바로 아래 경사 15도에 가까운 힘든 오르막코스의 마지막 부분도 오르는 데 성공, 자신감이 붙었다. 그 때부터는 D-day가 가까워지는데 혹시라도 몸을 다치면 거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사렸다.
마지막 출발 하루 전날, 98Km 주행으로 몸을 풀고, 드디어 7월 27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침 식사를 하고 6시 15분전에 잘 다녀오라는 아내의 배웅을 받고 떠났다. 얼마 전 1시간1분만에 주파한 기록을 생각, 7시까지는 충분하다고 여겼는데 짐 무게가 5Kg이 되니 속도가 평소보다 안 나온다. 결국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저었어도 7시를 꽉 채워 겨우 도착했다. 체력 안배에 유의해야겠다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친구들간에 에피소드 몇 개 있었다. 깃발 잃어버린 재봉이, 그걸 찾으러간 도다리, 오기 직전 처음으로 펑크가 난 학희, 차에 자전거를 싣고 와서 와이프가 운전해 돌아가는 차에 짐을 두고 내린 무상이 등....
깃발 사건, 재봉이가 깃봉이란 이름을 달게 된 사연하나 간단히 소개하면...
대장 도다리가 재봉이가 흘린 깃발 찾으러 쌔가 빠지게 자전거로 달려가고, 무료해진 우리들. 재봉이 자전거가 아까는 분명 같이 서 있었는데, 누가 만졌나? 깃발 없다고 죄가 되어 그러나, 다른 자전거 8대는 모두 일렬횡대로 서서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데 재봉이 자전거만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친구들 몰래 내가 학희 자전거에서 깃발을 빼어 재봉이 자전거에 끼워두고 저쪽 돌에 걸터앉아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짐짓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누워있던 자기 자전거에 깃발이, 땅을 보고 쳐박혀 있지만 분명히 노란 깃발이 달린 것을 본 재봉이, 눈이 왕방울만큼 커지면서 주위 친구들을 불러 모으더라.
“야야, 이봐라! 와... 여기 깃발이 있었네? 이기... 깃발이 밑으로 보고 있어서 못 봤구나! 야! 이걸 못 보다니!”
재봉이 고함에 몰려온 친구들, 이구동성으로
“와, 그랜 기가? 우리가 그걸 못 봤구나? 그참... 도다리가 깃발 찾으러 갔는데 이걸 우짜노?”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학희가 저기 죽 늘어선 자전거들을 보더니 비명을 지른다.
“아니, 저기 머꼬? 내 끼 없네? 내 깃발이 어데 갔노?”
모두들 잠시 침묵..... 그리고 곧 이어...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시선들이 한 군데로 몰린다.
“상국이 니가 그랬제?”
(일마들이 머리가 좋아요.)
6박 7일간의 국토종주 자전거여행. 정말 재밌었다. 중간중간 힘든 구간 왜 없었겠냐만 친구들과 같이 “하하” “깔깔”거리며 하루 약 100Km 정도 되는 적절한 거리를 무리하지 않고 유람하며 가는 자전거길이라 정말 즐거웠다. 음식점도 대부분은 미리 알아둔 곳을 찾아가 실망하지 않았지만 7월 30일 점심 무렵, 길가의 구미청소년수련야영장 소나무숲에 눌러앉아 중국집에 콩국수랑 짜장면, 탕수육을 주문해 맛있게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게 가장 기억에 남고, 5일째 되던 날 오르막을 만나 탄력을 붙인다고 속도를 최대한 내어 오르다가 앞 친구가 정지할 때 순간적으로 추월할 틈새를 찾지 못해 나도 브레이크를 잡는 순간 자전거에서 떨어지면서 순간적으로 난간에 옆구리를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의사인 친구가 응급조치를 하고 내가 숨을 가다듬을 때 친구들은 모두 긴장에 긴장, 결론은 갈비뼈에 타박상, 또는 약간 금이 간 상태인 듯. 평지는 갈만한데 오르막 올라갈 때 힘이 주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랴? 일단 끝까지 가자! 간다!’
자고 나니 상태가 낫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악화된 것도 아니다. 재채기를 하면 아프고 오르막 올라갈 때 다리에 힘을 주면 핸들을 잡은 손에도 힘이 들어가면서 갈비뼈 부근이 아프다. 속도를 줄일 수 밖에.
하여간 갔다, 부산 낙동강 하구언까지. 8명이 무사히 완주를 하고, 서로 격려를 하고, 자전거 여행 계획을 완벽하게 짠 도다리를 헹가래친다. 특히 재중이가 마지막 날 아침, 물금 숙소까지 자전거를 싣고 찾아와 반나절이지만 마지막 일정을 같이 했다. 그래서 서울을 9명이 시작하고, 무상이가 업무로 인해 하루만 하고 다음날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서 계속 8명이 해왔는데, 재중이가 마지막날 9명으로 채워준 셈. 게다가 재중이 와이프는 결승점에 수박과 찬 음료수를 가져와 마중을 나와주었고 신랑과 자전거를 담아갔다.
자전거 보관할 장소 때문에 잠시 헤어졌다가 사상터미널에서 만난 우리 여덟명은 돼지국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또 각자 자기 용무를 보는 시간을 가지고, 섬진강팀 4명은 찜질방에서 목욕 후 옷을 갈아입고 부평동 환영회장으로 갔다.
부산 친구들이 마련한 술 자리. 광용이가 플랜카드를 만들어왔다. 거기에 참가자의 싸인을 해 넣자는 제안을 하고, 모두의 싸인이 들어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섬진강 종주를 계획한 4명이 따로 떨어져 나와 터미널에서 자전거를 찾고 밤차로 광양으로 간다. 12시 경 모텔에 숙소를 정하고 간단히 씻고 잠자리에 든다.
1. 8월 3일. 섬진강 종주. 지도상엔 154Km, 실제 주행거리는 170Km
섬진강 종주 코스가 지도에는 154Km로 나와있다. 배알도 수변공원을 찾아가느라 광양 시내를 돌고 돌아 16Km 걸렸다. 그리고 강을 거꾸로 올라가는 코스가 정방향보다는 제법 힘이 많이 들 것이라는 사전지식을 감안, 미리 속도를 빼어둔다. 그러다가 창선이 연두낭자가 펑크나는 바람에 내가 펌프를 이용, 바람을 넣어보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바람이 빠지자 트럭 수배하느라 애를 쓴다. 결국 퇴비 운반용 트럭에 연두낭자 몸을 눕히는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찾아간 농기구 수리점. 트럭기사와 친구인 듯한 주인은 어디 들판에 약 치러 갔는지 전화를 받더니, 고함을 쳤나? 옆에서도 다 들린다.
“지금 멀리 들판에 있는데... 자전거 빵구라고? 큰 건도 아니고.. 그냥 보내면 안 되겠냐?”
트럭은 이제 또 퇴비 실으러 가야 할 테니 다른 길로 가버리고, 다시 눈물의 끌바를 계속 하던 창선이, 수달생태보호센터를 발견하곤 마치 중앙에서 자전거길 취재를 나온 양, 감언이설로 아부, 회유를 섞었지만 결론적으로는 공갈을 친다.
“수달 생태보호가 아저씨들 임무라 자리를 비울 수 없다지만, 자전거도로 취재 이것도 생태보호와 관계있는 일이고, 취재중에 어려움이 발생했는데 이런 일을 도와주지 않고 수달 나타나기만 기다리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런 일이 중앙지에 한 줄 긁히면, 윗분들이 뭐라 안 할까요? 좋은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디 북극이나 남극, 사막에 가도 살아남을 친구다. 넉살좋게 트럭을 공짜로 얻어 타고, 자기가 선심쓰는 듯, 중앙지에 나올 것이라는 말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면서 사진 한 장 같이 찍히게 해준다.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중앙지엔 안 나와도 정말 좋은 일 하신 것입니다.)
하여간 고약한 퇴비냄새 약간 풍겼지만 반가운 연두낭자는 사성암 인증센터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 반갑게 해후를 하곤 거기서 점심으로 콩국수를 맛나게 먹고 슬슬 출발했는데, 앗, 어느 순간 길에 자전거 표시가 하나도 없다. 언덕 위인데... 거기서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그냥 쉽다고 약 3Km 내리막을 다 내려와서, ‘아무래도 이상하다?’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 결국 내려왔던 고갯길을 다시 올라가기로...
그 때부터는 파란색 자전거길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나중엔 또 공사로 인해 길이 없어지더구만. 하여간 돌고돌아 사성암에서 나와 구례역쪽으로 약 5~6Km 알바했으니 속도계엔 오늘 주행거리 총 170Km, 오후 9시에 닿았으니 꼬박 15시간 30분 걸렸다.
힘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 길은 어두워지고 약간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애초 학희와 창선의 계획은 이른 저녁에 섬진강댐 도착해서 버스로 전주에 나가면 서울로 가는 막차 또는 심야우등을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었는데. 우린 밤 9시 넘어 저 깊은 지리산 섬진강댐 인증센터에 도착.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길 끝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자전거를 치켜들고 환호를 질렀다. 4대강 일주를 기획한 문수는 자기가 고집을 너무 부린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저녁 식사비와 전주까지 트럭비를 부담하겠다며 일단 먹고 보잔다. 닭볶음탕과 민물매운탕에 술 몇 잔. 식당 주인 따님이 모는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트럭 뒷칸 불편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타자마자 곯아떨어져 머리가 전후좌우 춤을 춘다.
전주역에 도착, 내일 아침 서울행 첫차시간을 알아보니 일찍 나오면 표는 많단다. 순창행 첫차표 2장을 끊어두고 모텔을 찾아 돌고 돈다. 남자 넷, 한 방, 아니 두 방이라도 무관한데 방이 없단다. 결국 저 멀리 방 한 칸에 8만원 달라는데 깎을 힘도 없다. 가서 씻고 세탁기 돌리고 바로 꼬꾸라져 잔다. (아마 이 날이 총 11일 중에 가장 힘든 날이 아니었나 싶다.)
2. 영산강 종주
8월 4일. 새벽 첫차로 서울 간다며 학희와 창선이 먼저 방을 나가고, 문수와 나도 일어나 짐을 꾸리곤 아침으로 콩나물 국밥, 첫차로 순창에 내렸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승객 한 분이 친절히 길을 가르쳐준다. 덕분에 담양댐 인증센터까지 약 8Km를 순조롭게 왔다. 여기서 지도상 134Km. 그럼 나중 영산강 하구언에서 다시 목포터미널까지 이동을 감안해 오늘 주행거리는 대충 150Km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어제보다 출발이 세 시간 반 정도 늦으니 아마도 도착시간은 비슷할지 모른다는 생각, 정말 예상 그대로, 오후 9시 조금 넘어 도착했으니. 통계는 무시 못 한다.
(휴식시간 포함, 총 주행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니 섬진강 170Km/15시간 30분 = 10. 97 Km/hr 넷 다 체력은 비슷, 자전거 펑크와 알바를 감안하여 좀 늦었던 모양, 영산강은 특별히 늦은 것이라곤 오다가 40분가량 잠을 잔 것 밖에 없었는데 영산강 150Km/12시간 = 12.5Km/hr. 이렇게 기록을 해두고 다음날 금강 종주 때 참조를 했다.)
메타세콰이어길에서 도장 찍고 구경하며 잠시 휴식 후, 여긴 길을 잘 못 들 염려 없다며 편한 마음으로 시작한다. 죽록원 앞 국수가게 즐비한 곳을 지나쳐가면서 작년에 여기 왔던 기억을 떠올린다.
영산강, 한 마디로 강은 강인데.... 중간에 점심 요기할 만 한 곳이 없어 인증센터 매점에서 컵라면으로 점심, 하긴 나중엔 그런 매점도 너무 그리웠으니... 무인판매대도 너무 열악했다. 가판대의 생수는 품절이고 캔커피같은 것만... 매점도 매점이지만... 중간중간 쉴 수 있었던 정자가 많던 낙동강이 그리웠다. 하긴 둘이 가는 먼 길에 정자에 무작정 쉬어갈 수 없었지만 말이다.
제일 풍광이 좋았던 곳이 느르지전망대인데, 한적한 숲길을 돌아 오르막 계속되다가 마지막 200m 정도 제법 비탈이 심했기에, 자전거를 길가에 두고 몸만 갔다. 아까, 공사로 인해 우회하는 도로라는 표지판을 보고선 ‘나중에 다시 이리 돌아오겠지’라고 착각한 탓이다. 전망대가 높다. ‘생략할까?’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문수가 풍광이 좋다며 올라가보란다. 음... 역시 노력한 댓가는 꼭 있는 법, 힘들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잠시 구경하며 셀카를 찍고, 나는 자전거 있는 아래쪽으로 내려가 500m 내리막을 신나게 내려갔다. 적당한 크기의 못에 비가 뿌린다. 못에 번지는 빗방울의 파문을 쳐다보며 문수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10여분 기다리며 혼자 놀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비닐로 감싼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하려는데 전화가 울린다. 문수다.
“어데 있노?”
“밑에서 자네 기다리는데?”
“아니, 이쪽으로 가야하는데 왜 내려갔지?”‘윽, 오늘은 알바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심한 오르막 알바.’
섬진강은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특히 막판에 산속으로 오르막이 계속되어 힘들었고, 오늘 영산강은 목포라는 제법 큰 도시쪽으로 내려오니까 만약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로 빠질 수 있는 길이 많을 것이니 어제보다는 많이 쉬울 것이라 했는데, 웬걸? 목포 35Km 남았는데 길은 어두워지고 사람하나 없는 시골길을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어두운 길에 가끔 조그만 개구리녀석들이 나와서 길을 뛰어다니는 통에 그걸 피하느라 또 힘들었다. 드디어 어느 순간 잠시 마을 옆을 지난다. 매점이란 간판이 보이는 순간,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는 문수, 자전거를 제대로 세우는둥 마는둥, 가게에 들어가 주인이 나오기도 전에 냉장고를 뒤져 캔맥주를 하나 따 한입에 다 털어 마시고는 크게 숨을 내쉰다. 어디 광고 C.F 사진찍으면 되겠더라. 나는 막걸리 두 잔을 거푸 마시고, 잠시 숨을 돌리며 물 한 병 사고 다시 출발. 목포까지 논스톱으로 촌길을 달렸다.
막바지에는 탄천처럼 산책하기 좋은 코스인 듯, 가족이나 연인끼리 산책나온 사람들이 많아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드디어 인증센터앞. 저녁 9시 넘어간다. 꼬박 12시간 걸렸다. 악수를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주며 우리끼리 서로를 격려한다. 목포 터미널을 물어 찾아간다. 제법 갔다. 군산 가는 차는 떨어진 지 오래고, 광주 가는 차가 10분 뒤에 있단다. 화장실만 다녀오고 급히 광주행 차를 탔다. 광주에 닿아 내일 아침 군산행 첫차표를 끊어두고 모텔을 잡고, 씻고 세탁기 돌려두고 나와 감자탕집에서 밤 12시 넘어 늦은 저녁을 먹는다.
3. 금강종주(1)
8월 5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났는데도 짐 챙기고 터미널에 가니 아침 먹을 시간이 없다. 군산에서 먹기로 하고 차를 탄다. 차안에서 좀 자고, 군산터미널, 생각보다 작아서 아침식사 할만한 식당이 안 보인다. 김밥집에서 간단히 육개장에 김밥으로 속을 채우고 점심대용으로 빵 몇 개와 두유를 준비해서 9시 20분 경, 금강하굿둑을 향해 출발한다. 다행히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 않다. 인증센터에서 사진 찍고 좀 가다가 철새와 관련있는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하루에 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니라 1박 2일로 마음먹으니 마음이 편하다. 공주보까지 달리고 공주시내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역시 뙤약볕 아래 길이 멀다. 목이 탄다. 가만 생각하니 아침에 먹은 육개장에 조미료를 너무 많이 넣었나보다. 다시는 김밥집에서 육개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보통 때보다 더 자주 물을 마신다.
시골길 방둑에 그늘을 만들어 둔 곳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운다. 며칠 전 부산가면서 친구 여럿이 웃어가며 먹던 진수성찬이 그립다. 강경과 논산을 거쳐 부여에 들었는데도 길가에 물을 보충할 곳이 없다. 부여시내로 들어가 마트를 찾는데도 한참을 돈다. 시원한 물을 사 마시고 또 보충하고 맥주와 밤막걸리를 한 통 사서 다리밑을 찾아 잠시 쉬어간다. 문수가 공주 특산 밤막걸리에 반한 모양이다. 이걸 한 병 사서 집에 가져가자는데 이 삼복더위에 싣고 다니다간 하루도 안 되어 다 초가 될 건데, 전화번호만 적어가자며 말린다.
공주보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받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모텔을 찾아 좀 헤맨다. 온천욕을 공짜로 할 수 있는 모텔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목욕부터 한 후 모텔에 짐을 푼다. 식당을 찾아 콜택시를 타고 이동, 아침 점심이 부실했기에 저녁은 고기집에서 갈비찜을 시켰는데 좀 별로다. 다시 택시로 이동하여 당구 한 판 치고, 내일 아침 식사대용으로 빵과 음료수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4. 금강종주(2)
8월 6일.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까지 안전운행하자며 하이파이브를 하고 05:57 출발이다. 대청댐까지 남은 거리가 50Km 정도라 오전 중에 끝낼 수 있다는 마음. 편하게 출발했는데, 세종시에 드니 표지판이 좀 시원찮다. 인증센터 찾는데 30분 넘게 길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S자 표지판에 양쪽 끝에 화살표가 있던 그 애매한 표지판 사진을 찍어올 걸, 물어볼 사람도 없고 다리를 건너 자전거 탄 사람에게 물어도 대답이 시원찮다. 이 시각에 금강 종주하는 팀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짐작을 했지만 짐작 이상이다. 겨우겨우 자전거타는 사람인데 현지인이란다. 자전거길은 모르겠고 인증센터같은 걸 본 적 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는데 가보니, 없다.
“한 달 전까지 분명히 여기에 부스같은 게 있었거던요. 어디로 옮긴 모양인데... 하여간 이 길 이쪽 저쪽으로 어디 있긴 있을겁니다.”
반대편으로 한참 달려 인증센터 화살표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오르막을 올라갔는데 분명히 표시된 거리보다 더 왔는데 없다. 저 위에 보이는 큰 건물을 찾아 올라간다. 먼저 간 문수가 돌아온다. 그 순간 저쪽 한 귀퉁이에 인증센터라는 글씨가 얼핏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10일 동안 다니며 본 많은 인증센터 빨간색 부스가 아니라 건물 입구 귀퉁이에 프린트로 인증센터 글을 써두고 도장찍는 책상을 내어놓았더라.
세종시, 신문방송에서 아직 체계가 안 잡혔다고 떠들더니, 공무원들 서울과 세종을 오가면서 정신없을 터, 자전거 도장에 뭔 신경쓸 시간이 있겠나?
거기부터 대청댐까지는 그늘하나 없는 외길이었다. 휴게소라고 쉬어가라며 만들어둔 것은 땡볕아래 긴 의자 한두 개, 아직 어린 나무라 손바닥만한 그늘 하나 만들지 못하는데 앉아 쉬는 이 없는 의자가 쓸쓸해 뵌다. 자전거 달리기에 너무 열악한 조건. 덥고 목마름이 더하다. 달리면서 어디 샐 곳이 없는지 곁눈질 하다가 대청댐 20Km 조금 더 남겨두었을 즈음, 왼쪽 높은 길의 지방도로 매점 간판이 보인다. 목도 마르고 너무 더워 자전거를 멈춰 풀밭언덕으로 끌고 올라간다.
매점문을 열고 들어가도 주인이 안 나온다. 문수는 바로 냉장고를 뒤져 캔맥주를 두 개 꺼내온다. 그제야 젊은 주인댁, ‘이 더운 날에 누가 왔나?’ 싶어 나오는데 날씨탓인지 남정네 손님 보기 민망하다. 짧은 핫팬츠에 헐렁한 나시 T,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옷을 좀 추슬러 나온다. 그새 우린, 맥주 다 마시고 빵 다 먹고 가져간 과일통조림같은 걸 먹고 있었다. 주인집 강아지가 순하다. 빵과 과일 다 잘 먹는다.
목을 축이고 약간의 음식을 보충하니 힘이 난다. 이제 논스톱으로 대청댐이다. 가는 길에 오르막이 조금 있다. 경치 좋은 데도 있고 대청댐 마지막 600m 지점, 길은 좁고 오르막이 제법. 우린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자전거 사고를 목격한다. 올라가는 사람 힘이 부치니까 방향이 비틀비틀, 내려오는 사람 속도가 있으니 제대로 못 피하고 충돌, 역시 오르막 내리막에서 사고는 무섭다. 다친 사람 일으켜 앉혀두고 정신을 차리는 동안 우리는 조금 더 끌고가다가 경사가 완만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마지막 주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으로 들어서고 저만치 붉은 인증센터 부스가 보인다. 다왔다. 둘이 서로 어깨를 감싸 등을 두드리며 격려한다. 드디어 4대강 종주를 무사히 마쳤다.
내려오는 길에 ‘메밀꽃 필 무렵’ 막국수집에 식사하면서 대전터미널까지 자전거를 옮겨줄 트럭이나 봉고차를 수배해보니 생각보다 싸다. 콜~하고 마음놓고 맥주 한 잔 한다. 대전에서 1시차로 분당행, 수원행 1시 30분 차를 탈 문수와 10박 11일만에 헤어진다. 하지만 곧 바로 오후 7시에 양재역에서 만날 것이다.
차안에서 바로 잠들었는데 하도 시끄러워 일어났더니 창밖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허참... 분당에 내리니 비는 그쳤다. 날씨가 많이 도와준다. 평소 자전거로 다니던 탄천길, 집까지 10Km 조금 더되는 거리. 군데군데 물웅덩이더니 수내를 지나니 탄천물이 넘쳐 자전거 바퀴가 제법 많이 잠긴다. 정자동 파크뷰근처, 더 이상 자전거로 주행할 수 없을 만큼 물이 불었고 내려오는 물살의 힘 또한 거세다. 급히 자전거를 도로위로 끌어올린다. 집에 오니 물에 빠진 생쥐가 따로 없다. 아무도 없는 집, 급히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옷을 말린다. 저녁 7시에 양재역에 30구르메 국토종주 해단식 및 4대강 종주 성공을 축하하는 환영회 모임에 이 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어쨌든 잘 다녀왔다. 갈비뼈를 다친 옆구리가 좀 아프지만 아직 페달 저을 힘은 남아있는데... 가서 즐겁게 마셔보자.
첫댓글 상구가, 문수야, 창서나, 하키야,,,,
진~~~~~~~~~~~~~짜 욕 봤다.
가까이 있으모 씨븐 쐬주라도 한 잔 부우 줄 낀데....
ㅋㅋㅋㅋ
상구기 1단 넣고 26킬로를 달렸다는 말에
배를 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