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사해 사본
도입
사해사본(쿰란문서)은 현대 고고학적 발견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할만큼 성경의 신뢰성에 크게 기여한 고문서이다.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1세기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완전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약 성서 사본이다.
전개
1. 사해 사본은 어떻게 발견되었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1946년 11월 한 목동이 사해 인근에서 양을 치다가 잃어버린 염소를 찾기 위해 배회하던 중 혹시 동굴(쿰란 동굴) 안에 있을까 해서 돌멩이를 던졌는데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보니 거기에 오래된 항아리가 있었고,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면에 싸여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 두루마리들은 골동품상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처음 발견된 세 개의 두루마리 외에도 그 동굴 안에서 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고, 제2동굴, 제3동굴~제11동굴에서 100여개 이상의 수많은 문서나 문서 파편,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2. 기록 연대가 구약성경 기록 연대보다 오래되지 않은 사해 사본이 왜 그리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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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구약 성경 사본 중에 두 번째로 오래된 완전한 구약 성경 사본은 1008년에 쓰여진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그것에 비하면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1000년 이상 오래된 사해 사본은 얼마나 오래된 고문서인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 성경이 기원전 5세기에 그 기록이 마쳐진 것을 생각한다면 기원전 1세기 경으로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사해 사본은 아쉬움을 던져 줄 수 있다.
그런데 옛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성호와 그 성호가 기록된 성경 자체에 지극한 경외심을 가졌으므로 성경 사본이 낡아져 못쓰게 되면 회당에 부속된 게니자(genizah)라고 부르는 작은 방이나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가 회당의 저명인사가 죽으면 이를 관 속에 넣어 함께 매장하여 버렸기 때문에 사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구약 중간 시대를 비롯하여 구약 성경의 정경이 최종적으로 형성된 기원후 2세기 동안 유다는 반란과 핍박 그리고 잇단 전쟁으로 고대의 문헌은 거의 분실 또는 소실 되었기 때문에, 실로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
3. 구약 성경의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 성경의 내용이 틀림없이 차이가 있으며 그 내용이 거의 와전되었거나 함부로 수정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성서 비평학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무색하게 되었나? (막 13:31; 눅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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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 가장 오래된 사본은 서기 1008년에 쓰여진 레닌그라드 사본이었다. 이보다 더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 사본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음에 대해 성경 사본 연구의 대가 프레데릭 케논 경(Sir Frederic Kenyo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실로 마소라 본문(Massoretic Text)이라고 아는 그 본문 형성 이전 시기로 더 거슬러 올라가는 히브리어 본문의 사본을 발견하리라는 가능성은 도무지 없었다” (S.H. Horn, 한국어 번역판, 성서 고고학 입문, 130).
그러나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말씀하시고,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신(눅 18:27) 그 하나님께서 마침내 고고학을 통하여 20세기 최대의 기적을 베푸셨다.
https://youtu.be/gbgwOR4C5ZQ?si=wE2ClglQP3qWHeec
생각 나누기
1951년 드보(De Vaux)와 하딩(Harding)이끄는 고고학자들은 쿰란 동굴에서 좀 떨어진 사해 사본의 주인공들이 살던 근거지를 발견하였고, 거기서 찾아낸 도기, 동전, 건축물과 기타 문서들을 통해 그들이 유대인의 한 종파로서 금욕적인 수도생활을 하던 에세네(Essenes)파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매우 경건하고 신실한 금욕주의자들로서 독신 생활을 하면서 노동도 하고 기도와 명상에 전념하며 성경을 소중히 여겨 이를 베끼고 고대의 문서들을 필사하여 쿰란 도서관에 비치하여 두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서기 68년 유대인 반란으로 이를 응징하러 온 로마 군인들에게 이 귀중한 사본을 짓밟히지 않토록 하기 위해 암벽 기슭 동굴 속에 성경을 넣어두고 피난을 갔던 것이다. 이 진귀하고도 값비싼 진리의 보화는 무려 1900년을 동굴 속에 감춰져 있다가 하나님의 권위와 그 말씀의 진실이 불신과 무신론의 거센 도전 앞에 한창 위협을 받을 때, 과학과 이성주의가 성경의 권위와 맞서려 한 20세기 중엽, 1947년 봄 그 진리의 무기고를 열어 응수한 것이다.
과연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사 40:8) 하신 말씀은 참으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