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는 정말 동이족이었나
가끔 인터넷 여기저기서 석가모니는 인도인이 아니라 몽골리언이다, 동이인이다, 우리 환족이다 하는 주장을 접합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이 제대로 없다보니, 마치 UFO 외계인 이야기처럼 들리기 십상이죠.
어느 분이 붓다의 ‘몽골리언 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시니, 이 기회에 한번 정리해 볼까 합니다. 우선 석가모니가 우리 동이족이라는 주장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는데, 몇 차례 논리적 단계를 거쳐야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고다마 붓다는 몽골리언이었나
이러한 주장이 나온 것은, 영국의 인도학자들이 추정하길 석가모니가 인도-아리안이 주축인 인도에서가 아니라, 네팔의 산악지대에서 태어나 인도로 들어왔다는 주장에 기인합니다.
그러한 주장의 시초는 영국의 저명한 인도학자 빈센트 스미스(Vincent A. Smith)로 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영국인 빈센트 스미스는 1871년부터 1900년까지 약 10여 년 간 영국 정부의 인도 시민위원회 엘리트 멤버로 일하면서 인도 주변국들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1919년부터 많은 귀중한 저서들을 출판합니다. 그의 저서들은 현재도 인도 연구에 있어서 학자들이 참고하는 텍스트들입니다.
그러던 중 빈센트는 1921년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교양물 시리즈로 펴낸 책인 <The Oxford History of India>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산악인(여기서는 네팔) 몽골리언의 요소는 인도 북부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으며, 그 시기는 기독교 전파(네스토리우스) 또는 그 이전 시점으로부터 수세기 간 지속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불교의 창시자이자 사카야의 성자 고다마 붓다는 태생적으로 몽골리언이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데, 다시 말해 티벳과 친족 간인 몽골 타입의 구르카 산악인일 가능성이다. 이러한 견해는 내가 몽골리언이라고 한 표현을 스키타이와 투라니안(註; 투르크계 몽골인)이라고 표현한 빌과 퍼거슨에 의해 역시 오래 전에 발표되었었다.”
(The Mongolian or hill-man element formed a large percentage in the population of northern India during the centuries immediately preceding and following the Christian era. I think it highly probable that Gautama Buddha, the Sage of the Sakyas, and the founder of historical Buddhism, was Mongolian by birth, that is to say, a hillman like a Gurkha with Mongolian features, and akin to the Tibetans. Similar views were expressed long ago by Beal and Fergusson, who used the terms Scythic and Turanian in the sense in which I use Mongolian.)
-<옥스포드 인도사(The Oxford History of India)>, 1921년-
이러한 빈센트 스미스의 견해 이후로 <인도 현대사(India, a Modern History)>의 저자이자 또 한 명의 저명한 인도 역사학자인 스피어(Percival Spear)가 "붓다가 출생한 네팔은 몽골리언 집단"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빈센트 스미스의 견해가 탄력을 받았던 것이죠. (The Legend of the Gurkhas. / G.L. Rai-Zimmdar에서 인용)
- 고다마 붓다의 사카족의 비밀은?
흔히 고다마 붓다가 샤카족이었고, 이 샤카(Shaka)가 바로 스키타이의 Skyth 였다는 점을 들어 많은 서구학자들이 붓다를 서양인의 얼굴을 한 인도-아리안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샤카가 바로 인도 카스트의 '크샤트리아'로 연결되어서, 석가모니는 결국 아리안의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고 합니다.
The Sakas were peoples of Aryan (Indo-Iranian) Stock lived in what is now Kazakhstan, Uzbekistan, Tajikistan, Afghanistan, Pakistan and parts of Iran, Ukraine, and Altay Mountains and Siberia in Russia, in the centuries before 300 AD. They are considered to be a branch of Scythians by most scholars. Saka is the usual Persian term, while Scythian is a Greek term. Some of their neighbours included the Sarmatians, Issedones and Massagetae.
The Greeks, and many writers and scholars since, have connected them to the Scythians, or Śaka as they were known in India from whom descended the 粟特. However, the Śaka were not known in India before the 2nd century BCE, centuries after the last attested existence of the Śākyas. "Śākya" may nonetheless be possibly cognate with "Scythian" as a result of their shared Indo-Iranian heritage. - wikipedia- (번역 생략)
그러면서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기사의 모습을 통해 바로 이 존재가 인도를 점령한 크샤트리아이고, 바로 고다마는 이 계층 출신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제시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알타이 파지릭에서 발굴된 그림의 원형은 이런 것입니다.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크샤트리아 계급이라 주장하는 또 샤카족이라 주장하는 기사는 몽골리안으로 보이는 신성군주 앞에서 알현하고 있습니다.
이 신성군주는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 앉은 키가 말을 탄 기사와 같습니다. 만일 일어선다면 말을 탄 기사보다 크겠죠.
이 신성군주 옆의 샤먼의 나무로 보아 이 신성군주는 샤만 킹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이 신성군주를 '투라니안'이라고 부르지만, 알라바마 대학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Haines Brown교수는 '극동인(Far East People)'일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참고 http://www.hp.uab.edu/image_archive/uj/ujf.html]
만일 이들이 BC. 2000년 경 인도에 들어온 아리안이고 이들이 스키타이 샤카였다면, 고다마 붓다는 샤카족 왕의 아들이었으므로 당연히 위 그림에서 보이는 기사가 아니라 신성군주와 같은 동양인이었을 것입니다.
- 붓다의 고향, 네팔 동부
고다마 붓다의 몽골리언 설을 지지하는 또 한 사람의 학자는 붓다가 구르카 출신(몽골리언 산악인)임을 여러 모로 입증하는 '라이 짐마달'(Rai-Zimmdar)입니다.
짐마달은 고다마 붓다가 인도 북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네팔 동부 출신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는 <구르카의 전설(The Legend of the Gurkhas)>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대와 중세에 네팔 동부인들이 풍부한 역사성을 갖는 문학작품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대부분 그것들은 신화와 고대의 정령들에 관한 것인데, 왕들과 왕조에 대한 모호한 기록으로 인해 혼란스럽기는 하다.”
(It is true that ancient and medieval Nepal, particularly eastern Nepal, claims to possess considerable literature of historical significance but, most of them treat mythology and early history in the same spirit which leaves only a rather confused list of names of dynasties and kings.“
”동 네팔의 키라티 부족은 현재 라이스, 림부스, 야카스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자신이 브라만 시기 이전 사람들 (註; 아리안 침입 이전)이라고 생각한다.“
(The Kirati tribe of eastern Nepal, who are today generally identified as the Rais, Limbus, Yakkhas and Lepchas consider themselves to be some of the pre-brahminic peoples.)
”이중에서 라이스부족은 '방사왈리'(Bangsawali)라는 기록을 인용해, 자신들이 1만5천 년째 드와파 년에 그곳에 정주했다고 한다. 이 1만5천 년 드와파 연대를 칼리연대와 현재력으로 계산해 보면 8천 년 전이다.“
(Of all these tribes, the Rais used to maintain elaborate dynastic accounts in manuscripts known as “Bangsawali”, and according to these accounts, they settled down in Nepal in the 15000th year of the Dwaper Age. Kali Age, the present age, followed Dwaper in mythological reckoning, some 8000 years ago).
고다마 붓다의 구르카(Gurkha) 출신설을 주장하는 짐마달이 밝힌 대로 동부 네팔에 8천 년 전의 몽골리언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면, 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이 문제는 다음번에 다루기로 합니다.
- 글; 솔본(역사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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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모든 佛像이 석가모니 진짜 모습이 아닌 이유.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실의 모습은 있기는 한데, 부처님의 형상은 본래 그리거나 만들지도 않았었는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열반) 500년 동안 그림으로나 형상으로는 표현을 하지 아니하였다.
그 이유는 생존 시 큰 깨달음(해탈 열반의 경지가 부처자리)의 자리는 말과 글로도 표현 할 수 없어, 부처님도 말없이 세 곳에서 전하셨는데(삼처전심), 어디 감히 부처의 모습이나 형상을 만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부처님 열반에 드신 후 500년 넘도록 부처님의 형상은 표현이 안 되어 오다가 인도의 서북부 지역까지 점령해 들어온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세력 하 통치시대에 만들어지게 되는데, 간다라 지역에서 나오는 불상들의 모습은 거의 모두가 완전 그리스 사람들의 얼굴형이다.
지금도 파미르고원 실크로드 부근 알렉산더 왕이 동진했던 지역에는 그의 병사들이 현지인들과 결혼 후 내려오는 집단촌이 있는데, 그 지역의 후손들은 서양인의 모습이다.
왜 그렇게 되는가 하니, 당시 불상을 만드는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기에 정치적으로 가장 강자인 그리스의 티벳 지역 점령군 통치자 총독이 우연한 기회에 부처님의 경전을 접하고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그런 그리스의 총독이 이렇게 훌륭한 성인의 모습이 왜 없느냐는 의아심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불상이 최초로 만들어지게 된다.
당시 승려나 불자들의 눈에 처음에는 못마땅했으나 막상 조성해 놓고 보니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고, 대업을 이루신 부처님을 기리는 상징도 되고 차츰 경외하는 존숭의 예배 대상으로 사찰 법당에 모셔지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티벳 쪽으로 동진하여 중국을 지나 우리 한반도에 그리고 현해탄 넘어 일본까지 인도의 남동진 한 불상은 세일론(현재의 스리랑카) 라오스 캄보디아 버마 태국 월남으로 지나오게 될 때의 특징은 그 지역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실존 당시의 실제 모습은 두 가지가 있다. 대영 박물관에 있는 석존 상호는 눈썹이 짙고 쌍꺼풀이 선명하고 아주 미남형의 인도인의 전형적인 미남형의 상호이라 실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호로 보기 힘들고, 가장 현실적이고 상호도 당시 부처의 나라인 <샤카족>이 살던 <가비라국> 사람들은 인도의 전통적인 높은 코와 짙은 검은 눈썹과 두꺼운 쌍꺼풀보다는 현재의 네팔사람들 상호와 중간정도의 상호들이였다.
부처님 재세(在世)시 10대 제자 중에서 설법을 제일 뛰어나게 잘했다는 <부루나 다라미자> 존자(尊者)가 직접 그렸다는 초상화가 가장 신빙성 있어 보이는데, 그 초상화를 기준으로 상호를 보게 되면 굵은 선의 부드러운 적당한 곱슬머리에 수염도 적당히 있고 이마나 안면의 선이 아주 서구도 아니고 우리 쪽의 몽골리언 모습에 가까운 티베트인들과의 중간형이며, 어깨 골격도 넓고 강하며 석굴암의 부처님 정도의 비율의 골격에 인간적인 굴곡이 강한 아주 호남형으로, 앞가슴도 적당히 넓게 벌어진 모습 등으로 보아 키도 약 187~190cm정도로 짐작되는 상호이다.
2. 석가모니의 혈통
석가족은 현재 네팔(티벳남부) 포탈라카국 감자대왕의 후예로서, 지금의 네팔 타리이 지방 카필라국에 정착하였고, 코살라국의 주인이 되었으며 카필라국의 수도난다(정반왕)는 마야부인에게서 석가를 낳았다.
영국의 사학자 <빈센트 스미스>에 의하면 석가족과 코리족(藁離族)은 동쪽에서 이동했으며, 몽골리안 중에서 한민족을 형성한 고리족이 네팔지역에 이동한 것으로 추정하는 <석존몽고인설>을 주장하였다.
마야부인은 常盤大定의 석가모니전에 의하면 코리족(藁離族, 九黎族)이며 정반왕과 마야부인은 같은 종족이라고 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진정한 모습은 그리이스의 화풍이 들어간 아테네식도 아니고 후에 전통을 이어간 아리안(현재의 이란 및 인도의 종족) 계통의 심목고비가 아닌 몽고계인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현대 네팔에 샤카족이라 하여 석가모니의 후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도불원인-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 coo2.net)
https://cafe.daum.net/gycenter/Edmk/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