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비사우
위치: 서아프리카 서부
인구: 2,086,839명 (2023년 추계)
수도: 비사우
면적: 36,125.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기니 비사우 공화국 (Republic of Guinea Bissau)
기후: 열대우림성기후
민족 구성: 발란테족(30%), 훌라족(20%), 만딩고족
언어: 포르투갈어
정부/의회형태: 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종교: 토착종교(65%), 이슬람교(30%), 그리스도교 (0.5%)
화폐: 세파프랑 (XOF)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45
GDP: USD 1,347,000,000 (2017)
인구밀도: 53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gw
기니비사우와 한국과의 관계
▶ 외교
▶ 경제·통상·주요 협정
▶ 문화교류·교민 현황
요약
서아프리카의 작은 국가. 1974년까지는 포르투갈령 기니로 불렸다. 농업이 GN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지만 전국토의 10%만이 경작가능하다. 국민총생산 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을 밑돌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열악한 보건위생으로 유아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은 약 43세밖에 되지 않는다. 교육을 등한시한 포르투갈 식민정책의 결과로 성인의 약 70%가 문맹자이다. 면적 36,125.0㎢, 인구 2,086,839(2023 추계).
수도는 비사우이다. 대서양 해안에서 남서쪽에 떨어져 있는 비자고스(비사고스) 제도도 이 나라의 영토에 속하며, 북쪽으로는 세네갈, 동쪽과 남쪽으로는 기니와 접해 있다.
자연환경
기니비사우는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크게 3지역, 즉 해안 저지대, 내륙 평원지대, 북동부의 고지대로 나눌 수 있다. 해안 저지대에는 광대한 맹그로브 습지와 리아스식 해안(또는 익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내륙지대 북동쪽으로 거의 전국토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평균강우량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해안지대가 2,500㎜ 이상이며, 내륙지대는 1,800∼2,000㎜이다. 이 지역에서는 쌀이나 사탕수수 같은 열대작물들이 재배된다. 내륙 평원지대는 대략 북서쪽의 세네갈 국경과 게바 강(높낮이가 고른 기니비사우 국토를 구불구불 흐르는 여러 강 중의 하나) 사이에 걸쳐 있으며, 숲이 울창하고 해안지대만큼이나 기온이 높아 연평균기온이 26∼27℃에 이르며, 강우량은 1,500∼1,800㎜이다.
북동부의 고지대에는 외곽지역에 솟아올라 있는 기니의 푸타잘롱 고원(높이 180m), 기니비사우 중심부에 있는 바파타 고원, 북동쪽에 위치한 가부 고원 등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 일대의 강우량은 1,300㎜ 이하로 떨어지며, 건기(11∼4월)가 남동부지역보다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지역은 사실상 세네갈과 기니의 사바나 지대 연장선상에 있어,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수수·기장·목화 같은 작물들을 재배하기에 유리하다.
기니비사우에서는 물가에 사는 야생동물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악어·뱀·사다새(펠리칸)·홍학 등이 많다. 사바나 지역이기 때문에 가젤·표범·하이에나 등도 많다. 보크사이트와 인산염이 많이 매장되어 있으나 아직 개발되지는 않고 있다.
국민
기니비사우의 인구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 추이는 1990년 2.4%에서 2000년 1.9%, 2010년 2.5%, 2020년 2.45%로 완만한 증가폭을 그려왔다. 2023년 기준 인구수는 208만 6,839명이며 인구밀도는 70명/㎢이다. 연인구증가율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국민 대다수가 농촌생활을 하고 있으며, 인구의 2/5 이상이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기니비사우에서는 니제르콩고어족에서 파생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4개의 주요종족, 즉 발란타브라사족·풀라니족·말링케족·만디아코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란타브라사족은 애니미즘을 신봉하고 있으며, 국가개념이 없이 가족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풀라니족은 본래 이슬람교를 믿는 목축민으로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다. 만디아코족은 원예업이 주업이며, 말링케족은 농업과 상업에 종사한다.
언어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부족어가 혼합된 크레올어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주민도 있는 편이며 이는 또 다시 여러 방언으로 나누어진다.
사회와 문화
기니비사우는 1984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좌익성향을 띤 '아프리카 기니-카보베르데 독립당'(PAIGC)이 지배하는 일당제 국가이다.
국민보건위생 상태는 전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많은 주민이 아직도 결핵·백일해·장티푸스·세균성이질·말라리아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열악한 보건 상태는 기니비사우의 높은 유아사망률과 약 43세밖에 안되는 평균수명이 가장 잘 대변해준다. 학교교육은 시설과 정규교사의 부족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대부분 교육을 등한시한 포르투갈 식민정책의 결과로, 현재 기니비사우 성인의 약 70%가 문맹자이다. 국내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No Pintcha)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주민은 흑인이 많으며, 헌법에는 규정이 없지만,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다. 또한 포르투갈어에 기반한 크레올어는 상용어다. 주변의 대다수 국가가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프랑스어를 외국어로서 교육하고 있으며, 기니비사우는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역사
1,000여 년 전에 기니비사우 해안에는 철기를 사용하는 농경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관개와 건지농법을 이용한 벼농사에 특히 뛰어났으며, 수단 서부의 인근지역에 소금을 공급해주는 주요공급원이기도 했다. 이 지역은 거의 같은 시기에 말리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가부라는 속국이 되었다. 가부는 1546년 이후에 실질적인 자치왕국이 되어, 1867년까지 존속했다.
기니 해안에 최초로 상륙한 외국인은 포르투갈인들로, 그 시기는 1440년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포르투갈인들은 기니에서 카보베르데 제도에 이르는 지역 일대에서 노예를 수입했는데, 그들의 노예 무역은 신세계 개척으로 노예 인력수요가 늘어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기니 일대의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선포했으나, 기니비사우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은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기니비사우 경제는 노예매매업을 제외하고는 정체되어 있었으며, 부족간에 전쟁도 잦았다. 포르투갈인들은 노예 무역이 끝나면서부터 새로운 이권을 찾아 내륙지대에 파고들었고, 1879년 기니비사우는 카보베르데와 분리되어 통치되기 시작했다. 내륙지대에 대한 포르투갈인들의 정복사업은 때로는 느린 속도로 때로는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이 정복사업은 우여곡절 끝에 1915년에 종결되었으며, 토착민들의 산발적인 저항이 1936년까지 계속되었다. 포르투갈의 군사·행정 거점들에 대한 기니비사우 토착민들의 공격은 1961년 PAIGC 소속 게릴라들의 습격에서 비롯되었다. 10년 이상의 전쟁 끝에 1974년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977년에는 카보베르데와의 합병 노력이 실패로 끝났고, 1980년에는 기니 출신의 비에이라 준장이 주도한 쿠데타가 성공, 기니비사우 혁명평의회가 수립되었다. 당시 혁명평의회는 카보베르데 흑인들을 평의회 구성에서 제외시켰다. 기니비사우에 입헌정체(立憲政體)가 다시 수립된 것은 1984년 5월의 일이다.
종교
국민 대부분이 토착종교를 믿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중요한 소수 종교이다. 그리스도교는 10%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기니비사우의 종교는 다음과 같다. 이슬람교: 50%, 토속신앙: 40%, 기독교: 10% 이다.
기니비사우와 한국과의 관계
외교
우리나라는 1974년 기니비사우를 승인한 이래 주로 수산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해 왔다. 이와 병행하여 수교 교섭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나, 기니비사우측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외교관계 수립을 주저하여 오다가, 1983년 12월 22일 수교 합의에 이르렀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수교 과정에서 우리나라 민간 수산업체의 빈번한 방문과, 기니비사우 수자원장관 등 양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교환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대정부 협력차원에서 경운기·선박엔진·어망·어로기구 등 기자재를 제공하였다. 1985년 6월에는 국가평의회의장 비에이라가 공식 방한하여 14개 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로 친선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되었고, 1988년 12월에 , 1989년 4월 경제기술협력 협정 등을 체결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한국의 대 기니비사우 수출액은 40만 달러로 운송장비·사진재료·전자제품이 주종이고, 수입액은 36만 달러로 어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기니비사우 연안에서는 동원수산(주)이 조업 중이며, 16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과는 1974년 3월 16일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후 1975년 4월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카브랄 대통령, 비에이라 대통령이 1979년과 1982년 각각 북한을 방문하는 등 친북한 성향이 농후해져 국제연합·비동맹 등 국제회의에서 북한 쪽을 지지하여 왔다. 그러나 북한은 1991년 3월 공관을 철수하였고, 현재 주 기니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