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화대불공
“스승이 법을 새로 내는 일이나, 제자들이 그 법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전하는 일이나, 또 후래 대중이 그 법을 반가이 받들어 실행하는 일이 삼위 일체(三位一體)되는 일이라, 그 공덕도 또한 다름이 없나니라.”
이 말씀은 부촉품 19장의 말씀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대종사님께서 법을 내 놓은 것이나 그 법을 받아서 후래 대중에게 전하는 것이나 또 후래 대중이 그 법을 받아서 실천하는 것이나 그 공덕은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원불교 삼학팔조 사은사요의 교리를 오롯하게 실천하면 대종사님께서 법을 내놓은 공덕하고 똑 같이 막먹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대종사님께서 법을 새롭게 내놓은 것이나 똑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 복을 똑 같이 받는 것입니다.
그 동안 제가 이곳 임피교당에 와서 한달에 한번은 백년성업기도를 하자고 해서 매월 두 번째주 법회 때는 백년성업 기도를 합니다. 그 동안에도 백년성업기도를 두 번째주에 해왔습니다. 다른 교당에서는 매주 합니다.
경산 종법사님께서 백년성업 5대지표를 내주셨습니다. 5대 지표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아시는 분 계시면 제가 원불교 사전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나요? 그 동안 제가 법회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다 잊어버리셨군요. 첫째는 교화대불공입니다. 기도문에 나옵니다. 교화에 대불공을 하자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성업봉찬입니다. 교단의 여러 가지 사업을 봉찬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를 성스럽게 봉찬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과 자성을 성스럽게 봉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세계주세교단건설입니다. 앞으로 원불교가 세계주세교단이 되어야 하는데 원기 100년으로서 그 기틀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대자비교단입니다. 자비훈풍이 넘쳐나는 교단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보은대불사입니다.
이 5대지침을 내주셔서 제가 예전에 설교까지 다 했습니다.
이 5대지표 가운데 첫 번째인 교화대불공을 가지고 오늘 한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교화대불공이라는 말은 원래 우리 교단에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경산종법사님께서 백년을 당해서 교화대불공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교화대불공이란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는 교화를 위해서 우리가 대불공하자는 뜻입니다. 교단이 교화가 자꾸 힘들어지니까 교화를 위해서 크게 불공하자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또 다른 뜻은 교화르 잘 해서 대불공하자는 뜻입니다. 교화를 잘 해서 부처님께 크게 공양하자는 뜻입니다. 이 두가지 뜻이 다 맞지만 백년성업을 당해서는 후자보다는 전자 뜻이 더 맞습니다. 교화를 하되 그냥 하지말고 불공하듯이 하자는 뜻입니다. 대불공하듯이 하자는 말입니다. 절에 가서 불공할 때 어쩝니까?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3천배를 하듯이 그 사무치는 불공으로 교화를 하자는 뜻입니다. 오롯하게 불공하는 정신으로 교화를 하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안될 교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 육신, 물질 모든 것을 바쳐서 교화를 해보자는 말입니다. 불전에 모셔져있는 분만 부처님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니, 이들에게 법당에 모셔셔 있는 부처님께 불공하듯이 교화를 하다보면 안되는 것이 없기에 그런 정신으로 교화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산종법사님께서 말씀하신 교화대불공의 의미는 우리 모든 교도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만나는 대상마다 정신, 육신, 물질로 불공을 하여 교당에 다닐 수 있도록 입교도 시키고 원불교 주인이되도록까지 힘을 쓰게 하는 것입니다.
궁극에 가서는 원불교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입니다. 주인은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주인이 되도록 까지 하는 것이 교화대불공입니다. 이러한 교화대불공을 하자고 해서 교단에서는 2만 단장을 만들자, 또는 현장교화를 하자, 청소년교화를 더 잘 하자, 교화창안제도를 두자, 교구자치제를 확립하자고 하여 여러 가지를 많이 정책으로 내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당교화는 교단의 대불공이 너무 거리가 먼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것을 보면 지역과 여건에 따른 기능을 다양화해서 선방 만들고, 영모전 만들고, 지역아동센터 만들고, 마음공부방 만들고, 가정상담소 만들고, 청년학사 만들고 다문화센터 만들고 다양한 소규모복지시설 만들자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교화가 다 됩니까? 또 생활문화를 토대로 한 교화모델을 다양화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토탈교화응 하고, 대형교당을 만들고, 통합운영교화단 공동교화제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습니다. 좋은데 가장 기본은 어떻게 하면 식구를 한 명이나 더 늘리느냐입니다. 우리 나라도 인구가 없어 큰 일 났습니다. 중국도 그 동안 한 명밖에 낳지 못하게 했다가 그것을 이제는 생산인구가 없다고 터 놓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집 건너 하나만 낳자고 했다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요즘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하냐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제도 자체가 결혼생활 하기에 참으로 힘들게 되어있습니다. 결혼을 해서 삶의 질이 향상이 되고 가족들이 뭔가 행복을 느끼는 제도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낳자마자, 돈으로 시작하고 바로 대학을 목표로 경쟁체제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유럽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학을 안가도 대학가는 사람 이상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고 행복하게 살도록 제도가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제도가 힘들게 되어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려고 하질 않고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당 식구를 늘리려고 하면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 하고 이곳에서 재미를 부쳐야 합니다. 여기서 꼭 서로 챙겨줘서 교당식구로 끌어들여야 교당식구가 늘어나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들 갈대로 가거라 놓아두면 살아나냐 이겁니다.
그래서 교화대불공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올해 탄신 백주년을 맞이하는 대산 종사님께서 교화 3단계 법문을 내려주셨습니다.
첫 번째가 자비인정교화(慈悲人情敎化)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자비로서 인정을 건내서 교화하는 것입니다. 정을 건내가지고 통하는 교화로 주변사람들에게 초코파이를 많이 주는 교화입니다. 많이 줌으로 인해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자비로써 주변 사람들을 건사를 하다보면 그 은덕을 입은 사람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비 인정이 없이 찬바람이 부는 사람이 원불교 좀 가세 하면 너나 가거라 합니다. 원불교 다니는 사람이 찬바람이 씩씩 부냐고 하면서요. 그러니까 원불교 다닌 사람들은 얼굴에 온화한 기운이 넘쳐 흘러야 합니다. 자비스러운 모습이 넘쳐흘러야 합니다. 원불교 다닌 사람들이 착하고 선하다는 이야기를 대체적으로 많이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지 말아야 합니다.
대산종사님께서는 인왕경의 사섭심(四攝心)과 같이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함께 하는 정의(情誼)가 건네야 법이 스며들게 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섭십이라는 것은 네 가지 자비로 펼치는 것이다. 그 첫째가 보시다. 보시는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손을 넣어주고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이다. 보시를 하는 것이 정을 건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애어로 사랑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점이 참 좋다라는 칭찬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칭찬을 해주면 고래도 춤춘다고 합니다. “아이고 저 놈의 자식 어디서 주워왔는가 모르겠어”와 같은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행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나만 배부르려고 하지말고 같이 배부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동사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고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다. 함께 하는 그 자체로서 자비가 넘쳐흐르고 인정이 넘쳐흐르는구나 해야 한다. 이렇게 자비로움이 넘쳐야 교화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무량법문 교화(無量法門敎化)다.
자비인정교화로서 끝나지 말라고 하면서 법문무량교화를 하라고 하셨다. 무량한 법문을 자꾸 소개를 해서 끌어올리고 정법회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옳은 법을 전해서 신수봉행(信受奉行)하게 하고 그 살아가는 활로(活路)를 열어주며 진리를 자각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 그래, 그 말씀이 어디가 있어요. 그 옳은 말씀이 어디가 있어요?”하고 묻습니다. 그 때는 원불교 교전에 있다고 해서 인도를 해야 합니다.
전주 서신교당 교도님 한분이 2년전, 총부 신년 하례에서 1천5백명이 운집한 가운데 감상담을 했습니다. 이 교도님은 남자분인데 경찰서 형사로, 결혼하기 전에는 기독교를 믿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엄마는 금산사 절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자기 어머니를 보고 "큰 아들이 기독교를 믿으니 집안에 뭔 일이 되겠나. 큰 아들 보고 불교로 오라고 해라."고 하니까, 이 엄마가 아들을 보고 사정을 해서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다녔답니다. 그런데 한번은 친구가 성주성지순례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마침, 그날이 노는 날이었답니다. 쭉 둘러보고 탄생가 앞 책장에 보니 원불교전서는 1만 5천원인가 되고 작은 책자는 그냥 가져가는게 있더랍니다. 그래서 그것만 여섯 개를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집에 와서 읽어보았답니다. 읽어보니까 원불교가 꾀도 많더랍니다. 어떻게 각 종교의 골수만 쏙 빼다가 교리를 만들어 놓았더래요. 너무 감동해서 자기 어머니 보고 그 먼 산에까지 가지말고 우리동네 절이 있으니 거기 가자고 했답니다. "우리 동네 절이 어디 있어." "아! 저기 동네에 원불교라는 간판이 붙어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원불교에 왔답니다. 그랬는데 어머니가 절에 평생 다니면서도 못 고치던 마음이 원불교 1년을 다니더니 그냥 고쳐지더랍니다. 큰 며느리는 늘 시어머니 미움받이였답니다. 그것이 시어머니가 젊을 때 시집왔기 때문에 그랬답니다. 이 시어머니가 며느리 보는 눈이 달라졌답니다. 여름에 부엌에서 밥한다고 하면 글쎄 선풍기를 갖다가 바람을 대주면서 '더운데 애쓴다. 밥해줘서 고맙다.'하더랍니다. 이때부터 이 젊은이가 입교운동을 해서 처갓집 식구들 전부 다, 사돈네 팔촌까지 이 세상에 원불교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종교가 없으니까, 원불교 믿으라면서 다 입교를 시켰답니다. 무엇 때문에 이 교도님이 그랬을까요? 무량법문교화 때문에 그런 거잖습니까? 원불교 교전을 가지고 보니까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입니다. 원불교 수많은 법문을 읽으면서 변화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원불교 다니면서 변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습니다.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원불교도 변해야 삽니다. 무엇으로 변하느냐면 무량한 법문을 통해서 변해야 합니다. 교전을 통해서 자꾸 변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듣고 변해야 합니다. 또 교무가 설교한 내용을 가지고 자녀들과 주변 인연들한테 전해줘야 합니다.
세번째는 무언실천교화(無言實踐敎化)입니다.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실천하면 됩니다. 무언실천교화는 궁행하고 실천하는 교화입니다. 동정간(動靜間) 삼학(三學) 수행을 몸소 실천하여 대중의 사표가 되는 것입니다. 모범이 되면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실천교화를 하면 주변에서 원불교 다닌 사람은 뭔가 틀리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따라서 틀린 것은 뭔가 있으니까 틀리지 하고 나도 한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말이 없는 가운데 실천을 통해서 주변에 감동과 감격을 가져다줘야 합니다. 내가 못했을 때 다른 사람이 하면 감동을 줍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내가 하면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감동을 주려면 내가 힘들어야 합니다. 실천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교화를 해 나갔을 때 교화가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 임피교당 교도들은 어떻게 교화대불공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 가족을 비롯해서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을 원불교와 인연을 맺어주고 입교시키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가족과 주변 인연들을 입교운동을 해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가득 차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천도품 27장에서 “부처님의 정법에 한 번 인연을 맺어 주는 것만 하여도 영겁을 통하여 성불할 좋은 종자가 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인연을 맺어주면 언제 성불할 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교당은 못 나오더라도 호적은 올려놓아야 합니다. 호적을 올려놓은 것은 입교를 시키는 것입니다. 정산종사님께서는 “구인 이상의 동지를 이 회상에 인도하여 대종사의 법은에 다 같이 목욕하게 하는 것은 우리 원불교인들의 신성한 의무 가운데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원불교인이 되면 몇 사람을 입교시켜야 합니까? 아홉사람을 입교시키도록 되어있습니다. 이 입교운동이 신성한 의무중의 하나입니다. 이 가운데 입교를 시켜놓으면 거룩한 성자가 나올 수도 있고 훌륭한 사업가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연원의 공덕은 그 무엇으로도 비유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나 친지를 끌어와야 합니다.
둘째는 잠자는 교도를 깨우고 챙기고 또 챙겨서 교당에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호적만 올린 분들을 자주 나오도록 깨워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신성품 7장에서 “남을 가르치는 데에도 신 없는 사람에게 신심 나게 하는 것이 첫째 가는 공덕이 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잠자는 교도님들의 애경사를 우리가 챙겨야 합니다. 지금 몇 번 안 나오신 분들을 늘 전화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몇 분이 나옵니다. 애경사를 챙기는 길 밖에는 교화대불공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에 믿음이 생기고 신앙이 생깁니다. 나만 해서는 안되고 같이 해야 합니다. 옆에 새로운 사람이 왔는데 나몰라라 하고 나만 성가를 부르면 안됩니다. 관심을 갖고 안내를 해줘야 합니다.
셋째는 혈심가진 참주인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교단품 32장에서 “큰 회상(會上)을 일어내는 데에는 재주와 지식과 물질이 풍부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물론 필요하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울타리가 될 뿐이요,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血心) 가진 참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하나니, 그가 참으로 알뜰한 주인이 될 것이며 모든 일에 대성을 보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신신이 없는 재주나 학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변절자가 되기 싶습니다. 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혹 둔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도 혈심가진 참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원불교를 생명과 같이 알고 원불교를 만나서 영생을 함께 하는 신성을 가진 혈심가진 참사람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성현이 법을 내는 일이나 후래 대중이 법을 받드는 일이나 법을 전하는 일이나 그 공덕은 다 같다고 하셨으니 교화대불공하는 우리 교도님들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상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