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15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7: 꽃돌이 따따블... 03/27 15:32 133 line
10부제에 걸리는 바람에 오랜만에 좌석버스를 타고 출근했습니다.
지정학상 타는 장소가 그다지 유리하지 못했던 관계로 도착지점까지
내내 서서 왔습니다. 똑같은 700원을 내고 어느 분은 좌석을 이용하고
어느 놈은 입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해서, 서서 가는 놈한테는
요금을 할인해 달라고 운전기사 분에게 항의하려다 말았습니다.
주절주절 내리는 빗속을 선글라스를 끼고 달리는 기사분에게는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기사 좌석버스에
자리없다고 요금할인을 해 주어야 한다는 법정판례도 없고보면,
이 세상은 사뭇 몰상식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지금 책상위에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어떤 분의 개인연주회
초청장이 놓여 있습니다. <공연장내에서의 꽃다발 증정, 사진촬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문이 초대권에 친절하게 인쇄가 되어
있군요. 별 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때려 죽어도 꽃다발
갖고 갈 일은 없을텐데요. 다만 이 공지문을 보고 있으려니 반드시
꽃다발을 지참하여 공연장 밖에서 전달해 줄 것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은 드는군요.
갈 이유도, 갈 필요도, 갈 마음도 없는 초청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하기사 꽃을 생각하며 여인을 연상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덧붙여 여인에게 꽃을 선물하며 공연히 얼굴
발개지던 미소년(?)의 모습까지도 패키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군요.
여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남자.
우리는 이를 가리켜 <꽃돌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저는 오늘 바로 이 꽃돌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니 맘대로 해라......)
이화여대 무용과에 재학중이던 그녀는 사실 내게 있어서는 상당히
의미있는 존재였습니다. <의미있는 존재였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현재는 X도 아니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엔 그랬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녀를 노상에서 낚았습니다. 이른바 헌팅을 했다는 이야기죠.
사실 요즘에야 헌팅이라는 말 대신, "야타!"라는 말이 보다 보편적인
용어로 통용되고 있긴 하지만, 당시만 해도 차를 가지고 다니는 대학생
이란 거의 없었던 때였기 때문에 <야타>란 단어는 소위
<언어의 사회구속적 성격>상 존재할 수 없었던 단어였습니다. 물론 그
비슷한 말로 "야,업혀!"할수도 있기는 있었겠지만, 미친 놈이
아니고서야 길가는 아녀자에게 대뜸 업히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왕에 헌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여러 후배님들을 위하여 헌팅비법
하나를 공개하고 넘어 가고자 합니다. 옥스포드 영영사전의 Hunting
이라는 항목을 찾아 보면, 대부분의 경우 헌팅이 어려운 것은 상대방이
매몰차게 거절했을 경우에 입게 될 치명적인 자존심의 손상,
즉, 쪽팔림때문이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쪽팔림을 방지할
수 있는 기법만 개발된다면, 공연한 미팅, 소개, 맞선따위의 시간낭비는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방법은 여성들도 거리낌
없이 시험해 볼수 있는 전天후, 아니 전性후 기법이라는 것입니다.
우선 헌팅은 도팅이니 길에서 사냥감을 물색하라는 헌팅의 제1원칙을
과감히 포기하십시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신 여성들이 즐겨 드나드는 카페, 레스토랑, 호프집,
여성전용 사우나(출입이 가능하다면) 등에 죽치고 앉아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윽고 마음에 드는 상대를 발견하면, 그 녀(또는 그 놈)의
인상착의, 좌석의 위치등을 정확히 기억하신 후에, 그 장소를
나오십시오. 나오면서 그곳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
니다. 그리곤 나와서 전화를 거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카운터에서는
백이면 백 전화를 바꾸어 줍니다. 그리곤 전화통에 대고 자신의 목적을
설명한 후 "10분 후에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하는 것입니다.
10분 후에 그 장소에 그녀(또는 그 놈)가 돌부처처럼 앉아 있다면,
적어도 50% 정도는 접어 두고 시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그녀(또는 그놈)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후라면 어떻습니까?
또 볼 것도 아닌데......
(이 비법은 현재 실용신안으로 특허출원중인 아이디어 제품임. 이대동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히 무료공개함.)
저는 이 방법으로 그녀와 만났습니다. 그녀는 지금은 없어진 <Passion>
이라는 카페에서 제게 걸려 들었습니다. 그후로 전 제 공부보다는
그녀의 레포트 쓰는 일에 몰두했으며, 밥을 먹어도 꼭 후문의
딸기골만을 이용하면서 밥값은 꼬박꼬박 두 배가 들어도 전혀 후회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그녀가 집에 물건을 빠뜨리고 안가져 왔다고
할 때, 수업을 제끼면서 경희대 후문의 그녀 집까지 달려가곤 하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가 그녀에게 걸려든 꼴이었습니다.
그것을 인식하면서부터는,
저는 그녀가 개처럼 기라면 아예 캉가루처럼 두 발로 곧추 섰고,
별을 따다 달라고 하면 장도리로 그녀의 머리통을 후려쳐 주었으며,
술을 마시자고 하면 가래까지 입에 머금었다가 입술을 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녀는 그 X술을 결코 입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그 녀는 제게 자기의 나이 숫자와 꼭 같은 프래지어 22송이로
꽃다발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 요구는 그 녀의 발표회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과 함께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녀의 발표회가 아니라 그 녀가 다니던 이대 무용과가
주축이 된 어떤 무용극의 발표회였습니다. 그 녀는 그 무용극에서
집단 군무에 등장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용극은 그녀의 데뷔작인
동시에 그녀가 결코 프리마 돈나는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었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실 상당히 흥분되어 있었고, 긴장해
있었으며, 들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이모 세분과 이모부 두분, 고모, 고모부, 부산사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옆 집 새댁, 이문복덕방 사장님 내외분, 그리고 같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청년부 소속의 모든 분들, 그리고기타 여러분을 그 발표회
에 초대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남편 등 좌우간 시짜와 관련된 인물들은 초대할 수
없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저는 은근히 저희 아버님, 어머님,
누님, 누님의 남자친구, 모자르면 우리 집 4살박이 도사견 똘이도
데려갈 수 있음을 암시했지만, 결국 그녀는 그러한 고차원적인 암시에
대해서는 어떠한 눈치도 챙기지 못하였습니다. 저
는 그저 기타 여러분에 속한 여러분 중의 한 놈이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좋았습니다. 더 좋았던 것은 그 녀가 환갑, 칠순을 넘기지
않았기에 22송이의 프래지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그랬더라면
꽃송이가 60송이 70송이로 늘어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저는 기꺼운 마음으로 프래지어 22송이와 안개꽃 몇 다발로 정성스러운
부케를 만들었습니다. 아니 돈을 주고 만들도록 시켰습니다. 잠시
프래지어 보다는 안개꽃 22송이를 하는 것이 싸게 먹힐 수도 있다는
샤일록같은 생각도 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내 그 생각은 포기
하였습니다. 안개꽃 22송이로 만든 부케를 들고 갔다가는 그녀의 그
힘찬 도약과 잇달은 그녀의 앞발차기에 내 턱주가리가 남아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뭔가 어색한 더블자켓을 입고, 평생(지금까지도) 어색하기만 한 목댕기
까지 드리우고, 프래지어 부케를 든 저는 의기양양했습니다. 더구나
지갑에는 어머님으로부터 지원받은 특별 비자금까지 들어 있었으므로
세상은 온통 내 것이었습니다. 부케를 들고 버스나 전철은 탈 수 없다는
소박한 깡다귀로 전 거금을 쾌척하여 택시를 타고 그 녀가 기다리는
호암아트홀로 향했습니다. 혹시라도 아버지 차를 빌려탈까 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차 좀 빌려달라고 부탁드렸다가 얻어
터져서 나온 뒷머리의 혹은 머리카락으로도 티안나게 감추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밑지면 밑지는 거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월요일부터 술먹자는 인간은 인간도
아닙니다. 이번 주도 내내 고생길이 열렸군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이대단상8: 꽃돌이 따따블(완결편) 03/28 19:36 183 line
그저 편한 마음이 되어 보기 위해서 이 곳에 낙서라는 것을 올립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 곳도 편치않은 장소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생각지도 않게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 주십니다.
고맙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따금 주제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몇 분이 될런지는 모르지만 제 잡글을 읽으시면서 그저
빙그레 웃어주시기를, 간혹 가슴이 훈훈해지는 분도 있어 주시기를,
잠시 편한 마음으로 쉬어 가실 수 있기를...
이대동 12번 게시판이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불편스럽습니다. 좌우간 모두들 좋은
모습으로만 서로를 기억하시기를 바라면서 저는 <꽃돌이>이야기나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호암아트홀에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조금 길어지더라도 이 참에 끝내 보죠.
당시 개관한지 얼마 안되었던 호암아트홀에는 이미 수많은 관객들이
들어와 계셨습니다. 과연 저중에 돈내고 들어온 멍청한(?) 인간이
얼마나 될까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내고 들어 온 분은
단 한 분도 안계셨습니다. 표를 받는 창구도 표를 파는 매표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이내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의 관객수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 우리네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아무리 공짜라도 우리네는 무용공연만큼은 안본다는 것을
오히려 반증해 줄 숫자였습니다.
공연장 입구에서는 공연팜플렛을 팔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준비하신
분들은 입장료를 안받은 대신 팜플렛을 팔아 떼돈을 벌자고 작정
하셨는지, 팜플렛 값은 엄청 비쌌습니다. 저는 팜플렛에 금멕기가
되어 있는줄 알았습니다. 금멕기는 안되어 있었지만 그 팜플렛엔
수많은 여인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비싼 값을 하더군요)
주연급 무용수들의 대문짝만 한 사진들 다음으로는 어중이떠중이급
무용수들의 항문짝만 한 사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그녀의 환한 얼굴은 두번째인가 세번째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얼굴 이쁜 순으로 편집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가나다순으로 되어 있는 것임을 확인하였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여인네들이 몸에 짝 달라붙는 옷을
입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방방뜨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이 방방뜨는
만큼 제 가슴은 콩콩 뛰었습니다. 공연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장면장면들만이 생각날 뿐입니다. 하기사
현대무용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이사도라 덩컨은
말했습니다. 인간이 춤을 춘다는 것은 신이 주신 가장 커다란
선물이라고 누례예프는 이야기했습니다.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바리시니코프의 마누라가 증언한 바도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박수를 쳐야 한다고 고춘자, 장소팔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자 이제는 사진을 찍을 시간이라고 허바허바 사진관의 문재범 사장님
이 말씀하셨습니다.
춤을 추는 동안에는 도저히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말 무대 위에 올라와 있기는 한 것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던 그 녀는
사진을 찍을 시간이 되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찐한 화장으로 떡칠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녀가 왜 그렇게 <씜스틱 짙게 바르고> 무대 위에 올랐는
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막 7장의 공연중 군무장면 서너번
에 등장하였을 그녀는 자신이 무대조명의 화려한 각광을 단 한번이라도
받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기대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것을 보면 여성의 화장은 보이기 위함
보다는 자기만족때문이라는 주장이 일리가 있는듯도 합니다.
각설하고 이제 사진찍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바야흐로 <꽃돌이>가 등장할 시간이 된 것이지요.
이곳저곳에서 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꽃돌이>들이 용감하게
보다 사진빨이 잘 받을 장소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공연장 입구, 공연안내 팻말 앞, 또는 즐비한 화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운이 없거나 게으른 꽃돌이들은
화장실 입구를 배경으로 할 수 밖에는 없는치열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한때는 재빠르기가 날쌘돌이를 능가했고, 잡은 자리 거머쥐는데는
거머리 뺨을 칠 정도였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기로는 우렁이 색시와
한 판의 승부를 겨룰 정도는 되었었습니다. 아, 저도 한때는 정말
그런 때가 있었답니다.
저는 치열한 투쟁끝에 확보한 <이대무용과 무용발표회> 플랭카드 밑에서
그녀를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XX야, 여기야, 여기!"
실내가 워낙에 왁자지껄, 시끌벅적, 우당탕탕, 요란법석, 우왕좌왕했기
때문에 그녀는 제 목소리를 못들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장내가 떠나갈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습니다.
워낙 목소리가 컸던 탓인지 모두들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마침내 제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의 그녀의 표정은 분명 "장하다 이성한,
너잘났다 이성한"하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쪽팔림은 순간이지만 사진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녀는 <꽃돌이>가 확보한 자리를 <찍돌이>인 아버님을 대동하여
무혈입성하였습니다. 그 자리를 놓친 다른 팀들의 질시어린 표정,
자기 <꽃돌이>의 무성의, 게으름, 둔함을 질책하는 여인들의 앙칼진
목소리,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남정네들의 한숨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호암아트홀 공연장입구의 로비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던 것입니다.
(이 표현이 맞나?)
그녀는 제가 전해준 프래지어 22송이의 부케를 자랑스럽게 받아
들었습니다. 이맛에 세상은 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부동자세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이게 웬 일입니까?
카메라 셔터가 채 눌러지기도 전에 웬 녀석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축하한다,자 여기 네가 말한대로 장미꽃 22송이로 만든 꽃바구니야"
그놈은 여러 정황증거로 볼 때 분명히 교회친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더 황당했던 것은 그 놈이 더럽게 잘 생긴 놈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처럼 깨끗하게 잘 생긴 분의 입장에서 볼 때는
더럽게 잘생긴 놈이 나타났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더러운 일이었습니다.
"어, 오빠!
와줘서 정말 고마와, 나 어땠어?"
어쩔시구리. 어떠긴 젠장. 난 네가 어디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응, 정말 잘하더라. 킥도 이젠 수준급이구. 표정도 좋던데..."
그 놈은 틀림없이 거짓말을 했을 겁니다.
"오빠, 인사해. 내 친구야."
"어? 보이프렌드니?
"아니 그냥 친구야...."
그래, 니맘대로 하세요. 이 상황에서 보이프렌드면 어떻구 그냥 친구면
어떠리. 차라리 <꽃집의 아저씨>라구 하지 그러냐? 저는 끓어 오르는 분을
혼자 삭이며 그저 그 놈한테 간단한 인사만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셋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녀는 나하고 둘이서만 사진을 찍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기타 여러분과 사진을 찍을 때는
저는 <꽃돌이 겸 찍돌이>까지 하여야 했습니다.
얼추 사진찍기도 끝나갈 때 쯤, 또 한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그 녀석의손에도 한묶음의 꽃이 들려 있었습니다.
노란 튤립이었습니다.
보나마나 22송이였을 겁니다.
저는 차마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습니다.
손이 떨렸기 때문에 버튼을 잘못눌러 블랙커피를 마셨습니다.
블랙커피는 정말 썼습니다. 다음에는 절대로 블랙커피는 안마시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녀의 아버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어디 가서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많이 먹어서 본전이나 뽑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단체로 응원나온 친구들은 그냥
가야겠다고 사양했습니다. 이문복덕방 사장님 내외분은 사진도 안 찍고
그냥 가셨습니다. 옆집 새댁은 이문복덕방 사장님이 가실 때 같이
가셨습니다.
"자네들도 같이 가세."
그 녀의 아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물론입니다.)"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별 걱정을 다하십시요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그럼 가시죠. 아버님."
사진을 찍는 동안 내내 옷이며, 꽃다발이며, 핸드백 등을 들고 졸졸 쫓아
다니던 감색 싱글의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얼라리요. 이건 또 누굽니까?
전 그 자가 친척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하기사 이모님 중 한 분은 아직
결혼을 안하셨다고 하던데 아까부터 친척들 모여 있는 자리가 남녀의
짝이 맞아 돌아간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던 저의 의문이 그 한마디에
쾌도난마로 풀려 나갔습니다.
이 자도 <꽃돌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자는 무슨 꽃을 들고 왔단 말인가?
프래지어, 장미, 노란 튤립까지 행사장에 올건 대충 다왔는데,
설마 국화는 아닐테고, 그렇다면 엉겅퀴나 도라지꽃으로도 요즘은 부케를
만든단 말인가?
전 아직까지도 그 자가 무슨 꽃을 들고 왔는지는 모릅니다.
전 식사를 하러 가는 자리에 따라가는 척하며 어영부영 빠져 나왔고,
그 밤에 서울시내를 어이없어 하며 걸어 다녔고,
서울역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말아 먹고 오뎅과 꼼장어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 취해서 돌아 왔습니다.
그 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고 합니다.
<꽃돌이 따따블>을 외치던 그녀는 요즘 서울하늘 어디에선가
<가리봉동 따따블>을 외치며 택시를 잡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다음에 또 다른 주제로 만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