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1년 8월 3일(수) 5시
참석: 박재순(씨알사상 연구소장)
박재천(제정구기념사업회 상임이사)
양재덕((사)실업극복인천본부장 )
박재순: 씨알사상과 관련한 두 번째 좌담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아주 귀한 두 분을 모시게 되었는데요. 한 분은 양재덕 씨알로 30여 년간 노동운동에 전력하시다가 지난 10여 년 전부터는 실업문제와 관련된 사회운동을 폭넓게 펼치셨고, 지금은 인천 실업극복운동 본부장을 맡고 계신 분입니다. 다른 한 분은 제정구기념사업회 상임이사이신 박재천 씨알님으로 빈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빈민들의 희망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오신 보기 드문 분입니다.
먼저 양재덕 씨알님부터 그동안 어떻게 살아오셨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셨는지 말씀해주시지요.
양재덕: 방금 소개하신 것처럼 저는 노동운동과 재야운동을 하다가 IMF 환란 후 실업자들이 많아져 실업자 문제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실업자 문제와 관련된 실업운동을 하다 보니 두 가지 문제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일자리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데 어떻게 일자리를 발굴 소개하여 취업하게 할 수 있게 하나 하는 문제이며, 둘째는 일자리가 있어도 나이와 조건 등이 맞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자리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일자리와 생활문제는 인간의 개성, 인성, 영성 등 인간의 내면 깊은 곳과 관련됨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내면문제를 풀어야 일자리 등의 여타문제가 풀리는 것이지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자리가 있어도 표피적인 해결일 뿐 인간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고, 영성과 인성의 개발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씨알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박재순: 씨알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노동운동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양재덕: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60년대 후반부터 노동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73년 초에 감옥에 가게 되었고 감옥에서 나와 곧장 공장으로 갔습니다.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먼저 구로동, 거여동, 종로5가 등에서 야학을 시작했습니다. 야학은 공장으로 가는 훈련의 일환으로 야학을 통해 노동운동가로 심화되는 것입니다.
박재순: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야학을 시작하신 거군요. 대학을 그만두고 야학과 노동운동 등의 삶을 시작하셨는데, 이건 인생을 걸고 하는 일일 텐데 그 당시 절실한 어떤 일념이 있으셨는지요?
양재덕: 절실한 일념이라기보다는 사회과학적 단순논리였습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장치의 마련이 노동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사회가 물질에 종속되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평등한 사회, 물질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박재순: 박재천 씨알님도 한 말씀하시지요. 박재천 씨알님과는 74년경 한신대에서 만났어요. 그 때 학교생활 중단하고 청계천에서 지내며 빈민과 더불어 살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70년 중반부터 35년 이상 빈민과 더불어 생활하셨는데, 신학을 공부하신 분이 목사가 되지 않고 판자촌에 들어가게 된 어떤 계기가 있으신지요?
박재천: 농촌 목사가 되려는 생각으로 73년 한신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한신대가 제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초`중학교 때는 보수교회에 심취해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기장교회에 다니면서 한신대를 알게 되었고 농촌목사가 되려는 생각에서 한신대에 지원하게 된 것이죠. 한신대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기숙사에서 살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보수 종교와는 달리 세상을 말하고 세상 속에서의 예수를 말하는 것을 보고 땅의 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보수적인 신앙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는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데모가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치사회의식이 없는 시골의 순수한 학생이었음에도 데모에 참가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기에 데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74년 2학기 데모 때문에 제적을 당하고 기숙사에서 퇴출되어 형사들에게 쫓겨 집을 찾아다니다 만난 것이 판자촌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싼 집을 구하러 수유리에서부터 미아리, 종암동을 거쳐 청계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찾아 헤맸습니다. 거기에서 판자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판자촌에서는 보증금 3만원에 월5천원으로 작은 방을 얻을 수 있었기에 그것이 판자촌에 들어 간 배경이 된 것입니다.
박재순: 그러면 거기서 제정구, 정일우신부등을 만나게 된 것입니까?
박재천: 그분들을 만난 것은 조금 나중의 일입니다. 제가 판자촌에 들어갔을 때는 제정구씨가 민청학련사건으로 감옥에 가고 없었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야학과 무료진료활동 등을 벌이고 있었기에 먼저 그 일을 돕다가 제정구 씨가 75년 2월 석방되면서 만나게 되어 교분을 텄습니다.
그러다 청계천 판자촌이 철거되어 75년 말에 양평동 판자촌으로 옮기면서 정일우 신부, 제정구씨와 함께 동거하게 되었습니다. 방 두 개에 정일우 신부가 방을 하나 쓰고 저는 제정구씨와 함께 방을 쓰다가 제정구씨가 76년 결혼하게 되어 그 방에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그 무렵 저는 군대에 가게 되었고요. 이곳도 77년에 철거되고 집단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집단이주로 이루어진 곳이 시흥의 “복음자리”였고, 저는 78년 제대 후에 복음자리에 합류하였습니다.
박재순: 저는 정일우 신부님 책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난을 삶의 기본으로 받아들여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거든요. 정신부의 경우는 청계천, 양평동 등 밑바닥에서 수십 년을 사셨는데 가난을 가까이 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함께하는 삶은 어려울 뿐 아니라 참으로 의미 있다고 여겨집니다. 결국 노동운동이나 실업극복운동이나 모두가 인간의 생명, 즉 속마음을 살려내는 데로 귀결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씨알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이런 점과 관련해서 말씀해주시지요.
박재천: 그동안 30여 년간 빈민운동을 하면서 삶의 핵심이 되는 키워드를 가난, 공동체, 생명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빈민운동 30주년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금년이 빈민운동 40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번에는 미래라는 키워드를 하나 더 넣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넣게 된 것이지요. 가난을 단순히 생각하면 먼저 구조적인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정치적이고 거시적 문제이므로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즉 당사자들의 문제입니다. 가난하지만 떳떳하게 살기위해서는 뭔가를 깨닫고 가난 그 자체를 스스로 존중하며 주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나 삶의 태도는 혼자서는 안 되기에 공동체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을 자각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서로 협동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이런 삶을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지역사회에 생명력을 불러 넣는 것이 인간 생명이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도록 교육하고 조직하는 것이 바로 빈민운동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그동안 “복음자리”에 살면서 행당동 철거주민과 더불어 신협을 조직하고 공동체운동을 추진하시면서 빈민운동의 중심주제인 가난, 공동체, 생명이 녹아드는 삶을 사셨다고 생각됩니다. 제정구씨도 “가짐 없는 큰 자유”를 말씀하셨죠.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가난하면서도 자유롭고 행복하며 떳떳한 삶을 사셨고 그러한 삶을 선언하셨음에 기초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선언을 빈민운동에서 실천하고 실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양재덕 씨알님도 실업극복운동을 하시면서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신 것 같은데 이어서 말씀해 주시지요..
양재덕: 말씀드렸듯이 IMF이후 실업자가 많아져 60여개 단체가 모여 실업극복운동 본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몸이 지쳐 어려움을 느낄 즈음인 2003년 경 6개월간 필리핀의 빈민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모금된 쌀이나 연탄 등을 나눠주기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방문해 보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도 전자제품(TV, 냉장고, 전기도구 등)을 갖추고 살았습니다. 돈이 없어 불은 못 때는 경우라도 말이지요. 이에 비해 필리핀 빈민들의 삶은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이 공사판 판넬에서 온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그들이 생각하는 부자나라)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매일 10여 명씩 저를 방문하여 한국에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한국에서 1년을 벌면 그 곳에서 10년 벌이와 같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빈민들이나 실업자들이 가난하고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60년대에 하던 일을 지금은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상공회의소나 경총 등에서 실업본부에 매일 50~60명의 일할사람을 보내달라고 요구하지만 힘든 일은 안하려하기에 보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토, 일요일에 놀면서 한 달에 50~60만원(요즘은 약 90만원 지급)을 버는 공공근로를 선호하는 편이었습니다.
한국과 필리핀을 비교해보면서 가난이 무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가난이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미국이나 일본보다는 못해도 한국은 필리핀, 인도, 캄보디아 보다는 훨씬 잘사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빈민운동뿐 아니라 실업운동도 각성된 새로운 운동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업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업자들의 자립은 노동력의 대가로 100만원 안팎의 수입을 제공하는 일자리로는 해결될 수 없고, 삶을 지속적이고 정신적으로 윤택하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유 있고 만족하는 삶을 창조할 수 있을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씨알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만원을 벌면서 건강하다면 200만원을 벌면서 아파서 병원에 돈 갖다 주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지요. 운동이나 예방체조를 통해 건강을 지키도록 하면 소득을 높이는 결과가 됩니다. 물론 건강, 교육, 의료, 주택 등의 삶의 기본문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서 지출을 줄이면 그렇지 않을 때 200만원 버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극복운동의 일환으로 1년에 1번씩 가난한 나라를 방문하여 그들의 삶을 보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과 함께 가난을 해결하려는 공동체운동을 펼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과 실업의 극복은 첫째 고용복지정책연구로 구조화된 가난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대처를 위한 노력 둘째 가난하지만 자신 있는 각자의 삶을 창조하기 위한 영성공부(씨알공부) 셋째 우리문제를 포함한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가난을 해결하려는 공동체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박재순: 포괄적인 비전을 갖고 말씀해주셨는데, 중요한 초점이고 제안이라고 생각됩니다. 100만 원 정도의 낮은 소득으로도 기쁘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양식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이런 것이 바로 씨알운동의 비전입니다. 누구나 500만원이 있어야 만족한다면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씨알사상은 가진 것 없어도 주체적으로 기쁘고 자유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씨알사상과 관련해 조금 더 이야기 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이나 덴마크, 핀란드 등에서도 영성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알코올과 마약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사회복지가 이루어져도 영성과 철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지요.
씨알사상은 자신의 몸과 영혼 속에 보물이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 속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여 생명과 정신의 씨알을 꽃피우고 열매 맺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씨알사상이 쉬움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물질위주의 사회에서 구체적인 효과(돈 등)를 기대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씨알사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재덕 씨알님은 씨알사상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신 걸로 아는데 씨알사상과 영성에 대해 느낀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노동운동과 실업극복운동과 관련해 어떤 측면에서 씨알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양재덕: 씨알사상과 영성에 관해서는 박 소장님께서 더 잘 아실 테니, 저는 씨알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가톨릭신자이나 고등학교 때는 불교에 심취했었습니다. 대학1학년 때는 몇 달간 참선을 하기도 했고, 뭔가 불교에 대해 윤곽을 잡은 듯한 느낌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하며 현장에 함몰되어 명상이나 참선 등은 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한 10년 전쯤 지인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7단계로 구성된 수련을 3단계까지 하다가 시간이 없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중단하였습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씨알사상을 알게 되었고 씨알공부를 하면서 예전에 생각했던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깨달은 것은 무엇이고 미진한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등등... 씨알사상을 1년여 공부했지만 저는 물론이고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의 삶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씨알사상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씨알사상을 공부하면 무언가 달라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씨알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유영모, 함석헌 선생님이 평생을 걸려 정리한 것을 1년 만에 이해하고 변화하려는 것이 욕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음을 다시 먹고 성서와 함께 씨알사상을 다시 공부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씨알사상을 통해 삶의 변화를 이룬 모습을 예수의 삶에서 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매일 아침 1시간씩 성서를 읽습니다. 그리고 1시간은 씨알사상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성서와 함께 씨알사상을 공부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더니 5명 정도가 동의해서 함께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재순: 유영모선생님이나 함석헌 선생님이 성경과 예수를 깊이 있게 알맹이 그대로 이해해서 씨알사상에 녹아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씨알사상은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겠지만 쉬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 년 생명진화와 민족, 국가의 역사가 내안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생명진화의 중심, 목적이 되기에, 내가 나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내속에 보물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꽃피우면 되는 것이지요. 씨알사상을 펼치는 데는 특별한 교리나 조건이 없이 몸과 마음을 가지고 그대로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씨알사상은 인류전체가 조건 없이 살면서 가난, 공동체, 생명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에 새로운 경전이 나온다면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사상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서문명(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만남이 씨알사상에 녹아들었기에 인류전체가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알사상은 특권을 내세우지 않고 씨알을 일으켜 세우고 씨알이 씨알이 되게 하여 온 인류가 하나 되게 하는 것이기에 미래의 철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씨알사상이란 내가 나가되고 우리가 되고 하나 되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기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재천 씨알님도 씨알사상과 관련해 말씀해 주시지요. 빈민운동과 관련해 씨알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은 어째서이신지요?
박재천: 제 개인적인 생각은 씨알사상은 삶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씨알사상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씨알사상은 인간과 사회, 인류가 가야할 방향이라고 여겨집니다. 오늘날의 사회현상을 보면 물질 중심적이고 산업화와 대량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현상의 바탕엔 경쟁중심의 사고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것은 인간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학자들도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인류가 물질에 휘말리면 거기에 종속되겠지만 경제논리로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씨알사상은 내 개인 삶의 방향이기도 하지만 우리 지역사회와 빈민운동, 노동운동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려면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살아야 씨알사상을 바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신은 물질이 아니므로 물질중심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도 물질을 기준으로 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물질에 종속되고 물질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사상자체도 아주 크고 세계를 관통하고 통일하는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한사람의 생각을 소중하게 여기고 각 사람의 생각과 사상이 바로 삶으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알은 자기 자신을 죽여서 새 생명을 싹틔웁니다. 씨알의 특성은 비교적인 것이 아니라, 통합되어 있는 거듭남과 새로움이지요. 비우고 놓고 나누고 터는 씨알의 바탕이 되는 생각과 정신을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각 하고 내가 되는가 하는 점이 쟁점일 것입니다. 배달학당에서 씨알사상을 공부하면서 더욱 깊이 생각한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사실 빈민들은 경제적인 약자들이고, 이런 경제적인 약함 때문에 자신을 폄하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신의 귀중함을 알게 하고, 보람을 찾게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없다고 해서 가진 것을 자꾸 움켜쥐려고만 한다면 비참하고 추잡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서 나눔과 협력, 협동하는 분위기를 확산하여 나누는 기쁨을 체험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양 씨알님 말처럼 타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그들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부자들도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씨알이라는 것은 정말 있는 그대로의 삶을 말합니다. 가진 것 없어도 풍부한 생명을 함께 나누는 것이 씨알이므로, 씨알을 강조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가득해진다면, 기득권 특권에 집착하는 부자나 엘리트들도 가난한 사람과 함께 살며 함께 구원받는 길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물질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고,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안철수씨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기득권의 과보호가 심화된 것이고 이것이 바로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국가, 문명의 역사를 보면 기득권의 과보호를 저지 못하면 반드시 망한다고 하면서 로마제국의 예를 든 것을 보았습니다.
씨알사상은 기득권이나 특권을 버리고, 내 삶의 씨알맹이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생명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자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씨알사상은 보편사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제 초점을 복지문제와 우리사회 미래의 비전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하지요. 현 정부 말기에 복지문제와 진보담론이 국민대중뿐만아니라 여야의 정치인들도 주요과제로 삼고 있기에 좋은 기회로 생각됩니다.
두 분이 노동현장과 빈민현장에서 생각하는 복지문제와 사회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말씀해 보시지요. 우선 양 씨알님부터 말씀해주십시오.
양재덕: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씨알사상을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씨알사상과 불교의 차이와 문제, 저서 등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씨알사상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다석선생님의 빈탕한데, 무, 존재에 대한 체득과 깨달음은 석가 못지않게 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불경은 과학적인 사람이나 단순한 사람 등, 듣는 사람 중심으로 쓰인 여러 경이 있어 접하기가 비교적 쉬운데 반해, 시처럼 쓰신 다석선생님의 글은 피카소의 그림같이 일반인이 해독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알사상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초`중`고급 등의 단계로 만들고, 명상참선이나 수행정진에 까지 이를 수 있도록 다양한 공부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박재순: 저도 씨알사상에 관한 많은 교재가 나와야 하고 청소년이나 노인 등의 대상에 맞는 교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 전에 양 씨알님이 말씀하신 중요한 개념인 빈탕한데와 공, 무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공과 무의 개념은 다석은 다석대로 함석헌은 함석헌대로 철저하게 파헤쳤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함석헌 선생님은 다석의 깨달음을 역사와 사회 현장 속에서 다시 진술하셨다고 할 수 있겠지요. 씨알사상과 불교의 같은 점은 공과 무에 대한 철저한 사유입니다. 다른 점은 석가가 살았던 시대적 환경 때문인지 생명의 자람과 변함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것과 모든 걸 공의 세계로 설명하기에 단순, 명확하지만 밑바닥 삶의 역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씨알사상은 2천 년간 자라난 인류의 역사의식과 더불어 생명 진화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고 공과 무의 사상을 인간 삶의 역사 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다석유영모>에서 생명진화, 인류역사, 권리투쟁의 역사 등을 넣어 다석선생님의 사상을 정리하고 <씨알사상>에서도 씨알사상의 배경, 의미 등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씨알사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교재와 훈련체계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 저희의 과제이지요. 교육교재뿐 아니라 수행체계 등에 관한 교재도 나와야 하겠으나 힘이 모자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몫은 가능한 한 씨알사상을 깊이 있고, 바르게 이해해서 전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동안 아까 말씀드린 복지문제 또는 씨알누리를 어떻게 형성해야 하고 어떤 비전이 있는지 말씀 나누겠습니다.
박재천: 복지문제나 개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씨알들의 사회, 즉 씨알누리를 어떻게 형성해야하는지의 측면에서 복지개념을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겁니다. 사실 복지자체가 가진 사회적 책임이나 국가적 의무에 대한 근본적 검토 없이 재원분배측면에서 만 접근하기에 복지 포플리즘으로 코드화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복지문제를 이야기 하려면 사회적 책임이나 국가적 의무에 대한 근본적 검토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복지란 씨알들이 씨알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터전이 펼쳐지는 것이고, 국가는 이 터전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입니다. 복지를 부스러기를 나누어주는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복지의 근본에서 상당히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지를 이야기하려면, 씨알들(노동자, 농민, 빈민 등)이 필요한 재원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풍요까지 누리는 것을 추구해야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주체가 되어가는 씨알누리, 씨알복지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순: 복지에 관한 개념과 국가의 의무 등을 간략하게 잘 짚어주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실현에 관한 국가의 의무라던가 국가의 본질에 관한 성찰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서구의 경우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통해 국가가 국민을 위한 복지를 담당하고, 실현해야한다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이미 200년 전에 4대보험을 확립했고, 90년대 이주노동자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는 정부가 1인당 1만 유로를 지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주노동자 등의 밑바닥 사람에 대한 성의를 보여준 것이지요.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실 복지차원에서는 후진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조와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해방된 후에도 남북분단과 독재 등으로 정상국가가 되지 못했기에 복지에 대해 생각하고 실행하기에는 사실 어려움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요즘에 와서야 조금씩 논의되고 있는 형편이지요. 복지와 관련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합의가 안 되어 있긴 하지만, 적어도 국민들이 굶어 죽거나 잠자리가 없어 헤매지 않도록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국가의 역할이 아닐까요? 국민이 이곳이 우리나라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재천: 최근에 <복지국가 스웨덴>이란 책을 정독하였고, 장애인, 어린이, 교육 등으로 나뉜 복지 정책을 보며 무척 감탄했습니다. 국가를 국민들이 나의 집으로 여기고 있는 걸 보면서,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복지와 관련된 국가의 정책이 있었던 거죠. 산업혁명 이후 산업화로 인한 인간의 폐해를 정확히 진단하여 복지에 관한 국가정책을 세우고, 어떤 정권이든 관계없이 복지정책 과제의 맥을 놓치지 않았기에 지금의 복지국가를 이룩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국가 정책적으로 복지정책에 연결성이 없습니다. 박재순 씨알님 말처럼 역사적으로 복지를 논하기 어려웠던 상황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복지정책도 연결되고 있지 않아 유감스럽게 생각됩니다.
박재순: 정치인들조차도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고, 복지정책에 대한 합의가 안 되어 있어 우왕좌왕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급속히 세계시장경제에 편입되어 고도산업사회를 이루었으나,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일자리는 줄고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미국, 유럽의 중산층이 60~70%에 달할 정도로 중산층이 두터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그 곳에서도 중산층도 무너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국가적이고 문명사적인 위기에서는 이전의 생각으로는 답이 될 수 없기에, 근본적인 새 패러다임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재덕: 제가 느끼기에도 한국은 OECD국가에 비해 복지후진국입니다. 실제로 국가예산에 복지예산을 편성한 것도 사실 2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그 때부터 복지정책이 정치적 이슈화되었으나, 한국의 복지정책은 재분배의 성격이 강합니다. 복지의 진행에 있어서도 노인, 아동 등 각 분야가 파편적으로 독립되어 있고 서로 연계함이 없이 각 담당 공무원들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법으로 정한 예산을 나누어 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 복지의 수혜자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보람된 일로는 발전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인천의 경우 60세 이상의 노인실업자 만 오천 명에게 하루 4시간씩 한 달 일하면 용돈개념으로 2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국에서 지급하고 있으니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구청의 경우 구청 예산의 50~60%가 복지예산입니다. 결코 적은편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지금과 같이 나누어주기 식의 타성적이고 소모적인 복지로는 아무리 많은 예산이라도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대로 된 복지가 되려면 지원이 끊겨도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도록 생산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와 연결된 복지를 창출해야 할 것이고, 그럴 때 더 많은 실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타성적이고 소모적으로 나누어 주는 복지가 아니어야하고, 복지의 진행과 관련해서도 파편적 독립적이 아닌, 전체를 통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지정책을 기획, 진행하는 총체적인 시스템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남북이 분단되어 과다한 국방비 지출로 인한 복지예산이 구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이고, 모든 예산의 재원이 중앙집권화 되어있는 것(국가 70%, 광역시 15%, 구청 15%)도 문제입니다. 예산의 지방분권화가 되지 않았기에, 지역에서는 자체적인 예산편성은 생각지도 못하고 중앙에서 법으로 정해져 내려오는 예산에 자신의 예산을 조금 보태어 나누어주기에 급급한 형편인 것이지요. 지역사회가 복지를 시행하는 주체가 되려면 세금의 지방세 이양이 절실하고, 국방비 지출로 인한 복지예산의 축소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재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생계비를 주어야 하겠지만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은 의미 없다고 여겨집니다.
양 씨알님의 말씀 중에 복지와 관련된 두 가지 문제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국가자체의 문제로 정치인, 기업인,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복지에 관한 국가의 비전과 책임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금체계부터 바로 잡아야겠지요. 모두가 떳떳하고 의미 있게 사회비전을 책임짐으로써 모두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둘째는 생산적 복지가 되도록 예산체계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국가가 지원하고 마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국가의 지원에만 의존한다면 국가가 국민을 사육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회복지가 성공하려면 씨알 대중의 자발적인 힘과 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밑으로부터 활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지요. 씨알정신이 바로 스스로 하는 정신을 확립하고 스스로 열매 맺어 그 열매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참된 자립공동체가 아래로부터 나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 씨알님이 말씀하신 1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도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생활양식을 형성해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씨알들의 삶의 양식, 복지사회의 양식으로 발전시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여겨집니다. 도전정신 없이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려는 자립적 복지가 아래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재천: 국가차원의 복지현실은 양 씨알님이 지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씨알누리의 정치, 경제, 사회는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지의 화두를 붙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화두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려면 역시 바닥에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실업극복운동, 자활공동체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등이 씨알누리로 가는 토대가 돼야 할 것이고, 이 토대위에 국가의 복지자원이 들어와서 생산적 복지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토대가 없다면 나눠 먹기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국가의 복지정책도 올바르게 가야겠지만, 바닥의 씨알적인 토대가 국가의 복지정책과 연결될 수 있도록 사례개발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의존적이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씨알지역사회를 확립하기위한 씨알적 토대를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기 위해 씨알재단뿐만 아니라 씨알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이 관점에서 씨알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토론과 나눔을 통해 사례를 개발하여 잘 훈련된다면 씨알들이 예산을 통제하고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복지와 관련해서 예산이 책정되다보니 돈 따먹기라는 말이 나오고, 복지 포퓰리즘, 복지병이란 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진짜 복지병이란 것이 역사적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복지를 왜곡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예산을 쓸 수 있는 바닥의 토대건설이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박재순: 복지병이나 복지 포퓰리즘 같은 말은 국민을 모독하는 불쾌한 말이므로 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
헌법에도 국가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된 북지국가가 되려면, 밑바닥 국민인 씨알들의 삶과 정신에서 힘이 나와 꼭대기까지 올라가 순환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끝으로 오늘의 대담을 정리하는 마무리 말씀을 하시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양재덕: 씨알운동은 씨알이 발아되어 성장하고 확산되는 운동으로 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세계화 되어있고 독점자본이 막강한 힘으로 휘돌고 있는 상황에서 장기적 대안만으로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씨알운동으로 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하면서 다른 편으로는 시급한 문제에 대처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 인류가 함께 잘못된 소비를 바로잡는 소비자운동 등을 병행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박재천: 사회적인 여러 헌상이 있겠지만, 우리의 과제를 중심으로 보면 다음 3가지 측면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첫째는 씨알사회 정책운동으로, 학문과 현장의 전문가들을 영입해 씨알의 입장에서 정책적 과제를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 운동의 경우 구조적인 거대소비분야뿐아니라 소규모 지역 소비거래(도농직거래, 올바른 먹거리, 생활소비 등)등도 연구하여 정책적과제로 수행토록 하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씨알자치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씨알 스스로가 각 분야에서 하고 있는 자치자립운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씨알들이 서로 교류하고, 발표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자신이 하는 운동을 조직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씨알 교육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교육해야 하나 하는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내적 자기 공부로 영성(내면)과 관련된 것입니다. 남을 죽이는 경쟁적 훈련이 아닌, 내가 죽고 비워져 새로운 씨알을 탄생케 하는 정신적 씨알운동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세 분야는 우리가 집중해서 고민해야 할 핵심적 주제입니다. 다 이루기는 어렵겠지만 우리 대에서 조금이라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재순: 저희 재단에서도 금년부터 월례모임을 통해 씨알들의 삶을 함께 나누며 가능한 의견들을 모아보고자 노력하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씨알정책협의회, 씨알세미나를 통한 사례 나눔, 그리고 소비자 운동을 시작해 볼 수도 있겠지요.
박재천: 교육, 조직, 정책 운동에서 씨알재단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하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다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씨알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씨알적 방향을 제시해주고 씨알의 메시지를 확인해주는 일을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재순: 씨알재단이 창립된 지 금년으로 4주년이 되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해야 할 많은 과제는 씨알들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조금씩 해결해 가야 할 것입니다.
밑바닥에서 귀한 활동을 하시는 두 분 씨알님들 모시고 복지와 관련된 폭넓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대화가 더욱 심화되고 싹이 터 함께 씨알세상을 꿈꾸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대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