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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차 흥타령길 탐사대 트레킹 일지
1. 일시 : 2011년 10월 16일(일) 9시~ 15시
2. 날씨 : 하늘에 구름이 많고 한 차례 비
3. 참석자 : 포비, 카나리안, 우주인, 흔들릴 때마다 한잔, 시크라멘, 그래도 간다, 金팍새, 파란창문, 목천신사,
느티나무, 겨울비, 수석지킴이, 풍경, 솔잎향기, 삶4랑 (총15명)
4. 트레킹 장소 : 아우내문화원 → 홍대용 선생 묘 →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 홍대용 선생 생가지 → 한명회 선생 신도비, 한명회 선생 묘역
→ 유관순 열사 기념관 → 초혼묘 → 봉화지 → 아우내장터
5. 거리 및 소요 시간 : 11km, 3시간 20분 (쉬는 시간 불포함)
6. 대중교통 이용 시 : 천안종합터미널에서 400번, 402번 버스 이용.
7. 편의시설이 드물어 떠나기 전에 생수를 휴대하고, 화장실에 들르는 것이 좋음.
8. 걷기코스 :
병천면에는 1일과 6일이면 아우내장터를 중심으로 5일장이 열린다.
이번 트레킹은 병천 인근의 역사 유적을 돌아보고, 시골장의 참맛을 즐기는데 의미가 있다.
1) 아우내문화원 ~ 홍대용 선생 묘 ~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 3.5km / 60분)
아우내문화원에서 수신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이 있고, 90m를 더 가면 왼쪽으로 납골묘 제작업체를 지나 병천사거리가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제2병천교에 들어서면 좌우로 산방천변의 어린 버드나무들을 볼 수 있다. 다리가 끝나면서 장산교차로가 이어지고, 남부대로 밑으로 수신로를 따라 2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주)오스템이 있다. 오스템 정문 바로 옆에 있는 ‘홍대용 선생 묘’의 안내판을 따라 150m를 올라가면, ‘담헌홍공대용지묘 숙인한산이씨(湛軒洪公大容之墓 淑人韓山李氏)’라고 적혀 있는 묘석 왼쪽에 충청남도기념물 제101호 홍대용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다시 안내판 지점으로 나와, 왔던 길을 50m 되돌아서 ‘장산 고향손두부’집 옆길(상리길)로 들어서서 200m를 가면 구미(龜尾)들이란 마을의 구미평회관이 나온다. 회관 오른쪽으로 30m쯤 가서 반사경 앞으로 100m쯤 가면 가정집 흡사한 건물 벽에 세워놓은 대명철강이란 간판이 보이고, 밭둑에 심어진 콩을 보며 500m를 더 가면 추수가 끝난 비닐하우스 네 동이 나온다. 비닐하우스 끝동에서 왼쪽의 농로를 따라 100m를 가면 병천천변 길과 만나는 곳에 녹이 슨 컨테이너가 있다. 병천천변을 따라 2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병천취수장이 있고, 좌우로 키 작은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500m쯤 더 가면 오른쪽으로 소목장이 나온다. 10m정도 길이의 다리를 건너면 장산서길과 만나는데, 정면으로 조경회사가 있고, 장산서길을 따라 150m쯤 가면 코를 시멘트로 붙여놓은 충남문화재자료 제356호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이 있다.
홍대용 선생 묘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2) 홍대용 선생 생가지~ 한명회 신도비 ~ 장산교 ( 2.5km / 40분)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에서 장산서길을 따라 오른쪽으로는 장명이란 마을이 있고, 300m쯤 가면 ‘홍대용 선생 생가지’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의 오른쪽 장산1길로 150m쯤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49호 홍대용 선생 생가지가 있다. 장산1길로 다시 나와 앞으로 100m쯤 가면 ‘위험’이라고 써져있는 전봇대가 있다. 전봇대를 기준으로 오른쪽 길로 가서 반사경 앞으로 100m를 가면 밑둥이 한아름 되는 은행나무가 있는 집이 나온다. 길 왼쪽으로 추수를 앞둔 누런 벼를, 오른쪽으로는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을 보며 400m쯤 가면 높게 북돋은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이 닿는다. 오른쪽 서울방향으로 100m쯤 가면 "청주한씨충성공묘역(淸州韓氏忠成公墓域)"이라고 음각해 놓은 커다란 표지석이 있고, 30m를 더 가면 상당문과 한명회 선생 사당, 후손들이 새로 세운 신도비가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32호 한명회 선생 신도비 비각 옆으로 5분쯤 올라가면 부인과 묘를 달리 쓴 봉분 두 기와 문·무관석 장명등 석물이 있다. 갔던 길을 되돌아 장산리 석불 입상까지 와서 장산서길로 50m를 가면 병천천을 가로지르는 장산교가 나온다.
홍대용 선생 생가지
한명회 선생 묘역
3) 장산동길 ~ 유관순 열사 기념관 ( 3km / 50분)
장산교 동쪽 끝에서 매봉로까지 1.42km에 이르는 장산동길은 굴곡 없이 곧게 이어진다. 왼쪽 길가에는 코스모스, 다알리아, 맨드라미와 야생화들이 어울려 피어있고, 병천천에는 물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다 날아오르기도 한다. 오른쪽 길가에는 천안제일고등학교 실습장· 대동필름· (주)삼진전선의 안내판과 오이재배 비닐하우스 열 한 개 동 등이 있고, 800m 지점에는 태극기를 단 장산5리(도현) 마을회관이 있다. 도현마을 입구에는 장산동길을 가운데 두고 57번 시내버스 안내판과 간이 의자가 있는 버스 승강장이 마주보고 있다. 장산동길이 끝난 창들교차로에서 매봉로를 따라 왼쪽으로 80m쯤 가면 아우내 영농조합 매점이 있다. 남부대로 밑을 지나 300m쯤 가면 왼쪽으로 광기천을 가로지르는 탑원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광기천변을 따라 하얀 억새에 취해 400m쯤 걷다보면 보를 만난다. 보를 건너서 매봉로에 오르면 몇 채 안 되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등재라는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매봉로를 따라 탑원교차로 방향으로 400m쯤 가면 오른쪽으로 유관순 열사 기념관으로 향하는 유관순길이 나온다. 이 길로 300m쯤 가면 열사의 거리와 관광안내소가 나온다. 50m쯤 더 가면 광장이 나오는데 오른쪽에는 유관순 열사 동상이, 왼쪽에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 있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4) 매봉산 봉화지 ~ 아우내 장터 ( 2km / 50분)
유관순 열사 기념관 광장에서 추모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 왼쪽의 약수터 옆으로 50m쯤 가면 매봉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길은 대부분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고 길의 양 옆으로 유관순 열사를 추모하는 시들이 돌에 음각되어 있다. 150m쯤 올라가면 유관순 열사 초혼묘가 육각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각 면에는 기도문·어록문 등의 비문이 적혀 있다. 200m쯤 더 올라가면 매봉산 정상에 유관순 생가지와 더불어 사적 제230호로 지정된 유관순 열사 봉화지가 나오는데, 화강석으로 만든 사각형 기단 위에 봉화탑과 봉화대가 있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 열사의 거리로 내려와서 오른쪽 유관순길을 따라 탑원교차로까지 나온 후, 병천 방향으로 병천교를 지나 충절로로 380m쯤 가면 왼쪽으로 현대 오일뱅크가 있고, 20m를 더 가면 천안병천 순대거리가 나온다. 수신방향으로 100m를 더 가면 빠리바게트 빵집이 있는데, 이 빵집의 오른쪽 아우내장터(폭 15m, 길이 150m 정도)와 150m쯤 되는 순대거리에 T자 모양으로 1일과 6일이면 병천 5일장이 열린다.
아우내 장터
* 보충설명 :
1919년 아우내장터에서의 기미년 3·1운동 당시 만세를 외치던 장터에서 봉화를 올리던 매봉 사이에 펼쳐진 넓은 평야를 ‘기미(己未)들’이라고 부른다. 인접한 산방천을 넘어 이와 비슷한 명칭의 들이 있는데 ‘귀미(龜尾)들’이라고 한다. 거북등딱지(四甲)를 닮은 들이 넓게 펼쳐진 ‘사갑들’이 있고 그 거북(龜)의 꼬리에 해당하는 땅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병천 인근 답사 시 참고 자료 >
홍대용선생묘 [洪大容先生墓]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묘(墓).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충남기념물 제101호
지정일 1996년 02월 27일
소장 홍승주 외 5명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462-22
시대 조선
종류/분류 묘
크기 면적 1,513㎡
1996년 2월 27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장산리에서 속창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있다. 묘석의 앞면에는 ‘담헌홍공대용지묘 숙인한산이씨(湛軒洪公大容之墓淑人韓山李氏)’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김흥근(金興根)이 찬(撰)한 비문을 새겼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홍지(弘之)이다. 담헌(湛軒)이라는 당호(堂號)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의 유학자 김원행(金元行)에게 사사받고 북학파인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다. 1766년 숙부 억(檍)을 수행하여 북경을 방문, 60여 일 동안 머무르며 서양의 과학문물을 접하였고, 중국 학자들과 선교사들을 사귀며 합리적 사고방식을 배웠다.
귀국 후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한 뒤 1774년(영조 50) 음관(蔭官)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 및 세손익위사시직(世孫翊衛司侍直)이 되고, 이어 1777년(정조 1) 사헌부감찰, 이후 태인현감·영천군수를 지냈다. 저서 《연기(燕記)》는 북경 방문의 산물로, 이후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쓰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서 ‘유포문답(劉鮑問答)’은 당시 독일계 선교사로 중국의 흠천감정(欽天監正)인 유송령(劉松齡, August von Hallerstein)과 부정(副正)인 포우관(鮑友管, Anton Gogeisl)을 만나 필담으로 주고받은 천주교와 천문학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내용으로, 조선시대 서양문물에 관한 가장 상세한 기록문이다.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 [天安長山里石佛立像]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석불.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충남문화재자료 제356호
지정일 1997년 08월 05일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643-26
시대 고려
종류/분류 불상
크기 높이 191㎝, 둘레 56㎝, 머리 둘레 52㎝
1997년 8월 5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56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조각선이 뚜렷하다. 높이 191㎝, 둘레 56㎝, 머리둘레 52㎝의 화강암제 입상으로, 원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의 대좌 가운데 부분을 파서 세웠다. 몸체에 비해 머리부분이 크고 어깨는 좁다.
나발(螺髮:소라모양으로 된 여래상의 머리카락)로 표현된 머리에는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의 혹)가 오똑하게 있고, 안상(眼像)은 직사각형으로 양볼이 나와 있어 자비스럽게 보인다.
목에는 삼도(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를 윤회하는 인과를 나타냄.)가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고, 두 귀는 크고 길어 목 가까이까지 내려와 있다. 두 눈과 입은 완전히 보전되어 있지만 코와 눈이 많이 손상되어 시멘트로 보강하였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부처가 입은 옷으로 양어깨를 가린 형식)이며, 속옷의 끈을 묶은 고름자락이 수인 위에 나타났다. 수인은 선정인(일명 법계정인)인데, 배 앞에 속옷의 매듭이 양쪽으로 나 있으며 손을 배 앞에 모았고, 발과 발가락은 뚜렷하게 조각되었지만 일직선으로 자른 듯 부자연스럽다.
불상 옆에는 머리·어깨·팔 부분이 많이 훼손된 좌불과 비석이 있다. 비석은 높이 72㎝, 너비 44㎝, 두께 16㎝로, 앞면에 ‘康熙五十年丙申十月十八日’(1716)이라고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시주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홍대용선생생가지 [洪大容先生生家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생가지(生家址).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충남문화재자료 제349호
지정일 1996년 02월 27일
소장 천안시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종류/분류 생가
크기 면적 1,964㎡
1996년 2월 2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49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태어난 곳이다. 본래의 가옥은 소실되고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 있었는데 그마저 최근에 철거되고 안내판과 홍대용의 행적비(行跡碑)만 남았다. 인근의 속창리로 통하는 도로변에 홍대용의 묘소가 있다.
홍대용은 김원행(金元行)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당대의 실학자인 박지원(朴趾源)·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다. 1766년 숙부 홍억(洪檍)의 군관으로 북경을 방문, 선교사들과 접촉하며 서양의 과학문명과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눈떴다. 조선시대 최초로 지전설(地轉說)을 주장하고,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신분의 구별 없이 8세 이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교육정책을 주장하였다. 사헌부감찰·태인현감·영천군수를 지냈다.
한명회선생신도비 [韓明澮先生神道碑]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리에 있는 조선시대 신도비.
지정종목 문화재자료
지정번호 충남문화재자료 제332호
지정일 1994년 11월 04일
소장 청주한씨 충성공파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 산 11-1
시대 조선
종류/분류 비석
1994년 11월 4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32호로 지정되었다. 한명회(韓明澮) 사후 1년 뒤인 1488년(성종 19) 건립되었다. 높이 1.95m, 넓이 97㎝, 두께 24.5㎝로 화강암과 석영석으로 만들었다. 비석받침은 160㎝×114cm로 옆면에 10개의 안상을 새기고 윗면에는 12개의 연화문(蓮花紋)을 새겨넣었다. 이수는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갖고 노는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였고, 비문에는 1,000여 자의 해서(楷書)로 한명회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한명회는 예종비(睿宗妃)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비(成宗妃)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아버지로 자 자준(子濬), 호 압구정(狎鷗亭),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칠삭동이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어린시절을 불우하게 보내다가 1452년(문종 2) 음보로 경덕궁직(敬德宮直)이 되고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에 가담, 세조가 즉위하자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사후 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1504년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尹妃)의 사사(賜死) 사건에 관련되었다 하여 정여창, 남효온 등과 함께 부관참시되었다가 후에 신원되었다.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한명회 선생의 공적을 적고 있다.
유관순열사기념관 [柳寬順烈士記念館]
유관순 열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3년 4월 1일 건립하였다. 건평 542.7㎡, 지상 1층·지하 1층 규모로서 팔작지붕을 올린 전통적인 한옥 형태의 건물이다. 건물 안에는 영상실·체험공간·뮤지엄숍 등이 있다. 영상실에는 유관순이 출생하였을 때부터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의 일대기를 전시물과 함께 영상물로 꾸며놓았으며, 체험공간에는 유관순 열사가 고문당하던 상황을 체험해볼 수 있는 벽관 체험코너와 태극기를 직접 찍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2007년 2월 28일에는 석천 윤여환이 그린 '유관순 열사 표준영정'을 봉안하였다. 연중무휴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10월) 9시부터 18시, 동절기(11월 ~2월) 9시부터 17시까지이다. 주변에는 독립기념관·삼거리공원·천안상록리조트 등의 관광지가 있다.
유관순열사초혼묘 [柳寬順烈士招魂墓]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는 묘이다.
매봉산 중턱에 있으며 유관순열사 기념관 광장으로부터는 약 0.2㎞ 떨어져 있다. 유관순 열사는 1920년 9월 28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여 이화학당의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후 그곳이 일제의 군용기지로 쓰이게 됨에 따라 미아리 공동묘지로 이장하는 중 흔적도 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1989년 10월 12일 유관순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혼묘(招魂墓; 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를 조성하였다. 육각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각 면에는 기도문·어록문 등의 비문이 적혀 있다.
유관순열사봉화지 [柳寬順烈士烽火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탑원리 매봉산 정상에 있는 봉화터이다.
지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230호
지정일 1972년 10월 14일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탑원리 338-1
시대 일제강점기
종류/분류 유적지
크기 면적 3,544㎡
유관순 열사 유적인 봉화지(烽火址)는 생가지(生家址)와 함께 1972년 10월 14일 사적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유관순 열사가 1919년 음력 2월 그믐날 밤(양력 3월 31일)에 매봉산 정상에 올라 다음날의 만세운동 거사를 알리는 봉화를 높이 들었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여 1977년 10월 12일 화강석으로 만든 사각형 기단 위에 봉화탑과 봉화대를 건립하였다. 5.6m의 봉화탑에는 이은상이 시를 짓고, 김기승이 글씨를 쓴 유관순열사 봉화탑찬가가 새겨져 있다. 매년 3월 31일에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면서 그날을 기념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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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짝짝짝짝짝~~~~~~~~~~~~~~~~~~~~~~~~~~~~~
말이 필요없네요 ㅎ
수고많으셨습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궁금한데요.
한명회의 묘가 왜 천안에 있는건가요?
청주한씨 종산이라도 되는건가요?
부관참시를 당하고도 이렇게 묘역을 조성할 수 있는건지..
아 그렇구나 성종때 만들고 파헤쳐지고
재조성한건가? 궁금한게 많네요. ^^*
아 찾아보니 나오네요.
한명회는 청주에 묻히기를 원했으나
청주가는길이 3일이 걸려 백관이 회장할 수 없다하여
천안땅을 청주에 편입시켰다는...
맞나요?? ^^*
꼼꼼하게 자료 수집 하시고 세세하게 길안내 하고 ... 애 많이 쓰셨습니다.
한산이가들이 뭐 하나 하면 제대로들 하지요 ^^
아니,
한산李가들이?
누가 이써야 뭉치든 흐터지든 허지유 ^^
훌륭하십니다.
함께 참석하여 자세히 설명을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마저 듭니다.
삶사랑님이 한산이씨였군요.
간다님이랑 종친이신가봐요.~
훌륭하게 잘 썼네요.
내가 태어나 자란 곳 이야기인데도 내 기억보다는
오히려 이 안내문을 들고 다니는 게 더 수월한 여행이 될 듯합니다.
와~~~ 깔끔한 정리.... 애쓰셨습니다....^^
읽는데도 한참인데 ,,,
삶4랑님! 수고가 넘 많았슈,
역시 후배님은 뭔가 달러,,,,,으메~이쁜 후배님!!!!ㅋㅋㅋㅋ
수고 하셨습니다.
팍새님만 글 잘 쓰시고, 설명 잘 하시는 줄 알았는데 삶4랑님도 ..... 과연 부창부수.천생연분....^*^
두분이 병천 홍보대사님 하시면.....ㅎㅎㅎ
역사 교과서 보는줄 알았습니다...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