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한 상
*수육곰탕
곰탕으로 지명도와 역사에 있어서 최고인 하얀집 곰탕을 먹어본다. 집도 하얗고 맛도 맑은 집이다. 단순하게 주는 밑반친 김치와 깍두기도 잘 어울려 먹기에 좋다. 뭣보다도 나주 관아를 앞두고 있는 전통 있는 노포여서 우리 음식에 대한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어서 좋다.
1. 식당얼개
상호 : 하얀집
주소 : 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6-1
전화 : 061) 333-4282
대표음식 : 곰탕, 수육
2. 먹은음식 : 수육곰탕 12,000원, 곰탕 9,000원
먹은 날 : 2020.10.21.저녁
3. 맛보기
국물맛이 맑고 깊어 개운하다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기 양도 많아 먹고 나면 포만감이 든다. 서울로 진출한 나주곰탕은 왠지 부족하다. 좁은 자리에 작은 찬 그릇에 몇 점 안 올라온 고기에, 더 달라기도 미안한 앙증맞은 상차림에 우아하게 몇 숟갈 뜨고 술을 내려놓고 나면 저녁 때도 안 되어 배가 고프다.
기본적으로 같은 상차림이지만 푸지고 맛깔스럽고 탐스러운 느낌이 시골의 인심과 넉넉한 손맛을 보여주는 것이 다르다. 귤도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더니 회수 건너기 전의 귤을 만난 느낌이다.
수육곰탕이다. 탕속에는 머릿고기를 주로 써 부드럽고 질기지 않으며 식감이 좋다. 수육은 콜라겐 부위를 내놓아 초고추장에 먹게 되어 있다. 초고추장에서 나는 단맛 기운이 좀 섭섭하지만 고기 잘은 매우 좋다.
보통곰탕이다. 말하자면 정통 곰탕인 셈이다. 수육곰탕도 국물은 마찬가지다. 고기는 수육곰탕 쪽보다 조금 질긴 편이나 김치나 깍두기와 함께 하면 역시 좋은 맛이다. 전체적으로 잡내가 없어 국물도 고기도 맛이 아주 깔끔하다.
김치와 깍두기가 탐스럽다. 김치는 신김치, 김장김치다. 곰탕에 먹기 적당하다. 깊은 맛까지는 내지 못하자만 섭섭하지는 않다. 깍두기는 덥석덥석 큰 조각이 보기도 먹기에도 좋다. 시지 않아 신김치와 상보적이다.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갖다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서울과 참 다르다.
아무리 밥을 토렴해서 말았다고 해도 국 속에 만 밥이라선지 먹는 동안 국물을 밥알이 잡아먹는다. 국물이 말라 더 요청하니 새로 1인분이나 되도록 가져다 준다. 국물 맛이 똑같다. 전라도 인심이다. 전라도 음식맛은 태반은 인심에서 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푸진 인심으로 손님을 최대한 흡족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인심을 누리고 어떻게 다시 오지 않겠는가.
4. 먹은 후
하얀집은 음식맛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역사맛이다. 주막이 지속되다 개화기 들어서야 근대식 식당이 생겨나 우리 식당의 역사는매우 짧은 편이다. 프랑스의 레스토랑 역사에 비하면 1,2백년이 늦다. 늦은 역사만큼 경영 노하우도 뒤떨어지련만, 인심에 기반하는 역사적 축적은 손님 응대에 부족함이 없다.
110년이 넘었다는 하얀집 역사, 한국에 이만한 식당 역사는 거의 없다. 이제 역사를 더듬으며 내가 오늘 먹은곰탕 한그릇의 이면에 담긴 문화의 힘을 살펴본다.
1910년 창업하여 약간의 부침을 겪은 후 곰탕으로 한우물을 파서 오늘에 이르렀다. 기수역으로 올라오는 복어가 있었던 시절에는 복탕까지도 메뉴에 넣었으나, 차츰 곰탕으로 전문화해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곰탕의 명문가가 되었다.
하얀집의 역사는 그대로 나주곰탕집의 역사다. 나주곰탕은 관아 앞에 곰탕 거리를 만들고, 나주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이름을 알리고 나주곰탕의 팬을 만들어 내면서 지역성을 넘어 전국구로 자리잡았다.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국음식의 중요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10년부터 4대를 이어 곰탕집을 하면서 나주곰탕은 이제 한식의 한 품목이 되어 식당음식을 넘어 수퍼에서 냉동식품으로 팔려나가고, 대기업의 주요 판매 식품이 되었다.
관아 앞에 선 오일장에서 소를 잡으면 국밥을 만들어 판 것이 나주곰탕의 시초다. 시장 장꾼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시초는 주막과 다름없는 형태로 시작하였고, 손님이나 식당이나 주막의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장 손님에 시장 상인들이 주요 손님이던 형태에서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전국구 음식으로 성장했다. 전형적으로 민중이 키워온 식당이자 음식인 것이다.
*전통생활문화는 한식만 남아
의식주의 전통생활문화 영역에서는 식만 남고 의와 주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국민의 50% 이상이 아파트에 산 지 오래 되었고, 한옥은 예외적이고 특수한 건축물로 남아 버렸다.
한복 또한 양복에 밀려난 지 오래고, 결혼식에서나 입는 특수복이 되어 버렸다. 한복을 살려내려 생활한복으로 전환하려고 개량한복으로 변화를 추구했으나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요즘은 고궁이나 박물관에서 명절이면 한목입기를 유도하고 있으나, 일종의 퍼포먼스로서의 기능을 하는 특수복으로 한정되는 건 여전하다.
전통을 이어오는 것은 식문화가 유일하다. 전통 계승을 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 계승으로 점차적으로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는 식재료와 요리법, 거기다 수용 영역도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 공간을 넓히면서 의주문화의 몰락을 설욕할 기세이기도 하다. 내가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나름 한국 문화를 지키는 방식인 것이다.
*문화는 대중에 맡겨야, 관의 힘이나 외래의 힘을 가하지 말아야
식문화는 외부적인 입김이 가장 덜한 영역이기도 하다. 단발령이나 교복, 정장 등의 외래 입김을 타지 않았고, 새마을운동이니 주거개량이니 하는 관의 입김도 타지 않았다.
그냥 대중에게 맡기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대끼며 배려하며 잘 나가는 것이 문화고, 한국인이다. 한류도 관이 개입하면 오히려 망조가 든다. 그냥 냅둬야 한다. 민중의 역량과 신명을 믿고 제한하지 않도록 하기만 하면 된다. 관에서는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혹 이것을 제한하는 악역을 맡고 있지 않은지 살필 일이다.
소위 서양음악은 작곡은 하지 않고 정해진 대로 오선지의 악보만 연주하는 피동적인 역할을 주로 한다. 국악도 따라서 하면서 창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청중을 수동적 존재로 만든다. 판소리 완창회를 춘향가, 심청가를 두 번 정도 봤는데, 화장실도 못가고 조용히 앉아 있어야만 해 죽을 뻔했다. 요즘 이날치 음악이 신선한데, 자율적인 변화를 만들어내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음식은 관이나 외부적 요인이 간섭할 요인이 적었다. 술은 일제가 허가제로 하면서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되어 술의 역사가 왜곡되었다. 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한 것은 집 구석구석까지 간섭하려는 일제의 의도를 정책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도 한다. 밀주 검사한다면서 불쑥불쑥 안방까지 쳐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런 일제도 음식 관여는 하지 못하였다.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놋그릇을 공출해가고 쌀은 실어내갔어도 밥상에 관여하지는 못했다. 할머니가 끓여내는 국솥을 간섭하지 못했고, 맛있는 국밥 소반을 엎지는 못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나마 오롯이 지켜온 밥상문화가 풍요로운 시절을 만나 바야흐로 꽃을 피우고 있다. 뉴욕에서 떡볶이를 먹고 캐나다 벤쿠버의 중국집에서도 떡볶이를 판다. 파리에서도 한국음식이 인기다. 구미로 이주해간 지 아무리 오래 된 교포도 한국에 올 때는 한국음식 실컷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이면 목표로 삼는다. 한식은 한류의 또 다른 기둥이 되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다.
가만히 두면 이렇게 알아서 잘한다. 신명이 상층에 의해 통제된 나라는 유럽처럼 관객이 피동적인 존재가 되어 박수치기나 할 뿐이다. 어얼쑤, 추임새로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다.
음식의 추임새는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 먹어줘서 음식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다. 추침새는 추어주다에서 온 말이다. 식당 음식을 추어주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서 잘 먹어주는 것이다.
그것을 전라도 사람들이 보다 더 잘하는 편이다. 나주곰탕은 그런 대표적인 음식이고 나주 사람들은 그런 음식을 키워내는 수준높은 관중의 역할을 아주 잘한다. 나주곰탕은 그렇게 커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한류 한식의 주역이 되어갈 것이다.
외길만 한 전문가가 받은 상패다.
*하얀집 외관
*하얀집 건너편에 있는 금성관 야경. 아래는 나주목 객사 금성관의 외문 망화루 2층 문루. 밤에도 불을 밝혀놓아 들어가볼 수 있다.
* 금성관 옆 정수루. 나주목 관아문이다.
*하얀집 등을 포함한 그 일대가 곰탕집 거리이다. 남원의 추어탕거리만큼의 규모이다. 두 곳은 단품음식으로 이루고 있는 음식거리 중 가장 큰 곳이 아닐까 한다.
하얀집 외에 노안집, 남평할매집 등의 곰탕도 찾는 사람이 많다. 기호에 따라 단골이 다르다. 비교해 먹어보는 맛도 쏠쏠하다.
일대가 낮에는 인력거가 다닌다. 나주목의 전통 아취를 한껏 뽐내는 지역이다. 이런 곳이 남아 있어 안도가 되고 풍성한 전통의 기운이 오늘 우리의 삶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군청을 밀어내고 전통 관아를 복원해도 죽은 문화다.
이에 비해 나주곰탕은 살아 있는 문화고 앞으로 더 발달해갈 미래지향적 문화다. 고적은 과거로 사람을 이끌지만 음식은 현재를 위무하고 미래를 위한 힘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나주는 전통의 힘과 현재의 힘을 다 갖춘 복 받은 동네다.
#나주곰탕 #나주맛집 #나주하얀집 #수육곰탕 #금성관맛집
첫댓글 설렁탕, 도가니탕, 갈비탕, 소머리국밥, 사골국, 우족탕, 곰탕. 꼬리곰탕. 소 부위에 따라 음식 이름도 다르고 맛도 차이가 납니다. 이 중 꼬리곰탕은 아직 먹어보질 못했습니다.
지지난 주 군산에 놀러 갔다가, 저는 희뿌연 국물이 가득한 우족탕을, 아내는 국물이 맑은 갈비탕을 시켜 먹었습니다. 우족탕은 12,000원이고 갈비탕은 9,000원인데, 아내가 주문한 것이라 남녀차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올 추석 땐 엘에이갈비를 사다가 집에서 갈비찜을 해서 먹었습니다. 우족탕과 갈비찜은 부위가 다르고 조리법이 다른데도 둘 다 기름기가 많아 속을 니글거리게 하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육식보다는 채식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 되는 체질이라 그런지도 모릅니다.
맑은 기름이 뜬 곰탕을 보니 식욕이 솟아납니다. 나주에 들리게 되면 꼭 찾아갈 생각입니다.
네, 부위에 따라 탕맛이 다르지요. 어떤 것은 면밀하게 맛의 차이를 집어내기 어렵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부위별로 탕을 끓여 그 차이를 즐기는 나라도 많지 않은 거 같습니다. 게다가 특정 지역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요리한 것이 표준이 되어 전국에 보급되는 지역성과 전문성은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옷과 집에서 사라진 전통이 음식에서만은 확실한 민중의 힘을 기반으로 단순 전승을 넘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갖게 되니 음식의 발달이 가히 폭발적인 거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사람들의 노력과 생명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감사하며 먹습니다. 드셔보세요. 다른 지역으로 진출한 나주곰탕과의 차이를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