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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8. 17
⊙ 새누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가 새정연의 ‘국민 공천단’보다 개방적
⊙ 2012년 下向式이었던 새누리당은 上向式으로, 上向式이던 새정연은 下向式으로
⊙ 金武星이 오픈 프라이머리 주장하는 건, 임기말 政局 장악력 커진 朴槿惠 상대로 한 苦肉策
⊙ 文在寅과 親盧는 전략 공천 통해 문 대표 프리미엄 극대화 노려
내년 총선(總選) 공천(公薦)과 관련해 여야(與野) 대표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는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국민참여경선제)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문재인(文在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는 “공천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일반적으로 선거 제도는 선거 과정을 규정해 주는 선거법과 일련의 규칙을 일컫는 말이다. 공천은 선거를 통한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에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어떤 공천 방식을 택하느냐에 따라 선거 경쟁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회와 새정연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공천 룰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새정연 국민공천단은 ‘1%공천단’
첫째, 공천 방식이다. 새누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당론(黨論)으로 확정한 상태이다. 이 방식은 당원과 국민이 직접 참여해서 선거에 나갈 후보를 선출하고, 소속 정당 여부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투표할 수 있다.
새정연 혁신위원회는 9월 7일 국민 공천단 구성을 통한 경선을 실시하고, 정치 신인(新人) 가산점 및 경선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10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 혁신안은 안심번호 도입과 연계해 실시된다. 안심번호는 휴대전화 사용자의 개인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이동통신사업자가 임의의 가상 전화번호를 부여하는 것이다. 새정연은 ‘안심번호’ 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민 공천단 100%로 경선을 치러 후보를 뽑고, 도입되지 않을 경우에는 ‘국민 공천단 70%, 권리 당원 30%’ 비율로 선거인단을 꾸리기로 했다. 새정연 혁신위는 또 지역구별로 300~1000명의 선거인단을 꾸려 ARS(자동응답시스템)와 현장 투표를 혼합해 경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와 새정연의 ‘100% 국민 공천단’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前者)에서는 선거인단의 규모가 제한이 없지만 후자(後者)에서는 그 규모가 지나치게 적다. 가령, 국회의원 지역구의 평균 인구수가 13만명이라고 가정할 때 선거인단이 300명이면 전체의 0.2%, 1000명이면 0.8%에 불과하다. ‘100% 국민 공천단’이 아니라 ‘1% 국민 공천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에서는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상대방 정당의 경선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해 역(逆)선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개방성이 높다. 하지만 야당 혁신안은 선거인단을 선출할 때 새누리당 지지자를 배제하기 때문에 역선택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지만 개방성이 낮다.
새정연, 하위 20% 배제
둘째, 전략 공천 여부이다. 새누리당은 전략 공천을 원천 봉쇄한 반면, 새정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에서 현역 국회의원을 평가해 하위 20%를 배제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지지도 여론조사 35%, 의정활동·공약이행 평가 35%, 다면평가 10%, 선거 기여도 평가 10%, 지역구 활동 평가 10%를 반영해 교체지수를 매겨 하위 20%를 ‘컷오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가 실시한 ‘컷 오프제’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전체 246개 지역구 중 단수(單數) 공천은 130곳, 전략 공천은 52곳, 48곳에서 경선을 실시했다(〈표1〉 참조). 자신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영남에서는 전략 공천(18곳)과 경선(17곳)이 비슷하게 이뤄졌다. 다만, 이 지역에서는 단수 공천(32곳)이 집중됐다.
당시 민주당의 경우, 단수 공천은 70곳, 전략 공천은 18곳에서 실시했다. 전략 공천은 새누리당의 35% 수준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과는 달리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서 전략 공천은 단 한 곳도 없었고 단수 공천도 4곳에 불과했다. 오히려 호남 지역 28개 선거구 중 24곳에서 경선을 실시했다. 수도권에서도 23곳(38.3%)에서 이뤄졌다.
셋째, 공천 심사 차이다. 새누리당은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예비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에 대한 자격을 심사한다. 그리고 자격에 위배되지 않으면 누구나 경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새정연은 자격 심사를 통해 경선에 참여할 후보를 5명으로 압축하도록 했다.
넷째, 가산점에서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은 여성·신인·장애인 후보자의 경우 디딤돌 점수 10~20%를 가산점으로 부여하고, 여성 30% 추천 권고 조항을 강제 조항으로 개정했다. 새정연은 정치 신인에 10% 가산점, 여성·청년·장애인에게는 25%의 가산점을 부여했다.
기득권 챙기는 文在寅
다섯째, 비례대표 선정에서 차이가 있다. 새누리당은 여성 60% 이상 공천과 후보 추천 과정을 100%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했다. 새정연은 여성 당선우선권 배정비율을 60%로 상향 조정하고, 당선권 후보의 3분의 1 이상을 직능·노동·농어민 등 민생복지 전문가, 덕망 있는 현장 활동 전문가를 공천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상위 순번에 배치한다고 제안했다.
종합하면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상대적으로 하향식(下向式) 공천을 주로 사용한 반면 민주당은 상향식(上向式) 공천에 치중했다. 새누리당의 공천 방식이 민주당보다 훨씬 폐쇄적이었다는 뜻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새누리당이 새정연보다 훨씬 개방적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자신의 공천 기득권을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내려놓은 반면,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오히려 기득권을 챙기면서 국민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9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재차 거론하면서 “정당 민주주의의 완결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표에게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위한 양당 대표 회담을 제안했다. 여야 당 대표가 모두 공천권을 내려놓으면 진정한 공천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문 대표는 이런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전략 공천은 오픈 프라이머리와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새정연은 외부인사 50%가 참여하는 전략공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을 당 대표가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표2〉는 공천과 관련된 여야 혁신위안들을 요약한 것이다.
金武星이 오픈 프라이머리 주장하는 이유는?
▲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의 한 지구당 당원들이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략 공천 반대 집회를 연 모습. 당시 새누리당은 하향식 공천을 활용했다.
2012년 총선에서 여야 정당의 공천유형과 정치적 결과를 분석한 박명호·차홍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경우, 상향식 공천이 득표율과 당선 가능성 제고(提高)에 긍정적 영향으로 미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로 “새누리당의 경선이 주로 수도권에서 이루어졌고, 수도권은 여당에 불리한 지역이어서 경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단수 공천(32곳) 또는 전략 공천(18곳)의 하향식 공천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영남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상향식 공천보다는 하향식 공천을 선호해야 할 것 같은데 김무성 대표는 완전국민참여경선을 주장하며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조직을 갖고 있고 지명도가 높은 현역에게는 유리하지만 정치 신인이나 여성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또한 과다한 경선 비용이 소요된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여야가 동시에 실시하지 않으면 역선택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에 정치 생명을 거는 것일까? 김 대표에게 오픈 프라이머리는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생명줄을 놓으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놓는 순간 김 대표의 정치적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이유도 있었지만 자신이 임명한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에 의해 공천에서 탈락했다. 2008년 총선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가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면서 친이계(親李系)의 공천 학살에 직격탄을 날리자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디도스 사건 등이 터지고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최고위원이 사퇴하자 결국 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김무성 대표는 누구보다도 공천이 몰고 올 정치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김 대표는 정당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특이하고 집요한 대통령을 상대로 공천 주도권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을 펼치고 있다.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임기 후반 접어들어 지지율 상승하는 朴槿惠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주장했다.
지난 9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았지만 지역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안종범 경제수석을 포함해 대구·경북에 지연, 학연이 있는 청와대 참모 4명은 대동했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대구의 현역 국회의원 12명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 총선 때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박 대통령이 지난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때 적극적으로 대통령을 돕지 않았던 대구 의원들을 배신자로 규정해 대폭적으로 물갈이를 할 것이라는 괴담이 나돌고 있다.
대통령의 이례적 대구 행보는 자신이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타결로 중국 방문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청와대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와 같은 돌발사태가 없으면 올 연말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분위기다. 노동개혁에 대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이 이뤄졌고, 10월에 미국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3년여 동안 이뤄지지 않았던 한·중·일 정상회담을 박 대통령이 주도하면 지지율이 60%대까지 치솟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前任) 대통령들과 비교해 기록을 세웠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와 정반대로 집권 후반부는 역대 최고 지지율로 시작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힘을 바탕으로 내년 4월 총선을 향해 더욱 장악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식 자기 정치’에 거부감을 표시했던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배신자 親朴’과 金武星 連帶 가능성
여하튼 여론의 힘을 토대로 박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김무성 대표 체제를 흔들 수 있다.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최고위원이 사퇴하면 김 대표는 그대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대표가 어떻게 과거 당 지도부처럼 공천권을 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공천 방식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일관되게 “공천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이 김 대표를 지켜주는 힘이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일지라도 이렇게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당 대표를 끌어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다.
김 대표가 오픈 프라이머리를 버틸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친박(親朴)에서 나온다. 대구 사례에서 보듯이 박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2012년 총선에서 공천을 주었던 ‘배신자 친박’을 제거해 퇴임 이후 자신을 보호해 줄 호위무사를 양산해 내겠다는 뜻이다. 공천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친박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의지할 곳은 김무성 대표와 현역에게 유리한 오픈 프라이머리뿐이다. 지난 2014년 12월에 새누리당 공천개혁 소위원회가 당협위원장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압도적 다수인 80.6%가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 도입에 대해 찬성했고, 도입 반대는 17.1%에 불과했다.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찬성 이유로 가장 많은 53.8%가 ‘밀실 공천/나눠 먹기 공천’을 지적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대통령이 김 대표를 유승민처럼 찍어 내리려고 해도 뜻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가 이런 당내 분위기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마도 야당 내 계파 갈등이 노골화되면서 오픈 프라이머리가 대안으로 부상(浮上)하면 상황은 급반전할 것이다.
만약,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만나 야당이 추진 중인 전략 공천 20%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여야가 동시에 실시하자고 합의하면 공천 제도는 그야말로 급물살을 탈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협상이 물 건너가고 청와대의 압박이 심화되면 김무성 대표는 출구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대표직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청와대와 공천 빅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김 대표는 이에 맞춰 다양한 ‘플랜(Plan) B’를 고민할 것이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청와대의 의지를 반영해 전략 공천을 인정하면서 상향식 공천을 채택할지 모른다. 100% 여론조사보다는 ‘당원 30%, 여론조사 70%’와 같은 방식이나 당헌에 규정된 ‘국민공천 배심원제’를 이용해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도 검토할지 모른다. 청와대가 이런 플랜 B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공천안을 고집하면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체제의 충돌은 예기치 않은 내분으로 치달을 것이다.
당내 갈등으로 번진 文在寅 再신임 투표 제안
▲ 지난 9월 9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재신임을 제안했지만, 당내 분란만 가속화됐다.
문재인 새정연 대표는 지난 9월 9일 ‘재신임 투표’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핵심 요지는 혁신안 채택을 위한 9월 16일 중앙위원회 개최 이전에 재신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문 대표의 ‘재신임’ 카드에 당 지도부와 비주류 의원들은 정면 반발했다. 당내 486 그룹에 속하는 오영식 최고위원은 재신임 투표 재고를 공개적으로 요청했고, 유승희 최고위원은 “우선 혁신안에 대해 마무리를 짓고 난 뒤 공식적 통로로 의견을 모아 논의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재신임 투표에 대해 “유신체제 유지 수단이자, 진보 세력에는 ‘트라우마’”라고 맹비난했다.
안철수 전 대표도 그동안 보였던 문 대표와의 협력적 경쟁 관계를 깨고 정면 대결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혁신위가 활동을 마감하기 전인 9월 2일 ‘공정성장을 위한 지역균형발전’을 주제로 한 좌담회에서 “당의 혁신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에 대해 “국민의 관심과 공감대가 거의 없다. 과거의 타성과 현재의 기득권에 연연하며 진정한 자기 성찰과 쇄신 없이는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안 전 대표는 ‘정풍 운동’을 제안했다.
재신임 카드가 걷잡을 수 없는 당내 갈등으로 치닫자 문 대표는 3선 이상 중진의원협의체와 잇달아 만난 지난 9월 13일 재신임 투표를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문 대표가 밀어붙이고 있는 당 혁신안에 대한 중앙위원회의 찬반을 묻는 절차는 예정대로 9월 16일 실시하기로 했다.
여기에 안 전 대표가 또 제동을 걸었다. 그는 ‘문 대표께 드리는 글’이라는 개인 성명을 통해 “문 대표가 당 혁신을 자신의 거취 문제로 축소시키면서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의 혁신 문제가 대표의 거취 문제로 바뀌게 되고, 동시에 혁신 논쟁을 권력 투쟁으로 변질시키면 혼란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신임은 文在寅의 聲東擊西였나?
문 대표의 재신임을 둘러싸고 갈등의 블랙홀로 빠져들었던 새정연이 재신임 연기로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재신임에 대한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표가 “시기만 늦췄을 뿐 재신임은 꼭 물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 안팎에선 벌써부터 “중앙위에서 혁신안이 통과되면 재신임 문제는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다시 말해 재신임 카드는 문재인식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것이다. 재신임에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혁신위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 대표는 왜 당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신임 카드를 들고 나왔을까.
우선, 혁신위가 발표한 ‘100% 국민 공천제’를 관철시키기 위해서이다.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어떤 형태로든 혁신위안을 빨리 매듭짓기 위해서이다. 문 대표가 당 중진들의 거듭된 설득에 추석 전까지 재신임을 연기하는 것은 받아들였지만 ‘혁신안을 확정하는 중앙위는 연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 데 잘 나타나 있다.
셋째, 혁신위 활동 종료 후 비주류가 제기할 ‘문재인 사퇴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은 표면적인 것이다. 핵심은 문 대표가 ‘어게인 2012’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달콤한 2012년 공천의 추억’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친노 세력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한명숙 전 총리를 민주통합당 대표로 앉히고 공천 과정을 완전히 장악했다. 비례대표 선정을 포함해 자기 사람들을 심었고, 이를 기반으로 총선 이후 초선에 불과했던 문재인 의원을 대선 후보로 선출하는 데도 성공했다. 당시에 민주통합당의 친노 세력은 겉으로는 ‘혁신과 통합’을 외쳤지만 모든 정치적 실리는 다 챙겼다.
작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혁신위안에 따르면, 경선 후보를 5명 이내로 압축하고 1차 경선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때는 1・2위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하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현역의원이라고 해도 1차 때 과반수 득표를 하긴 어렵다. 그래서 현역과 비현역 간에 결선투표를 하게 되면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더구나 소수(少數)의 선거인단 앞에서 토론하고 질문하는 공론 조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이 불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전략 공천을 통해 문 대표의 프리미엄을 극대화시켜 친노 인사들을 대거 공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안철수의 ‘벼랑 끝 전술’
▲ 안철수 전 새정연 대표는 지난 9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혁신안을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데 대권 경쟁을 하는 안철수 의원이 혁신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안 의원은 ‘문재인 때리기’를 통해 그동안 협력적 경쟁 관계를 청산하고 정면 대결을 하는 카드를 뽑아들 었다. 일부에서는 “혁신위 활동을 끝낸 지금이 ‘정풍’을 앞세워 문 대표와의 차별화를 꾀해 존재감을 끌어올리기에 가장 적기(適期)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안 전 대표는 ‘제2의 손학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판단된다. 손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통합민주당 출범 직전 당 대표였지만 이해찬을 포함한 친노 세력의 당권 장악과 친노 인사 공천 전략에 맥없이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전략 공천을 포함한 김상곤 혁신위안이 통과되어 내년 총선에서 다수의 친노 인사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손학규 전 대표가 맥없이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로 201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안철수 전 대표는 문재인 대표의 들러리로 전락하면서 완패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안 전 대표는 문 대표를 향해 ‘벼랑 끝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제 문재인-안철수 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싸움이 시작됐다. 안 의원 측은 “문 대표가 중앙위를 밀어붙인다면 결국 안 의원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고 했다.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되고 있다.
치킨 게임 시작
여야 모두 총선이 다가오면서 공천을 둘러싸고 계파 간에 밥그릇 싸움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혁신위안과 문재인 대표 재신임을 둘러싸고 촉발된 새정연 갈등의 핵심은 결국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누가 주도하느냐의 싸움이다.
여하튼 공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여당은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간에, 야당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간에 치킨 게임이 벌어질 개연성이 커졌다. 치킨 게임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이 있을 때 누구든지 먼저 포기하면 ‘겁쟁이’(치킨)가 되지만, 양쪽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치킨 게임에서는 보통 폭탄성 최후 통첩을 보내는 쪽이 승리한다. 지난번 남북한 군사 대치 상황도 비슷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한 고위급 회담 도중에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 “결코 물러설 사안이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확성기 방송을 유지할 것”이라며 북측에 최후 통첩성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이번 회담의 극적 타결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치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과연 그럴까. 대통령의 지지도가 내년 총선 전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공천권을 둘러싸고 여당 대표와 치킨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박근혜, 공천권 욕심 버려야
▲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공천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사진은 2012년 3월 15일 차만순 국민공천배심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인위적 물갈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큰 문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그야말로 전권을 갖고 자신이 100% 공천을 했다. 그런데 자신이 공천해서 19대 국회에 입성한 친박 의원들은 최악의 의정 활동을 펼쳤다.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박 대통령은 공천 장악이라는 정치 공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과거 잘못된 공천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잘못된 공천으로 인한 최악의 국회가 재현되지 않도록 여당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안철수 전 대표가 문재인 대표와의 치킨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문 대표에게 최후통첩을 해야 한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 분당(分黨)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그 책임을 문 대표에게 묻겠다고 해야 한다. 또한 안 의원은 문 대표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천정배 의원만이 아니라 박영선과 박지원을 포함한 호남 비주류 세력과 전략적 연대를 구축해 분당할 수 있다는 의지도 보여야 한다. 손학규 전 대표를 비대위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카드로 압박도 해야 한다. 이런 최후통첩 없이 단지 당의 체질 개선 등 혁신을 놓고 문 대표와 경쟁하겠다는 유약한 생각으로는 결코 치킨 게임에서 승리할 수 없다.
공천 학살이냐, 공천 혁신이냐
문재인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최근 문 대표 측 인사는 “분란을 끝내기 위해 재신임을 제안했는데 그 자체가 분란이 됐다”고 했다. 문 대표는 “재신임을 물으려면 4·29 재보궐선거 패배 직후에 했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나도 그걸 후회한다”고 했다.
문 대표 스스로가 리더십 실패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 대표가 진정 당의 분열을 막고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만약 친노 세력이 혁신안을 포기하면 대안은 무엇일까. 20% 전략 공천은 유지하면서 상향식 공천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여권이 제안한 오프 프라이머리를 놓고 고민할지도 모른다. 비노와 안철수 전 대표 모두 이 제도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은 선거의 시작이다. 시작이 잘못되면 선거도 잘못되는 것이다. 물갈이가 최선은 아니다. 더구나, 공천 학살이라는 인위적 물갈이는 분명한 정치 후퇴이다. 정당이 공천 혁신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새로운 인물들이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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