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22장 남성과 여성 , 결혼과 독신, 극복자에 대하여
미르다드가 물었다.
“나론다, 나의 충실한 기억이여, 이 백합꽃은 그대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제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스승님.”
“이 백합이 ‘우리는 나론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의 표시로 나론다에게 우리들의 향기로운 혼을 기꺼이 바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들린다. 나론다, 나의 불변의 마음이여! 이 연못의 물은 그대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제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스승님.”
“이 연못의 물이 ‘우리는 나론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론다와 나론다가 사랑하는 백합들의 갈증을 풀어 줍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들린다.
나론다, 끊임없이 깨어 있는 나의 눈이여! 오늘 이날은 햇빛이 비치는 팔로 모든 것들을 어루만지며 그대에게 무어라 말하는가?“
“제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스승님.”
“오늘 이날은 ‘저는 나론다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햇빛이 비치는 팔로 사랑스런 다른 가족과 함께 나론다를 이토록 다정히 감싸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들린다.
나론다는 많은 것을 사랑하고 많은 것에게 사랑받으며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어떤 게으른 꿈이나 생각도 둥지를 틀고 알을 부화시킬 여지가 전혀 없으리라.
진실로 인간은 우주의 연인, 만물은 인간을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너무 귀여워하기 때문에 많은 인간들을 망친다. 또한 귀여워하는 그 손에 붙잡혀 있지 않은 인간도 거의 없다.
망쳐지지 않은 자에겐 뱀이 한번 무는 것도 사랑에 가득 찬 입맞춤. 그러나 망쳐진 자에겐 사랑으로 가득 찬 입맞춤도 뱀이 한번 무는 것, 그렇지 않은가, 자모라?“
어느 여름날 오후, 미르다드와 자모라와 나 세 사람이 방주의 뜰에 있는 화단에 물을 주고 있을 때,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자모라는 마음이 산란한 채 기운 없이 서 있다가, 스승의 질문에 제정신이 들면서 대단히 당황했다.
“스승께서 진실이라 말씀하신 것은 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건 그대에겐 진실이 아니겠지, 자모라. 그대는 사랑에 가득 찬 입맞춤에 의해 상처받지 않았는가? 상처입은 사랑의 추억 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모라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스승의 발 아래 엎드렸다.
“아아, 스승님! 당신의 눈으로부터 비밀을 숨기려 한 나는 -혹은 다른 어느 누구도-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지요! 설령 그 비밀을 마음속 가장 깊숙한 은밀한 집에 숨긴다 해도 말입니다!”
미르다드는 자모라를 부축해 일으키면서 말했다.
“이 백합한테 비밀을 숨기려는 짓도 유치하고 어리석다!”
자모라가 말했다.
“제 마음이 이제껏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젯밤의 제 꿈이 불순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습니다. 당신 앞에 제 마음을 완전히 발가벗겨 드러내고 싶습니다, 스승님. 나론다 앞에 이 백합 앞에, 그리고 백합의 뿌리를 휘감고 있는 땅 속의 벌레 앞에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저를 짓누르는 비밀의 짐을 제 영혼에서 없애 버리고 싶습니다. 이 음울한 바람을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 날려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한 소녀를 사랑했습니다. 새벽별보다 더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제 혀에 와 닿는 그녀의 이름은 눈꺼풀에 남아 있는 감미로운 잠보다 훨씬 더 감미로웠습니다. 당신이 기도와 흐르는 피에 대해 우리들에게 말했을 때, 그 말씀 속에 담긴 치유의 힘을 가장 잘 받아들인 사람이 저였다고 믿습니다. 호글라 -그 소녀의 이름입니다- 의 사랑은 제 피의 지령자였고, 최상의 지령을 받은 피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호글라의 사랑이 있으면 영원은 제 것이었습니다. 저는 영원을 결혼반지로 끼고 있었습니다. 죽음까지도 갑옷으로 입고 있었습니다. 저 자신이 모든 어제보다 더 오래되고, 가장 나중에 생길 내일보다도 더 젊다고 느꼈습니다. 제 팔은 하늘을 떠받치고, 제 발은 대지를 박차며 달렸습니다. 또 제 마음에는 수많은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글라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던 불사조 자모라는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차갑게 식어 버린 생명 없는 잿더미에서 새로운 불사조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자였던 자모라는 겁 많은 토끼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이었던 자모라는 고인 물에 떠 있는 비참한 남파선의 잔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꼴이 되어 버린 자모라에게서 벗어나려고 방주로 향했습니다. 대홍수의 추억과 그림자와 더불어 제 자신을 생매장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방주에 도착한 바로 그때, 한 사람의 동행자가 세상을 떠나서 저는 방주에 영입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동행자들은 자모라의 목소리를 듣고 자모라의 얼굴을 보아 왔지만, 자모라의 비밀을 듣거나 본 자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방주의 낡은 벽과 어두운 회랑도 자모라의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뜨락의 나무들이나 꽃들이나 새들은 혹시 그 비밀을 조금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의 호글라에 대해서는, 아아 스승님, 저보다는 제 하프의 현이 분명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말씀이 자모라의 꺼진 재를 되살리기 시작한 바로 그때, 그리하여 새로운 자모라가 탄생했음을 거의 확신하던 바로 그때, 호글라가 꿈 속에 찾아왔습니다. 그 꿈은 제 피를 끓어오르게 하고, 다 타버린 횃불, 미처 맛보지 못한 황홀경, 생명 없는 잿더미와 같은 오늘 이날의 현실, 음울한 바위산에 저를 던져 넣었습니다.
아아, 호글라, 호글라!
용서하십시오, 스승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신은 육신으로밖에는 있을 수 없는 겁니까? 저의 육신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모라를 불쌍히 여기소서.“
미르다드가 말했다.
“연민 그 자체가 연민을 필요로 한다. 미르다드에게는 연민이 없다. 그러나 미르다드에게는 모든 것을 향한 넘칠 정도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육체로도 향한다. 영혼으로는 특히 많은 사랑이 향한다. 영혼이 육체라는 조잡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은 단지 그 육체를 무형(無形)의 영혼 속으로 녹이기 위해서다. 미르다드의 사랑은 자모라를 잿더미에서 일으켜 세워 ‘극복자’ 로 만들 것이다.
극복자에 대해 나는 가르친다. 극복자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 통일된 인간.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 포로가 된 남자, 남자에 대한 사랑으로 포로가 된 여자는 모두 ‘자유’ 의 고귀한 왕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으로 분열이 해소되면서 하나로 통일된 남자와 여자는 진실로 그 왕관에 어울린다.
사랑하는 자를 종속시키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피와 살을 먹고 자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여자를 남자에게 끌어들여 결국 더 많은 남자와 여자를 낳게하는 사랑,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육체에 대한 속박을 지속시킬 뿐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극복자에 대해 나는 가르친다. 극복자란 너무나 자유로워서 남자일 수도 없고, 너무나 순수해서 여자일 수도 없는 불사조의 인간.
‘생명’의 농밀한 영역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 마찬가지로 ‘생명’의 희박한 영역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하나. 그 중간은 이원성(二元性) 이라는 환상이 지배하는 영원 속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그 조각의 앞도 뒤도 볼 수 없는 자들은 그것이 영원 자체라고 믿는다. 그들은 ‘생명’ 의 법칙이 ‘하나됨’ 임을 알지 못하고, 이원성이라는 환상이 마치 ‘생명’의 핵심이자 본질 자체인 것처럼 그 환상에 매달린다.
이원성은 시간 속의 한 단계. 이원성은 하나됨에서 나와 하나됨으로 통한다. 이 단계를 일찍 통과하면 할수록 그만큼 일찍 자신의 자유를 포옹하게 된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자신들이 하나임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둘로 분열되어 갈라짐의 쓴맛을 실컷 보기 때문에 하나됨의 맛좋은 술을 열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열망을 바탕으로 그들은 의지를 갖고 맛좋은 술을 찾는다. 결국 그들은 하나됨을 발견하고, 하나됨을 소유하며, 하나됨의 놀랄 만한 자유를 깨닫는다.
숫말이 암말을 부르는 울음, 숫사슴이 암사슴을 부르도록 내러려 두라. 자연은 그들의 행위를 축복하며 찬미한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자기 자식을 낳는 것보다 더 높은 천명(天命)이 있다는 걸 아직은 의식 못하기 때문이다.
숫말이나 암말, 숫사슴이나 암사슴 같은 동물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남녀들은 육체의 어두운 유혹 속에서 서로를 찾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이 결혼 허가서와 침실의 음탕함을 섞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이 남근의 생식력과 자궁의 다산성(多産性)에서 기쁨을 맛보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이 자식을 번식시키게 놔두라. 자연 자체가 기꺼이 그들의 후원자가 되고 산파(産婆)가 된다. 그리고 자연은 그들에게 장미로 된 요를 깔아 주지만, 장미의 가시도 잊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됨을 희구하는 남녀는 육체에 머무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하나됨을 실현해야 한다. 하나됨은 육체를 나눔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됨과 ‘성스러운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육체에서 벗어나 자유로 향하는 의지를 가짐으로써 실현된다.
정욕을 채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미친 듯이 분출하는 정욕을 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 본성과 명확히 대립하기 때문에 마침내는 고통을 겪는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말한다. 그들의 쓸데없는 얘기에 귀를 빌려주지 말라.
인간은 무한히 광대한 존재이며, 그 본성 역시 너무나 측량하기 힘들다. 인간의 재능은 매우 다양하고, 그 힘도 무진장이다. 인간에 한계를 두려는 자들에 주의하라.
분명 육체는 인간으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둔다. 그러나 세금을 거두는 것은 그저 한때뿐이다. 누가 영겁(永劫)에 걸쳐 하인이 되고 싶겠는가? 주인이 지워 놓은 멍에를 던져 버리고 세금의 의무에서 해방되기를 꿈꾸지 않는 하인이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예속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서조차 예속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모든 종류의 예속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늘 희구하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자유는 인간의 것이다.
극복을 희구하는 자에게 혈연관계란 무엇인가? 의지로써 타파해야 하는 결박이다. 극복자는 자신의 피가 모든 피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따라서 그는 어떤 피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희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종족을 재생산하게 하라. 희구하는 자에겐 번식시켜야 할 다른 종족이 있다. 그것이 진정 극복자의 종족이다. 극복자의 종족은 남근과 자궁으로부터 생겨나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에 지령받는 피가 흐르는 독신자의 마음에서 생겨나 올라간다.
나는 그대들과 그대들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독신의 맹세를 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자모라의 꿈이 증명하듯이, 그대들은 독신과는 거리가 멀다. 수도승의 옷을 걸치고 두꺼운 벽과 무거운 철문 뒤에 자신들을 격리하는 자가 독신자는 아니다. 수많은 남녀 수도자는 가장 음란한 자보다 더 음란하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다른 육체와 결코 나누지 않겠다고 -전혀 거짓없이- 맹세하지만, 진짜 독신자는 마음과 정신이 독신인자들이다. 수도원에 있든 세간의 시장에 있든 상관없다.
나의 동행자들이여, 여자를 신성한 존재로 존경하라. 종족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배우자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이원적인 생장의 수고로움과 고통 속에 있는 한 쌍의 한쪽으로서, 자신의 동반자로서, 나누어졌다가 합쳐지는 분신으로서 존경하라. 왜냐하면 남자는 여자 없이는 이원성의 조각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에 의해 남자는 하나됨을 발견하고, 남자에 의해 여자는 이원성에서 벗어난 자유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 쌍은 마침내 하나로 결합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 남자도 여자도 아닌 완전한 인간, 즉 극복자이다.
극복자에 대해 나는 가르친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 통일된 인간을. 미르다드가 그대들을 떠나기 전,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극복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모라가 말했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떠난다는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이 슬픕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을 찾아도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자모라는 스스로의 목숨을 끝내고야 말 것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자모라, 그대는 많을 일을 하려 할 수 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대의 의지. 즉 ‘생명’의 의지이자 ‘전능의 의지’인 그대의 의지를 끝내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결코 스스로를 없애려고 할 수 없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의지를 가질 수도 없다. 진정 신조차 자모라를 끝낼 수는 없다.
내 그대들을 떠나면, 육체 속에 있는 나를 찾아도 볼 수 없는 날이 분명히 온다. 왜냐하면 내게는 이 지구 외의 다른 곳에서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에 있을지라도 나는 할 일을 미완성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라. 미르다드는 그대들을 극복자로 만들 때까지는 -완전히 자기를 지배하는 통일된 인간이 된 때까지는- 그대들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대들이 비로소 극복을 획득하게 될 때, 미르다드는 그대들의 마음에 영원히 머물게 되며. 미르다드의 이름은 그대들의 기억에서 결코 녹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노아에게 가르쳤다.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