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 퇴고(推敲)에 대하여
이 퇴고(추고라고도 함)는 글이나 문장에서 얼마만큼 중요한가는 글을 쓰면서 차츰 절감(切感)하게 됩니다. 일단 완성된 작품을 다시 손질을 해서 새로운 단어나 문장으로 고쳐나가는 일을 말합니다. 문장에서 마지막 손질을 한다는 것은 어떤 시인이라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아기가 마치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자라서 태어나는 것과 같이 시인의 시상이 충분히 무르익어서 탄생된 시라고 할지라도 표현이나 구성에서 미흡한 점이 반드시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자연스럽게 그 미흡한 점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 외에 새로운 것으로 보충하게 됩니다. 그래야만 시어의 묘미라든지 내용의 선명함이 제대로 나타나고 비로소 한 편의 작품을 완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퇴고라는 말은 당나라에 가도(賈島)라는 문장가가 있었는데 어느날 말을 타고 가다가 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물론 한시(漢詩)입니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새가 연못가 나무에 잠들고)
僧推月下門(승추월하문-스님은 달 아래 문을 민다)
그러나 ‘문을 민다’는 대목에서 그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문을 두드린다(鼓)’로 고쳐 보았으나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민다(推)와 두드린다(鼓) 중에서 어느 것으로 할까 골돌히 생각하다가 고관인 경윤(京尹-지금의 서울시장 쯤 되는가)의 행차 수레와 부딪쳤습니다. 가도는 바로 경윤 앞에 끌려가서 문초를 받았으나 무례에 대한 사죄를 하고 그 사유를 설명하였습니다
경윤은 호통보다는 만면에 빙그레 웃음을 띠면서 ‘그것은 민다라고 하기 보다는 두드린다가 훨씬 좋다’고 했습니다. ‘推’보다는 ‘鼓’가 낫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도는 둘째 연은 ‘僧鼓月下門’으로 고쳤습니다.
당시 그 경윤은 당대의 대문장가인 한퇴지(韓退之) 선생이었습니다. 시 쓰기에서 ‘퇴’자를 없애고 ‘고’자로 바꾸는 데서 퇴고라는 말이 여기에 비롯되어 고사(古事)로 남아 있지만, 지금도 문장을 고치는 일은 ‘퇴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퇴고는 어떻게 할까요. 시의 소재 선택에서부터 나름대로의 주제 설정과 보다 적절한 언어의 배열로 구성된 한 편의 시를 감정의 정리나 묘사들을 다듬고 매만지는 일은 누구나 체험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실제로 나의 체험을 통한 개장이나 첨삭의 예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손끝에서
향내가 꽃으로 피었다
하얀 꽃
검은 향기
흠뻑
적막 한 모금 머금은 채
마음 끝자락
청순한 구름 한 점 흐른다.
이것은 졸시「묵향(墨香)」의 전문입니다. 비교적 간략한 언어로 짧게 구성한 작품이다. 주된 내용이나 시의 구도도 쉼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며, 소재도 흔한 지필묵(紙筆墨)에서 취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초고(草稿)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일종의 메모에 지나지 않습니다.
손끝에서 온 천지로
꽃향기 은은하다
하얀 화선지 위
문득 번지는 검은 향내
냐 마음 한 자락 뿌리고
구름처럼 흠뻑 취한다
청순한 모습이여
적막한 향기여
그러나 어쩐지 감상적인 묘사로 보인다. 정감은 있을지 몰라도 한 편의 작품으로서는 조금 모자란 듯 합니다. 그냥 두었습니다. 며칠인지 또는 몇 달인지는 기억이 없으나 어느날 붓글씨를 쓰면서 불현듯 붓끝에서 풍기는 향기(검은 향기)를 느꼈습니다.
시는 대체로 시어의 함축성과 주제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시 쓰기에서 위의 초고를 무우 자르듯이 잘라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첨삭을 하거나 개작을 통해서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시 창작 강의를 하면서 첨삭지도 과정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선 시 문장에 표현된 언어가 적절한가, 주제가 잘 투영(投映)되어 있는가 등을 살피게 되는데 표현에서 ‘처럼’이나 ‘같이’ 등의 직유법을 많이 구사하면 작품의 이미지와 내용의 깊이가 감소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됩니다.
시의 퇴고에서 깊이 유의할 점을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시 전체의 구성과 시어, 상징, 이미지 등 시 창작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재확인하거나 점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① 평범한 사고와 사유를 지양할 것.
② 표현과 묘사가 천박하지 않나 살펴볼 것.
③ 깊이와 멋이 있어야 할 것.
④ 평소에 연마된 시어와 시구(詩句)가 다듬어져야 할 것.
⑤ 주관적인 시정신 또는 시상(詩想)을 시 내용에 투영시킬 것.
⑥ 체험, 사상과 감정 등이 잘 조화되고 있는가를 정리할 것.
그러나 한 편의 작품이 완전한 퇴고가 끝났다고 해서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승이나 선배들에게 다시 한 번 첨삭지도를 받거나 동료들과의 작품 토론을 통해서 스스로 고쳐나가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시인으로 풀리처 사을 수상한 아취볼드. 머클리쉬의 「시법(詩法)」을 참고하면 퇴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는 감촉이 있고 묵묵해야 한다
둥근 과일처럼
엄지손가락에 닿은 낡은 메달처럼
말 없고
이끼 낀 창턱의 소맷자락에 닿은
돌처럼 고요하고
새가 날듯이
시는 무언(無言)해야 한다
시는 달이 떠오르듯
시시각각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어둠에 얽힌 나무를 한 가지씩
달이 놓아주듯
겨울철 나뭇잎에 가리운 당처럼
하나씩 추억을 간직하면서 떠나가야 한다
겨울철 달이 떠오르듯
시시가각각 움직임이 보이잖아야 한다
시는 동등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
슬픈 모든 사연에는
빈 문간과 단풍나무 잎사귀를
연애에는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 두 개의 불빛을--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