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기행

[심종은]

장가계 기행

                                                                                                                          심 종 은

   ● 12/31 (금) 맑음

  연말연시 성당친목회에서 국외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한 날이다. 하필 눈이 내려 많은 걱정을 하였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늘이 맑게 개였다. 새벽부터 아내가 기도 올리는 것을 보자 가슴이 애틋해진다. 기도가 끝나자 조반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나도 얼른 일어나 세면과 면도를 끝낸 다음 여행갈 최종준비를 마쳤다.

  8시 반에 윗집 김 미카엘 부부와 함께 부래미마을에서 출발하였다. 대화에 신경을 쓰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인천대공원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U턴하려다가 차량이 밀려 일신동으로 직진하면서 부평삼거리와 열우물 사거리를 거쳐 가좌동으로 진입하였다.

  김 미카엘 부부를 자택 앞에서 내려준 후 현대아파트 집에 들린 후 우리가족은 일년 묵은 때를 벗기려 미주탕으로 향했다. 아내가 목욕탕 이용권을 세장 갖고 있어 카운터에 제출했더니 주인이 바뀌어 무용지물이 되는 바람에 결국 현찰(4,500☓3)을 내고 말았다.

  난 어제 저녁에 미리 머릴 감아 가볍게 몸을 푸는 기분으로 들어갔으나 생각 외로 때가 많이 밀리는 것이었다. 온탕과 열탕을 부지런히 오가며 누적된 땀방울과 함께 잡동사니를 제거하고 비누질로 피질을 몰아냈더니 한결 몸이 개운해지면서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목욕하고 나와 식당으로 직행하려다가 집에 들어와 중국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었으나 며느리가 점심 준비를 해놓은 덕분에 아들집에서 모처럼 떡만두국을 먹게 되었다. 식사를 끝내고는 현대카 수리점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할 겸 차량을 점검하도록 맡겼다.

  그 사이 중국여행에 필요해서 위안화를 교환하기 위하여 인근 농협에 들어가 화폐를 바꾸었다. 위안화는 100단위 이상밖에 없어서 15만원을 바꾸려하자 100단위로 8장(800CNY/142,216원)만 손에 쥐어 주고 나머지거스름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내주었다. 

  아들이 직장에 나가는 김에 우리를 공항역까지 태워준다고 해서 김 미카엘부부와 약속을 하였기에 했기에 오후 4시 넘어 김 미카엘집으로 갔다. 수일이가 타는 바람에 짐도 많아 남자들은 다른 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여자들과 짐만 먼저 딸려 보냈다.

  그 바람에 김 미카엘은 미리 한신아파트앞 버스 정류장에 나간 상태였다. 혼자 그곳까지 걸어가느라 공연히 땀만 흘렸다. 거기서 택시를 갈아타고 검암공항역까지 둘이 타고 갔다. 지하철2호선 공사로 정체현상을 빚어 5시 정각이 되어서야 당도했다.(택시비 10,300원)

  검암역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공항으로 직접 간다는 한 가족을 빼고 모두 이곳으로 모였다. 공동회비로 사서 준비한 소주와 고추장, 김 등 공동음식을 함께 나누어 챙기고 지하철에 올라타자 공항까지 직행하였다. 

  6시경에 공항에 당도하였다. 공항청사까지 곧바로 뚫려있어 짐을 옮겨가기가 수월하였다. 우리는 청사 3층으로 올라가 통로 맨 끝에 위치한 M카운터 23번 앞에서 (주)노랑풍선 여행사(서울 중구 서소문동21-1 MIES빌딩 10층 02-774-77440와 테이블미팅을 가졌다.

  가져온 짐마다 노랑풍선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 화물을 붙인 다음 공항 안으로 들어가 대기하면서 개찰하기 전까지 자유 시간을 가졌다. 나는 면세점에서 모자나 장갑을 사고 싶었으나 얼른 눈에 뜨이지 않아 포기했다. 

  딸과 나만 커피를 마시기로 하였다. 아내는 커피가 싫다며 같이 온 우리일행들과 함께 있겠다며 개찰구 옆 대기석으로 갔다. 카푸치노를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썼다.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맛보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역시 자판기체질인가 보다.

  20시 20분 아시아나 OZ3217편으로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장가계로 향했다. 그동안에 날이 어두워 비행기에서 내려다뵈는 영종도의 공항모습은 불빛만 섬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금방 기내식이 나왔다. 메뉴는 닭고기와 생선 중에서 생선을 선택하였다.

  식사 도중에 맥주와 커피도 가져와서 함께 먹었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2시간 반 정도 소요됨으로 무료함을 달래느라 가좌동 대여점에서 미리 빌려온 무협지를 보며 시간을 가볍게 보낼 수 있었다. 아내는 그것이 처음부터 못마땅해서 자꾸 쫑알거렸다. 

   ● 1 / 1 (토) 눈

  비행기 속에서 2011년 신묘년(토끼해)의 새아침을 맞았다. 신년 새아침마다 소원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생각대로 이루어진 적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새해 새아침엔 늘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벅찬 꿈과 희망을 다시금 갖게 만드나 보다.

  이번에는 해를 보지 못했다. 장소가 여행 중인 비행기 안이어서 이번에는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없었으나 모처럼의 여행에 많은 눈이 내려 해를 보기도 어렵겠거니와 날씨 탓으로 모처럼의 여행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가 않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새벽1시에 대륭공항(장가계)에 도착하였다. 마중 나온 현지 가이드는 유영애(138-0744-3642)라고 밝혔다. 노랑풍선 팀은 우리가 A팀으로 17명이고 B팀으로 10명이 또 있었으나 가이드가 달랐다. 여행사의 가이드 대신 돈을 절약하면서 권 스테파노가 우리팀 인솔을 맡았다. 

  우리나라와 1시간 차가 있어서 현지시각으로는 자정에 해당된다. 여기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숙소인 개천 국제대주점(Kaitian Inter -nationnal Hotel / 744-215- 1818)으로 가서 투숙하게 되었다. 생각보다는 호텔내부가 형편없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곳은 718호실. 중국에서는 8자를 좋아하여 방 번호 앞에다 8자를 덧붙여서 8718호실로 부른다. 임시로 간이 침대를 설치하여 우리식구 셋이서 한방을 쓰게 되었다. 짐을 내린 후 남자들은 전우용부부가 머무는 8725호에 모여들었다. 

  본격적인 일정은 내일이고 가볍게 모여 컵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파티를 가졌다. 그러다가 이번 행사를 주관한 권 스테파노 형제가 신년 첫날이라 성당에 갈 수 없으니까 별도로 공소예절에 대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미리 자료를 준비해왔다. 

  그래서 모두 이 자리에서 참여하여 함께 공소예절에 대한 의식을 갖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3시 30분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은 7시(우리나라시간 8시)였다. 갑자기 포소리와도 같은 소리가 들려 잠결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고 조용하기만 한데 그 소리에 맞추어 호텔 건물 지붕 한 구텡이에서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신년을 기념하는 축포라 했다. 신년을 맞아 내 소망을 맘껏 빌어보고 싶었으나 눈이 감겨 도로 잠자리로 기어들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꾸러기 식구들을 깨워 식당으로 갔을 때는 우리가 가장 꼴찌였다. 거의 모두가 식사가 끝나가는 중이었다. 꿈지럭대는 버릇은 집에서나 나가서나 항상 똑같은 우리 식구들의 안타까운 현상이다. 

  호텔조식에 나온 밥은 가루밥이 아니면 떡밥이었다. 고추장에 알맞제 비벼먹기도 힘들었다. 입에 맞지는 않았으나 가져온 김치와 고추장으로 적당히 믹사를 해서 그럭저럭 먹을 수 있었다. 커피까지 먹고 배정된 숙소로 되돌아온 후 나갈 차비를 했다. 

  눈이 많이 와서 계획된 스케줄대로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늘어섰다는 백장협 차창관광(車窓觀光)도 못하고 9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보봉호로 향했다. 이번 장가계 여행은 첫째가 계단관광이라고 하듯 5천 여 개의 계단을 밟아야만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장가계의 비취로 알려진 보봉호(寶峰湖)는 호텔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금방 주차장에 닿았다. 해발 430m에 댐을 쌓아 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호수길이 2.5㎞에 평균수심이 72m고 가장 넓은 곳의 폭은 150m로 무릉원의 수경(水景) 중 대표작으로 뽑힌다. 

  버스에서 내려 집표구(集票口)를 빠져나오면서 안으로 들어서는데 눈이 냐려 올라가는 길이 매우 가파라서 인도로 걸어가기가 매우 미끄러웠다. 길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으로 가파르게 솟아오른 산세와 바위가 까마득해 보였다. 

  나는 혼자서 앞서 가고 아내는 수일이와 함께 손을 맞잡고 뒤뚱대며 따라온다. 가이드와 사진기사는 차도로 내려서서 앞장서 걷고 있었다. 멀리 산중턱에서 폭포가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바로 보봉호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인공폭포라고 한다.

  올라가는 중간 중간에 가마꾼이 보인다. 2인 1조로 힘든 사람이나 몸이 불편한 노약자와 환자를 태우는 데는 좋겠으나 흔히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바가지가 극심하여 이용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당부가 있어 들은 척도 않고 곧바로 계단을 향해 올라갔다.

  미끄러운 비탈길을 한참 오르고 내리면서 입구에서 2〜30분 걸었을까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나왔다. 여기가 바로 보봉호수라고 한다. 옛날에는 저수발전용 또는 양어장으로 사용하던 것을 돈 많은 말레이시아 상인이 관광용으로 개발하여 50면 임대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중국정부 당국에서 10년 만에 권한을 몰수하여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호수의 면적이 상당히 넓어 보였다. 산중에 놓여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산정호수를 연상하게 한다. 몇 개 관광 팀이 어울려 자연이 가미된 인공호수에 놓인 배 위로 모두 올라탄다. 

  호수 안에는 작은 섬도 있고, 바깥쪽으로는 기이한 봉우리들이 들어서 있으며, 봉우리는 물을 감싸 안고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 보면 선녀․두꺼비․공작새 등 사람과 짐승모양으로 된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한겨울이라 눈이 쌓여 또 다른 형국을 보여준다.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배가 눈에 띄는데 이곳에서는 토가족 여인이 배 앞에 나와 관광객을 위해 노래로 맞이한다. 잠간 부르고는 금방 배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무 노래가 짧은 것이 날씨가 몹시 추워서일까. 하늘에서 눈발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 또 다른 작은 배가 앞에 보였다. 이번에는 사내의 모습이 보인다. 토가족의 젊은이다. 목청 좋게 노래를 부른다. 이런 모습은 토가족의 남녀 간 사랑을 위한 표현방식이라고는 하나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풍습이리라.

  우리나라 보다 규모만 더 큰 것일 뿐 눈 내린 설경이외에는 특별히 볼 것은 없었다. 그래서 관광객에게 노래자랑을 하도록 확성기를 넘겨준다. 우리 팀에서도 남녀 두 사람이 선택을 받았다. 노래를 잘 한다고 하는 김 알비노와 송 데레사였다. 

  날씨가 춥고 소리도 높지 않아 모두들 거의 일절만 하고 끝내는 것이 별반 재미가 없어 보인다. 역시 관광은 봄이나 가을에 와서 봐야 제대로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 때는 다른 길로 되돌아 나와 내려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4곳 이상 쇼핑센타를 방문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진주를 파는 상가에 갔다. 진주는 바다표가 비싸고 민물양식은 싼 편이다. 굵고 크기가 같을수록 좋은 것으로 친다. 모양이 다르고 울퉁불퉁한 못난이는 값이 싸다. 검은 진주는 더 비쌌다.

  모처럼 만난 기회에 아내를 위해 진주목걸이를 사기로 했다. 아내가 거부할까봐 몹시 겁냈으나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김 스테파노가 거드는 바람에 덩달아 사는 방식이었으나 솔직히 내마음속엔 해주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합동으로 다운시켜 둘이서 25만원에 사기로 했다. 이 가브리엘이 25만원을 빌려주었다. 마스터카드를 쓰려다가 딸과 아내가 세금을 낸다고 반대를 하여 우리 돈으로 계산을 하게 되었다. 아들이 건네준 BC카드를 쓸 수는 있었으나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12시에 금화대주점에서 호텔식으로 식사를 했다. 역시 맛은 조식과 다름이 없었다. 고추장과 김 그리고 김치 등을 준비해가지 않았다면 정말 입맛에 안 맞아 무척 고생했을 것이다. 조반과 다른 것이라면 남녀별로 따로 앉아 식사를 했을 뿐이다.

  12시 40분 식사를 끝내고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황룡동굴(黃龍洞窟)로 향했다. 무릉원 동북방 7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곳은 바다가 지각변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서 중국 10대 용암동 중 하나라 불린다. 

  원래는 4일차에 가려고 했던 것을 몇 년 아니 몇 십 년에 처음 왔다는 폭설사태로 앞당겨 가기로 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동굴 앞까지 10분 간 걸어갔다. 총 면적은 618ha에 동굴을 지탱하는 종유기둥의 길이를 모두 합한 것이 물경 14,000m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곳은 황룡동에서 가장 기이한 풍경을 가진 곳으로 유명한데, 종유석으로서 높이가 27m에 달한다. 또한 이곳 외에 미궁(迷宮), 용궁(龍宮) 등 기이하고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인근 동쪽에는 따로 용왕동굴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석회동굴이 많지만 차이가 엄청날 만큼 규모가 매우 웅장했다. 천장 한복판에서 지금도 떨어지고 있는 물줄기는 너무 공간이 높아 시야 속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돌마다 빚어놓은 갖가지 형태를 강조하기 위해 설치한 조명 빛 따라 감동이 되살아난다.

  그만큼 수많은 모형의 종유석이 천장에서 떼로 매달려 있고, 땅에서는 석순이 솟아나와 갖가지 형태의 만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석순과 종유석이 맞닿아 만들어진 석주도 많다. 산 전체가 동굴이라고 하니 여러 가지 자연적 규모만도 어마어마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왜 동굴 안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회음벽 광장이 그곳에 있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마음껏 목청껏 떠들어댔다. 아내도 내게 주문을 하기에 한껏 외쳐보았다. <여보 사랑해!>라고.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서 한껏 외쳐대며 시간을 보냈다.

  동굴을 나와 3시 반경에는 토가족의 비단상품을 전시한 가게에 들렀다. 누에가 알에서 나와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 고치가 되고 성충으로 나방이가 되어 일생을 마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설명 등 안내와 교육에 이어 전시된 매장에 안내되었다.

  매장을 모두 둘러보고 차도 먹었으나 갈 시간이 되도 가이드가 나오지 않았다. 워낙 값이 비싸고 일상용품이 아니라서 모두들 상품을 사려들지 않아 가이드의 입장이 난관에 처해 있는 것인지 입구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자들끼리 모여 합동으로 스카프를 사기로 결정을 했다. 차만 마시고 그냥 나온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멀뚱거리며 있던 우리 남자들은 그때서야 나온 가이드를 따라 점잖게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쇼핑가게에서 돌아온 우리는 호텔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쉰 다음 7시 반에 로비에 모여 호텔의 다른 통로를 통하여 전신 맛사지실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남녀별로 구분하여 방에 들어가 있으면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맛사지를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17명에 남자가 8명, 여자는 9명이었다. 부부 8쌍에 우리딸 수일이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가벼운 차림으로 안으로 들어가 설비된 침대에 누워있자 잠시 후 여인네들이 물통을 하나씩 들고 들어오는 것이다.

  원래 물이 적당히 뜨거워야 하는데 발을 담갔지만 따스한 기운이 없었다. 내 물통은 두께마저 유난히 얇아 자꾸 물이 따스하지 않다고 잔소리를 해대자 나를 맡은 아가씨가 할 수 없이 나가 두 차례나 물을 퍼다가 부어주었다.

  호텔 안인데도 스팀장치가 시원치 않은지 실내가 몹시 추웠다. 거기다가 발 담근 물마저 미적지근하니 신경질 날만도 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은 안 그런데 유독 나만 떠드는 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물통이 다른 사람들 것과는 차이 나게 물통이 얇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들은 모두 하나씩 맡아 발 담근 물통 앞에 앉았다. 맨 먼저 들어왔던 나는 처음에 안쪽으로 자리를 잡으려다가 다시 문 쪽으로 나와 누웠다. 잘못하다간 미숙한 아가씨에게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들어온 여인들은 아가씨만이 아니었다. 나이 먹은 여자들도 여럿이었다. 문 바로 옆에는 로벨도가 누웠는데 들어온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예뻤다. 그래서 그런지 연실 좋아서 떠드는 게 제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발부터 시작한 마사지는 차츰 하체를 거쳐 상체로 올라오면서 우리들은 조용해졌다. 대신 여자들이 입놀림이 시작되면서 더욱 시끄러워졌다. 다리춤에 앉아 하체를 주무르던 여자들은 침대 허리춤에 올라 앉아 열심히 주무르게 시작했다.

  상체를 끝내자 이번에는 돌아눕도록 주문하고 다시 주물러대는 것이었다. 한 시간 반 전신마사지를 하고 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여행의 모든 피로가 단번에 말끔히 가시는 기분이었다. 제일 영계인 김 스테파노가 내일 또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맡은 여자가 이중에서 가장 우두머리 같다. 이 여자가 하는 대로 따라 다들 동작을 따라 하는 게 보인다. 잘하는 것은 내 옆의 여자가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리 잡기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다. 안쪽보다는 그래도 바깥쪽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다 끝났다는 담당아가씨의 말에 따라 일어나 차례대로 밖으로 나왔다. 여자들은 먼저 끝났는지 그동안에도 우리가 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몇 년 전에 심양 시에서 받은 발 맛사지에 비견해 보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사건이 있었다. 안쪽으로 세로로 모두 길게 침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유독 하나만이 가로로 설치된 침대가 있었는데 그곳에 김 미카엘이 누워 있고, 바로 그 앞에는 김 스테파노의 얼굴이 보였다.

  김 미카엘을 맡은 아가씨의 마사지 기술은 그곳에서 가장 숙련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머리맡으로 나란히 배치한 여자들은 아마 숙련된 아가씨의 하는 동작을 따라 열심히 마사지를 따라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마사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일어났다. 가이드양이 주의를 주었는데 그 생각을 못하고 넘어간 김 미카엘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 배 맛사지를 할 것인가 마사지양의 주문에 걸려들어 그 부위를 혼자 하고만 것이다. 

  전신 맛사지라고 해서 그냥 해도 되는 것인 줄 알았다고 한다지만 바가지 수작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 듣고 따로 5천원 내라고 해서 거부를 했다고 하는데 유독 김 미카엘만 그것을 응락해서 혼자만 따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맛사지 양이 5천원 내라고 하자 우리를 이끄는 가이드 핑계를 대며 빠져나오려는 것을 험상궂은 남자들이 가로 막으려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김 스테파노가 떠밀어 위기를 모면하고 빠져나왔는데, 두고두고 김 스테파노가 두고 두고 김 미카엘이 하던 흉내를 내며 놀려대는 것이었다.

  남들이 못 받은 배 맛사지를 혼자 받은 김 미카엘은 그때부터 화두의 주역이 되어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걸핏하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아마 다음 월례회 모임에서도 회원들 모두에게 전파되어 계속해서 화제거리로 넘겨질 것 같다.

  마사지를 마친 후 8723 이 가브리엘 부부 방에서 모여 맥주파티를 하다가 다시금 주일미사에 대비한 공소예절 의식을 갖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자유 시간을 가졌다.

    ● 1 / 2 (일) 눈

  아침 7시에 기상하여 8시까지 조식을 끝낸 다음 오전 일정에 들어갔다. 오늘은 원래 천자산 방문이었다. 중국 국가최초의 삼림공원인 천자산에 케이블카로 등정하기 위하여 천자산을 방문코자 산 밑 셔틀버스 승차장까지 가이드 인솔 하에 걸어왔다.

  호텔에서 천자산 매표소까지는 10〜15분 정도 걸어갔다. 매표소 전방 100m에는 관광상품 판매소가 있어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매표소로 가는 동안에도 행상들이 몰려와 관광객들에게 모자와 장갑 등을 내밀며 <천원! 천원!>외치며 모자와 장갑 등을 파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날이 추워 서두르는 바람에 모자와 장갑을 두고 온 것이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계속되는 한파와 강설에 손 시러울 정도라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나이키 표시 모자와 함께 장갑까지 샀다. 그리고 같이 간 딸의 장갑도 샀다. 모두 천 원씩이었다. 

  내가 산 나이키 모자가 구전되어 함께 간 일행들에게 선풍이 일면서 우리 일행은 너와 나 할 것 없이 남자 분들은 모두 검은색 나이키 모자를 사서 쓰게 되었다. 제일 마지막에 사게 된 김 미카엘은 2천 원짜리라고 해서 왜 다른 가 했더니 우리 것보다 털이 두꺼웠다. 

  그래서 2천원도 아닌 3천원이라고 외쳐댔는데 우리가 하도<천원! 천원!> 외쳐대니 그 덕에 2천원으로 값을 다운시켜 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에도 계속해서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운 관계로 높은 산인 관광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별도로 짚신이 필요했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위하여 짚신을 사왔다. 그것도 천원이었다. 들고 다니며 파는 귤도 일률적으로 천 원이다. 이번 관광은 두 번째 구호는 그래서 <천원관광>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관광지 안에서는 그것마저 2천원을 홋가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와 나누어준 짚신으로 갈아 신느라 모두들 법석이었다.

  그런데 짚신에 운동화를 맞추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쪽은 다 신었는데 두 번째 것은 좀처럼 들어가지를 않았다. 혼자 쩔쩔매다가 아내가 보고 마지못해 거들었다. 간신히 신었을 때는 이미 모두가 신고 난 뒤라 동작이 느린 나만 늘보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천자산에 입장하려면 천자산 모든 매표소에 3일간 유효하다는 지문인식카드를 발급받아 전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셔틀버스를 타고 관광코스를 일주하는데도 필요하고 천자산 관광지 출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카드는 지문인식을 통해 개찰구를 통과하게 된다. 짚신까지 신고 이제는 버스만 타면 된다. 버스승차장 앞에서 줄기차게 기다리며 천자산의 관광상품을 추출해낸다. 오기 전 살펴본 천자산의 위용과 볼 것들을 머릿속으로 기억해 보고 있었다. 

  앞으로 하룡공원, 천대서해, 어필봉, 선녀헌화 등 천자산 삼림공원 내의 관광을 시작으로 천하제일교, 미혼대, 후화원 등 십리화랑과 금편계곡 등 3일째 관광은 하이라이트다. 오늘 한꺼번에 다 둘러보게 되어 있어서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십리에 펼쳐진 기이한 봉우리와 주변풍경을 보여주는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십리화랑 관광 외에도 심산유곡을 따라 대자연의 신비를 만끽하게 되는 금편계곡의 절묘하고도 웅장한 장면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기상악화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버스운행이 지연되면서 승차질서도 무시되고 혼잡해지는 가운데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었다. 어제부터 계속 이어진 폭설은 버스운행을 어렵게 만들었고, 목적지까지 가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되돌아오는 것마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 많은 눈으로 길도 미끄러울뿐더러 안개와 함께 시야를 가려 주변 산 일대의 관광코스는 눈과 한파에 가려 여건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버스를 타는 일마저도 힘겨웠고 시간만 무작정 흐르면서 모든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였다.

  원래 장가계는 워낙 신비로운 곳이어서 또 하나의 특징이 <와와관광>이라고 가이드가 말했었다. 그렇지만 이 번 경우에는 구경조차 시원찮은데다가 걸핏하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판이어서 우리 스스로가 <워!워!>관광이라며 별칭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모두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결국 오늘 예정된 일정의 관광코스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다. 셔틀버스 승차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어느 새 중식시간이 다 되어 식당으로 돌아서 가는 모습들이 마치 패잔병처럼 보였다. 그래도 식사만큼은 제대로 하자고 해서 호텔근처 한식점에서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라텍스 상가에 들렀다. 이곳에서 파는 라텍스는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작용 때문에 허리통증이 심한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인 상품으로 매트리스나 베개 등에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값이 비싸도 절로 사고 싶어졌다.

  아내가 반대를 했어도 매일 아내가 노래하듯 외쳐대는 허리 아프다는 소리에 민감해 있던 나로서는 당연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트리스를 기본으로 하여 부부용 베개 2개와 죽부인 아닌 귀부인을 끼어주는 조건으로 하여 90만원에 구입하였다. 물론 그만한 현찰을 지니고 있지 않아 KB 마스터카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관광은 다 못해도 일정에 있는 쇼핑 센타와 같은 코스상품은 꼭 사거나 들려야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관광자체는 부실했어도 예견된 상품이나 생활용품이 전시된 상가코스는 이번 여행의 사실상 필연코스여서 오후 4시에는 한의원 진찰코스에 들려 진찰을 받아야 했다. 

  의사처럼 보이는 분과 통역관 두 사람이 앞에 앉아 진찰을 했다. 점심에 삼겹살과 곁들여 먹은 소주로 인해 얼굴은 상당히 붉어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진찰은 사실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통상적인 진찰에 형식적인 사항을 말하는 걸 아내는 공감해하고 있었다.

  술 먹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사항이라 나로선 건성으로 듣고 일어서려는데 그분들은 50만원 이상 되는 한약을 권하며 우황 등을 추천하는 것이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어 무시해버리려고 하는데 아내는 이미 열난 상태라 내심 또 걱정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것보다는 안마해주는 것이 좋게 보여 허리 아픈 아내에게 권해 앉혔다. 머뭇거리던 아내가 상체 안마를 받고나더니 나랑 딸에게도 권해서 한꺼번에 모두 안마를 받았다. 안마는 사람 당 3천원이었다. 가만히 보니 진찰 후에도 침술(6천원)과 한약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6시경에 저녁을 먹고는 숙소로 떠났다. 이번에 배정된 방은 8925호였다. 3인실이 필요한 우리는 일행과 떨어진 안쪽이었다. 침대가 세 개 나란히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자던 곳보다는 호텔상태가 좋았으나 단지 욕실에 샤워기와 물통이 없어 뒷물을 처리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각자 피곤하다고 하여 엊그제처럼 술 파티도 생략하고 각자 자기 방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몹시 피곤이 누적된 상태라 씻고 나서는 모두 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 1 / 3 (월) 흐리고 눈

   오늘은 짐을 싣고 장사로 떠나야 한다. 6시 반에 일어나 곧 2층 식당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먹는 호텔 조식은 먼저 호텔보다는 훨씬 낳아보였다. 계란프라이도 해주었다. 짝퉁으로 유명한 짝퉁천국 중국이라 계란마저도 짝퉁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짐을 모두 싣고 버스에 올랐다. 관광코스가 어긋나는 바람에 버스도 처음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시동이 안 걸려 걸어 다녀야만 했던 어제까지의 모습을 탈피하고 따스한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좋아질 만큼 상태가 아주 좋았다. 

  천문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시내 한복판에 있는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8Km 떨어진 해발 1,518m의 정상까지는 7,455m(편도 3〜40분). 절벽을 기어오르는 세계 최장인 현존관광 케이블카로 공산국인 중국만이 설치가 가능하리라 보인다. 

  케이블카에 타기 전 짚신을 신어야 했다. 어제 천자산에 올라가지 가지 못하게 되자 모두들 쓰레기통에 벗어던진 상태라 갖고 있던 사람은 우리 집을 포함해 두 가족 5명뿐이었다. 그래서 버린 사람들은 다시 한 사람당 2천원을 주고 새로 짚신을 사 신어야 했다. 

  케이블카 안에는 8명까지만 탈 수가 있었다. 우리 팀은 가이드까지 세 팀으로 나누어 올라갔다. 시내 위를 날아가는데 시내 풍경이 정말 한눈에 다 들어온다. 높이 올라갈수록 현기증이 난다. 산으로 다가서면서 밭들이 보이고 중간 중간 작은 집들이 보였다.

  눈 덮인 산야에는 모두가 빈집처럼 사람 움직이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군데군데 빨래가 보이고 차가 잇는 것으로 보아 사람은 살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산에 높이 오를수록 안개가 잔뜩 껴서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중간에 서는 곳이 있었다. 날이 좋았으면 여기 중간 기착점에서 내려 천문동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으리라. 천문산 천문동이야말로 장가계를 중국최고의 명소로 만들어놓은 명소 중의 명소가 아니던가. 셔틀카로 20여분 거리에 하늘로 통하는 가장 큰 길이 나온다.

  99굽이를 돌아가는 형태가 마치 뱀이 지나간 자국 같은 통천대도(通天大道)를 거치면 경사가 70도나 되는 999계단이 놓이고 그 위로 천여 미터 높은 절벽 위에 걸려있는 밝은 거울을 보는 듯하여 그 형상이 마치 천문선경(天門仙境)에 들어서는 것만 같다고 한다. 

  서기 263년경 높이 천여 미터가 되는 승냥산 절벽이 터지면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후 이곳의 풍경이 천문과 같다고 하여 산 전체를 천문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중심부에 위치한 천문동(天門洞)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천연석굴로 천문산의 상징이 되었다.

  멀리서는 조그맣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거대한 하늘구멍 같다. 해발1,300m, 높이131m, 너비57m, 깊이60m에 이르는데,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천상의 궁궐문처럼 신비감을 빚어낸다. 죽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올라가는 하늘문 앞에 천국의 계단이 따로 있을까.

  가파른 경사의 좁은 계단이라 평상시에도 올라서기 힘들 정도인데 많은 강설로 인해 관광은 위험천만이다. 그만큼 못보고 뒤돌아서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아쉽기만 해서 울고만 싶어진다. 아무래도 이번 관광은 겉핥기에 그치고 만 격이 되고 말았다.

  사방 절벽으로 둘러싼 산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기세는 하늘마저 뚫을 듯 웅장하다. 밖에 보이는 주변풍광은 바위형태가 매우 크고 장엄하며 시루떡 모양으로 여러 층 쌓여있는 정상은 절벽경관이 매우 뛰어날 만큼 자연의 조화가 절묘해 보였다. 

  승강장에서 내리면 15분 정도 오솔길을 지나면 기홍관을 시작으로 해서 소천문까지 절벽 위에 길을 붙여 귀신들도 다니기 어렵다는 귀곡잔도(鬼谷棧道)에 올라섰다. 천길 절벽 위 도로공사를 하면서 사망자 가 물경 3백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도 세계 최장의 케이블카로 왕복하며 7,455미터에 이르는 귀곡잔도를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직 절벽에 보도를 만들어 공사 중에 3백여 명이 죽었다고 하는 이 귀곡잔도 그래서 귀신마저도 건너기 어렵다는 곳이었다.

  눈이 쌓인 상태에다가 안개가 자욱하여 밑을 내려다보기 어려워서 아찔한 느낌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라 괜찮았지만 날씨가 매우 좋은 상태였다면 마음이 유약한 사람은 발 딛기가 공포스러울 만큼 문제가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처음 걷는 길이라 아찔한 현기증에 밑을 내려다보는 걸 삼가야 했다. 그런데 아내와 딸 수일이는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기가 겁이 나서 둘이 꼭 붙어 앞으로 전진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 중에서 가장 뒤에 쳐진 상태였다. 

  아마 날이 좋았다면 밑이 까마득하여 꼼짝달싹 못하고 주저앉을 뻔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으리라. 은근히 걱정되어 다른 곳처럼 혼자 앞으로 나가볼 수도 없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끝이 어딘지도 알 수 없는데다가 결빙이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마침내 귀곡잔도가 끝이 나고 구름다리 건너에 이르렀을 땐 천문산사라는 절이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건물은 많았으나 사람들이 살지 않는지 절 안은 조용한 곳이 텅 빈 느낌이다. 관광코스를 위하여 사찰을 조성한 것 같다. 사찰 안에서 기념촬영을 끝내고 곧바로 돌아섰다.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얼음덩어리들. 상고대라 하던가. 그 풍물이 무척 아름다워 모두들 가다가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들이었다. 오히려 귀곡잔도보다 촬영대상이 더욱 많아보였던 것 같다. 돌아서 올 때는 갈 때보다 이골이 난 탓인지 아내와 딸의 걸음걸이가 빨라져 있었다.

  한식점에 들러 식사를 끝낸 후 미리 예약한 참깨를 찾기 위해 상가로 찾아갔다. 짝퉁으로 유명한 중국에서 짝퉁판매점이었다. 그러나 메이커 상품도 함께 있는 면세상가였다. 여기서 미리 주문해 두었던 참깨를 샀다. (5Kg☓3만원☓2개)

  참깨를 사고 나서 곧장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장가계에서 호남성 성도인 장사까지는 3〜4시간 걸린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상가가 없다시피 해서 그냥 나왔다가 1시간 이상 남았다고 해서 중간에 PX표시가 보이자 다시 들렀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남자들은 뒷자리에 모여 마지막 남은 소주를 차 밑에서 꺼내 소주파티를 벌였다. 안주는 밥반찬인 김과 비스켓이 전부였다. 그래도 맛있다며 2병을 거뜬히 해치웠다. 혹여 강설로 인해 귀국하기 힘들다는 우려도 많았으나 이상은 없었다.

  마침내 장사황화(長沙黃花/Changsha) 국제공항에 도착하였을 때는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수속을 밟으며 시간을 기다린다. 0Z322편으로 24시 10분(현지23시 10분)에 출발하여 3시간 후인 4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점심을 많이 먹고 버스에서 술을 먹은 탓으로 기내식이 나왔으나 손을 대지 못했다.

      ● 1 / 4 (화) 맑음

  무협지를 마저 읽으려고 무척 노력했으나 6권 중 4권밖에 다 읽지를 못했다. 비행기 안에서 잠도 안 자고 부지런히 읽었으나 벌써 인천에 도착했다는 안내멘트가 들려왔다. 모두들 일어날 차비를 해서 아쉬운 가운데 따라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헤어질 시간이 왔다. 하지만 공항열차는 5시 20분에야 개통된다고 한다. 같이 갈 차도 마련되지 않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특히 수일이가 수업을 한다고 해서 일찍 자두어야 하기 때문에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승강장에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세 곳으로 구역을 나누어 택시를 타게 되어 있었다. 가좌동까지는 고속도로 통행료 포함해서 5만원이라고 했다. 셋이서 통행료 내고 검암역에서 택시를 탄다면 5만원도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는 판단이 섰다.

  아파트 아들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동안 거북해 있던 속이 금방 쏟아버리자 만사가 편안해진다. 그것도 잠시 아내 땜에 얼른 평화상태가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거실로 나오자 이내 잠자리에 들었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몇 시간 잤을까 아내가 일어나는 바람에 덩달아 눈을 뜨게 되었다. 잠도 제대로 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제 비행기 안에서 일다 만 무협지 천년영웅 5권을 찾아 읽어 내려갔다. 화장실에서 몰래 읽던 중에 아내가 세면을 서두르는 바람에 얼른 나왔다.

  화장실에서 겨우 5 권째 읽기를 끝내고 마지막 6 번째에 몰입했으나 아내가 자꾸 부래미로 가야한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나머지 읽기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인생 일장춘몽처럼 무협지야말로 일장춘몽이니 안 봐도 뻔한 이야기라 포기도 그만큼 빨랐다.

  10시 반에 김 미카엘 부부를 태우고 부래미로 돌아왔다. 서일농원을 지나 천둔사거리에서 율면방향으로 좌회전하려다가 좌측에 어머니해장국집이 새로 개업한 것을 발견하고 급히 U턴하여 식당 광장으로 진입하였다. 원래 근처 해장국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콩나물해장국이 속을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에 깍뚜기 국물로 벌겋게 간을 맞추니 따로 조미료가 필요 없다. 맛도 좋고 속마저 시원하여 국물까지 거뜬하게 해치웠다. 값은 6천원이었다. 거북했던 속이 펑 뚫리며 머리마저도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2시경에야 집에 당도했다. 물건을 대강 내려놓고 집안을 대강 정리했다. 보일러와 매트에 전기스위치를 꽂아 냉기를 쫓아냈으나 온기가 다시 찾아들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 TV를 보며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다가 이부자리를 깔고 금방 잠자리에 들었다.

       ● 1 / 5 (수) 맑음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너무 피곤하여 금방 잠이 왔다. 생리현상으로 일어날 무렵에는 벌써 날이 바뀐 상태다. 용변을 보고 돌아와 다시 잠자리에 누웠다. 잠에서 일단 벗어난 상태인지라 눈은 감아도 다시는 잠에 빠지지 않아 새벽녘이 될 무렵까지 그냥 누워 있었다.

  여행 때는 늘 아내와 실질적인 잠자리를 했었으나 이번에는 여행 일정이 순조롭지 않아 귀국한 첫날이 되어서야 신호가 왔다. 한동안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도 본능은 여전한 것인가. 어쩐 일인지 다시 봄이 찾아든 느낌이 왔다. 웬일이당가!

  일어난 후에는 활력이 나서 그동안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써 가느라땀 꽤나 흘렸다. 여행에서 갖고 온 자료를 모아놓고 부지런히 정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저녁 무렵 아내와 함께 산양 2리 반상회와 석교촌 병문안기도를 다녀오느라 저녁 7시가 되어서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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