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남1여로 둘째로태어난 큰아들은 어릴대부터 순하고 엄마말을 잘들어주는등 셋중에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다.그러던중 뜻하지않게 6살때 단층옥상에서 마당에떨어져 뇌가 크게 y자형으로 금이가는 중상으로 파티마 병원에입원 하였으나 주치의는 어린아이라서 다행이 경과가좋아 수술하지않아도 된다하여 2주만에 퇴원하는 공덕을 얻었다.다시태어난아이라고 모두들 주위에서기쁘햇다.부모의 잘못처사로 삶이힘들어 과외,학원에 다니지못해도 하나불평없이 중 고 등학교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였으며,방학때는 아르비트를해서 용돈을 벌었다,엄마가,큰딸놓고 연탄가스중독으로인해서,그후유증으로 뇌 속에서 무었이 쏟아지는등 힘들어할때,늦게 학교에서 돌아와도,늘 밤 12시가 넘도록 학교생활 등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등 ,많은 위로를 했으며 주방일도 틈틈히 많이도아주엇다.거러다가 휴학하고 군에입대 ,전투경찰에 배치되어서 울릉도에서 ,군생활을했다,주위에서는,일부로 관광도가는대 참좋은곳에서 군생활하는것은 엄마에게 잘해서 하느님이도우셨다고했다,제대후 곧 복학하여 공부하면서 일요일에는 엄마와함께 시골 할아버지댁에가서 엄마의하는일을 도아주니 이웃 사람들도 많은 칭찬을했다,졸업후 즉시 국가공기업에 합격하여 엄마를 더욱기쁘게하였으며,이는 엄마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위로하니, 하는일이술술 풀인다고,칭찬했다
엄마와단둘이서 일본관광도 다녀왔다,2박3일 짧은 시간이지만 늘 엄마의 건강이 좋지않고 나들이도 잘다니지않으며 항상 집에서만 생활한다면서,다른 어머니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안스럽고 마음아프다고 했다,함께 비행기를 타고 외국관광을하니 나도 이른세상이있는가하며 세상에 태어난후 오늘이,가장 기쁜날로 기억하겠다고했다.
엄마의 생신을 맞이하여,6살먹은 외손자와함께 관광을했다,숙소는 울진근교 리조트(콘도),에 여장을풀고 ,설악산 구경 ,9월 하순이라 단풍은 물들지않아 아쉬움이많았으나 그래도 기암절벽 ,숲속을 거니는것만으로도 마음 설랬으며,흔들바위,외손자와 아내 함께힘을합하니 흔들했다,저녁은 속초 어시장 싱싱한회를사서 먹어니 쫄깃하고 새큼달큼 향 내나는 맛,어디에도 비길수없었다
아침일찍 고성 통일전망대를 관광하기위해 출발했다
통일전망대는 우리나라 북쪽에위치한 북위38도 지점위치,금강산 마지막봉우리 구선봉,바다위의 금강산이라불리는 해금강,구선봉 낙타같이 생겼다하여 낙타봉.구선봉 정상은 아흔 선녀가 살았다고한다.구봉선 아래 감호라는 호수가보인다 동쪽으로 긴 모래둑을사이에두고 동해바다연결 ,솔밭 백사장 연결된다,감호는(나무꾼과 선녀)이 전설이깃든 호수로유명하다.분단후 처음으로 남북을 잇는 동해선,도로와 철도 금강산 육로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북을 통하던 길이보인다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비무장지대의 휴전선 철책,도로위 차가보이고 인민군도 왔다갔다하는모습 뚜렸하게보인다,푸른바다위에는 덤석 덤석 이북해상에 뜨있는 배들이 너무나 감성적이고 푸른바다가 어느곳보다 맑게보였으며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게보였다.분단 휴전선 철책 ,너무나 가슴아프게했다.
6살 손자는 망원경을보겠다고하여 할머니가 안고 보여주었으며,아들은 망원경을보면서 엄마에게 하나 하나 자세이 설명하면서 저기 인민군이 도로위을 가고있고 군 차량도 오고가고있다고 하나 놓치지않고 설명할때마다,너무나 흐뭇하게 했다.
하루빨리 통일이되어서 아름다운 금강산 해금강 내금강 외금강,등을관광하는 그 날이오기를 염원한다
통일전망대를 관광하고,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위치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별장,1954년에신축,머물렀다 1961년에 페허가되었다가 1997년에 재건축,전시관으로 복원했다.외부는 별장답지않게 아담하고 소박하며 허룸하게 보인다.침실과 집무실로 방2개,이승만대통령이 기거하던 시절의모습 그대로 제현, 주변 울창한 송림 화진포 2개의 호수 한눈에 볼수있다
김일성 가족별장,화진포(1948년~1950년) 언덕위에 서 호수를 볼수있었다.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특히 엄마 생신를 맞이하여 뜻깊은 관광를한것은 생애 가장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