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 노산 트래킹 공지 ★
◇ 테마 일정 : 2019년 09월 21일(토) ~ 09월 23일(월) [2박3일]
◇ 노산(崂山, Lao Shan, 1,133m)은 청도시 동쪽에 있는 노산구(嶗山區)에 있으며 청도시 중심지에서 40km 떨어져 있다. 도교 본거지라고 여겨질 만큼 도교로 이름난 산이며 풍경의 변화가 무궁무진하다. 바다와 연접해 있어서 18,0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중국 해안선에서 유일하게 해발 1,000m 이상인 산봉우리로 “해상제일의명산(海上第一名山)”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로 아름답다. 1982년 4A급 국가중점풍경명승구(國家重点風景名勝區)로 지정되었으며, 1992년에는 노산의 스라오런 해수욕장이 국가급 휴양지로 비준되었다. 거봉경구, 태청궁경구, 태평궁경구, 기반석경구, 앙구경구, 북구수경구 등 총 9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동쪽과 남쪽은 바다로 이어져 있고 서쪽은 청도시와 연접해 있다. 면적 446㎢, 해안선 길이 87.3km이고 주봉(主峰)은 노정(崂顶)인 거봉(巨峰)으로 해발 1,132.7m이다.
◇ 중국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할 목적으로 노산에 사절단을 자주 파견했는데, 이때마다 백성들의 노고가 많아 산 이름에 노(崂)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또한 노산은 중국인들이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노산만 못하다“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며, 태산, 황산, 화산 등과 함께 중국인들이 숭앙하는 명산 중의 하나다. 등산객들을 압도하는 화려한 화강암 덩어리들이 수도 없이 서 있어 자연이 빚은 화강암 조각공원 같으며 육중하고, 화려하고 바라보는 곳마다 조망미가 다르다. 유명한 중국 산둥 성 칭다오 맥주도 이곳에서 흐르는 광천수로 제조하고 있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며, 산정 주변에 있는 주역의 팔괘를 본뜬 여덟 개의 돌 관문도 이색적이다. ◇ 노산은 1억 년 전 백악기(白堊期)에 형성된 산으로 거봉을 중심으로 산맥이 사방으로 연이어진 큰 산으로 거봉지맥(巨峰支脈), 삼표산지맥(三標山支脈), 석문산지맥(石門山支脈), 오산지맥(午山支脈)이 있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암석, 동굴, 폭포, 오솔길은 절경을 이루며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웅장하고 수려한 그림 같아 중국 정부에 의해 가장 아름다운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상에 서면 조망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바다 너머 웅장한 광경을 볼 수 있다. 노산은 도사들이 도를 학습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노자초상을 모시고 있다. 특히 이곳 산동성은 공자, 맹자, 손자, 묵자 등 기라성 같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 노산 거봉풍경구(巨峰風景區) 노산 중남부에 위치하며 노산의 주봉인 거봉(巨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산과 바다, 숲, 기이한 봉우리, 기암괴석, 그리고 인문적인 경관이 잘 어우러져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상십팔반(上十八盤), 황화정(黃花頂), 흑푹구(黑風口), 처녀봉(虔女峰), 오지봉(五指峰), 거봉(巨峰), 비고고(比高崮), 영기봉(灵旗峰), 일선천(一線天), 자연비(自然碑), 자광동(慈光洞), 천을천(天乙泉), 주후고(柱後高), 거봉구(巨峰口), 천마봉(天馬峰), 미동(迷洞), 활류구(滑溜口) 등 총 17곳의 명소가 흩어져 있으며 “거봉욱조(巨峰旭照, 거봉일출)”는 노산의 12개 유명 경관중의 하나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로 태극의 팔괘에서 이름을 따온 건(乾), 곤(坤), 감(坎), 리(離), 손(巽), 진(震), 간(艮), 태(兌)문을 한 바퀴 도는 것이다.
1.거봉(巨峰)은 “노정”이라고도 불리는데 노산의 주봉으로서 해발 1,132.7m로 중국 만리 해안선의 최고봉이다. 정상은 기둥모양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면적이 약 300㎡ 이다. 특히 최정상에는 거대한 돌 하나가 우뚝 솟아있어 날카로운 칼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인공으로 만든 돌계단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아! 이보다 더 높을 순 없겠다”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정상에서 멀리 바라보면 바다와 산이 서로 어우러진 경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남쪽과 동쪽으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북쪽과 서쪽으로는 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도시와 마을이 구름 사이에 보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정상 남측에 청나라 때 석각인 “동해기관”이 새겨져 있다.
2.건문(乾門)은 북서쪽의 오지봉(五指峰)의 손가락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멀리 바라보고 절을 올릴 수 있으나 올라가지는 못한다. “건(乾)”은 역경 팔괘에서 수위를 차지하는데 가정에 서는 부친을, 나라에서는 군주와 황제를, 육기에서는 태양을, 자연계에서는 하늘 또는 사람이 막을 수 없는 요소를 상징한다.
3.태문(兌門)은 자강로(自强路)에 위치하며 태문에서 서쪽으로 멀리 바라보면 해발 1,000m가 안 되는 소거봉 아래에 용천고(龍泉崮), 맥석옥(麥石屋), 다간(茶澗), 랑산(狼山), 관태봉(觀台峰), 만권서(萬卷書), 사모봉(紗帽峰), 원수고(元帥崮) 등의 봉우리가 천군만마처럼 위엄 있게 줄을 지어있다. 이들 봉우리 밑의 비옥한 평지에서 예로부터 동이족(東夷族) 선민들이 살고 있었다. 노산 주변에서 출토된 다량의 선사문물들이 바로 4,000여 년 전에 선민문화가 있었다는 증거물이다. “태”는 방위에 있어서는 “서”를 대표하고 가정에 있어서 막내딸을, 날씨에 있어서 “흐림”을, 방위에 있어서 “서쪽”을 자연계에 있어서 “늪(못)”을 대표한다.
4.감문(坎門)은 광명로(光明路)에 있으며 왼쪽의 높은 산은 단로봉(丹爐峰)이고 단로봉 북쪽의 산문이 바로 감문이다. “감(坎)”는 “정북” 방향을 의미하며 가정에서는 둘째 아들을, 자연계에서는 물을 상징한다. 거봉 북쪽에 노산에서 해발이 가장 높은 천을천(天乙泉, 일명 原泉)이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 선현(先賢)들의 “천일생수(天一生水)”이념에 딱 부합한 것이다.
5.이문(離門)은 자연비(自然碑)에서 위로 올라가면 나오며 “이”는 방위에 있어서 “정남” 방향을 의미 하는데 북방구에 사는 중국인에게 태양이 항상 남쪽에 있듯이 이문은 마침 거봉의 정남 방향에 있다. 가정에 있어서 “딸(아름다움 과 밝음을 상징함)”을 육기(六氣)에서는 “궐양(厥陽)”을 자연계에 있어서 불을 대표한다. 이문에서 앞으로 바라보면 거봉이 보일락 말락 웅장한 자세를 하고 있고 왼쪽으로 보면 거봉 밑의 비고고(比高崮)와 오른쪽에 있는 영기봉(灵旗峰)이 2개의 거대한 돌기둥처럼 거봉 정남쪽의 가장 넓은 산문(山門)을 형성하고 있다.
6.진문(震門)은 방위에서 “동” 방향을 의미하며 가정에서 “장남”이며 자연계에서 “천둥(우뢰)”을 상징한다. “천둥”은 빠르고 용맹스러우며 공정하다. 옛날 사람의 마음속에는 절친한 땅 어머니와 높고 높은 하늘 아버지 외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천둥이라고 한다. 사나운 맹수도 천둥이 치면 벌벌 떨기 때문이다.
7.손문(巽門)은 여정로(麗正路)에 있는데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공중에 떠있는 듯한 누각의 복도처럼 생긴 것이 바로 손문이다. 방위에서 “남동” 방향을 의미하며 가정에 있어서 “장녀”를, 방위에서 “남동” 방향을 자연계에 있어서 “바람”을 상징 한다. 손문에서 복도를 따라 올라서면 영기봉 정상(1,080m)에 닿는데 이곳은 노산을 조망하기 아주 좋은 곳의 한곳이다. 8.간문(艮門)으로 가는 길이 치부로(致富路)인데 길가에 거대한 화강암이 늘어서 있으며 규모가 크지 않다. 방위에서는 “북쪽”을 대표하며 가정에서는 작은아들을, 자연계에서는 “산”을 상징한다.
9.곤문(坤門)은 강습로(講習路)를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곤”은 방위에 있어서는 “남서”를 대표하며 가정에 있어서 모친을, 육기(六氣) 에 있어서는 “태음(太陰)”을 자연계에 있어서는 만물을 양육한 “땅”을 대표한다. 거봉풍경구에서 곤문이 딱 거봉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멀리 바라보면 “거봉십만팔천장 해동래접혼망(巨峰十萬八千丈 海東來接混茫)”의 기세를 느낄 수 있고 산맥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노산에서 뻗어 나온 오산(午山)과 부산(浮山) 및 청도 시내의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 청도의 관광명소들
▶ 청도 전해잔교(前海棧橋·치엔하이)는 청도맥주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청도의 상징적 건축물로 교량 전체 길이가 440m이다. 당시 청나라 정부가 외세의 침략에 위기감을 느껴 뤼순에서 군사물자를 공급받기 위해 1891년에 나무로 만들었으며 독일이 청도를 점령하던 시기엔 길이도 연장하고 군사용으로 사용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칭따오에서 철수 할 당시 폭파시켰다. 그후 1931년에 길이 440m, 폭10m의 잔교를 재건하였다. 잔교 남쪽 끝에는 반원 형태의 방파제가 있으며, 인근의 2층 높이의 팔각정자인 회란각(回瀾閣·후이란거)이 있는데 청도만 일대의 경치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시가지 모습이 청도 10경 중 하나이다. 잔교 북쪽 연안은 녹음으로 가득한 잔교공원과 이어져 있으며 저녁이면 잔교와 인근해안가에 조명이 들어와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청도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랜드마크 역할까지 하고 있다.
▶ 팔대관(八大關)은 청도시내의 동쪽에 위치하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피서지로서 장개석 총통은 물론 모택동, 등소평, 유소기 등도 이곳에서 여름 피서를 즐겼던 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유럽풍 저택들이 모여 있는 산동성 최대의 휴양지이다. 팔대관이라는 이름은 구역 내 8개 도로 명이 모두 중국의 유명한 관문으로 되어 있어서 그렇게 명명된 것으로 팔대관은 만리장성의 동쪽 산해관(山海關)과 서쪽의 가욕관(嘉峪關), 소관(韶關), 정양관(正陽關), 무승관(武勝關), 영무관(寧武關), 자형관(紫荊關) 그리고 북경의 팔달령장성(八達嶺長城)을 가다가 중간에 만나는 거용관(居庸關)이다. 청도에서 가장 경관이 빼어난 곳에 위치해 조계시절부터 각국의 부호들이 지은 별장 건물이 즐비했다. 현재에도 독일,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 24개 국가의 건축양식을 모방한 200여개의 건물이 있어 만국 건축 박람회라고 불릴 정도이다. 러시아 귀족의 저택으로 한때 국민당 총통 장제스가 사용하던 화석루, 중국을 방문한 외국 국빈이 주로 이용하는 팔대관민관, 일본식 목조 건축물인 원사루, 1933년에 지어진 7층의 석조 건물인 동해반점 등이 특히 유명하다. 많은 예비 신랑 신부들이 이곳을 찾으며 웨딩촬영의 명소로 인기가 높다.
▶ 피차이위엔(劈柴院) 거리는 백년의 역사가 있는 전통음식거리로 칭다오 여행에서 빼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독일이 점령을 한 1902년도에 상업거리가 형성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2007년도에 복원되었으며 지금은 주로 다양한 전통음식을 파는 거리로 변모했다. 100여 미터 남짓 짧은 거리 곳곳에 다양한 꼬치들이며 크고 작은 식당부터 공연관람 식당까지 빼곡히 들어서있어서 낯선 외국인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거리이다. 굉장히 좁은 길을 통해서 들어가면 지금까지 걸었던 길거리와는 모습이 확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작은 공간에 빽빽이 상점이 들어서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 매우 좁다.
▶ 칭다오 맥주박물관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칭다오 맥주의 제조 역사와 각종 자료들을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고풍스러운 옛 건물과 현대적인 시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백년 역사문화관, 맥주생산과정관, 다기능관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특히 맥주 무료시음도 가능하다. 독일 조차지 시절 전수받은 맥주제조기술과 노산의 100m 지하 광천수가 빚어낸 맛이 매력적인 칭다오 맥주를 본고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맥주 박물관은 볼거리가 많은데 관람객들이 칭따오맥주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전시관을 만들어 놓고 체험공간도 마련해두었다. 각 전시관에는 칭따오맥주의 생산과정과 역사 등을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진과 영상물로, 그리고 미니어처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어 무척 즐겁고 흥미롭다. 칭따오맥주는 1903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칭따오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에 의해서였다. 고향을 떠나온 독일군들에게는 늘 맥주가 그리웠지만 전쟁을 치루는 중에 본국에서 맥주를 공수해오기가 쉽지 않아 인근 노산에 흐르는 물맛이 참 좋아 이 물에다가 독일의 맥주 기술을 더해 지금의 칭따오맥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 5·4광장은 홍콩로와 동해서로 사이에 있는 5·4운동을 기리기 위해서 만든 광장으로 빨간 횃불 조형물이 인상적인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5·4운동은 전쟁에서 진 중국정부가 칭다오(청도)와 산둥반도를 일본에게 넘기려 할 때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를 반대하는 시위와 운동을 벌였는데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후 중국은 파리강화회의에서 외국군의 철수와 독일이 가진 산둥반도의 이권 반환, 일본의 21개조 요구 폐지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승국들의 이해관계에 밀려 중국의 요구는 묵살되고 패전국인 독일이 갖고 있던 중국 산둥 성의 권익을 일본에게 양도하라는 일본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에 격분한 베이징의 학생들이 5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벌인 반대집회가 5·4운동이다. 정부는 대규모 탄압을 감행해 학생 1,000여 명을 체포했는데 이는 민중의 분노를 불러 상하이 등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상점을 폐쇄하면서 전국적인 민중운동으로 확대되었다. 이 운동은 단순한 애국운동에 그치지 않고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이자 반봉건주의 운동으로 발전했으며 중국현대사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성양세기공원은 성양구 정부에서 지속적인 발전 기획의 일환으로 성양구를 생태원림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민들에게 휴식과 오락의 공간을 제공하는 관광명소이다. 성양구 그린벨트의 남단에 속하며 서쪽으로는 308국도 고가도로가, 동으로는 장성로, 북으로는 흥양로가 접해 있으며 2001년에 착공하여 2003년 5월에 준공되었다. 총 투자액이 무려 15억 위안이 되며, 건축면적이 43만 평방미터를 넘으며 260여종의 식물과 10만여 그루의 관목들을 인공 재배하였다. 건축면적이 1.6만 평방미터인 명품 원에는 정자, 도로, 강, 분수가 어우러져 번화한 도시중심에서도 시골의 조용함을 만 날수 있는 최상의 장소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조각공원도 조성되어 있으며 잘 가꾼 숲과 호수가 어우러져 시민들의 산책과 더불어 조용한 휴식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팔대관과 더불어 웨딩촬영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 미리보기
※상세 일정 및 전달사항은 추후 공지 및 개별 회람 예정입니다.
※기타 문의는 산악회장 고재천(010-3320-4874)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