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무찌마 새끼야 (장정길/북악37. 2008년 12월호)

[운영자]

무찌마 새끼야

 장 정 길

웬만한 부탁이라면 가능한 한 들어주어야 하는데 유경희 동창회 회장과 임원들이 몇 차례 원고를 부탁해 왔으나 번번이 거절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문학적인 소질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군에서 훈시문 이외에 글을 써 본 적이 별로 없다.  또 써야 한다면 반평생을 해군으로 살았으니 바다를 주제로 해야 할 텐데 지나온 생활이 아름다운 것도 있었지만 험난했던 일이 적지 않아 그 기억을 보다 더 많이 되살려야 하기 때문에 망설인 것이

다.

바다, 바다는 정말 깊고 넓고 푸르며 무한한 자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바다는 인류 문명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여전히 우리 삶의 터전이다.  일찍이 영국의 Sir Walter Raleigh (1552-1618) 는 “해양을 지배하는 자 상업을 지배하고 상업을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고 역설했다. 역사를 되돌아볼 때 바다를 지배한 나라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해 왔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단은 포르투갈의 땅 끝 마을인 Cabo da Roca(바위 곶) 언덕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인도하고도 맞바꾸지 않겠다는 유명한 극작가 까모이스(Camoes) 의 글귀가 바다를 향한 돌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여기서 땅은 끝났다, 이제 바다가 열려있다” 라고 ……

일찍이 대양을 향해 뻗어나간 많은 유럽 국가들이 크게 번영하였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무적함대를 거느렸던 스페인은 중남미 대륙을 식민지화 하였다.  네덜란드도 해상 강국이었으며, 특히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을 건설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오늘날은 미국이 바다를 제패하고 있으며 초강국으로서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造船) 분야 세계 1위이며, 10대 수산대국이다.  그리고 수출입 물동량의 99.7%가 바다를 통해서 수송되므로 바다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바다가 너무 경시되어 왔다.  물에 빠져 혹시 죽지나 않을까 해서 강이나 바다에 가면 안 된다는 말을 어려서부터 무수히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뱃놈이라 천대하고 상놈중의 상놈으로 여겨왔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 생떼를 쓰는 오늘의 현실도 어쩌면 우리 조상이 바다를 경시하여 온데 연유되지 않았나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바다가 어떠하냐고 물어보면 무엇이라 대답할까?  환하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뷰티풀(beautiful)!”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바다는 정말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특히 이른 새벽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 기쁨과 희망이 샘솟는다.  정월 초하루 바닷가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 동해, 정동진을 찾는 이유는 무언가 한 해의 소원을 이루어줄 것만 같은 희망이리라.  석굴암의 부처님도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 그렇게 안치된 것이 아니겠는가!  석양의 바다는 황홀하다.  붉게 물든 하늘에 수평선 너머 낙조 되는 태양을 바라보면 아름다움을 넘어 인생의 아련함과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육지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면 그 대답은 한마디로 “원더풀(wonderful)!” 일 것이다.  “내 얼굴이 검다고 깔보지 마라 이래봬도 바다에선 멋진 사나이, 커다란 군함타고 한 달 30일 출렁대는 파도에 청춘을 맡겼다”  라는 군가 가사대로 오랜 출동임무를 마치고 모항으로 귀항할 때 푸른 산 저 너머 육지로부터 구수하면서도 은은하게 풍겨오는 흙냄새는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그것은 흔히 도시나 농촌에서 맡을 수 있는 흙냄새가 아니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만나게 된다는 설레는 마음을 달래고, 그 동안 바다와 싸우며 고된 업무에 시달렸던 지친 몸의 피로를 확 풀어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지의 향내다.  어쩌면 어렸을 적 어머님 품속에서 흔히 맡아보던 푸근한 향기와 같아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는 정말 경이적인 것이다.

육·해·공군 세 명이 누가 더 고생하는 지 논쟁이 붙었다.  육군이 먼저 말한다 “너 인제 가면 언제나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하는 인제, 원통 지역에 근무해 봤어?”  “더블 백 하나 짊어지고 일선 최전방에 배치될 때 그때 그 마음 어땠는지 알아?”  공군이 대답한다 “너, 지(Gravity Force) 가 뭔지 알아? 파이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수직으로 내리꽂을 때 온몸의 피가 역류하면 어떤지 알아?”  이제 해군이 이야기할 차례다 “인마, 비행기 타는 것은 잠깐이지, 너 배 타봤어?  월남 갈 때에 군함 타고 가지 않았어?  배를 타보지 못했으면 말도 하지마라.”  바다에서 항해를 하고 뱃멀미를 경험해본 사람은 곧 인정하게 된다.  발을 땅에 짚고 산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신의 축복인가를……

이제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바다가 어떠냐고 묻는다.  다시 말하면, 뱃놈에게 바다를 묻는 것이다.  그는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조또, 쓰바, 무찌마 새끼야

장정길 동문은 해군사관학교(21기)를 나와 베네주엘라대사관 국방무관, 구축함 함장, 인사참모부 및 정보작전참모부장, 제2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 교장, 합참차장, 제23대 해군참모총장(대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원광대학교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 역시 무인답게 화끈한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이 건일]

아이고, 장 제독 오랫 만이 외다. 신문 이나 티비 등에서 가끔 소식은 듣고 있었으나 직접 쓴 글을 읽으니 반 갑기 그지 없소. 우리 나라는 역사상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너무 천대 하였지요. 며칠전 아리랑 TV에서 본 뉴스에 미국 시카고 사는 미국인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미쳐서 우리 보다 너무 넓고 깊게 충무공에 대하여 알고 있고 또 책도 쓰고 있다는 걸 보고 참 많이 부끄럽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