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은 김해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울산 두북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항상 막히고 지체되는
양산톨게이트를 계산해서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전에 김해시청에 도착했는데도 강연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올 봄에 그 곳에서 스님 강연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장소는 좁은데 사람이 너무 많이 왔었습니다.
강연장과 바깥 로비까지 1000명이 넘게 앉았는데도 시청 바깥 큰 길까지 200m 족히 넘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더 이상 수용할 수가 없어서, 또한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서 시청 큰 길까지
줄서 있던 사람들에게 스님께서 일일이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며 돌려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전에 돌아갔던 경험이 있어서 사람들이 한 시간전부터 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오늘도 열심히 사람들을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강연 시작전에 시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김해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전철에 따른 매년 지출 예산이라고 했습니다. 경전철 건설을 민간기업에 맡김으로해서 건설비, 전철 수요 등
필요 이상의 경비 책정으로 매년 680억의 돈을 20년간 그 회사에 밀어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시민 복지비 등으로 써야 할 예산을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개인업체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회사를 혼내줘야 하는데, 이런 회사는 그냥 넘어가고, 개인들이 잘못했을 때는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인 것 같습니다. 공정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강연장으로 들어가니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강연 시작전에 김해정토회 회원이신
이지영님이 소프라노로 노래 2곡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무대에 서서 멋있게 노래하는 것만 보다가
오늘 경상도 사투리로 노래의 뜻을 설명하는 것을 들으니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미지도 확 달라보여서
많이 웃었습니다.
뒤에 서있는 사람이 많아, 무대에까지 사람들을 꽉 채워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김해강연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즉문즉설은 스님 혼자서가 아니라 질문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처럼 질문이 구체적이고, 스님께 속내 깊은 것들까지 다 드러내서 이야기를 하면 강연이 참 재미있고
느껴지는 것도 많습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4남매를 두고 있는 할머니는 올 해 41살의 아들이 장가를 안 가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한 명인데 결혼을 안 했습니다. 41살입니다. 신경 쓰여서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엄마 건강이나 신경써라고 합니다. 나이가 41살인데, 남들은 다 며느리보고 손자 봤는데 참고 있는 것도 힘들어요.”
“자꾸 결혼해라, 결혼해라고 해서 결혼했는데 1년 있다가 손자 하나 놔 두고, 며느리가 가버리면
그래도 결혼하는 것이 좋아요?”
“아, 그러면 안하는 것이 낫죠.”
“아까 앞의 질문자에게 제가 기도 잘못하면 재앙을 불러 일으킨다고 했죠? 자기가 봤을 때 아들이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남자예요, 아니예요? 아들이 뭐해요?”
“조그마한 사업하다가 접었거든요. 지금은 뭐 뚜렷이 하는 것은 없습니다.”
“같이 살아요, 혼자 살아요?”
“같이 살고 있습니다.”
“나이가 41살인 남자가 직장도 없고 엄마랑 같이 살고 있는데 시집올 여자가 있을까요? 우선 아들하고
따로 사는 것이 낫습니다. 자식이 20살이 넘으면 일단 나가서 혼자 살아야 돼요. 엄마가 빨래해주고 밥해주고
뒷바라지 다해 주면 잠자리 외에 여자가 왜 필요하겠어요? 엄마가 다 해주기 때문에 결혼할 필요성을
별로 못느끼는 거예요. 일단 집에서 내보내야 합니다.
독립해서 혼자 살면, 남자가 혼자 사니까 여자가 붙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자가 집에 와보면 그 남자 뒤에
늙은 여자가 하나 붙어 있어요. 그러면 여자가 안 와요. 한 남자 두고 두 여자가 경쟁하는 걸 여자들은 안 좋아해요.”
“남들은 보니까 결혼만 잘 하던데요?”
“아들이 결혼을 하려면 자기가 떨어져야 한다니까요. 겉으로는 엄마와 아들이지만,
부부처럼 빨래해주고 밥해주고 다 하잖아요. 내 보내세요. 자기가 먼저 아들과 이혼을 하세요, 알았죠? ”
“아들이 어릴 때 고생을 해서 결혼전까지 데리고 있을려고 했는데...”
“누나 3명에 엄마 1명이 있는, 여자 4명이 옆에 있는 남자에게 누가 시집가려고 그러겠어요?
일단 독립을 시키세요.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들을 위해서 정을 끊어야 됩니다. 돈도 주지 마세요.”
“저는 아들을 위해서 어릴 때 고생을 했으니까 결혼하면 살림을 내보낸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말은 어떻게 하든 지금 상태에서는 결혼하면 오래 못 간다, 안 하는 것이 낫다 이 말이예요.
두 번째, 결혼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려면 자립을 해야 합니다. 엄마 정을 먼저 끊어줘야 합니다.
결혼은 둘째로 하고 우선 자립부터 시키세요.”
“예, 알겠습니다.”
아들의 결혼이 지상과제였던 할머니는 스님과 한참 문답을 하더니 시원하게 해결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 문답 과정에서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오늘은 할머니만이 아니라 질문 하나 하나 다 많이 웃었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마치고 마산정토회에 들어가서 좀 쉬었다가 창원 강연장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스님 입안이 다 헐어서 좀 쉬거나 병원에 가시는 게 좋겠다 싶었는데, 옛 가야땅에 와서 그냥 갈 수가 없어서
장유사에 들렸습니다.
장유화상이 머물렀던 장유사가 강연장에서 12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봤습니다.
차도 숨이 찰 정도의 가파른 경사진 길을 한참 올라가니 거의 산꼭대기 가까이에 장유사가 있었습니다.
장유사 대웅전과 장유화상 사리탑에 먼저 참배를 했습니다.
장유사는 우리나라 남방불교 전래설을 입증하는 사찰로 A.D 48년 인도 아유타국 태자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왕옥과 이곳으로 와서 최초로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이 곳은 출가수행한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들을 장유화상이 직접 가르치던 도량이며 후에
경남 하동 소재 칠불암으로 가서 수행하기까지 머무러셨던 수행도량이라고 합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옛 선지식들의 전법 정신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물설고 낯설은 이 땅에까지 와서 불법을 전했던 분들.
그분들의 전법에 의해 오늘 저희들은 불법 인연 만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장유사 참배를 하고, 아래에 있는 장유폭포에 다녀왔습니다. 작은 폭포였지만 물이 참 맑았습니다.
산책을 잠시 한 다음 창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불모산(佛母山)에 잠시 올라갔습니다. 찻길이 좋지 않았는데,
이름이 남달라 한 번 올라가보고 싶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이 곳의 지리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스님께서 가자는 곳으로 가면 길이 있고, 산이 있고, 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농담삼아 스님을 지도(地圖)법사님이라고 부르곤 한답니다. 산에 올라가 바라보는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부산신항과 거가대교까지 다 보였습니다. 바다에 비친 햇살이 또한 장관이었습니다.
다음 강연장인 창원으로 넘어가서 강연장 부근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점심, 저녁 다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창원 컨벤션 센타에 30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1600석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사전공연으로 대금 공연과 소프라노 독창이 있었습니다. 같은 분이
김해와 창원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김해의 작은 공간에서 부를 때보다 넓고 큰 홀에서 목청껏
소프라노로 노래를 부르니 온 몸이 전율하는 듯 했습니다. 자기의 재능을 이렇게 기부해 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축하공연 뒤 수행담 발표가 있었는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진주에서 강연을 준비한 한 희망봉사자의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올 해 66세의 아주머니는 살아오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는 자존감이 거의 없어졌는데,
스님 법문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예쁘게 보인다고 합니다. 진주 강연을 알리기 위해 홍보를 하면서 더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자기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스님의 법문을 만나면 그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홍보를 했다고 합니다. 한 말씀 한 말씀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듣고 있는데, 당신의 인생 이야기, 행복이야기가 아름다워 감동의 눈물이 났습니다.
당신의 행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창원도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김해보다 더 많이 웃었습니다. 청중들도 마지막 마칠 때까지 거의 움직임 없이
강연에 집중을 해 주었고, 질문자들도 진솔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님께 아무 허물없이 툭툭 던져 주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기독교인인데 스님 법문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저에게 권해 주셔서 저도 스님 말씀 잘 듣고 있어요.
스님 팬이예요. 그런데 제가 지능이 좀 어설퍼요. 대인관계도 그렇구요. 제 인생이 파란만장한 것 같애서요.”
“몇 살이예요?”
“23살요.”
“모자라긴 모자란다, 이야기 들어보니...”(대중들 배잡고 웃느라 넘어감)
“예. 모자란 것 같애요. 질문이 많아요. 첫째, 제 인생에 지침이 될 조언 하나 부탁드리고요,
두 번째는 저희 아버지가 선거를 하셨거든요, 정치를 하고 싶어 하세요. 딸인 저로서는 말리고 싶어요.
아버지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리구요. 세 번째는, 동생은 삼수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4수를 꿈꾸더라구요. 누나로서 동생에게 전해줄 수 있는 말을 스님께서 한 마디 해 주시면 좋겠어요.
인생의 지침이 될만한 조언 한 마디 먼저 해 주세요.”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마라.”
“저는 앞으로의 진로를 상담사로 정했는데, 이건 간섭을 많이 하는 일이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죠?”
“들어만 주면 되지요.”
“예. 그 다음은요?”
“두번째, 세 번째는 1번에 답이 들어 있어요.”
“녜.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머리는 부족하지만 말귀는 잘 알아 들어요. 지식은 부족해도 지혜는 있어서 괜찮아요.
남의 인생에 간섭만 안 하면 되겠어요. 아빠가 정치하면 조금 도와주고, 동생 4수하면 옆에서 조금 도와주세요.
아빠 정치하는 것은 엄마 아빠가 알아서 할 것이고, 남동생은 3수 했으면 스무살 넘었을 거잖아요?
20살이 넘은 사람에 대해서는 간섭을 안 하는 것이 좋아요. 부모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는 누나잖아요?
그냥 간섭하지 말고, “힘들지?” 하면서 말 한 마디 해주고 쥬스나 한 잔 타주고, 등 한 번 두드려 주면서
격려해 주세요. 선거도 매년 하는 것 아니잖아요. 조금씩 도와주면 됩니다.”
이 분과 스님의 대화하는 동안은 개그콘서트가 따로 없었습니다. 이 분이 물을 때마다, 스님께서 대답하실 때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너무 많이 웃어서 그 큰 강연장을 뒤흔들어 놓곤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을 한 사람은 33살의 아가씨였습니다. 결혼을 해서 5남매를 두는 것이 꿈인데 남자와
인연이 안 맺어져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철학관에 갔더니 사주에 남자가 없는데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데 아프리카에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합니다.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요즘 남자는 저런 여자 겁납니다. 만나서 점검을 해야 하는데 만나자 마자 결혼하자고 덤비죠,
애 5명만 낳자고 하죠. 결혼해도 좋다, 안 해도 좋다, 결혼해서 애 낳아도 좋다, 안 낳아도 좋다.
결혼해야 한다, 애 5명을 낳아야 한다는 목표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런 남자는 없어요.
인간이 어디 진심이 있어요? 진심 너무 좋아하는 것도 안 좋아요.
그렇게 덤비면 인도남자나 아프리카 남자는 좋아하지 한국남자는 안 좋아하게 생겼어요.
파키스탄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파키스탄 남자는 애 많이 낳으면 좋아하니까. 33살이면 내년에 결혼하다고 해도
40살까지 5명 낳겠어요? 대한민국에 저런 여자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 애국자입니다.
잠깐만 여기 올라와 보세요.” 여자분이 웃으면서 무대에 섰습니다.
1600여명의 사람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무대 위의 스님과 여자분을 관심있게 바로보고 있었습니다.
“키는 몇이예요?”
“구두 안 신고 160요.”
“얼굴도 이정도면 괜찮죠?”
(대중들) “예에-”
“직장은 뭐예요?”
“중학교에서 아이들 국어 가르치고 있어요.”
“그렇게 좋은 직장인데도 데려 가는 남자가 없어요? 키 160이고, 얼굴도 예쁘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심성도 착해 보이죠? 남자들이 눈이 삔 것 같네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 아래, 위 10살까지 괜찮습니다.
새차, 중고차 다 가능합니다. 여기 계신 남자분 중, 이 여자분 괜찮으신 분 한 번 손 들어보세요.”
왼쪽 편에서 남자분 한 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다들 신나게 웃었습니다. 강연장이 거의 코미디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즐거워 했습니다.
“예. 만들려고 하면 이렇게 여기서도 인연을 찾을 수 있잖아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괜찮아요. ”
창원에도 젊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책 사인하는 줄이 끝없이 길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20-30대의 특성상 강연장까지 찾아와서
강의를 들을 것 같지 않은데, 스님 강연장은 질문하는 사람도, 강연 참가자도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즉문즉설을 마치자 경남지역 각 지역 희망지기들이 다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스님과 함께
뭉게구름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경남지역에서의 300강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창원에서도 강연을 마치고 자원봉사자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만남을 시작하면서 먼저 케익에 촛불을 밝혀 두고,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스승의 은혜를 불렀습니다. 숙연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 수고 많았다며 격려를 해주시고, 다음 놀 거리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늘 최선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서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조금이라도 개선될 수 있는 쪽으로
힘을 몰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 사회의 모습입니다. 300강 하느라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구석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열심히 일한 것, 스님이 다 알고 있어요.
이제는 원상복귀해서 정비를 해야 합니다. 개인은 수행정진하고, 법당은 다시 원위치해서 내실을 다져서
내년 봄에는 올 해 뿌린 씨앗을 거둬야죠? 다시 여세를 몰아서 시군구 법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숨 돌릴 동안 저는 미국 전역에 법회를 하거나 북한에 시군구를 돌면서 북한식량돕기를 하겠습니다.
북한의 모든 시군구가 220개입니다. 하나의 시군구에 100톤씩 지원한다면 총 2만2천톤이 됩니다.
이 돈은 누가 모아야 할까요? 우리가 모아야 되겠죠?” 사람들이 다같이 웃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뒷모임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경남의 각 지역의 희망봉사단들이 다 참가를 했습니다. 진주, 거제, 함양, 밀양, 통영에서 오신 분들이
팀별로 일어나 인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같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이제 목요일만 남았습니다. 오후 2시에 용인, 그리고 오후 7시에 평화의 전당에서 300강 전체 총괄 마무리인
희망콘서트가 열립니다. 300강의 여정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격스럽습니다. 내일 스님은
서울에서 일정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약속이 있고, 내부 업무 회의가 있습니다. 오후 2시에는 CBS 생방송
<김미화의 여러분!>에 출연하실 계획입니다.
스님의 하루는 내일은 쉬고, 목요일날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