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그리고 스물다섯 그 해 가을 우리가 만났던 날은 비가 내렸다
을지로 육가에서 가랑비를 맞으며 걷다가 방산시장 모퉁이 포장마차 천막 속으로 들어가 앉았다
모락거리는 생선묵 국물에서 품어내는 김이 콧속으로 스며들 때 군침이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
따끈한 정종 한잔이 몸속으로 깊이 스며들며 술기운에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마주 바라는 보았지만 찐한 정이나 사랑을 나누진 않았으나 생선묵을 먹으며 말없이 바라보기는 하였다
술이 얼큰하게 취기를 내 뿜을 때 을지로 거리엔 비는 멈추고 가을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술김에 불쑥 내 뱉은 말이
“ 어디 시집갈 때 없으면 나한테 시집오슈” 이였다
시집오슈!
그리고 백일 만에 나의 아내가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
일흔 둘 일흔 하나
내가 늙으니 그녀도 따라 늙었다
아침엔 미장원에 가서 흰머리를 염색해야 한다고 나갔다
후딱 가버린 세월
기억나지 않는 날들
아이들이 울며 매달리던 시절
등에 업고 살던 추억마저 모두 가지고 떠난 아이들
이젠 우리 둘만이 스물여섯 스물다섯 그 해처럼
우린 둘 뿐이다
사랑을 하며 사는 게 이젠 시들해 져 무덤덤하다
그래도 가끔은 스물 나이 그때처럼 손을 잡으면
아직 우린 사랑하는 사이란 걸 느낀다.
우리 둘이 아니면 사랑 할 것들이 멀리 있어 그렇다
지금은 잊어버린 날들이고 추억이지만 둘이 같이 못 있어 안달하던 시간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젊은 날은 아쉬움을 몰랐다
무수히 많은 날들이 떠나갔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바라보지 않기에 세월이 간 것을 가끔 잊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자주 만진다
실없이도 만지고 고마워서 만지고 사랑해서 만지고 늙음이 애처로워 만져준다
그녀의 손을 만지다가 주근깨가 수없이 내려앉은 것을 볼 때 울컥 할 때가 있다
한 세월 같이 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렇다
나는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가나 종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삶도 언젠가는 종점이 있을 것이다
한 이불을 덮고 몸이 닿는 것을 기억하는 밤을 수없이 보내고 지금도 그런 밤을 보내며 종점을 향해 가는 것이다
어느 곳 어딘가에서 종전이 있고 우리의 헤어짐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 헤어짐의 날이 얼마 남아있지 않음을 느낀다
울음으로 헤어질 그 종점을 향해 숫한 세월을 쉬지 않고 왔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녀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아직도 우린 가을이면 을지로를 생각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아닌가?
그리고 둘이 걷던 길을 이야기 한다
스물여섯 그리고 스물다섯
이젠 갈 수 없는 멀고 먼 마음의 이국땅이다
그 때보다 더 사랑해야 하는데
이젠 눈물 섞어 사랑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나이인데 아직도 우린 서툰 사랑을 한다
가끔 밉다 하면서
그 때처럼 사랑을 해도 흉보지 않을 텐데......
잊힌 세월
떠나간 나이 스물여섯 스물다섯
너무 아쉬워 가물거리는 추억의 길을 헤매며 찾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그녀를 만났던 나이인데 우린 다른 길을 걷고 있네
일흔둘 일흔하나 절룩거리는 길을 ...............
첫댓글 사랑의 고백을 시집 갈 때 없으면 나한테 오슈 라고? ㅎㅎㅎ
지금 젊은이들 그렇게 고백을 했으면 오케이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때가 옛날 이여...
그나 저나 지금도 한 이불 덥고 지낸다니 자네는 복 받은 거여...
순수했던 그때 그 러브 스토리 재미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