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변두리 정리 /강돈목

수필의 변두리 정리   강돈목생태적으로 ‘무형식의 형식’를 추구하는 수필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흐리게 하고, 혼란에 빠뜨린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말은 어떠한 형식이든 취할 수 있다는 여유로움을 나타내지만, 수필 나름의 특질을 버려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말 그대로 형식의 다양성을 나타낼 뿐이다. 그렇다고 아예 형식이 없다고 속단해서도 안 된다. 여기에 수필의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데 흔히 수필과 혼동하는 형식들이 있다. 서간문, 기행문, 일기문, 칼럼 등이 세간에는 수필로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수필이 온전한 자리 매김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것들과 차별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더러는 수필의 범주에 마구 끼워 넣음으로써 수필의 체면에 누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수필에서 시의 형식을 빌려 썼다하여 시라 하지 않고, 시에서 수필의 형식을 빌려 쓴다하여 시를 수필이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필에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왔다하여 소설이라 하지 않고, 소설을 수필이라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필에서는 다양한 글의 형식을 빌려 쓸 수 있지만, 그 형식의 장르의 글을 모두 수필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수필이 서간문의 형식을 빌려 썼다하여 서간문이라 할 수 없고, 서간문을 수필이라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 형식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혼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와 같은 수필의 변두리 형식들을 바로 정리하지 않으면 수필은 온전한 영역 확보에 장애가 될 수 있다. 몇 가지만이라도 짚어 보자. 서간문과 수필은 어떻게 다를까. 편지글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공유한 세계가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끌고 나가도 별다른 무리가 없다. 둘 만이 함께하는 세계가 있기에 말하려는 의도를 다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같이 공유한 부분이 희박한 수필가와 독자 사이에는 다르다. 분명 글쓰기에 앞서 독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설정하고, 첫 문장 첫 단어에서부터 주제를 향해 달려가야 독자에게 버림을 받지 않는다. 이같이 전혀 흐트러짐이 없는 글이 수필이다. 그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 먼저 소재의 본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수필이 된다. 기행문도 그렇다. 여행을 하면서 여정에 따라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는 것이 기행문이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해도 무방한 것이 기행문이다. 하지만 기행문의 형식을 빌린 수필은 다르다. 하나의 주제가 있기에 글 전체가 통일성을 요구한다. 정확히 말하면 주제와 어긋나는 곳의 여정은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어찌 보면 기행문의 형식을 빌린 수필은 굳이 여정이 끼어들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생각 중에서 주제와 밀착된 것만 꺼내어 해석하고 기술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여타의 것들도 수필과 차별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온전한 수필의 영역이 확보되리라 믿는다. 칼럼도 분명 수필과 다르다. 이것은 내용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확연히 차이가 있다. 수필은 영원성을 갖는 문학이다. 지금 쓴 글이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독자에게 전달 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시대의 변화, 독자의 변화에 따라 동적구조로 인식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설지는 몰라도 영원한 생명을 갖는 문학이다. 하지만 칼럼은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생각을 적은 글이다. 그래서 그것의 생명은 한시적이다. 칼럼은 그 글을 쓸 때 독자만 의식하면 된다. 글에서 주장한 바가 이루어지면 그 글의 생명은 상실하게 된다. 수필처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수필이 어떤 형식이든 다 빌려 쓸 수 있다하여, 그것들이 모두 수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만이 가지고 있는 특질을 간직하고 있을 때만이 수필이라 말할 수 있다. 요즈음 퓨전수필이라 하여 수필 영역 확보를 위해 많은 작가들이 노력하고 있는데, 이때에도 이런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믿는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수필은 많이 차용되는 형식들과 확실한 차별화가 이루어져야 나름의 영역이 확보된다는 생각이다. 이것마저 명쾌하게 해 놓지 않으면 수필의 영역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몰락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수필의 변두리를 확실히 정리하여, 혼동의 위험성을 말끔히 제거할 때 온전한 수필의 세계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수필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형식들은 그것이 아니듯이, 수필적 요소가 가미 되지 않은 여러 형식 자체가 수필일 수는 없다. 수필은 문학이기에 영원성이 있어야 하고, 소재를 해석해 낸 작가의 자기화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소재의 기록이 수필이 될 수 없다. 주변의 많은 형식들을 빌려 소재를 상세히 적는 데에 그친 글들은 결코 수필이 아니다. 수필의 장르적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러한 변두리 형식 자체가 수필이 아니라는 정리가 선행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수필은 어떠한 형식이든 빌려서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속에 수필적 요소를 가미 했을 때에만 수필임을 명심해야 한다. <월간문학, 529호, 2013. 3. 수필 월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