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덕유산 ③향적봉(香積峰)1 –
동산을 돌고 돌아 그 앞에 또 앞동산
쌓여온 그리움에 꾹 참고 올라보니
고지(高地)가 천육백인데 거기에도 뒷동산
배달9202/개천5903/단기4338/서기2005/8/17 이름 없는 풀뿌리 나강하
덧붙임)
(1)
백련사 뒤편의 계단(戒壇)을 돌아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가자니 마치 시골 앞동산을 오르는 느낌처럼 편안하다.
그야말로 유덕(有德)하고 풍만한 산이란 생각이 든다.
별다른 암벽이나 급경사가 없고 완만하여 지루할 것 같은데,
연이어 나타나는 절경(絶景)은 지루함을 잊어버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해발 1,200m를 넘자 고산지대 특유의 서늘한 기운과 함께
난쟁이 수목들과 주목(朱木)군락이 나타난다.
그래서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보여 거기가 정상인가 했는데
뒷동산 같은 산마루가 연이어 나타났다.
“그래! 그래도 덕유산이 남한 5대 명산이라는데
그렇게 쉽게 정수리를 보여줄 리는 없겠지!“ 이런 생각으로 오르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는데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여서 물어보니 무주리조트에서 케이블카로 올랐단다.
백련사로 내려간다며 삼공 매표소부터 걸어 왔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한다.
길옆에는 동자꽃, 물봉선등 야생화가 즐비하다.
어느덧 정상인가 했는데 나무계단이 또 나타난다.
잘 놓인 나무계단을 오르니 그제야 1,614m의 정상에 너럭바위가 보였다.
잠시 너럭바위에 앉아 주위를 조망하니
북측에는 스키장 곤돌라 터미널 너머로 적상산이 보일 듯 말듯 하다.
덕유는 무지한 인간에 의하여 산 한쪽이 뭉개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이 정산의 평전(平田)만큼은 대자연의 신비를 오늘도 잃지 않고 있다.
산 밑에서는 구름이 밀려 올라오고 향적봉은 이를 없애느라 부지런히 팔을 휘젓는다.
산은 늘 그대로인데 산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는 늘 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뒤돌아서 이번에는 남측을 바라보니
산의 넓기가 한량없는데 덕유산장 너머 중봉까지
느릿한 산세를 따라 난쟁이 초목들이 기어가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는데
몇 년 전에 가 보았던 스위스의 알프스 산자락에 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그 너머에 있다는 남덕유는 커녕 무룡산도 보이지 않는다.
금새 흰구름이 우르르 몰려와 발아래 산장마저 감춘다.
향적봉에 쉽게 올라 남덕유마저 탐하려는 이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것일까.
아니었다. 이내 구름이 벗겨지면서 햇빛을 허용하곤 한다.
동엽령과 무룡이 다시 한 번 춤판을 벌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삿갓봉이, 남덕유가 서서히 무릎을 펴고 일어나
팔을 훠이훠이 휘젓기 시작했다.
덕유, 역시 넉넉하고, 기운이, 흥이 넘치는 산이었다.
(2)
그렇게 정상에서 30여분 머물다 정상아래 덕유산장으로 내려왔다.
덕유산을 종주하는 이들의 쉼터이다.
올 가을 다시 올 나의 안식처라고 생각하여 안을 둘러보니
식당, 매점, 간이침대등 평범한 구조이다.
산장 옆에 옹달샘이 있었다. 이른바 산상옥수(山上玉水)이다.
태조 이성계가 수도할 때 이 옥수를 떠다가 공을 들였다고 해서
태조가 왕으로 등극한 후 사람들이 이 옥수를 왕생수(王生水)라 불렀다고 전한다.
덕유산 상봉이 향적봉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향적목(香積木)
곧 주목(朱木)이 숲을 이루었던 데서 유래했다.
왕생수가 솟아난 곳에 향적암(香積庵)이라는 절도 있었다고 한다.
옛날 마패로 사용했던 나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주목은
현재 천연기념물로 덕유산 내 99ha에 300년생 7,488본이 보호되고 있다고 한다.
(3)
덕유산(1975.2월 국립공원지정)은 백두대간이 소백산으로 분기하면서
영남과 중원을 갈라놓기 시작한 뒤 속리산을 지나고 추풍령을 거쳐
민주지산 일대의 고산을 빚어놓고 지리산에 합류하기 전
1,600미터에 이를 정도로 지리산에서 뽐낼 산등걸을 미리 어깨춤추어 보는 듯한 산이다.
백두대간은 덕유산을 지나면 다시 1200미터대로 낮아졌다가
운봉면 일대에서 야산의 높이에 다름없는 낮은 봉우리들로 이어지며 간신히 지리산에 바톤을 넘긴다.
남한 쪽 백두대간에서 설악산을 빼고 덕유산만큼 높은 산은 없다.
그래서 덕유산에 올라가면 가장 장대한 경관을 이루며 다가오는 산이 지리산이 된다.
덕유산은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에 이르기까지 16km나 되는 긴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소백산 주릉에 비해 더 길고 높이는 더 높다.
국립공원 덕유산 산행의 특징은 소백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높은 능선의 종주를 위주로 한 산행의 묘미에 있다.
처음 계곡산행을 할 때에도 덕유산의 진면목은 충분히 드러난다.
무주구천동 계곡은 폭류와 소가 잇달아 나오고
거창 쪽 월성계곡도 이에 못지않은 아름다운 계곡미를 보이고 있다.
그래도 덕유산에 오면 산행의 대부분을 대부분의 능선위에서 하게 된다.
그만큼 덕유산능선은 매력 있는 산행을 보장한다.
지리능선에서는 아래쪽 계곡을 내려다보기도 힘이 든다.
그 만큼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설악산에서도 대청봉에서 천불동을 내려다보는 것보다
화채릉이나 공룡능선에서 천불동을 바라볼 때 더 아름다운 것은 거리 때문이다.
덕유산에서는 이 거리가 적당한 고도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능선을 넘고 봉우리를 지날 때 느끼는 감회가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이다.
덕유산은 장수군 계북면에서 적상면과 무주읍에 도착할 때까지
19번 도로와 나란히 오른쪽으로 길게 뻗어가는 산이다.
산의 남쪽엔 1507미터의 남덕유산과 그 보다 조금 더 높다는 장수덕유산(1510)이 솟아있고
북쪽에는 백두대간에서 조금 비켜서서 향적봉과 중봉(1594)이 솟았다.
중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은 고도가 갑자기 낮아지면서
백암봉으로 이어지고 이 백암봉에서 백두대간 길로 들어서게 된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무룡산(1492)고 삿갓봉(1410)등 덕유산맥 중간의 거봉들이 나타난다.
향적봉 중봉일대에서는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기름진 산간평야로 주목한
무주군 안성면일대와 장수군 계북면, 장계면일대의 평야지대와
거창군 위천면의 평야지대가 눈에 들어오지만
무룡산과 삿갓봉으로 오면 남덕유산에서 동남으로 뻗은 월봉, 금원, 기백산이 조망되면서
전망은 더욱 호방해지고 능선의 경관은 더욱 수려해진다.
덕유산은 반도 남부의 한복판을 남북으로 꿰고 있어서
자연장벽이 되어 역사적으로 신라와 백제가 각축하던 국경선이었고
영호남을 가르는 장벽 가운데서도 가장 험한 경계선 중의 하나였다.
주위의 행정구역을 보면 이곳의 첩첩산중 위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영남 쪽은 경상도의 삼수갑산이라는 거창군이고
호남 쪽은 첩첩산골의 대명사인 무주구천동의 고장 무주군이다.
동국여지승람의 장수현편에 나오는 덕유산에 대한 언급은
부근의 영취산, 성수산, 백화산에 대한 짤막한 언급과
똑같은 길이로 현의 북쪽 50리에 있다는 한 구절뿐이다.
조선조 때에는 덕유산처럼 궁벽한 시골변방에 위치한 산일수록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치악산이나 금강산에 대한 시가가 장문으로 소개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덕유산은 지리, 설악에 이어
등산인들의 사랑을 받는 내륙지역의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우뚝 서 있다.
우선 산의 북쪽 계곡인 무주구천동은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계곡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고
장수 쪽의 칠연계곡, 토옥동계곡, 무주구천동에 못지않은
거창 쪽의 월성계곡도 덕유산의 아름다운 계곡으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들어 덕유산에는 문제가 생겼다.
무주 리조트의 스키장이 덕유산 주봉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등산인구에다 관광인구까지 가세하여 훼손과 오염은 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천년이 흘러도 한결같은 모습이어야 할 경관이 변형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육십령(734m)-할미봉()-서봉(1500m, 6.8km=3.5h)-남덕유산(1507.4m, +1.2=8.0km=4.0h)-
월성재(+1.4=9.4km=4.5h)-삿갓재(+2.9=12.3km=5.5h)-무룡산(1492m, +2.1=14.4km=6.5h)-
동엽령(+4.1=18.5km=8.5h)-송계삼거리(+2.2=20.7km=9.0h)-중봉(+1.0=21.7km=9.5h)-
향적봉(1,614m, +1.1=22.8km=10.0h)-설천봉(+0.6=23.4km=10.5h)
(4)
덕유산은 어떻게 해서 유려하고도 장대한 산세를 이루게 된 것일까?
덕유산의 고산부를 이루는 지질이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인 편마암이기 때문이다.
덕유산의 편마암은 지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편마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원생대 중기 약 20억~18억 년 전의 것들이다.
이 편마암은 화강암과 달리
수평적으로 단단한 암석의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절리의 발달이 저조하다.
따라서 암석의 침식과 풍화를 이끄는 주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수분 침투가 어렵기 때문에 특이하고도 다양한 암석 지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에 반해 무주 구천동계곡은 다양하면서도 특이한 암석 지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 구천동계곡의 지질이 덕유산 능선부를 이루는 지질인
편마암과는 판이한 암질로 이루어져 있어서다.
제2경 은구암에서 제12경 수심대에 이르는 와룡담, 일사대, 학소대 등의 지질은
석영 안산암으로서 침식과 풍화에 강하여 주로 절벽 형태의 노출된 암상을 이룬다.
한편, 구천동 제13경 세심대에서 제30경 연화폭에 이르는 지역은
주로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 일대는 불규칙적인 절리의 발달로 인하여
담(潭)이나 소(沼) 등 다양한 하상 경관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독특한 석영 암맥이 곳에 따라 습곡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고도 기괴한 하상 경관이 탄생했다.
수경대, 월하탄, 사자담, 호탄암, 구천폭포 등이 이에 속한다.
배달9202/개천5903/단기4338/서기2005/08/1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