哀公 2年(紀元前 493年)
二年春, 伐邾, 將伐絞, 邾人愛其土, 故賂以漷沂之田而受盟. 初衛侯遊于郊, 子南僕. 公曰 : 「余無子, 將立女.」 不對. 他日又謂之, 對曰 : 「郢不足以辱社稷, 君其改圖, 君夫人在堂, 三揖在下, 君命祗辱.」 夏衛靈公卒.
이년춘, 벌주, 장벌교, 주인애기토, 고뢰이곽기지전이수맹. 초위후유우교, 자남복. 공왈 : 「여무자, 장립여.」 부대. 타일우위지, 대왈 : 「영부족이욕사직, 군기개도, 군부인재당, 삼읍재하, 군명지욕.」 하위영공졸.
[解釋] 애공 2년 봄에, 노나라가 邾나라를 토벌할 때에, 장차 絞를 치려 하니, 邾나라 사람이 그 땅을 아까워하였으므로, 漷水와 沂水 연변의 전지를 뇌물로 바치기로 하고 와서 맹서를 받았다. 처음에 위나라 영공이 교외에 이르러 유람할 때, 그의 아들 子南이 어거하였다. 이에 영공이 자남에게 말하기를, 「내 태자가 없으니, 장차 너를 세우려 한다.」고 하였으나, 자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른 날 영공이 또 그런 말을 하므로, 자남은 대답하기를, 「제가 부족하여 나라를 욕되게 할 것 같사오니, 청컨대 임금님께서는 생각을 고쳐 달리 도모하소서. 君夫人께서 당상에 계시고, 경`대부`사들이 당하에 있사오니, 예에 맞지 않는 임금님의 사사로운 명령은 다만 욕될 뿐입니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여름에 위나라 영공이 죽었다.
夫人曰 : 「命公子郢爲大子, 君命也.」 對曰 : 「郢異於他子, 且君沒於吾手, 若有之, 郢必聞之, 且亡人之子輒在.」 乃立輒.
부인왈 : 「명공자영위태자, 군명야.」 대왈 : 「영이어타자, 차군몰어오수, 약유지, 영필문지, 차망인지자첩재.」 내립첩.
[解釋] 夫人이 말하기를, 「公子 郢을 명하여 태자로 삼으라는 것이, 임금의 명령이었다.」고 하였다. 이에 영이 대답하기를, 「저는 다른 아들과 생각이 다르며, 또 임금님께선 제가 모시는 앞에서 돌아가셨으니, 만약 이러한 명령이 계셨다면, 제가 반드시 들었을 것이며, 또 망령한 괴외의 아들 輒이 있습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위나라 사람들은 輒을 세워 임금을 삼았다.
六月乙酉, 晉趙鞅納衛大子于戚, 宵迷. 陽虎曰 : 「右河而南, 必至焉.」 使大子絻, 八人衰絰, 僞自衛逆者, 告於門, 哭而入, 遂居之.
육월을유, 진조앙납위태자우척, 소미. 양호왈 : 「우하이남, 필지언.」 사태자문, 팔인최질, 위자위역자, 고어문, 곡이입, 수거지.
[解釋] 6월 乙酉日에, 晉나라 趙鞅이 衛나라 태자 괴외를 戚지방에 들여보낼 때, 밤이라서 길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이때 양호가 말하기를, 「황하의 오른편으로부터 남쪽으로 달려가면, 반드시 척지방에 도착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태자 괴외로 하여금 처음 발상할 때의 상복을 입게 하고 다른 8명에게는 다른 상복을 입혀, 거짓으로 위나라로부터 와서 태자를 맞아들이는 모양을 꾸며, 척읍의 수문장에게 고하여, 애곡하는 예를 올린 뒤에 들어가서, 드디어 척에 머물렀다.
秋八月, 齊人輸范氏粟, 鄭子姚子般送之. 士吉射逆之, 趙鞅禦之, 遇於戚. 陽虎曰 : 「吾車少, 以兵車之旆與罕駟兵車先陳, 罕駟自後隨而從之, 彼見吾貌, 必有懼心. 於是乎會之, 必大敗之.」 從之, 卜戰, 龜焦.
추팔월, 제인수범씨속, 정자요자반송지. 사길야역지, 조앙어지, 우어척. 양호왈 : 「오거소, 이병거지패여한사병거선진, 한사자후수이종지, 피견오모, 필유구심. 어시호회지, 필대패지.」 종지, 복전, 구초.
[解釋] 가을 8월에, 제나라 사람이 范氏에게 좁쌀을 수송하여 줄 때에, 정나라 대부 子姚와 子般이 이를 호송하고 있었다. 범씨의 사인 吉射가 이를 노상에서 영접하고 있었는데, 진나라 趙鞅이 이를 막아, 戚邑에서 만났다. 이때 양호가 말하기를, 「우리는 병거가 적으니, 병거의 깃발을 뽑아다가 자요와 자반의 병거보다 앞에다 진을 쳐 놓으면, 자요와 자반은 뒤로부터 쫓아오면서, 우리의 모양을 보고서 허실을 알지 못하여, 반드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때 만나 교전하면, 기필코 크게 이길 것입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앙이 그 말을 따르려고 하여, 점을 쳐 보았더니, 거북이 타버려 복조를 이루지 못하였다.
樂丁曰 : 「≪詩≫曰, '爰始爰謀, 爰契我龜, 謀協.' 以故兆詢可也.」 簡子誓曰 : 「范氏中行氏反易天明, 斬艾百姓, 欲擅晉國而滅其君. 寡君恃鄭而保焉. 今鄭爲不道, 棄君助臣. 二三子順天明, 從君命, 經德義, 除詬恥, 在此行也. 克敵者, 上大夫受縣, 下大夫受郡, 士田十萬, 庶人工商遂, 人臣隸圉免. 志父無罪, 君實圖之, 若其有罪, 絞縊以戮, 桐棺三寸, 不設屬辟, 素車樸馬, 無入于兆, 下卿之罰也.」
악정왈 : 「≪시≫왈, '원시원모, 원계아귀, 모협.' 이고조순가야.」 간자서왈 : 「범씨중항씨반역천명, 참애백성, 욕천진국이멸기군. 과군시정이보언. 금정위부도, 기군조신. 이삼자순천명, 종군명, 경덕의, 제후치, 재차행야. 극적자, 상대부수현, 하대부수군, 사전십만, 서인공상수, 인신예어면. 지부무죄, 군실도지, 약기유죄, 교액이륙, 동관삼촌, 불설속벽, 소거박마, 무입우조, 하경지벌야.」
[解釋] 이를 보고 진나라 대부 樂丁이 말하기를, 「≪詩經≫에 이르기를, '사람의 계획은 먼저 세운 뒤에, 다시 복서를 하여 양자가 서로 맞아야 길하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세운 계획과 앞서 위나라 태자를 귀국시킬까를 물을 때의 복조가 서로 맞아 길하니 다시 더 점칠 필요가 없고 그대로 믿는 것이 옳습니다.」고 하였다. 조앙이 모든 군사에게 맹서하기를, 「范氏와 中行氏는 하늘의 명덕을 위반하여 그 임금을 섬기지 않고, 백성을 죽이며, 제멋대로 우리 진나라를 독재하여 임금을 없애려 한다. 그런데도 우리의 임금님은 정나라에 임입어 우리 진나라를 유지하려고 하고 계시다. 그런데 이제 정 나라는 무도하여, 우리의 임금을 버리고 신하를 방조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하늘의 명덕을 순리로 받고, 임금의 명령을 따르며, 덕의의 일을 경영 조성하여, 꾸지람을 받을 수치를 제거함이, 모두가 이 싸움에 있다. 만약 적을 이기고 난 뒤에는, 상대부는 현읍을 받을 것이고, 하대부는 군읍을 받을 것이며, 병사는 전지 10만 묘를 받을 것이요, 평인과 공상인은 모두 벼슬을 할 것이며, 남의 가신이나 종들은 모든 노예에서 해방될 것이다. 내가 만약 죄가 없다면, 임금님께서 마땅히 생각하여 처분하실 것이요, 그렇지 못하여 죄가 있을진댄, 형벌로써 목매어 죽여서, 아주 썩기 쉬운 오동나무로 3치의 관을 만들고, 덧관은 만들지 않고, 꾸미지도 않은 수레에다 비루한 말로서 널을 끌어, 선양하의 광중에 묻히지도 못하리니, 이는 下卿의 형벌이니라.」고 하였다.
甲戌, 將戰, 郵無恤御簡子, 衛大子爲右. 登鐵上, 望見鄭師衆, 大子懼, 自投于車下, 子良授大子綏, 而乘之曰 : 「婦人也.」
갑술, 장전, 우무휼어간자, 위태자위우. 등철상, 망견정사중, 태자구, 자투우거하, 자량수태자수, 이승지왈 : 「부인야.」
[解釋] 甲戌日에, 바야흐로 전투가 벌어질 때에, 郵無恤이 조앙의 병거를 어거하고, 위나라 태자는 우익이 되었다. 철구 위로 올라가서, 정나라 군사의 많음을 바라보고, 大子가 두려워하여, 스스로 미끄러져 병거 아래로 떨어지니, 子良이 태자에게 수레 위에 있는 고삐 한 가닥을 주어, 붙잡고 올라오게 하면서 말하기를, 「여자와 같소이다.」고 하였다.
簡子巡列曰 : 「畢萬, 匹夫也, 七戰皆獲, 有馬百乘. 死於牖下, 羣子勉之. 死不在寇.」 繁羽御趙羅, 宋勇爲右.
간자순열왈 : 「필만, 필부야, 칠전개획, 유마백승. 사어유하, 군자면지. 사불재구.」 번우어조라, 송용위우.
[解釋] 조앙이 군대의 대열 사이로 순찰하면서 말하기를, 「전의 진나라 헌공의 신하 畢萬은, 단신 필부로서, 7회나 전투하여 모두 적장을 죽이고 사로잡아, 나중에 말 백승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늙어서 창밑에 편안히 누워 죽었으니, 여러 군사들은 힘쓸지어다. 죽음이 전쟁에 꼭 매어 있는 것은 아니니라.」고 하였다. 진나라 대부 繁羽가 趙羅를 모시고, 宋勇이 우익이 되었다.
羅無勇, 麇之, 吏詰之, 御對曰 : 「痁作而伏.」 衛大子禱曰 : 「曾孫蒯聵敢昭告皇祖文王, 烈祖康叔, 文祖襄公. 鄭勝亂從, 晉午在難. 不能治亂, 使鞅討之, 蒯聵不敢自佚, 備持矛焉. 敢告無絶筋. 無折骨, 無面傷, 以集大事, 無作三祖羞, 大命不敢請, 佩玉不敢愛?」
나무용, 균지, 이힐지, 어대왈 : 「점작이복.」 위태자도왈 : 「증손괴외감소고황조문왕, 열조강숙, 문조양공. 정승란종, 진오재난. 불능치란, 사앙토지, 괴외불감자일, 비지모언. 감고무절근. 무절골, 무면상, 이집대사, 무작삼조수, 대명불감청, 패옥불감애?」
[解釋] 趙羅는 용기가 없어 병거에 타지 못하므로, 포승으로 결박 지어 태웠더니, 군리가 이를 힐문하자, 번우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학질이 발작하여 엎드려있으므로 이렇게 하였다.」고 일렀다. 위 태자가 빌면서 말하기를, 「曾孫 蒯聵는 감히 皇祖 文王과 烈祖 康叔과 文祖 襄公에게 밝히고 고하나이다. 지금 정나라 성공 승이 난리를 일으켜, 진나라 정공 오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진나라 정공은 이 난리를 다스리지 못하여, 조앙으로 하여금 이를 토벌하게 하므로, 저도 감히 스스로 안일하게 있을 수 없어, 창을 잡고 우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제위 신령님에게 빌며 고합니다. 제발 창에 맞아 힘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게 하여주시고, 병거에서 떨어져 골육을 다치는 일도 없게 하여 주시며, 이 전투에서 큰일을 모두 성취하게 하시어, 위로 세 분 조상님께 수치 되는 일을 짓지 않게 하소서. 대명은 감히 청하지 못하거니와 패옥이야 감히 애석하게 여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鄭人擊簡子中肩, 斃于車中. 獲其蜂旗, 大子救之以戈, 鄭師北. 獲溫大夫趙羅. 大子復伐之, 鄭師大敗. 獲齊粟千車. 趙孟喜曰 : 「可矣.」 傅叟曰 : 「雖克鄭, 猶有知在, 憂未艾也.」
정인격간자중견, 폐우거중. 획기봉기, 태자구지이과, 정사배. 획온대부조라. 태자부벌지, 정사대패. 획제속천거. 조맹희왈 : 「가의.」 부수왈 : 「수극정, 유유지재, 우미애야.」
[解釋] 그러자 싸움이 벌어져 정나라 병사가 조앙의 어깨를 치자, 조앙은 병거 속에서 엎어졌다. 그러면서 정나라 군대는 조양의 깃발인 봉기를 약탈하여 감으로, 태자가 창으로 이를 구하니, 정나라 군사들은 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 趙羅는 용맹이 없었으므로 적에게 붙잡혀 갔다. 태자가 다시 공격하자, 정나라 군대는 크게 패주했다. 그래서 제나라의 좁쌀 1천 수레를 획득하였다. 이에 조앙이 기뻐하여 말하기를, 「참 좋은 일이다.」고 하니, 傅叟는 말하기를, 「비록 정나라는 이겼으나, 아직도 知氏가 있으니, 우환이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初周人與范氏田, 公孫尨稅焉. 趙氏得而獻之. 吏請殺之, 趙孟曰 : 「爲其主也, 何罪?」 止而與之田. 及鐵之戰, 以徒五百人宵攻鄭師, 取蜂旗於子姚之幕下, 獻曰 : 「請報主德.」
초주인여범씨전, 공손방세언. 조씨득이헌지. 이청살지, 조맹왈 : 「위기주야, 하죄?」 지이여지전. 급철지전, 이도오백인소공정사, 취봉기어자요지막하, 헌왈 : 「청보주덕.」
[解釋] 처음에 주나라 사람이 范氏에게 전지를 주었으므로, 范氏의 신하 公孫尨이 전지의 조세를 받아왔다. 그러나 조앙의 무리들이 公孫尨을 잡아다가 조양에게 바쳤다. 그래서 군리가 죽이기를 청하자, 조간자는 말하기를, 「그가 주인을 위해서 한 일이니, 무슨 죄가 있는가?」라고 하고서, 이를 제지하여 죽이지 않고 그가 조세로 받았던 것도 주어 보냈다. 그러다가 이 철구의 전투가 일어나자, 公孫尨이 그 무리 5백 인을 이끌고 밤을 타 정나라 군사를 공격하여, 蜂旗를 子姚의 장막 속에서 탈취하여 가지고 돌아와서, 조앙에게 헌납하며 말하기를, 「청컨대 살려 주신 은덕을 갚으려 합니다.」고 하였다.
追鄭師, 姚般公孫林殿而射, 前列多死. 趙孟曰 : 「國無小.」 旣戰. 簡子曰 : 「吾伏弢嘔血, 鼓音不衰, 今日我上也.」
추정사, 요반공손림전이사, 전렬다사. 조맹왈 : 「국무소.」 기전. 간자왈 : 「오복도구혈, 고음불쇠, 금일아상야.」
[解釋] 진나라 군사가 정나라 군사를 추격하는데, 子姚와 子般과 公孫林 등이 달아나면서 뒤를 향하여 활로 쏘아 맞히니, 진나라 선봉 병사들이 많이 맞아 죽었다. 이에 조앙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나라가 적다하여 업신여기지 말라 활 잘 쏘는 사람이 참으로 많도다.」고 하였다. 이윽고 전투가 끝났다. 조앙이 말하기를, 「나는 활집에 엎드러져서 피를 토하면서도, 싸움의 북소리를 멈추지 않았으니, 오늘의 공은 내가 최상이다.」고 하였다.
大子曰 : 「吾救主於車, 退敵於下, 我右之上也.」 郵良曰 : 「我兩靷將絶, 吾能止之, 我御之上也.」 駕而乘材, 兩靷皆絶. 吳洩庸如蔡納聘, 而稍納師, 師畢入, 衆知之. 蔡侯告大夫殺公子駟以說. 哭而遷墓. 冬蔡遷于州來.
태자왈 : 「오구주어거, 퇴적어하, 아우지상야.」 우량왈 : 「아량인장절, 오능지지, 아어지상야.」 가이승재, 양인개절. 오설용여채납빙, 이초납사, 사필입, 중지지. 채후고대부살공자사이설. 곡이천묘. 동채천우주래.
[解釋] 이에 위나라 태자는 말하기를, 「나는 병거 위에서 주인을 구하고, 적병을 병거 아래에서 격퇴시켰으니, 나는 우익으로서의 공이 최강이다.」고 하였다. 또 우무휼도 말하기를, 「나는 두 부마와 뱃대끈이 끊어지려는 것을, 내가 끊어지지 않게 하였으니, 이 어자의 공이 최상이다.」고 하고서, 말에 멍에를 메어 수레에 매고 조그만 가로 막대기를 약간 싣고 돌 게 하니, 두 말의 뱃대끈이 모두 끊어졌다. 오나라의 대부 洩庸은 채나라로 가서 방문하는 척하고, 조금씩 군사를 들여보내어, 많은 군사가 모두 진입한 뒤에야, 채나라의 여러 사람들이 겨우 알았다. 그래서 채나라 임금은 公子駟를 죽여 변명을 했다. 그리고 채나라 임금은 그의 조상의 묘에 곡을 하고서 묘를 옮겼다. 그리고 겨울에 채나라는 州來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